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동탁열전] 협객에서 역적이 되기까지 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후한서 동탁열전을 번역해봤습니다. 생각 외로 제법 길고 흥미롭습니다. 소설 삼국지와는 다른 내용이 많습니다. 삼국연의와 달리 정사를 급히 번역한 거라 더욱 모자란 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류를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탁 董卓 Dong Zhuo

董卓字仲穎,隴西臨洮人也。性麤猛有謀。少嘗遊羌中,盡與豪帥相結。後歸耕於野,諸豪帥有來從之者,卓為殺耕牛,與共宴樂,豪帥感其意,歸相斂得雜畜千餘頭以遺之,由是以健俠知名。為州兵馬掾,常徼守塞下。卓膂力過人,雙帶兩鞬,左右馳射,為羌胡所畏。

동탁 董卓의 자는 중영 仲穎으로 농서 임조 사람이다. 성질이 거칠고 사납고 꾀가 있었다. 어려서 강족 지역을 돌아다니며 호걸들과 사귀었다. 그 후 들판에서 밭 갈며 사는데 따르던 호걸들이 찾아오자 농사짓는 소를 잡아 잔치 열어 같이 즐기니 호걸들이 감동하여 돌아가 서로 각종 가축 1천여 두를 보내주니 이로부터 호걸 사이에 이름이 알려졌다. 주병마전 벼슬을 하여 늘 변방을 지켰다. 동탁의 여력[육체적 힘]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어 양쪽에 동개[활과 화살을 수납하는 통]를 두 개 차고 말 달리면서 좌우로 활을 쏠 수 있어 강족 오랑캐가 무서워하였다.


桓帝末,以六郡良家子為羽林郎,從中郎將張奐為軍司馬,共擊漢陽叛羌,破之,拜郎中,賜縑九千匹。卓曰:“為者則己,有者則士。”乃悉分與吏兵,無所留。稍遷西域戊己校尉,坐事免。後為并州刺史,河東太守。

환제 말기 6군의 양갓집 자제로 우림랑이 되어 중랑장 장환 張奐 밑에서 종군하여 군사마가 되었다. 함께 한양에서 반란을 일으킨 강족을 격파하여 낭중에 임명되고 비단 9천 필을 하사받았다. 동탁이 "공을 이룬 사람은 나 자신일지라도 함께 나누어 가지는 자가 곧 선비입니다"라고 말하고 모두 부하들에게 나누어주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서역무기교위가 되었다가 다른 일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뒤에 병주 자사, 하동 태수가 되었다.

中平元年,拜東中郎將,持節,代盧植擊張角於下曲陽,軍敗抵罪。其冬,北地先零羌及枹罕河關群盜反叛,遂共立湟中義從胡北宮伯玉、李文侯為將軍,殺護羌校 尉泠徵。伯玉等乃劫致金城人邊章、韓遂,使專任軍政,共殺金城太守陳懿,攻燒州郡。

중평 원년, 동중랑장이 되어서 절 節을 받고 노식 盧植을 대신하여 장각 張角을 곡양에서 공격하였으나 군사가 패하여 죄를 받았다. 그해 겨울 북쪽 지방에서 선령강 先零羌과 포한하관 枹罕河關의 도적떼가 반란을 일으켜 황중의를 함께 옹립하고 호북궁 백옥 伯玉을 따랐다. 이문후 李文侯가 장군이 되어 호강교위 영징 泠徵을 죽였다. 백옥 등이 금성 사람 변장 邊章과 한수 韓遂 등을 겁박하여 군정을 전임케 하고 함께 금성 태수 진의 陳懿를 죽이고 여러 주군을 공격하여 불태웠다.

明年春,將數萬騎入寇三輔,侵逼園陵,托誅宦官為名。詔以卓為中郎將, 副左車騎將軍皇甫嵩征之。嵩以無功免歸,而邊章、韓遂等大盛。朝廷復以司空張溫為車騎將軍,假節,執金吾袁滂為副。拜卓破虜將軍,與盪寇將軍周慎並統於 溫。

다음해 봄 수만 기를 이끌고서 3보[장안을 중심으로 한 3개 행정 구역]에 들어와서 능원을 노략질하였는데 환관을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조서를 내려 동탁을 중랑장으로 삼고 좌거기장군 황보숭 皇甫嵩을 보좌하여 정벌케 하였다. 황보숭이 공을 못 이루고 면직되어서 돌아가고 변장과 한수는 세력이 성대하였다. 조정에서 다시 사공 장온 張溫을 거기장군으로 삼고 집금오 원방 袁滂을 부장으로 삼았다. 동탁은 파로장군을 제수받아 탕구장군 주신 周慎과 같이 장온의 통솔을 받았다.

并諸郡兵步騎合十餘萬,屯美陽,以衛園陵。章、遂亦進兵美陽。溫、卓與戰,輒不利。十一月,夜有流星如火,光長十餘丈,照章、遂營中,驢馬盡鳴。

아울러 여러 군의 보병, 기병 10만여가 미양에 주둔하여 원릉을 지켰다. 변장과 한수가 다시 미양으로 진격하였다. 장온과 동탁이 맞서 싸웠으나 번번이 불리하였다. 11월에 밤에 별똥별이 불이 난 듯한데 빛줄기가 10여 길이나 되어 변장과 한수의 진영을 비추니 당나귀와 말이 모두 놀라 울었다.

賊以 為不祥,欲歸金城。卓聞之喜,明日,乃與右扶風鮑鴻等并兵俱攻,大破之,斬首數千級。章、遂敗走榆中,溫乃遣周慎將三萬人追討之。

도적들이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기고 금성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동탁이 듣고 기뻐하여서 이튿날 우부풍[한나라 시절 서울을 수비하던 벼슬] 포홍 鮑鴻 등과 함께 군사를 합쳐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니 베어낸 적의 수급이 1천여 급이었다. 변장과 한수가 유중으로 달아나니 장온이 주신에게 3만 병력을 주어 쫓아서 토벌하게 하였다.

