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의 역사] 전설의 호랑이 [전차] 괴수 대 괴물

독일 기갑전력의 상징, 티거 중전차의 자료를 번역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Tiger_I를 번역하고 사진 자료를 추가했습니다.

티거 1 중전차 Tiger I Heavy Tank

티거 중전차

티거 1은 1942년말부터 1945년 항복까지 2차대전에 투입한 독일 중전차다. 이 전차 설계는 다른 장갑 차량의 토대도 되었다. 슈투름티거 중돌격포, 베르게티거 장갑회수전차 등이다. 티거 승무원의 매뉴얼 티거피벨은 전후 소장품이 됐다. 별명, 티거는 설계자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지은 것이다. 티거 1의 1은 뒤에 티거 2가 투입되면서 붙였다. 첫 제식 명칭은 6호 전차 H형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H 이었으나 1943년 3월 E형으로 바뀌었다. 장비 목록 명칭은 SdKfz 181.

설계 

티거는 설계 사상이 초기 독일 전차와 다르다. 기존 독일 전차들은 기동, 방호, 화력이 균형 잡혔지만, 때때로 적 전차에게 화력이 밀렸다.


티거는 느려도 화력과 장갑에 힘썼다. 새 중重전차 설계는 뚜렷한 생산 계획 없이 1930년대 후반 비롯했다. 티거 개발을 서두르게 한 것은 소련의 뛰어난 T-34 전차였다. 디자인과 레이아웃이 크게 봐서 4호 전차와 비슷하지만, 티거는 2배는 더 무거웠다. 엄청 두꺼운 장갑, 더 큰 주포, 이에 따른 더 많은 연료, 더 큰 엔진, 더 튼튼한 변속기와 현가 장치 덕이다. 


기존 독일 전차와 마찬가지로 수직 장갑을 채용한 티거 중전차

 

티거의 차체 앞 장갑은 100mm, 포방패는 110mm로, 당시 4호 전차의 차체 앞 80mm, 포방패 50mm와 비교된다. 옆과 뒤도 80mm두께다. 위, 아래는 25mm지만 뒤에 포탑 지붕은 40mm로 바뀐다. 장갑 판은 거의 수직이며, 서로 조립됐다. 장갑 이음매는 리벳이 아닌 용접 등으로 품질을 높였다.

어지간한 다리를 건너기에 너무 무거워 4미터 깊이를 잠수 도하하게 설계했다. 물 속에서 환기와 냉각에 비상한  방법을 요했다. 도하 전 30분 셋업으로, 포탑과 주포는 앞으로 고정, 큰 스노클(잠수용 환기 튜브)을 뒤에 세웠다.  처음 495량만 이렇게 장비했다. 후기 형은 모두 2미터 도하였다.

잠수 도하용 스노클을 부착한 초기형 티거. 실용성이 의심스러운 이 장치는 결국 생략된다.

전차 후방에 엔진 룸이 놓이고, 연료 탱크, 라디에이터, 팬이 붙었다. 가솔린 엔진은 21리터 12기통 마이바흐 HL 210 P45로 641마력이었다. 좋은 엔진이지만, 전차가 너무 무거웠다. 250번째 차량부터 690마력 HL 230 P45 (23 리터)로 올렸다. 엔진은 실린더가 60도 각도로 마주 보는 V형 엔진이다. 내장 스타터는 오른쪽에 위치, 체인 기어로 돌렸다. 엔진은 차체 상판의 햇치를 열어 끄집어 내었다.


엔진은 꽤 아래에 놓인 스프로킷( 궤도를 감아 돌리는 톱니 바퀴 )을 돌렸다. 7톤의 포탑은 엔진에서 동력을 얻는 유압 모터로 돌렸다. 360도 회전에 약 1분. 현가 장치는 16개의 토션 바를 사용, 공간을 아끼도록 설계했다. 바퀴는 지름 80센치로, 얇은 바퀴가 서로 교차됐다. 안쪽 바퀴의 고무 타이어를 바꾸려면, 바깥쪽 바퀴 여러 개를 떼어내야 했다. 바퀴 사이에 진흙, 눈이 들어가 못 움직이기도 했다. 결국 후기형은 티거 2의 바퀴를 닮은 새 철제 바퀴로 갈았다.


