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광기] 독일의 카미카제 특공대 역사 잡설


독일 카미카제

독일 지도자들이 새로운 상륙 저지 전술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다.


독일의 유인 V1 자살 비행 폭탄     

2차대전에서 가장 은폐된 비밀의 하나가 항복 전 일본이 저지른 자살 공격이 부른 손실과 불쾌감이다. 오키나와 침공을 위해 항해에 나선 장병들은 바카 폭탄 즉 인간이 탑승하여 조종하는 공중 어뢰의 일종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종전 시까지 정보 장교들이 예전의 독일 영토 곳곳을 들쑤셔댔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실 중 하나가 있다. 나치의 소수 광신 그룹이 독일판 바카비행폭탄을 모는 자살부대를 조직, 연합군의 유럽대륙 상륙작전을 깨부수려 했던 것이다.

일본의 바카
V1은 펄스 제트 방식인데 비해 G4M 육공에서 투하돼 단순한 화약 로켓으로 적함에 돌진했다.

사실 일본 동맹자들이 이런 비통상 전술의 아이디어를 품기 오래 전부터 독일은 이러한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관료적 비효율성에 더불어 히틀러를 비롯한 고위 집단이 흥미를 보이지 않아 노르망디의 D-데이에 출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전략 프로젝트의 시초는 19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황은 독일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많은 독일인들은 연합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줄 기적적 이벤트가 없는 한 조국이 결국 패배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가운데 소수의 이상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처음에 30에서 40 명에 불과했으나 함께 전력투구했다. 그들 중 일부는 군 출신, 나머지는 시민들로 지도자들 가운데 하나는 이름난 독일 여성비행가였다.

이들은 독일이 가장 결정적 타격을 연합군에 가하지 않는다면 패전할 것이라데 공감했다. 언젠가 있을 연합군의 대륙 침공을 완전히 좌절시켜 연합군 지도자들에게 유럽 요새의 독일은 견고하며 난공불락임을 깨닫게 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아이디어의 탄생

이런 일련의 생각에 따라 자살 부대의 아이디어가 생겨났다. 비행 폭탄을 인간이 조종하여 거대한 적 전함이나 병력 수송선을 격침한다는 것이다. 이들 이상주의자들의 생각에 1,000명의 자원 조종사들이면 어떠한 해상 침공 작전도 물리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 괴상한 집단의 멤버들은 자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 최종 목적을 확실히 달성케 해줄 무기가 주어지기만 바랐다. 그리고 자신들의 집단 내부에 그런 무기를 개발할 능력의 인원이 있을 것이라 보았다.

일본 카미카제 조종사들

독일 광신도들도 1,000명의 자살공격 조종사들이면 연합군의 침공 작전을 저지할 것으로 봤다.

1943 년 10월 레칠린의 의료항공학 연구소의 의사였던 그 여성 비행가와 독일공군 중위 한 명이 지도하여 조직 계획을 짰다. 그 결과 프로젝트의 수행에 정부의 공식 인정과 협조를 받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독일 항공계에서 그 여자 조종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 그녀가 그 임무를 맡기로 했다.

그 여자는 독일공군 지휘부에 먼저 그 구상을 제출했지만 즉각 거절 받았다. 독일 공군은  이 이상주의자 그룹을 '웬 미친 놈들'로 봤던 것이다. 상당 기간 지연된 끝에 이 여류 비행가는 당시 공군 장관이던 밀히 원수를 직접 만나러 갔다. 그러나 역시 아무 진전이 없었다.

그 뒤 몇주가 더 흐르고 이 여인은 독일 항공계 내의 자신의 위치와 명성을 써먹기로 결심, 독일 항공학술원에서 발언할 기회를 잡게 된다. 이 학술원은 필요한 과학기술자들과 공군 전술 담당자들을 불러 모을 파워 를 갖고 있었다. 결국 이 모임은 독일 항공연구 위원회의 위원장이 주최하게 되었다. 장시간 회의 끝에, 이 위원회는 그 아이디어가 작전상 정말 시도해볼 만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이러한 권위있는 기관의 증빙을 손에 넣고 이 이상주의자 집단은 공식 지원과 자살작전 계획의 지휘권을 얻을 다음 수순을 밟았다. 히틀러에 대한 접견을 신청, 드디어 1944년 2월 이 프로젝트의 여성지도자는 베르히테슈가덴에서 총통과 3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히틀러와 인터뷰

"자살 공격은 독일 민족과 맞지 않습니다."