溫參軍事孫堅說慎曰:“ 賊城中無穀,當外轉糧食。堅願得萬人斷其運道,將軍以大兵繼後,賊必困乏而不敢戰。若走入羌中,并力討之,則涼州可定也。”慎不從,引軍圍榆中城。而章、 遂分屯葵園狹,反斷慎運道。

장온의 참군사 손견 孫堅이 주신에게 "도적의 성 안에 곡식이 없으니 당연히 바깥에서 양식을 돌려 가져올 것입니다. 저에게 1만 병력을 주시면 수송로를 차단할 것이니 장군께서 대병력으로 뒤를 이으시면 도적은 궁핍하여 감히 싸울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강족 지방으로 달아나더라도 아울러 힘써 토벌한다면 양주 지방도 평정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신이 받아들이지 않고 유중성을 포위하였다. 변장과 한수가 규원협에 주둔하여 도리어 주신의 운송로를 차단하였다.

慎懼,乃棄車重而退。溫時亦使卓將兵三萬討先零羌,卓於望垣北為羌胡所圍,糧食乏絕,進退逼急。乃於所度水中偽立衝,以為捕 魚,而潛從衝下過軍。比賊追之,決水已深,不得度。時眾軍敗退,唯卓全師而還,屯於扶風,封斄鄉侯,邑千戶。

주신이 두려워하여 수레 등 장비를 버리고 퇴각하였다. 장온이 당시에 또한 동탁에게 3만 병력을 주어선령강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동탁이 망원북에서 강족 오랑캐에게 포위당하여서 군량이 바닥나니 진퇴가 급박하였다. 곧 소도수에 방죽[본문의 衝은 곧 堰]을 만들어서 고기를 잡는 척하면서 방죽 아래로 군사를 잠수시켜 몰래 통과시켰다. 도적들이 추격하였으나 막아놓은 물이 이미 깊어져 건너지 못하였다. 당시 모든 군사가 패퇴하였으나 오직 동탁만이 군사를 온전히 하여 돌아와 부풍에 주둔하니 태향후에 봉해지고 식읍 1천 호를 받았다.

三年春,遣使者持節就長安拜張溫為太尉。三公在外,始之於溫。其冬,徵溫還京師,韓遂乃殺邊章及伯玉、文侯,擁兵十餘萬,進圍隴西。太守李相如反,與遂連和,共殺涼州刺史耿鄙。而鄙司馬扶風馬騰,亦擁兵反叛,又漢陽王國,自號“合眾將軍”,皆與韓遂合。共推王國為主,悉令領其眾,寇掠三輔。五年,圍陳倉。乃拜卓前將軍,與左將軍皇甫嵩擊破之。韓遂等復共廢王國,而劫故信都令漢陽閻忠,使督統諸部。忠恥為眾所脅,感恚病死。遂等稍爭權利,更相殺害,其諸部曲並各分乖。

3년 봄에 사자를 통해서 절 節을 가져와 장안에서 장온을 태위에 제수하였다. 3공이 바깥에 있게 된 것은 장온에서 비롯된다. 그 해 겨울 장온을 서울로 부르니 한수가 곧 변장과 백옥, 이문후를 죽이고 10만여 병력으로 농서로 진격하여 포위하였다. 태수 이상 李相이 같이 반역하고 한수와 협력하여서 양주 자사 경비 耿鄙를 죽였다. 그리고 비사마부풍 마등 馬騰이 병사를 일으켜 반역하고 또한 한양의 왕국 王國이 스스로 합중장군이라 일컫고 모두 한수와 합류하였다. 모두 왕국을 주군으로 추대하고서 무리를 모두 모아 3보 지방을 침탈하혔다. 5년에 진창을 포위하였다. 동탁을 전장군으로 제수하여 좌장군 황보숭과 함께 치도록 하였다. 한수 등이 공모하여 왕국을 폐위시키고 옛 신도령 한양 염충 閻忠을 겁박하여서 여러 부서를 감독시켰다. 염충이 무리에게 위협받은 것을 부끄러워 하다가 화병으로 죽어버렸다. 한수 등이 권력 투쟁을 하다가 서로 죽이므로 밑의 군사가 갈라지고 무너졌다.

六年,徵卓為少府,不肯就,上書言:“所將湟中義從及秦胡兵皆詣臣曰:‘牢直不畢,稟賜斷絕,妻子飢凍。’牽挽臣車,使不得行。羌胡敝腸狗態,臣不能禁止,輒將順安慰。增異復上。”朝廷不能制,頗以為慮。及靈帝寑疾,璽書拜卓為并州牧,令以兵屬皇甫嵩。卓復上書言曰:“臣既無老謀,又無壯事,天恩誤加,掌戎十年。士卒大小相狎彌久,戀臣畜養之恩,為臣奮一旦之命。乞將之北州,效力邊垂。”於是駐兵河東,以觀時變。

6년에 동탁을 불러 소부로 제수하였으나 듣지 아니 하고 글을 올려 아뢰었다.

"제가 거느린 황중의종과 오랑캐 병사들이 저에게 와서 '뇌직[곧 양식]을 받을 것이 남았는데 하사품은 끊어지니 처자식이 굶고 얼어죽을 지경이옵니다'라고 말하면서 저의 수레를 잡아끌고 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강족 오랑캐의 몰골이 비참하므로 제가 금지할 수 없어서 순순히 위로하였습니다. 더욱 우대하시기를 다시 글을 올려 아룁니다."

조정에서 어쩔 수 없어 자못 근심이 되었다. 영제가 병이 깊어 동탁을 병주목으로 제수하고 병사는 황보숭에게 소속시켰다. 동탁이 다시 글을 올려서 말하였다.