궤도는 전례없이 넓은 725mm다. 철도 수송 시에는 넓은 궤도 대신 좁은 철도 수송 용 궤도로 갈았다. 숙련 인원들은 궤도 교환에 20분 걸렸다.


철도 수송용 좁은 트랙을 끼운 후기형 티거. 부품 호환을 위해 로드 휠이 티거2와 같아졌다.


내부 배치는 독일 전차의 틀을 따랐다. 앞은 개방된 승무원 공간으로, 운전병과 무전병이 기어박스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그 뒤에 포탑 마루가, 위가 평면인 패널로 둘려 쌓였다. 탄약은 대부분 이 궤도 위의 공간에 놓여 장전하기 쉬웠다. 포탑에서 두명이 착석했다. 사수는 포 좌측에, 전차장은 그 뒤에. 사수는 접이식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포탑 마루는 완전한 원이고, 헤드룸은 157cm였다.


주포의 포미와 사격 기구는 이름난 88mm 대공포에서 따왔다. 티거의 56구경 KwK 36포는 티거 2의 71구경 88mm KwK 43포와 함께, 대전 중 가장 뛰어나고 무서운 전차포의 하나다. 탄도는 거의 직선이고 Zeiss Turmzielfernrohr TZF 9b 조준경( 뒤에 단안식 TZF 9c으로 바꿈 )은 아주 정밀했다. 대부분의 교전이 더 가까이서 벌어졌지만, 티거는 1마일(1,600미터)를 넘는 거리에서 적 전차를 때려잡는다고 알려졌다.

변속기는 유압 제어식 자동 변속 기어박스와 반자동식 변속기였다. 엄청난 무게는 새 조향 시스템이 있어야 했다. 가벼운 전차의 클러치-브레이크 방식 대신 영국의 메리트-브라운 단일 반경 시스템의 변형으로 이중 반경 시스템이었다. 이중 반경 시스템으로, 각각의 기어로 고정 반경을 돌 수 있었다. 1단 기어에서 최소 반경은 4미터였다. 8단 기어박스를 쓰므로, 16개의 다른 회전 반경이 가능했다. 더 작은 반경으로 돌려면, 브레이크를 썼다. 이 조향 시스템은 사용이 쉽고, 시대를 앞선 것이다. 그러나 자동화 기능은 아직도 많이 모자랐다. 

가동 불능에 빠진 티거를 견인할 때, 엔진은 종종 과열되고, 때때로 엔진이 망가지거나 불 붙어서 , 티거를 티거로 견인하는 걸 금했다. 낮게 장착된 스프로킷은 장애물 높이를 제한했다. 궤도는 스프로킷에서 벗겨지기 쉬워, 이 경우 움직이지 못했다. 궤도가 벗겨지고, 못 움직이면 보통 2량의 티거로 견인해야 했다. 벗겨진 궤도도 큰 골치거린데, 너무 장력이 강해서, 궤도 고정 핀을 빼서 해체하지 못했다. 때때로 폭발 무기에 간단히 떨어져 나가곤 했다. 독일의 흔한 파모 Famo 회수 트랙터 1량으로 티거를 끌지 못해, 3량을 썼다.

급하면 할 수 없다. 티거를 견인하는 티거.


티거가 대전 중 최고 중화력, 중장갑 전차에 들어가고, 연합군 전차의 무서운 적수였지만, 설계는 보수적이고 몇몇 큰 결점이 있었다. 수직 장갑은, T-34의 경사 장갑과 견주면, 같은 방호력을 얻으려면, 훨씬 더 두껍고 무거워야 했다. 너무 무거우니 현가 장치가 큰 스트레스를 받고, 유지가 어려웠다. 정교한 변속 시스템도 망가지기 쉬웠다.


