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역사]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 The Black Death (1) 역사 잡설

흑사병 Black Death (1)



흑사병

흑사병은 역사상 가장 치명스런 질병의 하나로 페스트균 Yersinia pestis이라는 세균이 일으킨 것으로 널리 믿었으나 최근 다른 몇몇 요인에 의해 다른 질병들이 흑사병의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대기를 보면 그 특징은 임파절의 종창으로 19세기 후반의 아시아 선페스트와 같다. 20세기 초 과학자와 역사가들은 흑사병이 곰쥐에 기생하는 벼룩과 페스트균이 일으킨 동일한 질병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을 최근 일부 과학자와 역사들이 의심한다. 질병이 퍼진 사료를 해석한 일부 연구자는 출혈열의 일종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흑사병의 임상 형태에 대한 가장 충실한 기록은 선腺페스트와 더 맞는다.

이 역병이 어디서 온 건지 학자 사이에 말이 많다. 어떤 사가들은 중국이나 중앙아시아로 보는데 마멋의 허파에서 벼룩이나 쥐 등으로 옮겨지다 인간까지 걸린 것으로 본다. 1320년대 후반이나 1330년대에 그리고 그 뒤 몇년 간 상인과 병사들이 비단길을 따라 전파하고 1346년 유럽동남부의 크림반도까지 퍼졌다고 본다. 다른 학자들은 역병이 그곳의 풍토병이라 본다. 둘 다 크림반도에서 서유럽과 북아프리카로 1340년대에 전염된 것이다. 전 세계에 걸친 사망 추정치는 7천 5백만명, 그 중 유럽 에서 약 2천 5백만에서 5백만명이 죽었다. 흑사병으로 유럽인구의 30-60%가 죽었다 본다. 세계인구가 4억 5천에서 1400년에는 3억 5천에서 3억 7천 5백만으로 감소했다 추정한다.

이 역병은 1700년대까지 매 세대마다 다양한 독성과 사망율로 돌아왔다 본다. 1603년의 재유행에서 38,000명의 런던 시민을 죽였다. 다른 이름난 17세기 유행은 1629-1631 이탈리아역병과 스페인 세비야  대역병(1647-1652), 오스트리아 빈의 대역병(1679)이다. 이 질병의 정체를 두고 논쟁이 있지만 1720-1722년의 마르세이유 대역병, 동 유럽을 강타한 1738년 대역병, 1771년의 모스크바역병 이후 19세기에 유럽에서 사라진 것 같다.

14 세기 흑사병이 맹위를 떨쳐 유럽인구가 크나큰 영향을 받고 사회구조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왔다. 로마카톨릭교회에 큰 충격을 줘서 유대인, 외국인, 거지, 나환자 등 소수 그룹을 널리 박해했다. 매일 생존이 위태롭자 병든 분위기가 넘치고 순간을 위해 살았다고 지오반니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묘사했다.

이름의 유래

중세인들은 14세기 천재지변을 대페스트 the Great Pestilence나 대역병 the Great Plague으로 불렀다. 역병 유행기의 저술가들은 이 사건을 대사망 大死亡 the Great Mortality이라 썼다. 흑사병이란 용어는 1833년 나타났다. 이 역병이 끝 무렵에 피부가 피하출혈로 까맣게 바뀌는 걸 보고 흑사병이란 이름이 비롯됐다고 널리 믿는다. 그러나 그보다 '시무룩한', '가여운', '무시무시한' 같은 뜻으로 '검은 흑'을 썼음직하다.

역병의 이동경로

흑사병은 유럽의 주요 해상/육상무역로를 따라 빠르게 퍼졌다. 이 역병은 흔히 중앙아시아 설치류( 주로 마멋의 일종인 보박 bobac) 몸속에 사는 페스트균이 일으킨다고 널리 믿지만 14세기 역병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모두 밝혀진 게 아니다. 인기 학설은 중앙아시아 초원 기원설이다(인도북부 기원설도 있지만)  Michael W. Dols 같은 역사가는 지중해의 역병 관련증거와 특히 유스니아누스역병을 볼 때 아프리카에서 비롯돼서 중앙아시아로 퍼지고 거기 설치류 무리에 전파됐다 본다.