"저는 아무런 계책도 내지 못하고 잘한 일도 없었는데 하늘에서 잘못 은혜를 베푸셔 군사를 맡은지 10 년입니다. 사졸이 크건 작건 익숙한지 오래되고 저를 보기를 가축을 키워 길러준 은혜를 입은 듯이 하여서 저를 위하여 짧은 목숨쯤 아까운 줄 모릅니다. 북주를 거느려 변경에 힘쓰게 해주시기를 비옵니다."

이리하여 하동에 병사를 두고 정세 변화를 관망하였다.
 
及帝崩,大將軍何進、司隸校尉袁紹謀誅閹宦,而太后不許,乃私呼卓將兵入朝,以脅太后。卓得召,即時就道。並上書曰:“中常侍張讓等竊倖承寵,濁亂海內。 臣聞揚湯止沸,莫若去薪;潰帻雖痛,勝於內食。昔趙鞅興晉陽之甲,以逐君側之惡人。 今臣輒鳴鍾鼓如洛陽,請收讓等,以清姦穢。”

황제가 죽자 대장군 하진 何進과 사예교위 원소 袁紹가 환관을 주살할 계획을 짰지만 태후가 불허하자사사로이 동탁의 장병을 조정으로 불러서 태후를 위협하려 하였다. 동탁은 조서를 얻자 즉시 길을 나섰다. 그와 동시에 글을 올려 말했다.

"중상시 장양 張讓 등이 황제의 사랑을 훔치고 총애를 얻어 천하를 더럽히고 어지럽혔습니다. 제가 들으니 국을 들어내 끓지 않게 하느니 장작을 치워야 하고 종기를 째는 게 비록 아프긴 하지만 살이 파먹히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예전에 조앙 趙鞅이 진양의 군사를 일으켜 임금 옆의 악당을 쫓아내었습니다. 이제 제가 북과 징을 울리고 낙양으로 가서 장양 등을 제거하여 간사하고 더러운 무리를 없애기 바랍니다."

卓未至而何進敗,虎賁中郎將袁術乃燒南宮,欲討宦官,而中常侍段珪等劫少帝及陳留王夜走小平津。卓遠見火起,引兵急進,未明到城西,聞少帝在北芒,因往奉迎。帝見卓將兵卒至,恐怖涕泣。卓與言,不能辭對;與陳留王語,遂及禍亂之事。卓以王為賢,且為董太后所養,卓自以與太后同族,有廢立意。

동탁이 도착하기 전에 하진이 패하여 호분중랑장 원술 袁術이 남궁을 태우고 환관을 토벌하려 하였다. 중상시 단규 段珪 등이 소제 少帝와 진류왕 陳留王을 겁주어 한밤에 소평진으로 끌고 달아났다. 동탁이 멀리 불이 치솟는 것을 보고 병사를 이끌고 급히 진격하니 날이 밝기 전에 낙양성 서쪽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소제가 북망으로 갔다고 듣고 찾아가 받들어 맞이하였다. 황제가 동탁의 장병을 보고서 무서워 눈물 콧물을 쏟았다. 동탁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응대를 제대로 못했다. 진류왕과 이야기해보니 난리가 일어난 까닭도 이야기해볼 수 있었다. 이리하여 동탁이 진류왕을 어질다 여긴데다 동태후 董太后가 진류왕을 기른 까닭에 동탁이 스스로 동태후와 동족이라 여기고 폐립의 뜻을 품게 되었다.

初,卓之入也,步騎不過三千,自嫌兵少,恐不為遠近所服,率四五日輒夜潛出軍近營,明旦乃大陳旌鼓而還,以為西兵復至,洛中無知者。尋而何進及弟苗先所領 部曲皆歸於卓,卓又使呂布殺執金吾丁原而并其眾,卓兵士大盛。乃諷朝廷策免司空劉弘而自代之。

처음에 동탁이 들어올 때는 보병과 기병이 불과 3천이라 스스로 병력이 적은게 불만스럽고 각지에서 복종하지 않을까 두려워 약 4, 5일은 가까운 군영에서 군사를 끌고 나가 아침에 커다란 대열을 갖추어서 북을 올리며 돌아오기를 반복하여 서량의 병사가 또 다시 오는 것처럼 했으나 낙양에서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다.  하진과 동생 하묘 何苗가 예전에 거느리던 군대를 찾아 모두 동탁에게 귀속시키고 또한 여포 呂布를 시켜 집금오 정원 丁原을 죽이고 그 군사를 거두니 동탁의 군사가 성대해졌다. 이어서 조정을 움직여 사공 유홍 劉弘을 면직시키고 스스로 대신했다.

因集議廢立。百僚大會,卓乃奮首而言曰:“大者天地,其次君 臣,所以為政。皇帝闇弱,不可以奉宗廟,為天下主。今欲依伊尹、霍光故事,更立陳留王,何如?”公卿以下莫敢對。卓又抗言曰:“昔霍光定策,延年案劍。有敢沮大議,皆以軍法從之。”坐者震動。尚書盧植獨曰:“昔太甲既立不明,昌邑罪過千餘,故有廢立之事。今上富於春秋,行無失德,非前事之比也。”卓大怒,罷坐。明日復集群僚於崇德前殿,遂脅太后,策廢少帝。曰:“皇帝在喪,無人子之心,威儀不類人君,今廢為弘農王。”乃立陳留王,是為獻帝。又議太后蹙迫永樂太后,至令憂死,逆婦姑之禮,無孝順之節,遷於永安宮,遂以弒崩

*富於春秋 /부어춘추/ 봄가을처럼 아직 나이가 어림.

황제의 폐립 문제를 모여 의논했다. 모든 관리가 크게 모이자 동탁이 앞장서 말하였다.

