[태평양전쟁 항공전] F4U 코르세어 대 A6M 제로 태평양전쟁


F4U 코르세어 대  A6M  제로


아무리 F4U 코르세어가 다른 미국 항공기와 비교가 안 되게 우수하더라도 그것은 현실적 비교가 못 됐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유버드(U-Bird, 코르세어의 별칭)가  주된 상대가 되는 일본 미쓰비시 제로 시리즈에 대항할 수 있느냐였다.  

 
F4U 코르세어


1943년 1월 초  124 해병대 전투기편대가 솔로몬 제도로 떠나기 직전 조 클리프턴이 해병대원들에게 브리핑했다. 그는 1942년 6월 알류션 제도에서 발견된 손상되긴 했지만 온전하게 수리된 A6M2 제로를 조종한 적이 있었다.  그 제로는 북쪽섬에서 수리돼 철저한 기술 및 전술 테스트를 받았다. 그가 발견한 것들이 초기 전투에서 가이즈 소령의 파일럿들을 크게 도왔다. 제로 앞에서 코르세어의 제1 강점은 속도였다.  클리프턴은 교전과 회피를 주도하기 위해 속도를 이용할 것을 주장했다. 우측으로 240 노트(시속 440 km)의 속도로 급강하하면 언제나 제로를 뿌리칠 수 있었다.

1944년말  F4U-1D와 노획된 A6M5 지크 52형로 상세한 테스트를 실시했다. 해수면에서 3만 피트까지 코르세어가 평균 55노트(약 시속 100 KM)  빨랐다. 속도 우위는 5천 피트에서 36노트로 최소였고 2만5천 피트에서 69노트로 최고였다. 최고속도는 코르세어가 20,400 피트에서 355 노트이고 지크는 18,000 피트에서 290 노트였다.  

F4F 와일드캣과 달리 코르세어는 상승 속도에서 지크와 동등하거나 넘어설 수 있었다. 이들 보트사와 미쓰비시사의 전투기는 1만 피트까지는 동등했고 그 이상 고도에서 코르세어가 앞섰다. 실제로 18,000 피트에서 코르세어는 지크보다 분당 750 피트 더 빨리 상승했다. 최고 상승 속도는 코르세어가 135 노트이고 지크는 105 노트였다.

“175 노트 이하 속도에서 지크 52형의 기동성이 두드러져  F4U-1D보다 훨씬 우수하다” 라고 보고서에서 말했다. "그러나 그 우위는 속도 증가에 따라 조종하는 데 힘이 들면서 줄어들어 200 노트 이상에서 F4U-1D가 앞섰다” 라고 적었다. “테스트 결과 1만 피트의 저속 선회에서 지크는 3 분 30 초 안에 한바퀴의 선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르세어는 175 노트의 속도를 유지하며 플랩을 모두 내려 반바퀴 동안은 지크와 동등하게 선회할 수 있었다. 그때 속도가 150 노트로 떨어진다면 회피 기동에 들어가야 할 때다."

A6M5 제로

코르세어는 뛰어난 에일러론 덕분에 제로기들보다 중요한 우위를 한가지 가졌다. 200 노트 이하에서 두 전투기의 롤레이트가 동등해서 F4U는 대등하게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200노트 이상에서 코르세어의 에일러론이 여전히 효과적인 반면 지크의 에일러론은 무거워진다. 에일러론을 완벽히 만들기 위해 이러한 엔지니어링 테스트 비행에 투입된 시간이 실제 전투에서 커다란 잇점을  낳았다.

강하 능력 비교에서 두 전투기는 아주 초기단계에서 거의 막상막하였다. 그 단계가 지나면 코르세어가 믿기힘든 속도로 가속하면서 훨씬 우수했다. 강하 비행에서 F4U를 뿌리칠 수 있는 일본전투기는 거의 없었다. 달아나도 그것은 오로지 단거리에 한정됐다.

전투 항공기는 일종의 사격 플랫폼이므로 이제 무장을 말할 차례다. 지크는 일본 전투기의 전형적 무기조합을 채택했다. A6M5에서 200 발의 20 MM 기관포 2 문과 1400 발의 7.7 MM 기관총으로 구성됐다. F4U시리즈는 주로 6문의 콜트브라우닝 M-2 .50 구경 기관총으로 무장했다. 원형에서 양산형으로 넘어가면서 기수의 기총은 제거되고 주익에 4 문의 .50 기총을 장착하는 안이 나왔다. 그러나 미 전투기의 표준 무장이던 6 문의 .50 기총으로 최종 결정됐다.  이들 기총은 총 2,350 발을 장탄했다. 주익의 안쪽 2 문은 400 발, 나머지 바깥쪽 4 문은 375 발씩 장탄했다.