히틀러는 승인하지 않았다. 그 계획 속의 자살 철학을 들어 반대했다. 독일 역사에 그와 유사한 사례가 없다는 것도 지적했다. 이런 계획은 독일 민족의 특성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여류 비행가는 독일 역사상 이렇게 위급한 상황도 없었다며 반박했다. 이 말은 분명히 히틀러의 심기를 거슬러 히틀러는 지금 그렇게 위급한 게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만약 정말 그런 위기가 닥친다면 히틀러 자신이 앞장서서 그런 필사적 수단을 채택하도록 명령할 것이라 말했다.

이 인터뷰 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여인이 떠나기 전에 히틀러에게서 연구 개발의 지속은 승인받았다. 총통이 정말 위기라 판단하는 시기가 찾아오면 그 조직이 작전을 시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헤어지면서 정말 그런 시기가 찾아오기 전까지 그런 아이디어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 동안 이 자살 자원 그룹은 70 에서 80 명으로 커갔다. 아직 어떤 합의된 모집 시도도 없었지만 이들 자원자는 매우 정선된 그룹이었다. 일단 승인된 자살 부대의 회원 후보는 다음과 같은 서약을 해야 했다. "저는 유인 글라이더 폭탄의 파일럿 자원자로서 제 목숨을 바쳐 임무를 수행할 것을 굳게 믿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계속하라는 히틀러의 승인에 따라 독일공군 참모총장 앞에 이 문제가 떨어졌다. 참모총장은 미적지근한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 를 온갖 특수 비밀 작전을 담당하던 어느 폭격기 비행대 사령관에게 할당하였다. 처음에 이 프로젝트 는 결국 결실을 맺을 듯 보였다. 그러나  사령관이 이 프로젝트 를 받아들인 것은 이들 자원자 집단의 자기희생정신이 가져올 영광과 신뢰를 자기 것으로 하려는 게 주목적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자살 무기
원래 예정되었던 Me 328의 개발은 지지부진했다.

한편, 독일 공군성은 이 자살작전 계획을 실전에 쓸 수 있게 할 기술 준비를 마치도록 명령한다. 메서슈미트 328 로 제식명명된 전투기 혹은 전투폭격기가 자원자들이 조종할 항공 무기로 선정된다. 이 항공기의 생산 명령이 떨어지지만 진행이 매우 늦자 자원자들은 일종의 관료적 태업을 의심하게 된다. 그 결과 자살 집단은 다른 대안무기를 찾게 된다. 그것은 생산이 쉽고 즉시 이용 가능해야 했다. V-1 비행폭탄을 개조, 조종사를 태우기로 한다. 3주가 지나지 않아 4 종류의 이들 인간 조종 미사일이 테스트 준비를 마친다.

현대 순항 미사일의 선조 V1 비행폭탄 - 이걸 개조해서 사람을 태우면 간단하겠지 싶었겠지만 ...

유인(有人) V1 자살 폭탄 비행기
결국 순항 미사일 을 비행기로 개조하는 작업이 되었으니... 거기다 복좌훈련기까지 OTL

자원자들의 열망과 달리 독일 공군은 공군 자체의 조종사로 테스트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2명의 독일공군 조종사는 곧 큰 부상을 입었다. 그러자 그 여류 비행가를 불러 테스트비행을 허락했다. 이것은 쉬운 제의가 아니다. 자살 파일럿 훈련용으로 복좌(2인승) 비행폭탄이 개발되었다. 물론 디데이까지 자원자들을 죽일 작정이 아니라면 이 훈련 폭탄에는 착륙장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비행폭탄이 착륙하려며 무동력 상태가 되는데 이놈이 원래 글라이더나 통상 비행기처럼 설계된 것이 아니어서 활주로 접근각이 가파르고 시속 155 마일의 속도로 착륙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 무기의 기술 개발은 꽤 성공을 거두며 진행된 반면, 자원자들을 담당한 공군장교들이 서툴러서 이 프로그램의 나머지 부분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비록 처음에는 자원자들이 그 공군 비행대 사령관을 믿었지만 그는 이 계획에 뒷짐만 져서 그가 이 계획에 진실된 흥미를 갖지 않고 있다는 게 곧 명백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다른 공군장교 스태프를 이 계획의 책임 및 작전 직위에 앉혔다. 이들 장교들은  연합군 침공 작전을 저지하겠다는 자원자들의 원래 임무는 안중에 없었다. 대신에 이들은  여러가지 설익은 아이디어를 쏟아내었다. 동부 전선의 소련 탄약열차에 대한 자살공격 같은 것이었다. 