"큰 것은 하늘과 땅이요 다음이 임금과 신하이니 정치를 하는 까닭입니다. 황제께서 어리석고 나약하시니 종묘사직을 받들어 천하 주인이 되실 수 없습니다. 이제 이윤 伊尹이나 곽광 霍光의 옛일에 기대어 진류왕 전하를 옹립하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공경 대신 이하 아무도 감히 반대하지 못 했다.  동탁이 다시 말하였다.

"예전에 곽광이 계책을 정하고 연년 延年이 칼을 어루만졌습니다. 감히 큰 논의를 거스르는 자는 모두 군법에 의거해서 처리하겠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벌벌 떨었다. 상서 노식만이 홀로 말하였다.

"예전에 태갑 太甲이 밝지 못하고 창읍 昌邑이 죄를 천 가지나 저지르니 당연히 폐립을 의논했습니다. 그러나 금상 황제께서는 연소하시고 덕을 잃은 행동을 하시지 않았으니 예전 일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동탁이 크게 노하여 자리를 파하였다. 이튿날 다시 여러 신하를 숭덕전 앞에 모으고 태후를 위협하여소제를 폐하는 책문을 내게 하고 말하였다.

"황제께서 상을 치루시는데도 사람의 아들 같은 마음이 없으셨고 위의가 임금답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폐하여 홍농왕으로 모시겠습니다."

곧 진류왕을 옹립하니 이 분이 헌제 獻帝다. 다시 의논하여 태후가 영락태후 永樂太后를 핍박하여 죽게 만들어 고부의 예의를 거스르고 효도와 순종의 예절도 없었다고 몰아부친 뒤 영안궁으로 쫓아냈다가 결국 시해하였다.

卓遷太尉,領前將軍事,加節傳斧鉞虎賁,更封郿侯。卓乃與司徒黃琬、司空楊彪,俱帶鈇鑕詣闕上書,追理陳蕃、竇武及諸黨人,以從人望。於是悉復蕃等爵位,擢用子孫。

동탁이 태위가 되고 전장군사를 맡고 절전부월호분의 벼슬을 더하고 다시 미후에 봉해졌다. 동탁이 사도 황완 黃琬, 사공 양표楊彪와 더불어 부질예궐상서를 갖추고 진번 陳蕃, 두무 竇武와 여러 당인의 일을 재조사하여서 인망을 얻으려 하였다. 이에 따라 진번 등의 작위를 모두 복직시켜주고 자손을 발탁하여 임용하였다.

尋進卓為相國,入朝不趨,劍履上殿。封母為池陽君,置丞令。是時洛中貴戚室第相望,金帛財產,家家殷積。卓縱放兵士,突其廬舍,淫略婦女,剽虜資物,謂之 “搜牢”。人情崩恐,不保朝夕。及何后葬,開文陵,卓悉取藏中珍物。又姦亂公主,妻略宮人,虐刑濫罰,睚眥必死,群僚內外莫能自固。卓嘗遣軍至陽城,時人會於社下,悉令就斬之,駕其車重,載其婦女,以頭繫車轅,歌呼而還。

동탁이 나아가서 상국이 되더니 입조해도 종종 걸음 안 하기, 칼 차고 황제 알현 등의 특권을 누렸다. 모친을 높여 지양군으로 봉하고 승령을 배치했다. 이때 낙양 성중에서 귀족, 외척 등의 집집마다 금은과 비단의 재산을 다투어 쌓아놓고 있었다. 동탁이 군사를 풀어 그 집들을 깨고 들어가 부녀자를 겁탈하고 물자를 약탈하면서 '수뢰'라 일컬었다. 민심이 무너지고 공포에 떨어 아침 저녁을 기약할 수 없었다. 하 태후의 장례에서 문릉을 파헤쳐 동탁이 진귀한 보물을 모두 가져갔다. 또한 공주를 간음하고 궁녀를 겁탈하고 혹독한 형벌을 남발하여 눈을 흘기기만 해도 반드시 죽여대니 뭇 신하도 안팎으로 스스로 안전할 수 없었다. 동탁이 일찍이 양성에 군사를 보내 제례를 올리던 사람을 모두 잡아 목을 베고 수레에 가득 실었는데 부녀자는 위에 싣고 베어낸 백성의 머리는 수레에 달고 노래 부르며 돌아왔다.


又壞五銖錢,更鑄小錢,悉取洛陽及長安銅人、鍾虡、飛廉、銅馬之屬,以充鑄焉。故貨賤物貴,穀石數萬。又錢無輪郭文章,不便人用。時人以為秦始皇 見長人於臨洮,乃鑄銅人。卓,臨洮人也,而今毀之。雖成毀不同,凶暴相類焉。

또 한 오주전 五銖錢을 폐지하고 소전 小錢을 다시 주조하는데 낙양과 장안의 동인, 동로 등 구리로 만든 물건은 모조리 빼앗아 화폐 주조에 충당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 발생] 돈 가치는 떨어지고 물건은 구하기 어려워져 곡식 1섬이 수만금이 되었다. 또한 윤곽의 무늬가 없는 등 동전이 조악하여 사람이 쓰기불편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진시황이 임조에서 장인 長人을 보고 동인 銅人을 주조한 것을 떠올렸다. 동탁이  임조 사람이니 지금 그것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비록 한 사람은 만들고 한 사람은 훼손했지만 흉포하기는 서로 같았다.

