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포장된 거짓 전설 - 제로의 신화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 함상전투기 제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전투기용 무전기가 있으나 마나 했다는 것. 아예 무전기를 제거하고 출격하는 이야기도 나오지요. 전쟁 후기에는 좀 나아졌을지 몰라도 무전기의 성능이 형편없어서 제대로 된 편대전술도 구사하기 힘들었지요.
사카이가 쓴 <대공의 사무라이>에도 나오듯이 적기가 출현하면 날개를 특정패턴으로 흔든다든가 수신호를 보내는데 일단 전투에 돌입하면 효율적으로 통신할 수단이 없지요.
하늘의 무사 사카이 사부로
전투 중에 한눈을 잃은 애꾸눈의 에이스로 유명합니다.
그가 몬 제로 기도 다른 전투기와 말을 나눌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장애를 가진 전투기였습니다.
다른 편대원에게 6시 방향에 적기가 붙었다느니 혹은 자기 꼬리에 붙은 적기를 떼어달라느니 이런 통신이 불가능하니까 오로지 개인기량에 의존, 개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반면에 미군은 무전을 통해 효율적인 편대전술을 구사, 점점 일본군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본 미국 드라마 중에 <제 7 비행대>였나 미해병 에이스패피 보잉튼을 주인공으로 한 전쟁물에서 주인공이 잘난 체 하는 신참에게 절대 편대를 이탈하지 말도록 하지요. 그러나 역시 신참은 편대를 이탈, 제로기를 사냥하려다 불귀의 객이 되고 말지요.
공중전 역사의 초기에는 다른 나라들도 무전기가 부재, 수신호나 날개 흔들기, 혹은 신호용 권총으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투에 돌입하면 소용이 없는 방법들이지요.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자 단파무선통신을 군용기 간 통신에 쓸 방법을 찾게 됩니다.
미 해병 에이스 패피 보잉튼
결국 격추되어 일본군의 포로가 됩니다.
사실 일본의 무전기 자체가 그렇게 뒤떨어진 것은 아니어서 설계도 괜찮고 제조도 잘 되었답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원자재가 부족해지면서 무전기의 질도 하락했고 더 중요한 것은 무전기 제조업자 와 항공기 제조업자 간에 협력이 부족, 무전기 탑재공간을 제대로 고려치 않고 항공기를 설계했습니다. 결국 일부 기종은 무전기 탑재운용이 곤란해졌습니다. 탑재방법 자체도 인간공학적으로 문제여서 주파수 조정이나 볼륨 조정이나 기타 조작이 어렵기도 했습니다. 현대 전투기에서는 더 한 문제이지만 당시 무전기도 항공기에 탑재하기 위해서는 배선이라든가 접지 등등 신경 쓸 게 많았는데 이걸 전쟁 후기까지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했다 합니다. 최근에도 일본에서 F-16을 개량한 지원전투기의 전자장비를 전자강국 일본이 자체적으로 깔았는데 각 기기 간의 간섭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골머리를 앓았다지요. 하루아침에 되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2차 대전 당시 일본전투기의 점화플러그를 제대로 차폐하지 않아 무전기와 간섭이 심해서 무전기의 수신능력이 대폭 감소되었답니다. 게다가 대기를 뚫고 비행하는 기체를 타고 발생하는 정전기도 큰 문제였습니다. 항공장교들도 무전기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제대로 운용할 인력도 모자랐습니다. 결국 짜증나는 무전기를 아예 안 쓰고 예전의 시각신호로 되돌아갔습니다. 일부 육상 주둔 기체들은 경량화로 기체성능을 높이고자 무전기를 통째로 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항모 탑재기들은 특성상 무전기를 아예 제거할 수는 없었습니다.
무전기의 부재로 편대지휘관의 지휘방법은 심각하게 제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카이 사부로도 동료 조종사 미야자키에게 적기가 뒤에 붙은 걸 멀리서 발견했으나 알려줄 수단이 없었습니다. 결국 유능한 파일럿 하나를 잃게 되었습니다.
과달카날 상공 전투에서도 여러 층에 걸친 두터운 구름 때문에 시계가 불량한 가운데 호위전투기들은 무전기가 없어 호위임무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무전기의 부재뿐 아니고 살인적인 장거리비행에 따른 극심한 피로도 일본기의 손실을 부채질하긴 했습니다만.
