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여포열전] 여포가 동탁을 죽인 이유 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위서,  여포/장/홍전  魏书·吕布臧洪传


정사 삼국지 위서에서 여포, 장막 张邈, 진등 陈登,장홍 臧洪을 함께 묶은 열전 중에서 여포 관련 부분만 번역해봤습니다. 이 글의 한자는 죄다 중국 본토의 간체자입니다. 본문보다 주석이 더 많던데 여포 부분 이외의 주석은 많이 생략했습니다.

여포 吕布

吕布字奉先,五原郡九原人也。以骁武给并州。刺史丁原为骑都尉,屯河内,以布为主簿,大见亲待。灵帝崩,原将兵诣洛阳。英雄记曰:原子建阳。本出自寒家,为人粗略,有武勇,善骑射。为南县吏,受使不辞难,有警急,追寇虏,辄在其前。裁知书,少有吏用。与何进谋诛诸黄门,拜执金吾。进败,董卓入京都,将为乱,欲杀原,并其兵众。卓以布见信于原,诱布令杀原。布斩原首诣卓,卓以布为骑都尉,甚爱信之,誓为父子。


여포 吕布의 자는 봉선 奉先으로 오원군 구원 사람이다. 뛰어난 무술로 정주에서 발탁되었다. 자사 정원 丁原이 기도위가 되어서 하내에 주둔하면서 여포를 주부로 삼은 뒤에 크게 평가하여서 가까이 두었다. 영제께서 돌아가시자 정원이 병사를 거느리고 낙양으로 갔다.


[영웅기 英雄记: 정원의 자-본문의 子는 字의 오타인듯-는 건양 建阳이다.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사람됨이 보잘 것 없었지만 무용이 뛰어나고 달리면서 활을 잘 쏘았다. 남현의 관리가 되어서 명령을 받았을 때 어려운 것도 사양하지 않고 갑작스런 변고가 발생하면 오랑캐 등을 추격하여 금세 그들 앞에 출현하였다. 간신히 글을 알았지만 젊어서 관리가 되었다.]


하진 何进과 더불어 내시들을 처형할 것을 공모하고 집금오에 제수받았다. 하진이 패전하므로 동탁 董卓이 서울에 들어가서 곧 난을 일으키고 정원을 죽이고 그 병력을 거둘 마음을 먹었다. 동탁이 여포를 이용하여서 정원의 신뢰를 얻은 뒤에 여포를 꾀어서 정원을 죽였다. 여포가 정원의 머리를 베어 들고서 동탁에게 가니 동탁이 여포를 기도위로 삼아서 심하게 아끼고 믿더니 부자의 의를 맹서했다.


布便弓马,膂力过人,号为飞将。稍迁至中郎将,封都亭侯。卓自以遇人无礼,恐人谋己,行止常以布自卫。然卓性刚而褊,忿不思难,尝小失意,拔手戟掷布。布拳捷避之,诗曰:“无拳无勇,职为乱阶。”注:“拳,力也。”为卓顾谢,卓意亦解。由是阴怨卓。卓常使布守中合,布与卓侍婢私通,恐事发觉,心不自安。


여포가 활쏘기와 말달리기에 뛰어나고 체력이 보통이 아니어서 비장 飞将이라 일컬었다.곧 중랑장, 도정후에 봉해졌다. 동탁이 본래 사람을 대할 때 무례하므로 사람들이 자신을 도모할까 두려워서 어디를 가든지 항상 여포가 호위하게 하였다. 그러나 동탁의 성격이 억세고 성급하여서 화가 나면 어려운 게 없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차며 극 戟을 여포에게 집어던졌다가 [누가 지은 시: 힘이 없으면 용기도 없는 법인데, 직책이 그 순서를 어지럽히구나!]  동탁이 고개돌려서 사과하고, 동탁의 뜻도 양해를 받곤 했다. 이런 까닭으로 속으로 동탁을 원망하였다. 동탁이 잠자리도 늘 여포에게 지키게 하므로 여포가 자연히 동탁의 계집종들과 사통하고서 발각이 될까 두려워서 마음이 저절로 불안하였다. 

