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 삼국지에 나타난 유비의 청소년 시절 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어제밤에 정사 삼국지를 읽다보니 당연하겠지만, 소설과 좀 다른 내용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번역은 제가 해봤습니다. 삼국지 촉서 선주전의 일부입니다.

유비

先主少孤하고 與母와 販履織蓆으로 為業하였다。舍東南角籬上에 有桑樹가 生高五丈餘라  遙望見하면 童童如小車蓋라 往來者가 皆怪此樹非凡하고 或謂當出貴人하였다。 漢晉春秋曰:涿人李定雲:「此家必出貴人。」

선주[유비]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홀로 모친을 모시며 신을 팔고 돗자리를 짜서 생업으로 삼았다. 집 동남쪽 울타리에 뽕나무 한 그루가 높이가 다섯 길이 넘어 멀리서 바라보면 그 무성한 것이 마치 작은 수레 덮개 같았다. 오고 가는 이들이 모두 이 나무가 범상치 않은 걸 보고서 괴이하게 여기고, 어떤 이는 귀인이 날 것이라 했다. [한진춘추에 '탁군 사람 이정운이 "이 집에서 반드시 귀인이 날 것이다" 했다'라고 적혔다]

先主少時에 與宗中諸小兒와 於樹下에서 戲하며 言:「吾는 必當乘此羽葆蓋車하리라。」叔父子敬이 謂曰:「汝勿妄語하라 滅吾門也하겠구나!」年十五에 母使行學한데 與同宗劉德然과 遼西公孫瓚과 俱事故九江太守同郡盧植하였다。

선주가 어린 시절에 가문의 다른 아이들과 그 나무 밑에서 놀면서 "나는 이런 덮개가 덮인 수레[천자가 타는 수레]를 탈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숙부 유자경이 "너는 그런 망녕된 말을 하지 마라. 우리 가문을 다 죽이겠구나!"라고 선주에게 일렀다.15세에 모친이 유학을 보내어서 같은 가문의 유덕연, 요서의 공손찬과 더불어 전 구강태수 동군 노식에게 배웠다.

德然父 元起가 常資給先主,與德然가 等하였다。元起妻가 曰:「各自一家인데 何能常爾邪하시오!」起가 曰:「吾宗中에 有此兒인데 非常人也다。」而瓚이 深與先主와 相友하였다。瓚이 年長하므로 先主가 以兄으로 事之하였다。

유덕연의 부친 유원기가 선주와 유덕연에게 늘 물자를 똑같이 주었다. 유원기의 처가 "각자 집이 따로 있는데 당신은 늘 왜이러시오!"라고 하였다. 유원기가 "이 아이도 우리 집안이오. 보통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공손찬은 선주와 깊이 사귀었다. 공손찬이 연장자라 선주가 그를 형으로 모시었다.

先主는 不甚樂讀書하나喜狗馬、音樂、美衣服하였다。身長은 七尺五寸,垂手하면 下膝하고 顧하면 自見其耳하였다。少語言하고 善下人하며 喜怒가不形於色하였다。好交結豪俠하여 年少라도 爭附之하였다。中山大商인 張世平、蘇雙等이 貲累千金인데 販馬周旋於涿郡하다가 見而異之하고서乃多與之金財하였다。先主가 由是로 得用合徒眾하였다。

선주는 독서는 별로 즐기지 아니하고 개와 말, 음악, 아름다운 옷 따위를 좋아하였다. 키는 7척 5촌, 손을 내리면 무릎 밑까지 닿고 눈을 돌려 스스로 귀를 볼 수 있었다[귀가 그만큼 컸다는 뜻인듯]. 말수가 적고 아랫사람을 잘 대하고 희로가 안색에 나타나지 않았다. 호걸, 협객과 사귀기를 즐기니 선주가 나이가 적은데도 사람들이 다투어 붙었다. 중산의 큰 상인인 장세평과 소쌍은 재화가 천금에 달했는데, 말을 팔러 탁군을 두루 돌다가 선주를 보고서 비범하다 여겨서 곧 많은 재물을 바치었다. 선주가 이런 까닭으로 무리를 모을 수 있었다.