티거의 주 문제는 매우 높은 생산 비용이었다. 대전 동안, 미 셔먼 전차가 40,000 량 이상, 소련 T-34가 58,000 량 이상 만들어진 반면, 티거는 1,355량에 그쳤다. 독일 설계는 시간, 자재, 돈을 잡아먹었다. 티거 1의 생산 비용은 당시 4호 전차의 2배, 3호 돌격포의 4배를 넘었다. 

티거에 가장 가까운 맞수는 미군 M26 퍼싱 중전차( 대전 중 약 200량 배치 ), 소련 IS-2(대전 중 약 3,800량 생산) 중전차다.

개발사

육군 병기국이 30톤 범위의 돌파 차량 Durchbruchwagen  의 개발을 요구하자, 1937년 1월 헨셀 사는 훗날 티거 1이 될, 시험 차량의 개발에 나선다. 1량의 동체만 시험 개발되고, 포탑은 장비되지 않았다. 1호 돌파차량의 전체 형상과 현가 장치는 3호 전차를 크게 닮았고, 포탑은 4호 전차 C형을 많이 닮았다. 주포는 단포신 24구경 75미리 캐넌포였다.  1호 돌파차량이 마무리되기 전에 병기국은 30 톤 이상의 중장갑 차량을 요구한다. 

2호 돌파차량은 앞 장갑이 50미리에 달하고, 포탑에 24구경 단포신 75미리 포를 장비했다. 전체 중량이 36톤에 이를 것이었다. 역시 차체만 1량 만들어지고 포탑은 달지 않았다. 더 뛰어난 VK3001(H)과 VK3601(H)  설계 안을 선호하여, 1938년 가을 프로젝트는 취소된다.

티거의 조상 VK 3001 시제 차량. 포탑은 결국 탑재되지 않았다.

1938년 9월 9일 헨셀 사는 VK3001(H) 중中형 전차와 VK3601(H) 중重전차 개발의 지속을 승인받는다. 두 차량 모두, 기존 독일 반궤도 차량에 쓰인 삽입식 로드 휠을 썼다. VK3001 차량은 24 구경 75미리 보병 지원용 저속 포, 40 구경 75미리 다목적 대전차포나 28구경 105밀리 포를 크룹 사의 포탑에 탑재하려 했다. 전체 중량으 33톤으로 앞 장갑은 50 미리, 옆은 30미리 두였다. 4량의 시제 차량만 생산, 테스트 받았다.

포르셰 VK3001 레오파르트 시험 제작 차량

VK3601(H)는 40톤 예정으로, 앞 장갑 100미리, 포탑과 차체 옆은 60미리였다. 75 mm L/24포, 75 mm L/43포,  75 mm L/70포, 128 mm L/28포 중에 하나를, 4호 전차 포탑을 키운 듯한 크룹 사의 포탑에 달려 했다. 1량을 먼저 만들고  뒤에 5량을  더 했다.포탑은 한번도 장착되지 않고 나중에 대서양 방벽에 고정 포탑으로 쓰였다. 1942년 초 VK4501을 선호해, 프로젝트는 취소된다.

프랑스 소뮈르 기병전차, 샤르 B1 중전차, 영국 마틸다 1, 2 보병전차와 붙은, 프랑스 전투의 경험으로, 독일 기갑군은 더 센 무장과 더 나은 장갑의 전차를 바랐다. 독일의 우세한 전술 덕에 우세한 적 기갑 부대를 이긴 것을 독일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1941년 3월 26일 군수 장비 모임에서 헨셀 사와 포르셰 사는 45톤 정도의 중전차를 1942년 7월까지 개발 완료하도록 요청 받는다. 포르셰는 그들의 VK3001(P) 차량의 업그레이드 차량을 내놓으려 했고, 헨셀은 VK3601(H) 차량을 고쳐 써보려 했다. 헨셀은 2량의 원형을 만들었다. VK4501(H) H1은 56구경 88미리 캐넌포를, VK4501(H) H2는 70구경 75미리 포를 탑재했다. 판터와 달리, 이들 설계는 T-34의 혁신에 눈감았다. 경사 장갑의 잇점 대신 두껍고 무거운 수직 장갑을 되풀이했다.