자원자들은 조국에 목숨을 바칠 각오였지만 상대적으로 비필수적인 임무로 죽기는 싫었다. 그러는 동안 훈련 프로그램도 수렁에 빠져들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체력 단련과 권총 사격에 쏟아붓는 한편, 제대로 된 비행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애초에 자원 그룹의 지도자 중 하나였던 그 독일공군 중위는 계급이 너무 낮아 아무 힘도 쓸 수 없었다. 개선시켜보려고 계속 애를 썼지만 결국 명령만 수행해야 했다.


맨날 체력단련이냐구!! 비행기는 언제 몰아보냐구!!??

다시 한번 그 여류 비행가가 나서서 빠르게 망해 가는 프로그램 을 되살리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요청받았다. 그 여자가 힘러를 만난 것은 그가 자살 자원자들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해줄 수 있으리란 희망 때문이었으나 힘러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자살작전에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자살 자원자들 구성은 범죄자나 불치병 환자들이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만약 그 휘하의 장교가 전체 계획의 지휘권을 승인 받는다면 그가 그 프로그램 을 맡겠다고 제의했다. 힘러 밑에서는 더 개판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으므로 그 제의는 거절됐다.

"자살 부대원은 범죄자나 불치병 환자로 구성하는 게 좋겠지요."

D-데이가 다가오다.

드디어 D-데이. 이들 머리 위로 돌진하려던 자살비행폭탄은 보이지 않았다.

이 때 연합군은 노르망디침공에 나섰다. 이기적이거나 무관심한 지휘관들이 잘못 운영한 결과 자살작전 프로젝트에는 자살무기도 제대로 훈련 받은 자살 조종사도 없었다. 자살자원 집단의 실망은 깊었다. D-데이 6, 7일 뒤 그들이 보기에 침공은 성공이었다. 그들이 활약할 기회는 지나간 거처럼 보였다.

'맞아, 그 미치광이들을 써먹는 거야'

그러나 침공 개시 며칠 뒤 다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시점에서 헤르만 괴링은 갑자기 독일공군 어딘가에 자살 조종사 그룹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당연한 수순으로 괴링은 자살 자원자들이 배속된 폭격기 비행단 사령관에 연락했다. 그 사령관 - 대령 -은 즉시 그 대원들이 준비완료 상태라고 답했다. 자원자들은 대경실색했다. 자살용 항공기도 비행폭탄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몇명만 가장 기초적인 비행 전前 단계 훈련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령관과 그의 기술자들은 자원자들과 상의 없이 포케불프 190 전투기를 개조, 4,000 파운드 폭탄을 달고 목표물에 충돌케 하려했다.

FW 190은 무슨 중폭격기가 아니다.

미 B-29의 4,000 파운드 폭탄 - 이 정도의 대형 폭탄을 FW 190에???

자, 독일공군 중 아무도 그런 대형폭탄을 이 전투기에 달고 날아본 적이 없었을 뿐더러 이놈의 비행기가 땅에 머리를 쳐박지 않고 날아오를지도 매우 의심스러웠다. 따라서 제 정신인 정규공군 시험조종사는 이 실험기를 조종할 명예를 거절했다. 이에 아랑곳 없이 사령관은 FW 190 은 커녕 다른 어떤 항공기도 몰아본 적이 없는 자살 자원자들이 스스로 며칠 안에 FW 190 을 조종해 날아 오를 것이라고 언명했다. 만약 시험 비행 중에 죽는다면 적함에 자살 공격을 가한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 역사에 그들 이름과 고귀한 희생이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꼴을 보자 자원자들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어떤 열정도 사그라져버렸다.

'차라리 항복하련다'

자살 지원자들에게 다행스럽게도 히틀러가 FW 190 사용 자살 공격안을 듣고서 그만두게 했다. 그 폭격기 사령관도 결국 짤리고 그 후임은 원래 프로젝트보다 좀 나은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연합군은 대륙에 교두보를 확보한 뒤였으며 적함을 들이받을 명예로운 기회는 더 이상 없었다. 자살 자원자 집단은 해체되었다.

"그리고 열렬하고 고귀한 이상주의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였는데 그들의 신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바치려는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 하는 인간들에 의해 잘못 쓰이고 잘못 운영되었을 뿐이다" 라고 그 여류 비행가는 말했다.