 

초선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동탁.

동탁의 잠자리도 경호하던 여포는 동탁의 계집종들과 사통하고서 들킬까봐 늘 불안하였다.


先是,司徒王允以布州里壮健,厚接纳之。后布诣允,陈卓几见杀状。时允与仆射士孙瑞密谋诛卓,是以告布使为内应。布曰:“奈如父子何!”允曰:“君自姓吕,本非骨肉。今忧死不暇,何谓父子?”布遂许之,手刃刺卓。语在卓传。允以布为(奋威)〔奋武〕将军,假节,仪比三司,进封温侯,共秉朝政。布自杀卓后,畏恶凉州人,凉州人皆怨。由是李傕等遂相结还攻长安城。英雄记曰:郭汜在城北。布开城门,将兵就汜,言“且却兵,但身决胜负”。汜、布乃独共对战,布以矛刺中汜,汜后骑遂前救汜,汜、布遂各两罢。布不能拒,傕等遂入长安。卓死后六旬,布亦败。臣松之案英雄记曰:诸书,布以四月二十三日杀卓,六月一日败走,时又无闰,不及六旬。将数百骑出武关,欲诣袁术。


그전에 사도 왕윤 王允이 여포를 나라 사람 중에서 장하고 굳세다고 하고서 후하게 대접하고 받아들였다. 뒤에 여포가 왕윤에게 하마터면 동탁이 죽을 뻔한 것을 말하였다. 그때 왕윤이 복야 仆射 사손서 士孙瑞와 은밀히 동탁을 잡아죽일 것을 공모하고 있었는데, 여포에게 그 계획을 말하고서 내응할 것을 요청했다. 여포가 말했다.


"부자지간인데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왕윤이 말했다.


"자네는 성이 여 吕니까 본래 골육은 아니네. 지금 죽을까 걱정이 돼서 편안할 틈이 없다면서 어찌 부자지간이라 하는가?"


여포가 결국 허락하고 손수 동탁을 찔러 죽였다. 이것은 동탁의 전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왕윤이 여포를 분무장군 가절 假节로 삼아서 그 대우가 삼사 三司에 견줄 만하게 되고 아울러 온후에 봉하여서 조정을 함께 장악했다. 여포가 스스로 동탁을 죽인 후에 양주 사람을 꺼리고 미워하므로 양주 사람이 모두 원망하였다. 이리하여서 이각 李傕등이 뭉쳐서 다시 장안성을 공격하였다.


[영웅기: 곽사 郭汜가 성의 북쪽에 있었다. 여포가 성문을 열고 병력을 이끌고 곽사에게 가서 "병사들을 물리고, 둘이 일대일로 승부를 가리자"라고 말하여서 곽사와 여포가 결투를 하였다. 여포가 창으로 곽사를 찔러 맞추니 곽사 뒤의 기병들이 달려와서 곽사를 구하였다. 곽사와 여포 모두 결투를 그만 두었다]


여포가 이기지 못 하고 이각 등이 장안에 입성하였다. 동탁이 죽고 60일만에 여포가 패한 것이다.


[영웅기: 여러 기록에, 여포가 4월 23일 동탁을 살해하고 6월 1일에 패주했다 했는데 이때 윤달이 안 끼었으니 6순이 안 된다]


겨우 수백 기만 거느리고 무관을 나와서 원술 袁术에게 가려 했다.


