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의 역사] 헤비 스모커, 야크트티거 [전차] 괴수 대 괴물


"독일 전차 1대를 잡으려면 너희 전차 5 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너희는 항상 6 대다."
-- 사로잡힌 독일 전차 승무원

야크트티거 Jagdtiger


야크트티거 Jagdtiger Sd. Kfz. 186
야크트티거 중구축전차. 미국 애버딘 미 육군 군수 박물관
유형
구축전차
개발 국가나치 독일
생산 기록
생산 수량
약 80량
제원
무게
71.7 tonne
(헨셸 현가장치)
길이
10.65 m 포신 포함
너비3.6 m
높이2.8 m
승무원6

장갑
250 mm
주 무장
1x 12.8 cm PaK 44 L/55
부 무장
1x 7.92 mm Maschinengewehr 34
엔진V-12 Maybach HL 230 P30
700 PS (690 hp, 515 kW)
추력 중량 비
9.76 PS/tonne
현가장치토숀 바
작전 거리120 km 도로
80 km 도로 밖
속도34 km/h



판처얘거 티거 B형 야크트티거 Panzerjäger Tiger Ausf. B Jagdtiger (Sd. Kfz. 186) 는 2차대전에 쓰인 독일의 구축전차다. 1944년 말부터 전쟁 종료까지 동서 양 전선에 쓰였다. 야크트티거는 2차 대전 참전 차량 중 가장 무거운 장갑 전투 차량이다.

장갑과 무장이 뛰어났으나, 실전에서 기계적 문제와 전쟁 말 독일군의 고질적 연료 부족에 시달려 활약이 제한됐다.

개발

3 호 돌격포가 적 전차를 잘 때려부수자 나치 독일 군부의 우두머리들은 이미 쓰고 있던 장갑 차량을 토대로 더 두꺼운 장갑과 더 강력한 포를 달아 구축전차를 만들기로 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구축전차들은 포탑이 없고 대신 차체에 덧붙여지거나 통합된 포대 같은 상부 구조물을 써서 더 큰 구경의 포를 달 수 있었다. 복잡한 부품이 많은 포탑이 없어 만드는 시간과 돈이 절약되었다.

이른 1942년, 육군 총참모부는 128미리포를 자주포 차대에 달 것을 요구했다. 1942년 5월 18일 아돌프 히틀러 는 128미리포는 보병 지원이 아니라 구축전차에 써먹어야 한다고 명령했다. 시험 삼아 쏴보니 잘 맞았다. 88미리포와 105미리포도 함께 시험했다.

포르셰 야크트티거와 헨셸 야크트티거

1943년 초 128미리포를 판터 나 티거 1 전차 차대에 달아서 중重 돌격포로 만들어보라 했다. 나무 모크업을 만들어보니판터의 차대는 너무 작았다. 1943년 10월 20일 티거 2 차대를 쓰는 야크트티거의 나무 모크업이 만들져 동프로이센 에 있던 히틀러에게 보여졌다. 원형 차량 두 량이 만들어졌다. 하나는 포르셰 현가장치로 8개의 로드 휠을 달았다. 다른 하나는 티거 2 양산형에 쓰인 9개의 중첩식 로드 휠을 달았다. 둘 다 1944년 2월 마무리됐다. 처음에 6호 야크트판처 로 이름지었으나 뒤에 야크트티거 로 고쳤다. 시리즈 번호는 Sd.Kfz. 186.

설계

야크트티거 는 판터 전차에서 야크트판터 를 만들었듯이 전차 설계를 토대로 구축전차를 만든 것이다. 티거 2 차대의 길이를 늘여 상자 모양의 포대 구조물을 차대에 통합시킨 것이다. 포대 앞 장갑은 경사진 차제 앞 장갑 조금 뒤에 위치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량은 매우 두꺼운 장갑에 어느 적 전차라도 격파할 수 있는 128 mm PaK 44 L/55포를 달아, 3,500미터 이상의 먼 거리에서도 때려잡을 수 있었다. 포대 앞 장갑은 무려 250미리, 차체 앞 경사 장갑도 150미리에 이르러 전방에 쏟아지는 어떤 화력도 막아낼 수 있었다. 포대를 쓴 탓에 회전 포탑이 없어 주포는 겨우 10도 정도 좌우로 돌릴 수 있었다. 그 이상 조준하려면 육중한 차체를 돌려야 했다.