卓素聞天下同疾閹官誅殺忠良,及其在事,雖行無道,而猶忍性矯情,擢用群士。乃任吏部尚書漢陽周珌、侍中汝南伍瓊、尚書鄭公業、長史何顒等。以處士荀爽為司空。其染黨錮者陳紀、韓融之徒,皆為列卿。幽滯之士,多所顯拔。以尚書韓馥為冀州刺史,侍中劉岱為兗州刺史,陳留孔骸為豫州刺史,潁川張咨為南陽太守。卓所親愛,並不處顯職,但將校而已。初平元年,馥等到官,與袁紹之徒十餘人,各興義兵,同盟討卓,而伍瓊、周珌陰為內主。

동탁이 평소 천하 사람들 모두 환관이 충신과 어진이를 주살한 것을 미워한다고 듣고 비록 무도하지만 스스로 본성을 참고 진심을 억누르며 뭇 선비를 발탁하였다. 그리하여 이부상서에 한양의 주비 周珌, 시중에 여남의 오경 伍瓊, 상서에 정 鄭의 공업 公業, 장사의 하우 何顒 등을 제수하였다. 처사 순상 荀爽을 사공으로 삼았다. 당고의 화에 연루된 진기 陳紀, 한융 韓融의 무리도 모두 공경의 반열에 올렸다. 숨은 선비도 많이 뽑았다. 상서 한복 韓馥을 기주 자사로 삼고 시중 유대 劉岱를 연주 자사, 진류의 공해 孔骸를 예주 자사, 영천의 장자 張咨를 남양 태수로 삼았다. 동탁이 친애해서 벼슬을 높일 때 예외는 장교뿐이었다. 초평 원년에 한복 등이 관청에 와서 원소의 무리 10여 인과 각기 의병을 일으키고 동탁을 토벌키로 동맹하고 오경, 주비 등은 안에서 주동하기로 하였다.

初,靈帝末,黃巾餘黨郭太等復起西河白波谷,轉寇太原,遂破河東,百姓流轉三輔,號為“白波賊”,眾十餘萬。卓遣中郎將牛輔擊之,不能卻。及聞東方兵起,懼,乃鴆殺弘農王,欲徙都長安。會公卿議,太尉黃琬、司徒楊彪廷爭不能得,而伍瓊、周珌又固諫之。卓因大怒曰:“卓初入朝,二子勸用善士,故相從,而諸君到官,舉兵相圖。 此二君賣卓,卓何用相負!”遂斬瓊、珌。而彪、琬恐懼,詣卓謝曰:“小人戀舊,非欲沮國事也,請以不及為罪。”卓既殺瓊、珌,旋亦悔之, 故表彪、琬為光祿大夫。於是遷天子西都。

처음에 영제 말기에 황건 잔당 곽태 郭太 등이 서하의 백파곤에서 다시 일어나 하동을 깨뜨리니 백성이 3보 지방으로 흘러들어 '백파적'이라 일컬었다. 동탁이 중랑장 우보 牛輔를 보내어서 공격케했으나 물리치지 못하였다. 다시 동방에서 병사가 일어나자 두려워서 홍농왕을 독살하고 장안으로 천도하려 하였다. 공경 대신과 회의하였느데 태위 황완, 사도 양표가 조정에서 가부를 논쟁하고 오경과 주비도 완고하게 간하였다. 이에 동탁이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제가 처음에 입조하여서 두 사람이 뛰어난 선비를 쓰기를 권하므로 그것을 따라서 여러분을 관리에 앉히고 병사를 일으켜 도모한 것입니다. 이 두 분께서 저를 욕하시니 저는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곧 오경과 주비를 참하니 양표와 황완이 겁에 질려서 동탁에게 사례하면서 말했다.

"제가 옛날을 그리워한 것은 국가 대사를 막아서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동탁이 이미 오경과 주비를 죽이고 돌아서서 후회하여 표를 올려서 양표와 황완을 광록대부로 삼았다. 그리고 장안으로 천자를 모시었다.

初,長安遭赤眉之亂,宮室營寺焚滅無餘,是時唯有高廟、京兆府舍,遂便時幸焉。後移未央宮。於是盡徙洛陽人數百萬口於長安,步騎驅蹙,更相蹈藉,飢餓寇掠,積尸盈路。卓自屯留畢圭苑中,悉燒宮廟官府居家,二百里內無復孑遺。又使呂布發諸帝陵,及公卿已下冢墓,收其珍寶。

처음에 장안은 예전에 '적미의 난'을 만나서 궁실이나 기타 건물이 다 불에 타서 남은 게 없었는데 이때 유일하게 고묘 高廟와 경조부사 京兆府舍만 남아 있어 임시로 거처하였다. 뒤에 미앙궁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낙양 사람 수백만을 장안으로 옮기는데 군대를 동원해서 몰아 재촉하니 서로 짓밟히고 굶어죽고 시체가 길가 가득했다. 동탁이 스스로 필규원  畢圭苑 안에 주둔하고 궁궐이나 관청이나 민가를 모조리 태워 2백 리 안에 남겨진 게 없었다. 다시 여포를 시켜 황제들의 능과 공경 대신의 무덤도 파헤쳐서 진기한 보물을 거두었다.

  時長沙太守孫堅亦率豫州諸郡兵討卓。卓先遣將徐榮、李蒙四出虜掠。榮遇堅於梁,與戰,破堅,生禽潁川太守李旻,亨之。卓所得義兵士卒,皆以布纏裹,倒立於地,熱膏灌殺之。

이때 장사 태수 손견이 예주의 여러 군현의 병사를 이끌고 동탁을 토벌하려 했다. 동탁이 그 전에 장수 서영 徐榮과 이몽 李蒙을 네 번 출전시켜 노략질을 했다.  서영이 손견을 양에서 조우하여서 전투를 벌여손견을 격파하고 영천 태수 이민 李旻을 사로잡아서 팽형에 처해 삶아죽였다.  동탁은 의병을 포로로 잡으면 모두 천으로 돌돌 말아서 땅에 엎어놓고 뜨거운 기름을 부어서 죽였다.