布自以杀卓为术报雠,欲以德之。术恶其反复,拒而不受。北诣袁绍,绍与布击张燕于常山。燕精兵万馀,骑数千。布有良马曰赤兔。曹瞒传曰:时人语曰:“人中有吕布,马中有赤兔。”常与其亲近成廉、魏越等陷锋突陈,遂破燕军。而求益兵众,将士钞掠,绍患忌之。布觉其意,从绍求去。绍恐还为己害,遣壮士夜掩杀布,不获。事露,布走河内,英雄记曰:布自以有功于袁氏,轻傲绍下诸将,以为擅相署置,不足贵也。布求还洛,绍假布领司隶校尉。外言当遣,内欲杀布。明日当发,绍遣甲士三十人,辞以送布。布使止于帐侧,伪使人于帐中鼓筝。绍兵卧,布无何出帐去,而兵不觉。夜半兵起,乱斫布床被,谓为已死。明日,绍讯问,知布尚在,乃闭城门。布遂引去。与张杨合。绍令众追之,皆畏布,莫敢逼近者。英雄记曰:杨及部曲诸将,皆受傕、汜购募,共图布。布闻之,谓杨曰:“布,卿州里也。卿杀布,于卿弱。不如卖布,可极得汜、傕爵宠。”杨于是外许汜、傕,内实保护布。汜、傕患之,更下大封诏书,以布为颍川太守。


여포가 스스로 동탁을 죽여서 원술의 복수를 한 셈이라 여기고 그 덕을 보려고 했다. 원술이 그런 일이 되풀이될까 꺼려서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으로 원소
袁绍에게 가니 원소가 여포에게 상산의 장연 张燕을 공격하게 하였다. 장연의 정예 병력은 1만여로 기병이 수천이었다. 여포에게 명마가 있어서 적토 赤兔라 불리었다. [조비전: "사람 중에는 여포, 말 중에는 적토가 제일이다"] 항상 가까운 사람들과 고락을 같이하고, 위월 魏越 등이 창칼을 무릅쓰고 적진에 돌격하여서 장연 군을 격파하였다. [역주: 이점을 들어서 여포 군사 중에서 기병의 비중이 높고 크고 적진에 정면 돌격하는 충격 전법을 특징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인도 있습니다.]

그리고 병력을 더욱 증강하고 그 사졸들이 노략질하므로 원소가 걱정하고 기피하였다. 여포가 원소의 뜻을 알아차리고 원소의 부하가 되겠다고 찾아갔다. 원소가 여포가 또한 자기도 [동탁처럼] 해칠까 두려워서 몰래 장사
壮士를 보내어서 한밤에 여포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 하였다. 일이 밝혀지자 여포가 하내로 달아나서 장양 张杨과 합쳤다.

[영웅기: 여포가 스스로 원 씨에게 공을 세웠다
여기고서 원소의 수하 장수들을 함부로 대했다. 함부로 베풀어 쓰고도 귀한 대접이 부족하다 하였다. 여포가 낙양으로 돌아가려하므로 원소가 여포에게 사예교위의 일을 보게 하였다. 겉으로는 당연히 보내준다고 말하고서, 속으로는 여포를 죽이려고 하였다.이튿날 바로 일이 터졌으니, 원소가 갑사 甲士 30 인을 보내어서 여포를 환송하게 했다. 여포가 그들을 장막 옆에 멈추게 하고서 거짓으로 장막 안에서 북과 징을 울리게 하였다. 원소의 병사가 쉬는 틈을 타서 여포가 아무 말없이 장막을 나가서 달아났으나 병사들은 알아차리지 못 하였다. 한밤에 병사들이 일어나서 여포의 잠자리를 난자하고서 이제 죽었다고들 말하였다. 이튿날 원소가 알아보니 여포는 멀쩡히 살아있으므로 곧 성문을 닫았다. 여포는 결국 수하를 이끌고 가버렸다.]

원소가 군사를 보내어 추격하였으나 모두 여포를 겁내어서 감히 가까이 가지 못 하였다.

[영웅기: 장양과 그 부곡[후한시대 일종의 지방 민병대]의 여러
장수가 모두 곽사와 이각에게 호응하여서 여포를 도모하려-잡아죽이려- 하였다. 여포가 듣고서 장양에게 "저는 선생의 큰 자산입니다.선생께서 저를 죽이면 또한 선생도 약해질 것입니다. 저를 팔아서 되도록 곽사와 이각에게서 얻어내는 것만 못합니다." 이 말에 장양이 겉으로는 곽사와 이각을 편드는 척하면서 안으로는 여포를 보호했다. 곽사와 이각이 이것을 걱정하여서 다시 크게 봉하는조서를 내려 여포를 영천 태수에 제수하였다.]