독일의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

512대대의 30량 가운데 1개 중대 10량의 야크트티거를 이끈 오토 카리우스 는 이 차량을 돌격포 라고 불렀다. 조준하려면 차체를 통째로 돌려야 했던 탓에 변속기와 차동장치 문제가 컸다. 또한 탑재된 포는 조금만 이동해도 광학 장치의 정렬이 흐트러지곤 했다. 포가 워낙 길어서 좀 험한 길에서는 심하게 흔들려서 정렬이 안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포의 위력은 엄청나서, 건물 뒤에 숨은 미군 전차도 깨뜨렸다고 보고했다.

야크트티거는 엄청난 무게와 힘이 딸리는 엔진 탓에 갖가지 기계/기술적 문제에 시달렸다. 걸핏하면 고장이 났다. 결국 적 화기에 맞아 부서지기보다 기계 고장이나 연료 부족으로 잃은 게 많다.

생산

150량을 주문했으나 그 반만 만들었다. 그중 11량은 로드 휠이 8개인 포르셰 현가 장치를 썼다. 나머지는 9개의 로드 휠을 단 헨셸 현가장치를 썼다.

야크트티거 생산 라인

생산 수치는 원형 차량 포함 여부, 종전 후 생산 차량 포함 여부 등 여러 요소와 각종 기록에 따라 다르다. 모두 77량에서 88량 정도가 1944년 7월부터 1945년 5월까지 만들어졌다. 대략 1944년 7월부터 1944년 12월까지 48량, 1945년 1월부터 4월까지 36량이 만들어졌다.

일부 기록엔, 1945년 2월 이후 생산이 없었다. 종전에 가까워질수록, 일부 차량은 중요 장비가 모자라, 작전 불능에 빠지거나 부대 배치가 불가능했다.

일련번호 별 생산

    * 1944년 2월 - 2 - #305001-305002
    * 1944년 7월 - 3 - #305003-305005
    * 1944년 8월 - 3 - #305006-305008
    * 1944년 9월 - 8 - #305009-305016
    * 1944년 10월 - 9 - #305017-305025
    * 1944년 11월 - 6 - #305026-305031
    * 1944년 12월 - 20 - #305032-305051
    * 1945년 1월 - 10 - #305052-305061
    * 1945년 2월 - 13 - #305062-305074
    * 1945년 3월 - 3 - #305075-305077
    * 1945년 4월 - 7 - #305078-305084
    * 1945년 5월 - 4 - #305085-305088

일련번호 305011 (1944년 9월) 이후, 자기 흡착 지뢰 방어용 지머릿 코팅은 생략된다.

전투 기록

2개 중대전차 대대 즉 512, 653 중구축전차대대(schwere Panzerjäger-Abteilung)만 장비, 1944년 9월 첫 수령했다. 약 20%가 전투 손실이었다. 대부분은 주로 기계 고장이나 연료 부족으로 승무원들이 버리고 파괴한 것이다. 주포는 분리장약, 즉 2명의 장전수가 달라붙어 탄두와 분리된 발사장약을 따로 집어넣었다. 이 결과,  발사율이 떨어졌다. 발사에 따른 엄청난 연기는 종종 나 여깄소! 하는 사태를 부르는데다승무원들의 시야도 막았다. 뭐 워낙 발사율이 떨어지니 안 보여서, 사격을 못 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 역주: 헤비 스모커 heavy smoker가 몸에 안 좋기는 사람이나 전차나 마찬가지군요 -_-; )

버려진 야크트티거

생존 차량

3량만 남았다. 영, 미, 러의 군사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메릴랜드 주 애버딘 의 미육군 군수박물관 에 전시된 야크트티거는 1944년 10월 생산이다. 653중구축전차대대 소속으로 차량 번호 331이다. 1945년 3월 독일의 노이슈타트 안 데어 바인슈트라세 에서 노획되었다.  포방패, 차체 앞 경사장갑 등에 아직도 상처가 보인다. 이 차량은 후기형 9개 톱니 식 스프로킷 휠을 장비했다. 궤도는 티거 2 방식이었다.

애버딘의 야크트티거

영국 보빙턴 전차박물관 에 전시된 야크트티거는 보기 드문 포르셰 형식이다. 차체 번호는 350004다. 1945년 4월 독일 제넬라거 근처에서 영국군이 노획했디. 왼쪽 세번째 바퀴 부분이 떨어져나갔다. 지머릿 코팅이 상부 구조물 2미터 높이까지 돼 있다. 차체 중간에 독일 육군 식별 표지인 발켄크로이츠 가 칠해졌다. 초기형의 18개 톱니 식 스프로킷을 장착했다.