78mm 중잡갑의 마틸다 2 보병전차. 격파 수단은 88mm 대공포의 직사뿐이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은 소련 침공인 바르바로사 작전에 나선다. 독일군의 어떤 야전 장비도 뛰어넘는 소련 장비에 독일군은 크게 놀란다. T-34 중형전차와 KV-1 중전차가 그것이다.  T-34는 46구경 75미리 PAK 40 대전차포나 88미리 대공포를 빼고 무적이었다. 3호 전차의 60구경 50미리 포나 50미리 Pak 38 대전차포는 T-34의 측면을 아주 가까이에서야 뚫을 수 있었다. KV-1은 88 mm FLAK 18/36 없이 막을 수 없었다.


T-34의 등장은 큰 쇼크였다. 헨셀 사의 설계자 에르빈 아데어스는 "독일 지상군의 어떤 장비보다 좋다는 게 드러나자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라고 했다. 즉시 45톤으로 늘리고 88미리 포 장비를 명했다. 첫 원형 차량은 히틀러의 생일, 1942년 4월 20일까지 완성토록 했다.


포르셰, 헨셀 양 사는 원형 차량을 내놓고 히틀러가 지켜보는 가운데 라스테부르크에서 경쟁했다. 헨셀 안이 두루 앞섰는데, 포르셰 안은 골치 아픈 가솔린-전기 동력장치, 전략 물자인 구리의 지나친 사용 탓이 컸다. 6호 전차는 1942년 8월에 생산에 들어간다. 포르셰는 승인을 기대하고, 100량의 차체를 미리 만들었다. 계약을 따지 못한 이들 섀시는, 신형 중구축전차를 만드는데 전용된다. 1943년 봄 91개의 차체가 개조돼, Tiger(P) 구축전차, 또는 페르디난트로도 알려지고, 뒤에 엘레판트로 알려지게 된 구축전차에 쓰인다.


경쟁에서 밀린 포르셰 티거. 차체는 중구축전차로 거듭난다.


엘레판트 중구축전차


실전 배치 시기에도 티거는 본질적으로 아직 시험 제작 차량 수준이어서, 크고 작은 개량이 생산 기간 동안 이어진다. 더 낮고 안전한 큐폴라를 장비한, 다시 설계한 포탑이 가장 주요한 변화다. 비용을 낮추고자, 수중 도하 장치와 외부 공기 여과 시스템은 생략된다.


티거 첫 생산 차량. 양산 선행 차량 V1


초기형 티거

생산 기록

1942년 8월 시작, 1944년 8월까지 1,355량을 만든다. 매월 25량으로 시작, 1944년 4월 104량이 가장 많았다. 전투력은 1944년 7월 1일이 671량으로 최고다. 일반적으로, 4호 전차보다 생산 시간이 2배였다. 


티거 생산 라인. 티거의 생산 비용은 3호 돌격포의 4배에 달했다.

 

전투 기록

 티거는 2,000미터 이상 거리에서 미국 셔먼이나 영국 처칠 4호 전차를 때려잡을 수 있었다. 반대로 소련 T-34의 76.2미리 포는 어떤 거리에서도 티거의 앞면을 뚫을 수 없었지만, 옆면은 500미터 이내에서 BR-350P APCR 탄으로 관통 가능했다. T-34-85의 85미리포는 대략 1,000미터 거리에서 티거의 옆구리를 구멍 낼 수 있었다. IS-2 중전차의 122미리 포는 1,000미터 이상에서 티거의 앞면을 부술 수 있었다. 