장막 张邈

张邈字孟卓,东平寿张人也。少以侠闻,振穷救急,倾家无爱,士多归之。太祖、袁绍皆与邈友。辟公府,以高第拜骑都尉,迁陈留太守。


장막은 자가 맹탁으로 동평 수장 사람이다. 젊어서 의협심이 있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가산을 아끼지 않으니 선비가 많이몰려들었다. 조조와 원소가 모두 장막과 벗했다. 공부 公府를 피하고 고제 高第를 통해서 기도위를 거쳐서 진류태수가 되었다.


董卓之乱,太祖与邈首举义兵。汴水之战,邈遣卫兹将兵随太祖。袁绍既为盟主,有骄矜色,邈正议责绍。绍使太祖杀邈,太祖不听,责绍曰:“孟卓,亲友也,是非当容之。今天下未定,不宜自相危也。”邈知之,益德太祖。太祖之征陶谦,敕家曰;“我若不还,往依孟卓。”后还,见邈,垂泣相对。其亲如此。


동탁의 난 때 조조가 장막과 함게 앞장서서 의병을 일으켰다. 판수 汴水의 전투에서 장막이 장병을 보내어서 태조를 따르게 하였다.원소가 맹주가 되어서 교만하고 뽐내는 기색이 있으므로 장막이 바로 원소를 책망했다. 원소가 조조에게 장막을 죽이라고 하였으나조조는 듣지 않고 원소를 책망하며 말했다.


"맹탁은 친한 벗인데 받아드릴 수 없다. 아직 천하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서로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


장막이 듣고서 태조를 더욱 고마워했다. 조조가 도겸을 정벌할 때, 집안에 말했다.


"내가 돌아오지 못 하면, 맹탁에게 가서 의지하라."


뒤에 돌아와서 장막을 만나서 서로 읍하며 마주했다. 그 친한 정도가 이렇다.


吕布之拾袁绍从张杨也,过邈临别,把手共誓。绍闻之,大恨。邈畏太祖终为绍击己也,心不自安。兴平元年,太祖复征谦,邈弟超,与太祖将陈宫、从事中郎许汜、王楷共谋叛太祖。


여포가 원소를 버리고 장양에게 갈 때 장막에게 들러서 작별하는데 손을 잡고 함께 맹서했다. 원소가 듣고서 크게 아쉬워했다. 장막이 조조가 결국 자기를 칠 것을 두려워하여 불안했다. 흥평 원년에 태조가 다시 도겸을 정벌하자 장막의 아우 장초가 조조의 장수 진궁, 종사중랑 허사, 왕계와 함께 조조를 배반할 것을 공모하였다.


宫说邈曰:“今雄杰并起,天下分崩,君以千里之众,当四战之地,抚剑顾眄,亦足以为人豪,而反制于人,不以鄙乎!今州军东征,其处空虚,吕布壮士,善战无前,若权迎之,共牧兖州,观天下形势,俟时事之变通,此亦纵横之一时也。”邈从之。


진궁이 장막에게 말했다.


"지금 영웅 호걸이 함께 일어나고 있으니 천하는 갈라져서 무너질 것입니다. 군께서 수하들의 규모를 보나, 담당 지역을 보나 충분히 호걸이신데 도리어 남에게 지배당하시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지금 주 의 군대가 동쪽으로 정벌하러 갔으니 텅텅 비었습니다.여포는 천하장사로서 무공이 비할 데 없습니다. 만약 그를 맞이해서 연주를 함께 다스리신다면서 천하의 형세를 살피시고 일이돌아가는 것에 맞추시면 이것이 또한 종횡무진할 기회입니다."


장막이 따랐다.