時河內太守王匡屯兵河陽津,將以圖卓。卓遣疑兵挑戰,而潛使銳卒從小平津過津北,破之,死者略盡。明年,孫堅收合散卒,進屯梁縣之陽人。卓遣將胡軫、呂布攻之,布與軫不相能,軍中自驚恐,士卒散亂。堅追擊之,軫、布敗走。卓遣將李傕詣堅求和,堅拒絕不受,進軍大谷,距洛九十里。

이때 하내 태수 왕광 王匡이 하양진에 병사를 주둔시켰는데 곧 동탁을 치려 했다. 동탁이 거짓 병사[疑兵 적의 눈을 속이는 군사]를 보내어서 싸움을 걸고 몰래 정예 병력을 소평진으로부터 하양진 북쪽에 보내 격파하니 왕광의 군사가 거의 다 죽었다. 다음해 손견이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여 양현의 양인에 진격했다. 동탁이 장수 호진 胡軫과 여포를 보내어 공격했으나 호진과 여포가 서로 불화하니 군중이 저절로 뒤숭숭해져 사졸이 흩어지고 어지러워졌다. 손견이 추격하니 호진과 여포가 패주하였다. 동탁이 장수 이각을 보내어서 손견에게 화평을 구했으나 손견이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대곡으로 진군하니 낙양에서 90 리 거리였다.

卓自出與堅戰於諸陵墓閒,卓 敗走,卻屯黽池,聚兵於陝。堅進洛陽宣陽城門,更擊呂布,布復破走。堅乃埽除宗廟,平塞諸陵,分兵出函谷關,至新安、黽池閒,以涞卓後。卓謂長史劉艾 曰:“關東諸將數敗矣,無能為也。唯孫堅小戇,諸將軍宜慎之。”乃使東中郎將董越屯黽池,中郎將段煨屯華陰,中郎將牛輔屯安邑,其餘中郎將、校尉布在諸 縣,以禦山東。

동탁이 몸소 출전하여 손견과 제릉묘한에서 싸웠으나 동탁이 패주하고 민지에 다시 주둔한 뒤에 섬陝 지방에서 병사를 모았다. 손견이 낙양 선양성문에 진격하여서 다시 여포를 공격하니 여포가 또 격파되어 패주하였다. 손견이 곧 종묘를 깨끗이 하고 여러 능묘를 정비한 뒤 군사를 나누어 함곡관을 나와 신안, 민지간까지 가서 이涞 강을 경계로 동탁과 맞섰다. 동탁이 장사 유애 劉艾에게 말하였다.

"관동의 여러 장수가 여러 번 패하니 무능한 것입니다. 오로지 손견만이 좁아터지고 고집불통이니 여러 장군은 마땅히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곧 동중랑장 동월 董越을 민지에 주둔시키고 중랑장 단외 段煨는 화음에, 중랑장 우보는 안읍에 주둔시키고 나머지 중랑장과 교위를 여러 고을에 배치하여서 산동을 방어시켰다..

卓諷朝廷使光祿勳宣璠持節拜卓為太師,位在諸侯王上。乃引還長安。百官迎路拜揖,卓遂僭擬車服,乘金華青蓋,爪畫兩轓,時人號“竿摩車”,言其服飾近天子也。以弟旻為左將軍,封鄠侯,兄子璜為侍中、中軍校尉,皆典兵事。於是宗族內外,並居列位。其子孫雖在髫齔,男皆封侯,女為邑君。

동탁이 조정에 말하여 광록 대신을 통해서 자신을 태사로 제수케 하여 여러 제후나 왕보다 윗자리를 차지했다. 장안으로 돌아가니 백관이 모두 길에 나와서 인사하는데 동탁이 주제넘게 수레와 의복을 차려서 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푸른 덮개의 수레에 타므로 당시 사람들이 간마거 竿摩車라 불렀는데 복식이 천자와 비슷하다 말하였다. 아우 동민을 좌장군, 호후로 제수하고 형의 아들 동황을 시중, 중군교위로 제수하여 모두 군사 업무를 맡겼다. 이리하여서 종족 내외가 나란히 한 자리씩 해먹었다.  그들 자손이라면 어린아이라도 남자는 모두 열후에 봉하고 여자는 모두 읍군 邑君이 되었다.

數與百官置酒宴會,淫樂縱恣。乃結壘於長安城東以自居。又築塢於郿,高厚七丈,號曰“萬歲塢”。積穀為三十年儲。自云:“事成,雄據天下;不成,守此足以畢老。”嘗至郿行塢,公卿已下祖道於橫門外。卓施帳幔飲設,誘降北地反者數百人,於坐中殺之。先斷其舌,次斬手足,次鑿其眼目,以鑊煮之。未及得死,偃轉柸案閒。會者戰慄,亡失匕箸,而卓飲食自若。諸將有言語蹉跌,便戮於前。又稍誅關中舊族,陷以叛逆。

여러차례 백관과 술 잔치를 벌였는데 음탕하게 즐기고 방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장안성 동쪽에 보루를 쌓아 자신이 거주하였다. 또한 '미'에 둑 塢 [오]를 쌓았는데 두껍게 높이 쌓은게 7 길이니 '만세오'라고 불렀다. 곡식을 30년치를 쌓아두었다. 스스로 "일이 성공하면 천하에 웅거할 것이요 실패하면 여기를 수비하여 여생을 마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일찍이 '미'에 가서 둑에 행차하니 공경 대신이 횡문 밖에서 조도 祖道[먼길 잘 다녀오시라고 비는 것]하였다. 동탁이 장막을 치고 술자리를 여는데 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항복한 사람 수백 인을 술자리에서 죽였다. 먼저 혀를 자르고 다음에 수족을 베고 다음에 눈알을 파내어 가마솥에서 삶았다. 그래도 죽지 않으면 땅에 쓰러뜨려 굴리면서 술을 즐겼다. 모인 사람들이 벌벌 떨며 수저를 떨어뜨리는데 동탁은 먹고 마시며 태연하였다. 여러 장군이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앞에서 죽여버렸다. 점차 관중의 구 귀족을 처형하는데 반역죄를 뒤집어씌웠다.