제로 기 조종석 오른 편
무전기가 좌석 바로 오른 편에 보입니다만, 저렇게 불편하게 위치했으니
저거 조작하려면 아주 돌아 버리겠지요.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 함상전투기 제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전투기용 무전기가 있으나 마나 했다는 것. 아예 무전기를 제거하고 출격하는 이야기도 나오지요. 전쟁 후기에는 좀 나아졌을지 몰라도 무전기의 성능이 형편없어서 제대로 된 편대전술도 구사하기 힘들었지요.
사카이가 쓴 <대공의 사무라이>에도 나오듯이 적기가 출현하면 날개를 특정패턴으로 흔든다든가 수신호를 보내는데 일단 전투에 돌입하면 효율적으로 통신할 수단이 없지요.

전투 중에 한눈을 잃은 애꾸눈의 에이스로 유명합니다.
그가 몬 제로 기도 다른 전투기와 말을 나눌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장애를 가진 전투기였습니다.
다른 편대원에게 6시 방향에 적기가 붙었다느니 혹은 자기 꼬리에 붙은 적기를 떼어달라느니 이런 통신이 불가능하니까 오로지 개인기량에 의존, 개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반면에 미군은 무전을 통해 효율적인 편대전술을 구사, 점점 일본군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본 미국 드라마 중에 <제 7 비행대>였나 미해병 에이스패피 보잉튼을 주인공으로 한 전쟁물에서 주인공이 잘난 체 하는 신참에게 절대 편대를 이탈하지 말도록 하지요. 그러나 역시 신참은 편대를 이탈, 제로기를 사냥하려다 불귀의 객이 되고 말지요.
공중전 역사의 초기에는 다른 나라들도 무전기가 부재, 수신호나 날개 흔들기, 혹은 신호용 권총으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투에 돌입하면 소용이 없는 방법들이지요.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자 단파무선통신을 군용기 간 통신에 쓸 방법을 찾게 됩니다.

결국 격추되어 일본군의 포로가 됩니다.
사실 일본의 무전기 자체가 그렇게 뒤떨어진 것은 아니어서 설계도 괜찮고 제조도 잘 되었답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원자재가 부족해지면서 무전기의 질도 하락했고 더 중요한 것은 무전기 제조업자 와 항공기 제조업자 간에 협력이 부족, 무전기 탑재공간을 제대로 고려치 않고 항공기를 설계했습니다. 결국 일부 기종은 무전기 탑재운용이 곤란해졌습니다. 탑재방법 자체도 인간공학적으로 문제여서 주파수 조정이나 볼륨 조정이나 기타 조작이 어렵기도 했습니다. 현대 전투기에서는 더 한 문제이지만 당시 무전기도 항공기에 탑재하기 위해서는 배선이라든가 접지 등등 신경 쓸 게 많았는데 이걸 전쟁 후기까지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했다 합니다. 최근에도 일본에서 F-16을 개량한 지원전투기의 전자장비를 전자강국 일본이 자체적으로 깔았는데 각 기기 간의 간섭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골머리를 앓았다지요. 하루아침에 되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2차 대전 당시 일본전투기의 점화플러그를 제대로 차폐하지 않아 무전기와 간섭이 심해서 무전기의 수신능력이 대폭 감소되었답니다. 게다가 대기를 뚫고 비행하는 기체를 타고 발생하는 정전기도 큰 문제였습니다. 항공장교들도 무전기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제대로 운용할 인력도 모자랐습니다. 결국 짜증나는 무전기를 아예 안 쓰고 예전의 시각신호로 되돌아갔습니다. 일부 육상 주둔 기체들은 경량화로 기체성능을 높이고자 무전기를 통째로 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항모 탑재기들은 특성상 무전기를 아예 제거할 수는 없었습니다.
무전기의 부재로 편대지휘관의 지휘방법은 심각하게 제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카이 사부로도 동료 조종사 미야자키에게 적기가 뒤에 붙은 걸 멀리서 발견했으나 알려줄 수단이 없었습니다. 결국 유능한 파일럿 하나를 잃게 되었습니다.
과달카날 상공 전투에서도 여러 층에 걸친 두터운 구름 때문에 시계가 불량한 가운데 호위전투기들은 무전기가 없어 호위임무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무전기의 부재뿐 아니고 살인적인 장거리비행에 따른 극심한 피로도 일본기의 손실을 부채질하긴 했습니다만.

무전기가 좌석 바로 오른 편에 보입니다만, 저렇게 불편하게 위치했으니
저거 조작하려면 아주 돌아 버리겠지요.