太祖初使宫将兵留屯东郡,遂以其众东迎布为兖州牧,据濮阳。郡县皆应,唯鄄城、东阿、范为太祖守。太祖引军还,与布战于濮阳,太祖军不利,相持百馀日。是时岁旱、虫蝗、少谷,百姓相食,布东屯山阳。


조조가 자리를 비운 틈에 여포가 들이쳐서 연주목이 되고 복양에 거처했다. 군현이 모두 응했으나 견성, 동아 등의 일부 지역은 조조 편을 들었다. 조조가 돌아와서 복양에서 여포와 싸웠으나 불리했다. 대치가 100 일을 넘겼다. 이 해에 가뭄, 병충해 등으로 흉년이 들어서 백성이 서로 잡아 먹을 지경이 되었다. 여포가 산양에 주둔했다.


二年间,太祖乃尽复收诸城,击破布于钜野。布东奔刘备。英雄记曰:布见备,甚敬之,谓备曰:“我与卿同边地人也。布见关东起兵,欲诛董卓。布杀卓东出,关东诸将无安布者,皆欲杀布耳。”请备于帐中坐妇床上,令妇向拜,酌酒饮食,名备为弟。备见布语言无常,外然之而内不说。邈从布,留超将家属屯雍丘。太祖攻围数月,屠之,斩超及其家。邈诣袁术请救未至,自为其兵所杀。


2년에 걸쳐, 조조가 모든 성을 수복, 여포를 거야에서 격파한다. 여포가 동쪽으로 유비에게 달아난다.

[영웅기:여포가 유비를 만나 "저는 선생과 같은 변방 사람입니다. 관동에서 병사를 일으키기에 동탁을 죽일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동탁을 죽이고 동쪽으로 나왔지만 관동의 여러 장수가 저를 두려워하고 죽이려고 할 뿐입니다."라고 말하고서 유비를 아내의 침대 위에 앉도록 청했다. 아내에게 절을 시키고 술과 음식을 함께 하고서 유비의 아우가 되겠다 했다. 유비가 살펴보니 여포의 말이 자꾸 바뀌므로 유비가 겉으로는 좋다 했지만 속으로 기뻐하지 않았다]

장막이 여포를 추종하여서 아우 장초에게 옹구에서 가족을 맡아 지키게 한다. 조조가 몇달을 포위하여 함락하고 장초와 그 가족을 죽였다. 장막이 원술에게 구원을 요청하나 아직 원병은 오지 않았는데 그의 병사들이 장막을 죽였다.

备东击术,布袭取下邳,备还归布。布遣备屯小沛。布自称徐州刺史。


유비가 동쪽에서 원술을 공격하니 여포가 하비를 습격하여서 빼앗아서 유비가 여포에게 돌아갔다. 여포가 유비를 소패에 머물게 하였다. 여포가 스스로 서주 자사를 칭했다.


术遣将纪灵等步骑三万攻备,备求救于布。布诸将谓布曰:“将军常欲杀备,今可假手于术。”布曰:“不然。术若破备,则北连太山诸将,吾为在术围中,不得不救也。”便严步兵千、骑二百,驰往赴备。灵等闻布至,皆敛兵不敢复攻。布于沛西南一里安屯,遣铃下请灵等,灵等亦请布共饮食。布谓灵等曰:“玄德,布弟也。弟为诸君所困,故来救之。布性不喜合斗,但喜解斗耳。”布令门候于营门中举一只戟,布言:“诸君观布射戟小支,一发中者诸君当解去,不中可留决斗。”布举弓射戟,正中小支。诸将皆惊,言“将军天威也”!明日复欢会,然后各罢。


원술이 장수 기영에게 보병 기병 3만으로 유비를 치니 유비가 여포에게 구원을 청했다. 여포의 여러 장수가 여포에게 말했다.


"장군께서 늘 유비를 죽일 궁리셨으니 이제 원술을 도우소서"


여포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원술이 유비를 격파하면 곧 북으로 태산의 여러 장수와 이어지니 나는 원술에게 포위되는 셈이다. 구하지 않을 수 없다."


곧 보병 1천, 기병 2백을 내어 유비에게 급히 보냈다. 기영 등이 여포가 온다고 듣고서 모두 병사를 거두고 감히 다시 공격하지 못했다. 여포가 소패 서남쪽 1리 거리에 주둔하고서 기영 등과 함께 먹고 마셨다. 여포가 기영에게 말했다.