결론

1년 뒤 일본 카미카제 부대가 미함대에 가한 것과 같은 엄청난 손해를 끼치지 못한 채 이 독일프로젝트는 독일 지도자들이 바보 같은 짓 이상으로 여기지 않은 비정상적 전술적 모험들 가운데 하나로 지나갔다. 그러나 일본군 자살공격을 경험한 우리가 볼 때 나치독일 지도부가 해상침공작전을 되받아칠 인상적인 무기의 가치를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다.  나치 사령부가 이들 자살 자원자들과 유인 폭탄의 잠재력을 알아봤다면 D-데이의 노르망디 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비록 자살공격이 침공을 좌절시키지는 못 했겠지만 만약 그 뒤의 일본군처럼 대규모로 감행했다면 안 그래도 어려운 상륙작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군의 카미카제공격을 받은 미 항모 프랭클린 호

자살 특공대 지도자 한나 라이치 Hanna Reitsch (1912년 3월 29일 – 1979년 8월 24일)
이미 소련 군이 시내까지 진출, 전투가 한창이던 베를린으로 비행기를 몰고 가 히틀러가 하사한(?)
독약까지 기꺼이 받았으나 결국 그의 명령으로 함락 직전 비행기를 몰고 탈출한다.

문제의 특수 비행대 KG200의 사령관, 베르너 바움바흐(1916 - 1953)
전후 포로 생활 끝에 아르헨티나에서 테스트파일럿으로 일하다 사고로 죽었다.

오토 스코르체니(1908-1975)
자살 특공 비행대를 처음 제안한 사람 중 하나.
무솔리니 구출 작전 등으로 유명하다.

1946년 6월에 나온, 연합군 침공에 맞선 독일의 자살 공격 계획에 관한 미군 정보 보고서를 번역했습니다.


덧글

  • 슈타인호프 2009/04/08 14:41 # 답글

    그 여류 비행가는 "한나 라이히"입니다.
  • 뽀도르 2009/04/08 15:18 #

    감사합니다. 덕분에 사진을 찾았습니다.
  • 2009/04/08 15:5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뽀도르 2009/04/08 15:58 #

    정말 미쳤지요.
  • 淸年_D 2009/04/08 18:09 # 답글

    독일의 가미카제라면 미스틸이 ;;

    뭐 이쪽은 폭탄인 모기는 갖다 박고 자기를 타고 튈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살폭탄은 아니지만요
  • 淸年_D 2009/04/08 18:14 #

    아 미스틸이 아니라 미스텔이죠
  • 뽀도르 2009/04/08 22:33 #

    다른 소스를 보니 전쟁 막바지에 정말로 독일군 항공기의 자살 출격이 있었답니다.
    35명의 조종사와 항공기를 자살 공격에 썼지만 성과는 미미했다지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포스팅해보겠습니다.

    미스텔은 정말 그 기괴한 모습 때문에라도 한번 눈이 가게 되지요.
  • 천하귀남 2009/04/08 19:39 # 답글

    먹을게 부족하다고 산까지 밭으로 개간하면 당장은 몰라도 비라도 한번오거나 하면 밭이 쓸려가 말도못할 흉년이 된다고 하지요. 장기적으로도 산자체의 지력이 엉망이되 오히려 산을 파괴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고 합니다.
    2차 대전시 조종사의 양성에는 초보얼치기를 만드는데도 3개월 이상이 걸렸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얇팍한 독일의 조종사 과정에 저런 자살특공으로 징발하면 순식간에 고갈되 버렸을겁니다.
    일본군역시 가미가제로 조종사양성이 완전 개판이됬다고 하는데 그래도 실무자 선에서 어느정도 현실적 개념이 있는 독일이니 통과할리가 없었겠지요.
  • 뽀도르 2009/04/08 22:35 #

    맹자에 나오듯이, 농작물이 안 자란다고 그걸 잡아 당기는 짓이나 마찬가지지요.
  • ghistory 2009/04/09 03:12 # 답글

    히믈러→힘러.
  • 뽀도르 2009/04/09 09:42 #

    워낙 히믈러가 귀에 익어서.. 그래도 정정하겠습니다.
  • ghistory 2009/04/09 03:13 # 답글

    한나 라이히→한나 라이치.
  • 뽀도르 2009/04/09 09:41 #

    -tsch니 치가 맞겠군요.
  • 행인1 2009/04/09 12:58 # 답글

    제안자가 누군가 했는데 알고보니 한나 라이치군요. 그나저나 웅대한(?) 구상이 현실에서 틀어지는 과정이 참...
  • 뽀도르 2009/04/09 15:08 #

    슬픈 코미디지요.
  • rlaaudwls 2009/11/15 01:39 # 삭제 답글

    알고보면 나치독일이 일본보다 양반이죠
  • 뽀도르 2009/11/16 10:19 #

    우열을 가리긴 힘들지만 자살특공은 일본을 따를 수는 없겠지요.
  • 시무언 2009/11/16 15:03 # 삭제 답글

    나치나 일본이나 거기서 거기죠. 다만 어느 방향으로 똘끼가 넘쳤느냐만 달랐을뿐...
  • 뽀도르 2009/11/17 12:30 #

    난형난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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