덧글
또한 그게 당시 정황으로도 말이 안되는 것이 1941년 6월 22일 베어마흐트가 러시아 국경을 넘어섰을 때 전선에 배치된 붉은 군대가 갖고 있던 KV와 T-34는 각각 469대와 832대고[붉은 군대는 여기에 T-35 50대 T-28 424대, BT-7 2800대와 T-24 4200대가 더해지죠] 독일 육군이 갖고 있던 3호전차는 3.7cm 316대, 5cm 1113대, 4호전차 613대 [독일은 여기에 35(t) 187대, 38(t) 754대, 돌격포 377대가 더해집니다.]로 숫적으로는 독일군이 약간 우위인 거 같지만 성능격차나 기타 전차를 감안하면 절대열세로 봐도 무방하죠. 만일 그것들이 동부전선 전투에 필요한 조건을 딱 갖추고 있었다면 1941년 11월에 모스크바 문앞까지 털리는 것이 아니라 1941년에 베를린 문앞까지 털려야 정상이지 싶은데요?
전차의 무전기 설비의 미비 내지 부재는 비단 소련의 문제만이 아니고, 프랑스 전선의 영국, 프랑스 전차도 마찬가지였지요. 무전기는 일종의 초보적 데이타 링크 시스템이랄까 그렇지요.
여하간에 각 전차마다 무전으로 기동을 조율하고, 공중 지상 간에 유기적으로 연락이 가능한 결과가 전격전이라고 봅니다. 독일군이 수송의 대부분을 군마가 맡을 정도였지만, 독일군의 스피드는 공간적 스피드라기보다 군 시스템 내부의 유기적 연결망과 전술적 우수성에 기인한 것이 크다고 봅니다만.
(그리고 저 사이트 꽤 재미있습니다. 일본어가 가능하시면 한번쯤 들어가셔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듯)
결과적으론 이런 기체의 치명적인 결함이 실전을 많이 거쳐 우수한 파일럿들을 미드웨이 해전과 기타 등등의 전투에서 다 털어먹고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어서 B-17이 일본 본토를 폭격하는데도 쪽도 못쓰고 당하게 되었던 걸 생각하면 이걸 자업자득이라고 해야할지 꼴좋다고 해야할지 이뭐병이라고 해야할지 참 아이러니해집니다(...)
일본이나 독일이나 파일럿 양성의 문제가... 에이스는 죽을때까지 전선에서 써먹는 것이었다고.
반면 미국은 어느 정도 전공을 쌓으면 후방으로 돌려서 후진을 양성, 결국 미군에는 수퍼 에이스는 없지만, 엇비슷한 기량의 우수한 조종사들이 가득하게 되지요.
반면, 일본과 독일은 전쟁 막판에는 몇몇 수퍼 에이스를 제하고는 하늘에 겨우 떠있을 정도의 초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뛰어난 지휘관들과 군 베테랑들이 실제로는 크게 대단하지 않은 무기들로 전쟁
초반 기세를 잡은 것인데 막상 후세에는 전설의 '무기' 덕분으로 나오니 말이죠. ^^;;;
2차 대전 초기에 동부전선의 독일의 빠른 진군과 승리가 단지 무기의 우수함과 숫적 우위 때문은 아니라는 것은 우마왕 님도 아시는 부분 일겁니다.
저는 T-34나 KV가 3호나 4호에 비해 성능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말했고 심지어 숫자에 있어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독일 기갑군의 3호전차나 4호전차는 KV 쇼크와 T-34 쇼크를 차례로 경험해야 했을 정도로 성능면에서 우수하지 못했고 거기에 숫적 열세, 그리고 그것을 보충할 능력(당시 바닥을 치던 독일군의 병참능력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드리자면 1941년 당시 독일군의 실질적인 보급능력은 레닌그라드 - 모스크바 - 로스토프는 고사하고 드비나 - 스몰렌스크 - 드니예프르 선이 한계였습니다.)조차 높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붉은 군대는 모스크바 문앞까지 밀려났죠.
당시의 T-34나 KV는 3호전차 및 4호전차보다 더 크고 성능적으로 우위에 있었으며 심지어 홈그라운드의 이점까지 갖고 있었음에도 전투에서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럼 답은 간단하지요.
그렇기에 1941년의 T-34, 더하여 KV가 전투에 필요한 조건을 딱 갖추고 있었다...는 가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깁니다. 참고로 1943년의 T-34라면 전투에 필요한 조건을 비로소 갖추기 시작했습니다만 이땐 성능이 열세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