"현덕은 저의 아우입니다. 아우가 여러분 때문에 곤궁해졌으니 구하러 온 것입니다. 저는 본성이 싸움을 붙이기 싫어하고 단지 말리기를 좋아합니다."


여포가 진영 문에 극 한 자루를 세우게 하고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제가 극의 작은 가지를 맞추나 보시고 명중하거든 싸움을 풀고 돌아가시고 명중하지 않거든 결투하십시오."


여포가 활을 들어서 극을 쏘았는데 극의 작은 가지에 명중했다. 여러 장수가 모두 놀라서 말했다.


"장군은 하늘 같은 위엄을 지니셨습니다."


이튿날 다시 즐겁게 모여서 그후에 각각 파하고 돌아갔다.



术欲结布为援,乃为子索布女,布许之。术遣使韩胤以僭号议告布,并求迎妇。沛相陈圭恐术、布成婚,则徐、扬合从,将为国难,于是往说布曰;“曹公奉迎天子,辅赞国政,威灵命世,将征四海,将军宜与协同策谋,图太山之安。今与术结婚,受天下不义之名,必有累卵之危。”布亦怨术初不己受也,女已在涂,追还绝婚,械送韩胤,枭首许市。圭欲使子登诣太祖,布不肯遣。会使者至,拜布左将军。布大喜,即听登往,并令奉章谢恩。


원술이 사돈을 맺어서 여포를 묶으려고 아들을 여포의 딸에게 장가보내려 하니 여포가 허락했다. 원술이 한윤을 사신으로 보내어 주제넘은 호칭을 쓰면서 여포에게 고하고 신부를 데려가려 했다. 그런데 원술과 여포가 사돈이 되어서 서주와 양주가 동맹을 맺어서 장차 나라를 어지럽힐 것을 두려워한 소패의 재상 진규가 여포에게 가서, 원소와 사돈을 맺으면 이미 국정을 장악한 조조에게 장래 공격 빌미를 줄 것이라고 말렸다. 여포도 원술이 처음에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원망하던 터라서 딸이 이미 길을 가고 있는것을 쫓아가서 데려오고 파혼하고 사신 한윤을 끌어다가 목을 베어서 저잣거리에 효수했다.  진규가 아들 진등을 조조에게 사자로 보내려 했지만 여포가 내켜하지 않았다. 사자가 와서 여포를 좌장군에 제수하니 여포가 크게 기뻐하고 진등이 가는 것을 들어주고서 글을 바쳐서 은혜에 사례했다.


登见太祖,因陈布勇而无计,轻于去就,宜早图之。太祖曰:“布,狼子野心,诚难久养,非卿莫能究其情也。”即增圭秩中二千石,拜登广陵太守。临别,太祖执登手曰:“东方之事,便以相付。”令登阴合部众以为内应。


진등이 조조를 만나서 여포가 용맹하나 꾀가 없고 거취가 가벼우므로 어서 도모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조조가 말했다.


"여포는 늑대처럼 흉악하니 오래 놔두면 정말 어려울 것이오. 경이 그 사정을 다 아실 것이오."


곧 진규에게 2천석의 녹을 더하고, 진등은 광릉 태수에 제수했다. 헤어질 때 조조가 진등의 손을 잡고 말했다.


"동쪽의 일을 부탁하오."


진등에게 몰래 무리를 모아서 내응토록 했다.


始,布因登求徐州牧,登还,布怒,拔戟斫几曰:“卿父劝吾协同曹公,绝婚公路;今吾所求无一获,而卿父子并显重,为卿所卖耳!卿为吾言,其说云何?”登不为动容,徐喻之曰;“登见曹公言:‘待将军譬如养虎,当饱其肉,不饱则将噬人。’公曰:‘不如卿言也。譬如养鹰,饥则为用,饱则扬去。’其言如此。”布意乃解。


원래, 여포가 진등을 통해서 서주목을 제수받고자 했기 때문에 진등이 그냥 돌아오자 여포가 노하여서 극을 뽑아서 베려고 하면서 말했다.