쿠르스크의 티거 중전차


공격 각도 30도부터 셔먼의 75 미리 포는 어떤 거리에서도 티거 앞면을 격파 불가능, 100미터로 근접해야 80미리의 차체 옆면을 꿰뚫을 수 있었다. 셔먼 파이어플라이의 영국제 17 파운도 포는 보통의 APCBC탄을 쏘면, 1,000미터 이상에서 앞을 뚫을 수 있었다. 셔먼의 76미리 포는 APCBC M62탄으로, 500미터 정도에서 티거의 앞 부분을 관통 가능하고, 1,000미터 이상에선 차체 상부 구조물을 뚫을 수 있었다. HVAP 탄은, 늘 공급 부족이고 주로 구축 전차에 지급된 탄으로, 1,500미터 거리에서 전방 관통이 됐다.


앞에 언급된 장거리 관통은 실전에서 잘 일어나지 않았는데, 특히 서부전선의 경우 전력의 분산 위험과 인력의 오류 가능성 증대를 우려, 1키로 이상 장거리 전투가 드물었다. 이런 우려는, 포의 능력과 무관하게, 전투 거리가 길수록 클 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17 파운드 포는 실험에서 티거 전방의 1킬로미터 관통이 가능하지만, 실전에선, 묘기나 다름 없는 장거리 사격이 가능한 좋은 위치를 찾기가 불가능하기 일쑤였다. 실전에서 더 가까이서 싸우기 마련이라, 관통 가능한 장갑은 늘어났다. ( HEAT탄은 예외지만, 대전 중 사용이 드물었다 )


티거 주포의 큰 관통력은, 적 전차가 맞설 수 없는 거리에서 많은 적 전차를 깨뜨릴 수 있었다.  탁 트인 곳에서 주요한 전술 상 이점이 되었다. 적 전차는 종종 하는 수 없이 티거의 측면을 노려야 했다.


쿠르스크에서 T-34의 76.2 미리포에 관통 당한 티거의 포탑 측면


티거는 1942년 9월 레닌그라드 근처에서 첫 실전을 겪었다. 히틀러가 볶아대서, 예정보다 몇달 일찍 전투에 나섰는데, 많은 초기 모델은 기계 고장이 잦았다. 1942년 9월 23일 첫 전투에서 많은 티거가 고장으로 주저 앉았다. 나머지는 엄폐호의 대전차포에 나가 떨어졌다. 1량은 꽤 멀쩡한 채 노획되어, 소련군이 살펴보고 대응책을 찾았다. 


티거는 북 아프리카 데뷔에서 넓게 탁 트인 지형에서 적 전차대를 유린했다. 그러나 기계 고장으로 일부만 싸웠다. 레닌그라드처럼, 최소 1량이 영국의 6파운드 대전차 견인포에 격파됐다.


전망이 트인 러시아 초원에서 티거의 장거리 격파 능력이 특히 빛을 발했다.


티거는 엄청나게 무거워, 아무 다리나 못건너고, 지나다가 지하실이 무너질 우려가 있었다. 유압식 포탑이 느리게 회전하는 것도 문제였다. 포탑은 인력으로 돌릴 수도 있었지만, 각도 보정이 아니라면 드물었다. 


티거 초기형은 좋은 지형에서 최고 시속 45킬로미터 정도였다. 이런 속도는 일반 작전에서 꺼렸고, 훈련에서 금지됐다. 3,000 rpm에서 발생하는 마이바흐 엔진 초기형의 신뢰성 문제로, 2,600 rpm을 넘기지 못하게 주의 받았다. 이 문제를 풀고자, 마이바흐 HL230 엔진을 2,600 rpm으로 제한하는 조속기( 속도 조절기, governor )를 달아 최고 시속 38 킬로미터 정도로 억제했다.