보빙턴의 야크트티거. 작은 로드 휠의 포르셰 현가장치를 썼다.

모스크바 근처 쿠빙카 전차박물관 에 전시 중인 야크트티거는 헨셸 형식이다. 차량 번호 305083. 1945년 5월 5일 오스트리아, 암슈테텐에서 항복한 653 중구축전차대대 소속이다. 이 차량은 생생한 생태로 노획돼 사이드스커드도 완전하다. 후기형 9개 톱니 스프로킷을 갖췄다. 상부 포탑 측면마다 12개의 고리가 있어 6 쌍의 전차 궤도 고리를 다는데 쓰였다. 지머릿 코팅은 돼 있지 않다. 탑재 장비 중 MG-42 대공 기관총만 남아있다.

쿠빙카의 야크트티거

파생 차량


유일한 파생 차량은 Sd.Kfz.185다. 차이는 Pak 44포 대신 Pak 43포를 쓴다는 것. 이것은 44가 부족한 탓이다. 12량 정도가 생산된 거 같기도 하지만, 조준기가 모자라 완성되지 않았다. 당연히 실전 참가는 없었다.

관련 동영상

1945년 4월 16일 루어(루르)에서 고립되어서 항복한 알베르트 에른스트 와 그의 야크트티거.



의외로 기동성이 좋아보입니다.

번역 자료:
  1. http://en.wikipedia.org/wiki/Jagdtiger
  2. http://www.youtube.com/watch?v=fHp3nCkPjb4

Copyright (c) 2009, 정만국, daramzu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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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윤민혁 2009/03/28 17:26 # 답글

    영상에 나온 게 당시 중전차 기준으로도 엄청나게 느린 속도입니다. 티거1이나 티거2의 실전클립을 보면 저것보다 훨씬 빠르고 민첩하죠. 사실 독일 중전차는 속도에서 당대 보통 전차에 떨어지지 않고, 우수한 트랜스미션 때문에 선회속도 등 전투기동성은 오히려 더 좋은 편이었습니다.
    오히려 야크트티거 동영상 클립에서 무서운 건 현수장치 한 세트가 통째로 파괴된 상태의 차량도 그럭저럭 야지기동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애버딘 테스트 영상입니다. 그 과도한 중량에 현수장치마저 일부 파괴됐는데도 기동 가능하다는 건 엄청난 거죠.
  • 뽀도르 2009/03/28 22:10 #

    트랙도 넓어서 그런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게 기동하는 거로 보입니다.
  • 코코볼 2009/03/28 20:30 # 답글

    역시 덕국의 기술력은 외계에서 온것이군요. 외계인에게 너무 돈을 많이 퍼주어서 대량생산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ㅠㅠ 무서운 로얄티(웃음)
  • 뽀도르 2009/03/28 22:14 #

    저것도 모자라서 급박한 전황에서 마우스 같은 괴물전차를 개발한 걸 생각하면.... -_--;;;
    독일의 중세 기사처럼 정예 무기 위주로 나아가고,
    소련은 특유의 중간 정도 위력의 포를 장착한 전차를 대량으로 장비하는 정책으로 맞선 듯...
    질적 열세를 숫적 우위로 만회하려는 정책은 전후에도 지속되지요.
    스탈린의 Quantity is quality는 상당기간 유효했군요.
  • ghistory 2009/03/28 20:57 # 답글

    중구추전차→중구축전차?

    노이스타트 안 데어 바인슈라쎄→노이슈타트 안 데어 바인슈트라세.

    센넬라거→제넬라거.

    발케크로이츠→발켄크로이츠.

    루르: 요즘은 루어라고 더 많이 부르지요.

    고립 지대: 무슨 말인지 모르겠음.
  • 뽀도르 2009/03/28 22:06 #

    pocket
    (주위에서 고립된 이질적인) 작은 지역, 고립 지대; 【군사】 적의 점령하에 있는 고립 지대, 고립군 (軍)

    무턱대고 고립지대라 하면 알기 어려우니 다르게 표현하는 게 낫겠군요.
    감사합니다.
  • rumic71 2009/03/28 22:11 # 답글

    보빙턴 사진을 보니 찌메리트도 상당히 떨어져 나간 상태 같아 보이는군요. (처음부터 건성으로 발랐나?)
  • 뽀도르 2009/03/28 22:15 #

    과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이기지 못 한 거 아닐까요.
  • 카바론 2009/03/29 01:05 # 삭제 답글

    이글루에서 오랜만에 윤본좌의 존안을 뵈온듯 합니다.
    인사드립니다. (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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