"경의 부친이 나에게 조 공[조조]과 협동하고 공로[원술]와 파혼하라 권했소. 이제 내가 바란 게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경의 부자는 나란히 벼슬이 높아졌으니 경에게 이용당한 것뿐이오! 경이 할 말이 있다한들 무슨 말을 하겠소?"


진등이 낯빛을 바꾸지 않고 천천히 깨우쳐주었다.


"진등이 조 공을 만나서 '장군을 대처하는 것은 호랑이를 기르는 것과 같으므로 마땅히 배부르게 하여야 합니다. 배가 고프면 사람을 씹어 먹을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조공이 '경의 말과 다르오. 매를 기르는 것에 비유하면 굶주려야 쓸 수 있으니, 배가 부르면 떨쳐서 가버릴 것이오.'라 하였습니다. 사정이 이런 것입니다."


여포가 그제서야 알아들었다.


术怒,与韩暹、杨奉等连势,遣大将张勋攻布。布谓圭曰:“今致术军,卿之由也,为之奈何?”圭曰:“暹、奉与术,卒合之军耳,策谋不素定,不能相维持,子登策之,比之连鸡,势不俱栖,可解离也。”布用圭策,遣人说暹、奉,使与己并力共击术军,军资所有,悉许暹、奉。于是暹、奉从之,勋大破败。


원술이 노하여서 한섬, 양봉 등과 연합하고 대장 장훈을 보내어서 여포를 쳤다. 여포가 진규에게 말했다.


"지금 원술의 군사가 온 것은 경의 초래한 것이오. 어쩔테요?"


"한섬, 양봉, 원술은 오합지졸일 뿐이니 계책이 본래 정해지지 않았고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제 아들 진등이 계책을 내었는데, 닭이 줄줄이 있는 것에 견주어서, 그 형세가 함께 있지 못할 것이니, 서로 갈라져서 떠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여포가 진규의 계책을 써서 한섬, 양봉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자기와 더불어서 원술 군을 공격한 뒤에 노획한 물자는 모두 한섬, 양봉에게 주겠다 하였다. 한섬과 양봉이 이것을 받아들이니 장훈이 크게 격파되어 패하였다.



建安三年,布复叛为术,遣高顺攻刘备于沛,破之。太祖遣夏侯惇救备,为顺所败。太祖自征布,至其城下,遗布书,为陈祸福。布欲降,陈宫等自以负罪深,沮其计。布遣人求救于术,(术)自将千馀骑出战,败走,还保城,不敢出。


건안 3년, 여포가 또 원술 편이 되어서 배반하고, 장수 고순을 보내어 유비를 소패에서 격파하였다. 조조가 하후돈에게 유비를 구하게 했으나 역시 고순에게 패하였다. 조조가 친히 여포를 치러 나서서 그 성 밑에 당도하여서 여포에게 글을 보내어서 크게 화를 입을 것이라 하였다. 여포가 항복하려 했으나 진궁 등이 원래 스스로 지은 죄가 무거우므로 못 하게 하였다. 여포가 원술에게 구원을 청하니 원술이 친히 1천여 기를 이끌고 출전했다가 패주하고서 성에서 틀어박혀 지키며 감히 나올 생각을 하지 못 했다.



术亦不能救。布虽骁猛,然无谋而多猜忌,不能制御其党,但信诸将。诸将各异意自疑,故每战多败。太祖堑围之三月,上下离心,其将侯成、宋宪、魏续缚陈宫,将其众降。


원술도 구원하지 못 했다. 여포가 비록 용맹스럽지만 무모하고 시기심이 많아서 그 무리를 제어하지 못하고 다만 여러 장수를 믿을 뿐이었다. 여러 장수가 각각 뜻이 다르고 서로 믿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패전이 많았다. 조조가 포위한지 석달에 여포의 상하가 마음이 갈라져서 그 장수 후성, 송헌, 위속이 진궁을 결박한 뒤에 그 무리를 이끌고 투항했다.