이걸 보면 유비는 어려서부터 사람을 끄는 친화력이 보통이 아니었군요. 아버지도 없고 집도 가난한데 친지나 주위 사람들이 다투어 도와주고 사귀고 싶어했네요.






덧글

  • 네비아찌 2009/05/08 15:35 # 답글

    이문열 삼국지에는 "천자가 타는 수레" 에피소드 등등 정사에 맞춰서 서술되어 있지요.
  • 뽀도르 2009/05/09 10:04 #

    이문열 삼국지는 공손찬이 유비와 같이 배우는 과정도 나오고 나름 정사를 공부하고 쓴 듯합니다.
  • 새로운나 2009/05/08 16:18 # 답글

    유비의 페로몬은 장난아니죠.^^;;; 어렸을 때는 단순히 사람좋은 바보로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유비의 대단함이 느껴지더군요.
  • 뽀도르 2009/05/09 10:07 #

    천자와 범인은 생각의 틀이 다를건데 일견 바보로 보여도 사실 대단한 사람일 수 있겠지요.
  • 미친과학자 2009/05/08 17:55 # 답글

    유비도 그렇고 한고조도 그렇고 유씨성 가진 인물들의 인맥능력은 좀 짱인듯.
  • rdta 2009/05/08 23:48 # 삭제

    본인 스스로가 먼치킨인데다 그 시대가 별로 안 유명해서 그렇지, 후한의 건국자 광무제 유수도 부하들이 좀 짱이지요.
  • 뽀도르 2009/05/09 10:08 #

    일단 한실 종친이란 것도 한몫했겠지만, 당시에 한실 종친이 한둘이 아니었을테니 개인 역량이 컸겠지요.
  • 르혼 2009/05/08 21:42 # 답글

    말이란 꼬기 나름이어서, 나쁘게 보면 이렇게 됩니다.

    '독서는 별로 즐기지 아니하고 개와 말, 음악, 아름다운 옷 따위를 좋아하였다.'
    ->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오토바이와 클럽, 명품 패션을 밝혔다.

    '호걸, 협객과 사귀기를 즐기니'
    -> 동네 양아치, 일진과 한 패거리가 되니

    '큰 상인인 장세평과 소쌍은 (중략) 곧 많은 재물을 바치었다. 선주가 이런 까닭으로 무리를 모을 수 있었다'
    -> 외지에서 온 상인들에게서 삥을 뜯어 똘마니를 모을 자금을 마련했다.

    물론 당시는 자경단과 조폭을 구분하기 힘든 때였으니까, 이렇게 나쁜 쪽으로만 꼬아서 보기도 어렵긴 합니다만. (야쿠자도 사실은 자치조직에서 시작했고 말이죠.)
  • 뽀도르 2009/05/09 10:08 #

    ㅋㅋ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 시무언 2009/05/09 00:32 # 삭제 답글

    유비의 친화력은 형주에서 도망갈때가 최고였죠. 백성들이 다 같이 도망가질 않나, 유종을 만나고 떠날때도 유종의 부하들이 같이 가려고 했을 정도니 이건 인간 자석도 아니고(...)
  • 뽀도르 2009/05/09 10:12 #

    ㅋㅋ 인간 자석 재밌는 표현입니다. 덕분에 조조의 철기가 자석에 이끌리듯 달라붙어서 당양에서 유비를 따라잡은 것일지도 ㅋㅋ
  • 시무언 2009/05/09 15:43 # 삭제 답글

    조조의 철기: 어째 저 방향에 이상한 이끌림을 느낀다. 저기로 가자

    (잠시후)

    우왕ㅋ굳ㅋ 이런식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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