이것은 가공할 화력이었다. M-2 기총은 직경 .511 인치의 709 그레인 즉 1.6 온스 (45.36 그람)의 탄환을 총구속도 초속 2,840 피트( 초속 865 M)로 발사한다고 명시돼 있다. 300 야드에서 집중되게[역주: 미군 전투기의 기총은 일정거리에서 한점에서 교차하도록 설정됐다] 조정하면 6문의 .50 구경 기총은 항공기뿐 아니라 경량급 해군함정까지 가공할 손상을 입힐 수 있었다. 특화된 총탄의 생산이 증가되면서  탄약을 더욱 다양한 형태로 조합할 수 있었다. 1943 년까지 대부분의 미군 .50 구경기총 탄약은 철갑탄, 소이탄, 철갑탄, 소이탄, 예광탄의 비율로 벨트장탄돼 코르세어 파일럿은 한번의 미션에서 일본기를 4, 5 기 심지어 6기까지 격파할 수 있었다.

개발프로그램 초기단계에서 F4U-1을 덴마크제 23 MM기관포로 무장하는 방안도 어느 정도 고려됐다. 1943년 가을 F4U-1C의 한정생산을 개시해 총 200 기가 생산됐다. 이들은 F4U-1A에 4문의 20 MM 기관포를 장착했다. IMR 4831 탄약을 사용해 이 20 MM 기관포는 3/4 인치 직경의 탄환을 .50 구경보다 더 짧은 사거리와 더 느린 속도로 쏘았다. 또한 시간당 발사 속도도 다소 느렸지만 적은 명중탄으로도 더 치명적이었다. 후기형 코르세어 특히 F4U-4B와 프랑스의 F4U-7도 20MM 기관포를 장비했지만 대다수의 코르세어는 6문의 .50 구경 기총을 탑재했다.

(이상 다음을 번역: Corsair The F4U in World War II and Korea  By: Barrett Tillman Page 19)

이러한 코르세어도 초기 데뷔는 형편없었으니....

1943 년 2 월 14 일 남태평양 전선(제13 공군) - 아침에 육안 및 사진 정찰 미션에서 일련 번호 F5A 42-12678인 P-38정찰기가 격추돼 MIA 즉 전시행방불명으로 처리됐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제252항공대의 제로 4기가 현지시각 09시 31분 1기의 P-38을 격추했다. 뒤따라 101 폭격비행대대에서 9 기의 PB4Y-1 리버레이터(B-24의 해군형)가 1천 파운드 폭탄 1발을 탑재하고 과달카날의 헨더슨 기지를 이륙해 부인-쇼틀랜드 지역의 선단을 폭격하는 임무에 나섰다. 이들을 호위하러 제347 전투기 전대와 제339 전투기 편대 소속 10기의 P-38 라이트닝 그리고  124 해병전투기 대대 소속 12기의 F4U 코르세어가 솔로몬 제도 쿠쿰의 파이터 2기지를 이륙했다.

PB4Y-1 리버레이터 폭격기



목표 상공에서 폭격기들은 히타치마루호를 포함한  적 수송선단에 몇발을 명중시키고 다른 두 척에 지근탄을 기록했다. 이들 편대를 30 기의 A6M 제로와 15기의 A6M2-N 루페 수상전투기가 공격했다. 이 공중전에서 미군은 14 기의 지크 와 1기의 F1M2 피트수상기[일본의 복엽 수상 정찰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단지 1기만 잃었을 뿐이다. 

A6M2-N 수상전투기


P-38 라이트닝 전투기 

미군은 10기의 항공기를 잃었다.  PB4Y-1 31948호, PB4Y-1 31970호, 핀켄슈타인(행방불명)의 P-38G, 멀베이(구출)의 P-38G, 휴이(포로)의 P-38G, F4U-1 02187호(행방불명), F4U-1 02249호(행방불명)이다. 미군 측의 심대한 손실 때문에 이 미션은 성발렌타인데이의 학살로 알려졌다. P-39 기들과 해군 항공기들이 문다 지역의 문다 비행장과 대공포 진지 및 다른 목표물을 폭격하고 기총소사했다. 전날과 이날의 손실 때문에 북솔로몬 제도 지역에서 모든 주간 폭격 임무가 전투기 호위가 적절히 준비될 때까지 중지됐다.

다음은 코르세어 에이스 케너스A.월쉬의 말. 

"나는 고도가 가장 중요함을 재빨리 깨달았다. 고도 상의 우위를 가지면 누구라도 공중전을 모든 면에서 지배할 수 있으며 제로기의 파일럿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F4U는 저속 기동성과 저속 상승속도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제로를 넘어섰다. 그러므로 제로와 교전 시 저속을 피해야 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우리는 전술들을 개발해 매우 유효하게 적용했다. 그러나 때때로 1기의 제로와 1 대 1로 저속에서 엉퀸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생존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21 기 격추 기록 가운데 17 기는 제로 였고 나는 전투에서 5기를 잃었다. 나는 3 번 격추 당하고 1 기는 기지의 라인백을 들이받고 거기 있던 다른 1기의 F4U 를 완전히 박살냈다."




덧글

  • TBSH 2012/06/21 17:09 # 삭제 답글

    쾨니히스티거도 초장에는 오스틴 대위에게 쳐발쳐발
  • 뽀도르 2012/06/25 13:25 #

    과부제조기다운 데뷔전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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