布与其麾下登白门楼。兵围急,乃下降。遂生缚布,布曰:“缚太急,小缓之。”太祖曰:“缚虎不得不急也。”布请曰:“明公所患不过于布,今已服矣,天下不足忧。明公将步,令布将骑,则天下不足定也。”太祖有疑色。刘备进曰:“明公不见布之事丁建阳及董太师乎!”太祖颔之。布因指备曰:“是儿最叵信者。”


여포와 그 부하들이 백문루에 올랐는데 병사들이 급히 에워싸니 [여포가] 곧 내려가서 항복했다. 드디어 여포를 산 채로 포박하니 여포가 말하였다.


"너무 세게 묶었습니다. 좀 느슨하게 해주십시오."


조조가 말했다.


"호랑이를 묶는데 세게 묶을 수 밖에!"


여포가 청했다.


"명공께 걱정거리는 저, 여포뿐인데 이제 복종하니, 천하에 걱정거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명공께서 보병을 지휘하시고, 제게 명하여서 기병을 지휘케 하시면 곧 천하는 평정될 것입니다."


조조가 미심쩍어하는데 유비가 진언했다.


"명공께서 여포가 정 건양[정원]과 동 태사[동탁]를 어떻게 모셨는지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조조가 듣고서 끄덕였다. 이에 여포가 유비를 손가락질하면 말하였다.


"이 새끼는 최고로 못 믿을 놈입니다!"


于是缢杀布。布与宫、顺等皆枭首送许,然后葬之。


이리하여 여포를 목 졸라 죽였다. 여포, 진궁과 고순은 모두 목을 잘라서 효수하여 허도[당시 조조가 옮긴 수도]로 보낸 후에 묻었다.


太祖之禽宫也,问宫欲活老母及女不?宫对曰:“宫闻孝治天下者不绝人之亲,仁施四海者不乏人之祀,老母在公,不在宫也。”太祖召养其母终其身,嫁其女。


태조가 진궁을 잡아서 그 노모와 아내는 살릴 것인지 물었다. 진궁이 대답했다.


"제가 듣자니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남의 혈육을 끊지 않으며, 천하에 어질게 베푸는 자는 남의 제사를 폐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노모의 목숨은 공께 있지 제게 있지 않습니다."


조조가 그 노모를 불러서 평생 먹이고, 그 아내는 재혼시켰다.


[-- 우리의 여포가 죽었으므로 진등, 장홍 부분은 번역을 생략합니다 -_-;]

진등 陈登

...

장홍 臧洪

...

评曰:吕布有虓虎之勇,而无英奇之略,轻狡反复,唯利是视。自古及今,未有若此不夷灭也。...


여포에 대한 평가: 여포는 성난 호랑이 같은 용맹을 가졌으나 영웅의 지략이 없고 거듭해서 가볍고 교활하고 이익만 좇았다. 예로부터 이러고도 폭싹 망하지 않은 자가 없는 것이다.



덧글

  • 2009/05/21 19:3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뽀도르 2009/05/22 09:56 #

    애증이 교차하는 사이 ... 결국 증오가 이겼군요.
  • 시무언 2009/05/22 00:43 # 삭제 답글

    정사를 보면 확실히 눈앞의 이익만 쫓는데다가 거만하고 남의 집이나 따먹는 힘만 센 얼간이죠(...) 원술이 유비를 치면 자기도 위험하다고 본걸 보면 멍청하진 않은데 도와준 이유가 다른게 아니라 자기가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고. 거기다가 당시 손님을 아내가 대접하게 하는건 아주 예의에 버릇없는 일이라(하후돈도 연회에 아내를 데려가려다가 망신을 당했다고 적혀있죠) 예의도 없고 진짜 힘만 센 4가지없는 인물이죠(...)
  • 뽀도르 2009/05/22 09:58 #

    自古及今,未有若此不夷灭也

    그러고도 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는 평가가 딱 맞겠네요.
  • 呂奉先 2009/08/03 12:10 # 삭제 답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뽀도르 2009/08/03 13:20 #

    여포 봉선님께서 재밌게 읽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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