時太史望氣,言當有大臣戮死者。卓乃使人誣衛尉張溫與袁術交通,遂笞溫於市,殺之,以塞天變。前溫出屯美陽,令卓與邊章等戰無功,溫召又不時應命,既到而 辭對不遜。時孫堅為溫參軍,勸溫陳兵斬之。

그때 태사가 점을 쳐보고 대신 가운데 죽을 자가 있을 것이라 했다. 동탁이 사람을 시켜 위위 장온과 원술이 내통한다고 무고하고 길거리에서 장온을 매질하여 죽여 천변 天變을 막으려 하였다. 예전에 장온이 출전하여 미양에 주둔하고 동탁에게 명하여 변장 등과 싸우게 해서 공을 이루지 못 하니 장온이 소환하고 또한 불시에 명령에 응하게 하여 겨우 도착했는데도 대하는 말투가 공손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손견이 장온의 참군이었는데 장온에게 병사들 앞에서 동탁을 참하도록 권하였다.

溫曰:“卓有威名,方倚以西行。”堅曰:“明公親帥王師,威振天下,何恃於卓而賴之乎?堅聞古之名將,杖鉞臨 眾,未有不斷斬以示威武者也。故穰苴斬莊賈,魏絳戮楊干。今若縱之,自虧威重,後悔何及!”溫不能從,而卓猶懷忌恨,故及於難。

장온이 말하였다.

"동탁은 위엄스런 명성이 있는데 이제 거기에 의지하여 서쪽으로 가버릴 것이다."

손견이 말하였다.

"명공께서 친히 황제의 군대를 통솔하셔 위엄이 천지를 흔드는데 동탁 따위를 믿고 의지하시려 하십니까? 제가 듣자니 옛날의 명장은 [임금이 하사한] 도끼에 의지하여 군중에 임하는데 참형을 중단하여 무위를 보인 사람은 아직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양저 穰苴가 장가 莊賈를 참하고 위홍 魏絳이 양간 楊干을 죽인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하신다면 스스로 위엄이 무거워질 것인데 뒤에 후회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장온이 따를 수 없었지만 동탁은 도리어 앙심을 품어 결국 재난을 초래한 것이다.

溫字伯慎,少有名譽,累登公卿,亦陰與司徒王允共謀誅卓,事未及發而見害。越騎校尉汝南伍孚忿卓凶毒,志手刃之,乃朝服懷佩刀以見卓。孚語畢辭去,卓起送至閤,以手撫其背,孚因出刀刺之,不中。卓自奮得免,急呼左右執殺之,而大詬曰:“虜欲反耶!”孚大言曰:“恨不得磔裂姦賊於都市,以謝天地!”言未畢而斃。

장온의 자는 백신, 젊어서부터 명성이 있었고 여러차례 공경 대신이 되고 사도 왕윤 王允과 동탁을 처형할 것을 공모하였으나 거사하기 전 죽은 것이다. 월기교위 여남의 오부 伍孚는 동탁이 흉포한 것에 분노하여 암살할 뜻을 세우고 조복 아래에 칼을 차고 동탁을 만났다. 오부가 인사를 마치자 동탁이 배웅하러 일어나 쪽문까지 와서 오부의 등을 두드리자 오부가 칼을 빼어 찔렀으나 빗나갔다. 동탁이 스스로 뿌리쳐서 벗어나고 급히 좌우를 불러 잡아 죽이게 하고 크게 꾸짖었다.

"종놈이 반역하려 하느냐!"

오부가 크게 말하였다.

"간신 역적을 길거리에서 찢어죽여 천하에 보답하지 못하는 게 한이다!

말을 미처 마치지 못하고 죽었다.

時王允與呂布及僕射士孫瑞謀誅卓。有人書“呂”字於布上,負而行於市,歌曰:“布乎!”有告卓者,卓不悟。三年四月,帝疾新愈,大會未央殿。卓朝服升車, 既而馬驚墯泥,還入更衣。其少妻止之,卓不從,遂行。

당시에 왕윤이 여포와 공모하고 복야 僕射 사손서 士孫瑞를 포섭하여 동탁을 처형하려 했다. 어떤 사람이  '여 呂'자를 베[布]에 쓰고서 등에 지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포입니다."라고 노래하였다. 동탁에게 일러바치는 사람이 있었지만 동탁은 깨닫지 못하였다. 3년 4월에 황제가 병에 걸렸다가 새로 치유되자 백관이 미영전에 모였다. 동탁이 조복을 입고 수레를 타고 가는데 말이 놀라 뛰더니 진흙탕에 빠지므로 다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첩이 가지 말라고 했지만 동탁이 듣지 않고 곧 떠났다.

乃陳兵夾道,自壘及宮,左步右騎,屯衛周匝,令呂布等扞衛前後。王允乃與士孫瑞密表其事,使瑞自書詔 以授布,令騎都尉李肅與布同心勇士十餘人,偽著衛士服於北掖門內以待卓。

병사들이 늘어서서 길가를 가득 채웠다. 자신이 사는 보루를 지나서 궁궐에 다다르는데 좌우로 보병과 기병이 호위하여 사방을 방비하고 여포 등에게 명령하여 앞뒤를 경호하게 하였다. 왕윤이 사손서에게 몰래  알려주고 스스로 조서를 쓰게 한 뒤 여포에게 주었다. 기도위 이숙 李肅과 여포가 한 마음으로 용사 십여 인에게 호위 병사의 옷을 입혀서 북액문 北掖門 안에서 동탁을 기다리게 하였다.