중형 전차보다 느렸지만, T-34나 셔먼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무게에서 그 정도 속도는 괜찮았다. 티거는 서비스 기간 내내 신뢰성 문제에 시달렸다. 티거 부대는 고장으로 전투력 저하가 잦았다. 고장으로 전차를 잃지 않고 티거 부대가 행군을 끝내기 힘들었다. 행동 반경도 짧았다. 궤도가 매우 넓어서, T-34를 뺀 웬만한 소형 전차보다 접지압이 낮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유사한 외모 덕 좀 봤다는 4호 전차 H형


티거의 중장갑과 중화력은 모든 적 전차가 두려워했다. 전술적 방어에서, 낮은 기동력은 덜 문제였다. 판터가 연합군 전차를 더 위협했지만, 티거는 '티거 공포증 Tiger phobia'라는 심리 효과가 컸다. 연합군 전차들은 티거만 보면 달아나기 일쑤였는데, 비슷한 꼴의, 포탑 스커트를 두른 4호 전차를 보고 달아나기도 했다. 노르망디 작전에서, 티거 1대를 잡으러 측면이나 후방을 노리는 기동 중에 4 ~ 5대의 셔먼이 격파되곤 했다. 소련 T-34도 비슷했는데, 대전 초기 소련군 중전차와 싸운 3호 전차도 그랬다. 승인된 연합군 전술의 하나가, 떼를 지어 티거와 붙는 것으로, 1량이 티거의 주의를 끄는 동안, 나머지가 뒤통수나 옆구리를 노렸다.  탄약과 연료가 집중된 탓에 옆구리가 터지면 티거가 끝장나곤 했다. 티거 1량을 잡기 위해 전술 숙련이 크게 필요했다.


옆면이 관통된 티거


티거는 집단군 직속 독립 중전차 대대에 배치됐다. 이들 대대는 결정적 전투 구역에 전개돼, 돌파나, 더 흔하게는, 반격에 쓰였다. 몇몇 정예 사단, 예를 들어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이나 적은 수의 무장 친위대 사단만이 한줌의 티거를 수령했다. 티거는 원래 공세적 돌격 무기로 기획됐으나, 당시 전황이 극적으로 바뀌어,  기동 포병 대대처럼 방어에 주로 쓰였다.


불행히도, 이것은 티거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게 해서, 기계 고장이 빈발했다. 그 결과, 티거 대대가 완전 편제로 교전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소련과 서방 연합군의 대량 생산 앞에 티거의 10:1의 적 전차 파괴 비율도 충분치 않았다. 일부 티거 부대는 10:1도 넘어,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 13 중전차 대대는 16.67:1, 제103 SS전차대대 12.82:1, 제 502 중전차대대 13.08:1 등이었다. 이들 숫자는 값비싼 티거 생산의 기회비용으로 봐야 한다. 티거 1량은 3호 돌격포보다 4배의 비용이 들었다.


1943년 7월, 제1 SS '아돌프 히틀러' 사단, 13 중대, 2소대 소속 프란츠 스타우데거의 티거 1량이, Psyolknee ( 쿠르스크 전투 당시 독일 남쪽 돌출부)에서 약 50량의 T-34 무리와 교전했다. 탄약을 모두 써버린 끝에 22량을 파괴했다. 나머지 T-34는 후퇴했다. 이에, 스타우데거는 기사십자훈장을 받았다.


1944년 8월 8일 제 102 SS 중전차대대, 1중대 소속 빌 파이 Will Fey 의 티거 1량이 영국 전차 행렬을 맞아, 15량 중 14량의 셔먼을 깨부수고, 그날 늦게 마지막 2발을 쏘아 1량을 더 격파했다. 파이는 제 23 경기병 연대 소속 셔먼들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부대의 공식 기록 어디에도 그런 손실이 쓰여 있지 않다.


사실, 그 연대는, 파이가 주장한 다른 2개의 날짜 중 1개의 날짜에만 매우 제한된 활동을 했다. 파이는 그의 영문 서적 '무장 친위대 기갑 전투사'에서 그 날이 8월 7이라 했지만, 원래의 독일어 기록엔 8월 8일로 썼다. 제 102 중전차대대는 노르망디 전투 중에 모든 티거를 잃은 반면, 227량의 연합군 전차를 6주 동안 격파했다 주장한다.