몽골군과 무역상이 몽골의평화 Pax Moglica  시기에 통행이 자유로워진 비단길을 통해 중앙아시아에서 동서 양쪽으로 퍼뜨렸다. 유럽에 처음 나타난 건 1347년 크림반도의 무역도시 카파 Caffa 다. 도시를 오래 포위한 몽골군은 역병에 시달렸는데 도시에 병이 퍼지도록 병으로 죽은 시체들을 던져넣었다.

배를 탄 제노아 상인들이 시칠리아와 남유럽으로 병을 옮기고 거기서부터 퍼져나갔다. 이 가설이 맞든 틀리든 전쟁, 굶주림, 날씨 등 여러가지 선행조건들이 흑사병이 깊어지는 데 이바지했다.  중국에서 13세기에 몽골의 정복전쟁으로 농업과 상업이 붕괴하여서 광범위한 기아를 초래했다. 그 인구가 대략 1억 2천만 명에서 6천만 명으로 급감했다. 14세기의 역병으로 중국 전인구의 1/3이 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럽에서 중세의 온난기 the Medieval Warm Period 가 13세기 말 무렵에 끝나자 더 혹독한 겨울이 오고 수확량은 줄었다. 1315년에서 1317년 사이 대기근 the Great Famine으로 알려진 파멸적 기근이 북서 유럽의 많은 지역을 강타했다. 이 기근은 앞선 세기의 대규모 인구증가의 결과인데 이로써 14세기 초부터 인구는 농지와 농부의 생산량이 지탱할 수 있는 숫자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북유럽에서 무거운 쟁기의 사용, 3포제 the three-field system 같은 새로운 기술적 개선이 도입되지만 북유럽의 토양이 척박하고 진흙 같아서 지중해지방에서만큼 효과적이지 못했다. 역병이 창궐하기 이전 한 세기 동안 식량부족과 하늘로 치솟는 물가가 일상화됐다. 밀, 귀리, 건초, 가축이 모두 모자라고 이러한 결핍이 굶주림과 영양불량으로 이어졌다.  이 결과, 면역체계가 약화되어서 질병에 대한 인체의 저항력이 떨어졌다.

유럽경제가 악순환에 빠지는데 굶주림과 만성적이고 저수준의 소모성질환이 노동자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그 결과 산출량이 줄고 곡물가격을 올렸다. 이 상황은 영국의 에드워드3세나 프랑스의 필립6세 같은 토지소유자와 군주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신들의 생활수준이 떨어질까 두려워서 세금과 소작료를 올리는 바람에 더욱 나빠졌다. 생활수준이 심각하게 저하하자 식사는 더욱 제한되고 유럽인들은 전체적으로 더욱 많은 건강문제를 겪게 되었다.

1314 년 봄 폭우가 시작되고 몇년간 춥고 축축한 겨울이 이어졌다. 이미 수확량이 감소한 상태이던 북유럽은  더욱 고통 받고  7년 간 기근이 계속됐다. 이 대기근은 유럽역사 상 가장 혹독하였는데 최소 10 %의 인구가 감소했다. 나무의 나이테분석에 따르면 이 기간에 기상악화뿐 아니라 건축의 중단도 일어났다.

다가오는 재난을 미리 알려주는 사건 즉 일종의 장티푸스성 유행병이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서 나타났다.  인구가 집중된 도시지역 특히 이프르 Ypres에서 수천, 수만 명이 죽었다. 1318년 기원을 알 수 없는,  때때로 탄저병 anthrax으로 알려진 선페스트의 일종이 유럽의 동물들 특히 양과 소에게 나타나서 식량공급을 더욱 줄이고 농부들의 수입을 떨어뜨렸다.

선폐스트 감염의 원인들

페스트균 Yersinia pestis 현미경 200배 사진.
이 세균은 벼룩이 옮기며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으로 널리 믿었다.

흑사병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가지 원인이 존재한다. 선페스트 유행설이 가장 유력하다. 토양과 설치류 그리고 인간의 체외기생충 [진드기 등] 속에서의 페스트균의 생태 및 유행은 Michel Drancourt 가 제한적, 산발적, 그리고 대규모의 유행을 모델링하면서 리뷰하고 요약했다.

페스트균의 충분한 전염은 벼룩이 물어서만 가능하다고 널리 믿어져 왔다. 감연된 숙주에서 며칠간 피를 빨아먹은 뒤 페스트균의 복제로 인해서 벼룩의 중장 midgut 이 폐색된다. 이 폐색으로 벼룩이 굶주리고 더욱 공격적으로 피를 빨아먹고 자꾸 토해서 장폐색을 해소하려 한다. 따라서 수천의 전염성 세균이 흡혈 부위로 쏟아지고 숙주는 감염된다.