卓將至,馬驚不行,怪懼欲還。呂布勸令進,遂入門。肅以戟刺之,卓衷甲不入,傷臂墯車,顧大呼曰:“呂布何在?”布曰:“有詔討賊臣。”卓大罵曰:“庸狗敢如是邪!”布應聲持矛刺卓,趣兵斬之。主簿田儀及卓倉頭前赴其尸,布又殺之。馳齎赦書,以令宮陛內外。士卒皆稱萬歲,百姓歌舞於道。長安中士女賣其珠玉衣裝市酒肉相慶者,填滿街肆。使皇甫嵩攻卓弟旻於郿塢,殺其母妻男女,盡滅其族。

동탁이 들어가려는데 말이 놀라며 가지 않으려 하니까 괴이하고 놀라워 돌아가려 하였다. 여포가 계속 갈 것을 권하니 마침내 문에 들어섰다. 이숙이 극 戟으로 찔렀지만 동탁이 속에 갑옷을 받쳐 입어서 극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팔만 다치고 수레에서 떨어지면서 고개를 돌려 크게 소리쳤다.

"여포야! 어디 있느냐?!"

여포가 말했다.

"조서를 받들어 역적을 죽이러 왔다!"

동탁이 크게 욕했다.

"어리석은 개새끼가 감히 어찌 이럴 수 있느냐!"

여포가 기합을 넣어 창으로 동탁을 찌르고서 병사들을 다그쳐 어서 베게 하였다. 주부 전의 田儀와 동탁의 창고지기 두전 頭前이 그 시체를 애도하므로 여포가 죽였다. 말을 달려 사서 赦書[사면의 문서]를 지니고서 궁궐 내외에 알렸다. 사졸들이 모두 만세를 부르고 백성들이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었다. 장안에서 선비 부인들은 금은보화를 팔아서 술과 고기를 마련해 잔치를 하느라 거리를 가득 메웠다. 황보숭에게 명하여 동탁의 아우를 미오에서 공격하여 그 어머니와 처자식을 죽이고 나머지도 멸족시켰다.

여포, 동탁을 찌르다.

乃尸卓於市。天時始熱,卓素充肥,脂流於地。守尸吏然火置卓臍中,光明達曙,如是積日。諸袁門生又聚董氏之尸,焚灰揚之於路。塢中珍藏有金二三萬斤,銀八 九萬斤,錦綺繢縠紈素奇玩,積如丘山。

동탁의 시체를 길거리에 내놓았다. 날씨가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동탁이 평소 비만하므로 기름이 땅으로 흘렀다. 시체를 지키던 관리가 동탁 배꼽에다가 불을 부쳤더니 새벽까지도 계속 탔는데 이렇게 며칠을 꺼지지 않았다. 원 씨 집안의 사람들이 동 씨 집안의 시체를 모아 불에 태운 뒤에 재를 길에 뿌렸다. 미오성의 보물 창고에 황금이 2, 3만 근, 은이 8, 9만 근, 비단 같은 것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 이 다음은 이각, 곽사의 난인데 생략합니다 -_-;




덧글

  • 아롱쿠스 2009/05/20 15:05 # 답글

    동탁씨가 찬탈을 한 것은 아니군요. 그냥 출근하다 변을...
  • 뽀도르 2009/05/21 10:36 #

    그렇지요. 황제 폐하의 쾌유를 축하하러 출근하다가 그만 -_-;
  • 새로운나 2009/05/20 16:25 # 답글

    동탁이 죽기 전에 나타나는 암시들은 왜 나올까요?
  • 뽀도르 2009/05/21 11:30 #

    극적인 재미를 높이기 위해서 나오는 거 같은데.. 이건 드라마가 아닌 정사인데 -_-;
  • rdta 2009/05/20 21:09 # 삭제 답글

    기록이 좀 신빙성이 떨어지긴 하네요.

    날씨가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동탁이 평소 비만하므로 기름이 땅으로 흘렀다. <- 이렇게만 되면 다이어트 산업 다 망할 걸?(....)
  • 뽀도르 2009/05/21 11:32 #

    동탁이 저지른 악행이라고 하는 것도 신빙성이 떨어진다지요. 오나라 마지막 왕 손호가 저지른 악행과 유사해서 아무래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
  • 시무언 2009/05/21 07:26 # 삭제 답글

    권력 맛보고 타락하는 동탁의 모습은 지금까지 단 하나의 삼국지 각색에도 안나온게 아쉽군요(죄다 1. 처음부터 악당, 아니면 2.오다 노부나가 짝퉁)
  • 뽀도르 2009/05/21 11:33 #

    처음부터 악하기만 해서야 저렇게 큰 세력을 갖긴 어려웠겠지요.
  • 불타는 아이스크림 2013/04/24 11:28 # 답글

    안녕하세요. 정사관련 자료를 한 곳으로 모으고 있는 카페의 http://cafe.naver.com/historicdata 코렐솔라라고 합니다.

    지금 돌고 있는 동탁전은 서영이 손견을 이겼다는 부분만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각, 곽사의 난 이전까지 모두 부분이 번역되어 있는 이 자료는 정말 엄청난 것 같습니다. 혹시 퍼가도 괜찮을까요?
  • 뽀도르 2013/04/24 12:37 #

    출처를 밝히고 퍼가시면 되겠습니다^_^)
  • 불타는 아이스크림 2013/04/24 14:04 #

    감사합니다. 해당 글을 작성했으며 http://cafe.naver.com/historicdata/1125 가 그 주소입니다. 중간에 주석 번역된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은 불가피하게 추가했음을 밝힙니다.
  • 코렐솔라 2021/06/09 13:02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주부 전의 田儀와 동탁의 창고지기 두전 頭前이 그 시체를 애도하므로 여포가 죽였다.
    부분의 경우
    주부 전의 田儀와 동탁의 창고지기가 그 앞에서 시체를 애도하므로 여포가 죽였다.
    라 번역해야 된다는 의견이 있는데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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