제 101 SS 중전차대대의 미하일 비트만은, 여러가지 차량을 몰며 복무하다 그 당시 티거의 전차장이었다. 빌레 보카쥬 전투에서 몇량의 전차를 비롯 24 량 이상의 연합군 차량을 파괴, 제 7 기갑 사단을 혼자 저지했다. 결국, 그의 티거가 격파되자 버리고 후퇴했다. 그 뒤의 전투에서 셔먼 파이어플라이가 미하일 비트만의 티거를 잡아, 그 폭발로 비트만도 전사한다.


10명 이상의 티거 전차장이 100량 이상 파괴 기록을 갖고 있다. 쿠르트 크니스펠 168량, 오토 카리우스 150량 이상, 요하네스 뵐터 139량 이상, 미하일 비트만 138량 등이다.


1943년 노획 티거 - Tiger 131


튀니지에서 노획된 티거, 1943년

1943년 4월 21일 독일 제504  중전차 대대의 포탑 넘버 131 티거가 튀니지의 제벨 자파 Djebel Djaffa 언덕에서 노획됐다. 영국 48 전차 연대의 처칠 전차가 몇발을 맞혀 티거 포탑의 회전이 고장나고, 전차장이 다치고 승무원들은 탈출했다. 이 티거는 수리 후 튀니지에서 전시 후, 영국으로 보내져 조사를 샅샅이 받았다. 그러나, 새로 맞닥뜨린 독일 전차가 연합군 전차보다 월등하다는 평가를 하고도, 별 다른 대비책을 마련치 않았다. 티거는 비교적 적게 만들 거라는 바른 짐작도 한몫 했다. 전차 대 전차 전투는 구축 전차에 맡기라는 미군 교리도 거들었다. 


이에 비해, 노련한 영국은 독일 장갑 차량의 수와 화력이 1940년 이래 점점 늘어나는 걸 살피고 더 센 대전차포가 있어야 한다고 내다봤다. 1940년 느즈막에 개발에 나선 17 파운드포 100문을 서둘러 북 아프리카에 깔아, 티거의 위협에 맞섰다. 너무 서둘른 탓에, 알맞은 운반 차량이 개발되기 전이라, 급한대로 25 파운드 캐논-곡사포 운반 차량에 장착했다.


17 파운드포 탑재 순항전차의 실전 배치도 서둘렀다. A30 챌린저는 한해 전인 1942년에 이미 원형 차량 단계였지만, 방호가 모자라고 신뢰성이 낮은데다, 야전에는 적은 수만 배치됐다. 17파운드포 탑재 셔먼, 즉 셔먼 파이어플라이는  임시변통인데도, 티거를 잘 잡았다. 어느 전투에서 파이어플라이 1량이 티거 3량을 잡았다.  전쟁 중 2,000 량 이상이 생산됐다. 17파운드포를 갖춘, 6 종류의 영국 전차와 구축전차가 투입될 것이었다.


임시변통이지만 나름 효과를 봤던 셔먼 파이어플라이


1951년 9월 25일 이 노획된 티거는 보빙턴 전차 박물관으로 공식 이관됐다. 1990년 주행 가능하게 복원 준비에 나섰다. 2003년 12월, 영국 육군 기초 수리 기구(ABRO)에서 광범위한 복원 작업을 마친 티거 131은 완전 가동 상태의 엔진을 달고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소련의 대응 

티거는, 당시 독일의 더 가벼운 전차를 상대로 성공을 거둔 T-34 중형전차뿐 아니라 소련 중전차 KV-1에도 대응된다. 

첫 생산된 티거는 1942년 12월 동부전선에 보내져, 1량이 1943년 1월 노획돼 소련이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쓰였다. 그전에, 소련은 생산량에 집중했다.  생산을 늦추는 품질 개선은 무시됐다. 소련은 몇가지 대응을 내놨다. 152미리 자주포를 서둘러 만들었다. 생각 밖으로, SU-152는 티거를 보기 전부터 계획한 것이다. 당시 강력한 독일군을 때릴 기동성 있는 중포가 절실했다. 