그러나 프레리독 에서 관찰되는 동물간 유행병 epizootic plague의 모델링이 시사하는 것은 감염된 사체 carcass 와 같은 간헐적 감염원이 자연계의 질병에서 관찰된 동물간 전염현상에 대한 더욱 그럴듯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기원한 전염병의 역학에 대한 한가지 가설은 질병을 유발하는 벼룩이 기생하는 설치류 집단을 결국 다른 종이  대체했다는 것이다.  무역에 의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검은쥐가 도입되지만 그뒤 더 대형의 갈색쥐가 유럽전역에서 대체하고 계승했다.

갈색쥐의 상이한 생태로 말미암아 병원체운반 벼룩을 인간에게 파멸적 규모로 전파하는 경향은 없었다. 쥐 생태의 역동적인 복잡성, 이들 병원소 reservoir의 집단면역성, 인간 거주환경과의 상호작용, 벼룩이 간여하거나 간여하지 않은 2차 감염경로, 인간집단의 면역성 그리고 이들 개별요소의 변화가 수세기 동안 이어지다가 설명할 수 없능 이유로 사라진 페스트의  발생, 전파, 재발을 설명해줄지도 모르겠다.

증후와 증상

세가지 형태의 역병이 일련의 증후와 증상을 감염자에게 일으킨다. 패혈성역병은 혈액중독의 형태다. 폐렴성역병은 공기전파역병으로서 다른 부위보다 먼저 폐를 공격한다. 선페스트의 고전적 증후는 사타구니, 목, 겨드랑이에 나타나는 임파선종창으로서 고름과 피가 나왔다. 희생자 대부분은 감염 4에서 7일 안에 죽었다. 이 역병이 유럽에 이르러서 먼저 항구도시를 강타하고서 바닷길과 육로의 무역로를 따랐다.

선페스트는 흑사병시기에 가장 널리 나타났다. 사망률이 30에서 75%고 증상은 38-41도의 발열, 두통, 관절통, 메스꺼림, 구토, 전신쇠약감을 포함한다. 선페스트에 노출되고서 사망자 5명 중 4명은 8일 안에 죽었다.

폐렴성역병은 흑사병시기에 두번째로 많이 보였다. 사망률이 90에서 95%였다. 증상으로 발열, 기침, 피가래를 포함했다. 이 질병이 진행하면 가래가 자유롭게 날리고 밝은 적색이 됐다.

패혈성역병은 세가지 중 가장 적게 나타난 형태로 사망률은 100%에 가까웠다. 증상은 고열과 보라색 피부얼룩이다. David Herihy가 이 역병의 다른 잠재증후로서 주근깨 같은 반점과 발진을 확인했다. 통상 'lenticular'로 불리우는 증후를 언급한 이탈리아, Viterbo의 자료에 따르면, 이 'lenticular'는 이탈리아어로 주근깨를 뜻하는 'lentiggini'를 닮았다. 이들은 임파선종창이 부푼 것이라기보다 인체의 큰 부위를 덮는 어두운 반점이나 농포에 가깝다.

[Wikipedia를 번역했습니다]




덧글

  • 이복희 2009/07/07 16:49 # 삭제 답글

    많은 시간을 들여 번역하신것을 단 몇분만에 보는것이 미안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 뽀도르 2009/07/08 09:57 #

    감사합니다 ^_^)
  • 애쉬 2012/10/21 03:26 # 답글

    앗 뽀송이 은별이 단풍이네에 이런 글이 있었다니 +_+

    페스트 숙제하다가 보게됩니다. ㅎㅎㅎ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 많이 죽은 것만 알지 정확하게 무슨 병인지 모르는것이군요;;; 여러 병이 섞여잇기도하고....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동물이라는 이유로 고양이를 집중 구제한 여파로 천적 없는 쥐가 창궐해 페스트가 퍼졌다는 이야기를 정설로 믿고 있었는데 확인된 이야기가 아닌 추측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뽀도르 2012/10/22 13:41 #

    이거 전염병 시리즈로 올리다 중도에 그만 둔 거네요 ㅋㅋ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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