이들 중돌격포는, 커다란 고폭탄을 가파른 각도로 쏘아 적 전차를 산산조각낼 수 있었다. 그러나 포탄이 크고 무거워 재장전이 느렸다(SU-152, 1분에 2발). SU-152는 야전 시험 25일만에, 완전 편제를 갖추지 못한 1개 연대를, 서둘러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 12량의 SU-152가 12량의 티거와 7량의 페르디난트를 격파했다. ( 이 소련의 전시 기록은 의심스러운데, 당시 독일 기록은 1량의 페르디난트만 SU-152에 잃었다 한다. 또한, 엘레판트를 장비한 티거 부대는 쿠르스크 전투에서 모든 사유를 합쳐 5량만 잃었다는 기록이다.) 

소련의 값싼(?) 해결책. SU-100

1943년 후반 무렵, 붉은 군대의 첫 전문 구축전차 SU-85가 생산에 들어갔다. 강력한 85미리포를 서둘러 야전에 투입하려는 것이었다. 대전 중 최고의 장갑관통력을 가진 포 중 하나를 장비한 SU-100의 생산도 1944년에 비롯됐다. 1943년 후반, 성능이 떨어지는 KV-1 전차 때문에 거의 취소할 뻔했던 소련 중전차 계획도 재개된다. 그 결과, 122미리포 탑재 이오시프 스탈린 전차가 1944년 초 일선에 투입된다. 끝으로, 85미리포를 신형의 3인용 포탑에 장비한 T-34-85가 1944년 초에 등장했다.


사용 탄약

  • PzGr.39 (가모부피모철갑탄 Armour Piercing Capped Ballistic Cap)
  • PzGr.40 (강성핵철갑탄 Armour Piercing Composite Rigid)
  • Hl. Gr.39 (성형작약탄, 대전차유탄, 대전차고폭탄 High Explosive Anti-Tank)
  • Sch Sprgr. Patr. L/4.5 (소이유산탄 Incendiary Shrapnel)

생존 차량


1량의 티거는 주행 가능 상태로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나머지 5량의 잔존 차량은 다음과 같다.




생산량에 비해, 극소수의 티거만 전쟁과 전후 폐기 처리에서 살아남았다. 많은 큰 부품들은 건졌지만, 1량이라도 완전한 차체의 발견은 매니아와 수집가의 손을 비껴나갔다.


튀니지에서 노획돼 보빙턴에 전시된 티거 131


제원

티거 E형

1943년 시칠리아의 티거
유형
중전차 Heavy tank
개발 국가나치 독일
운용 역사
운용1942–1945
참전
2차대전
생산 역사
설계 회사
Henschel & Son
설계 연도
1942
제조 회사
Henschel
생산 비용
250,800 RM
생산 기간
1942–1944
생산 수량
1,355[1]
Specifications
무게56.9 tonne 내지 62.72 ton
길이
8.45 m (포신 포함)
너비3.55 m
높이3.0 m 
승무원5

장갑25–110 mm 
주 무장 8.8 cm KwK 36 L/56
92 발
보조 무장 7.92 mm Maschinengewehr 34
4,800 발
엔진
Maybach HL230 P45 (V-12 가솔린l)
700 PS (690.4 hp, 514.8 kW)
동력 중량 비12.3 PS/tonne
현가 장치
토션 바
작전 거리110–195 km 
속도38 km/h


기타

  1. 1,350량 생산설이 일반적이지만, 1,355량, 1,347량, 1,500량 생산설도 있다.
  2. 기록에 따르면, 일본이 연구 용으로 몇량의 독일전차를 1943년 구매했다. 3호 전차 2량, 판터 1량과 함께 티거 1량도 분명히 구명했지만, 3호 전차만 실제로 전해졌다. 수송이 좌절된 티거 1량은 일본 정부가 빌려주어, SS101 중전차대대 3중대에서 사용했다.

2차대전의 한을 풀려고 만든 듯한 일본 자위대 90식 전차. 많이 닮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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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애프터스쿨 2009/03/23 00:13 # 답글

    여,역시 포,폭풍간지 티거!! 하악+_+!! 독일 레오파르트 전차까지... 정말 독일 전차는 멋지다능..ㅠㅠ
  • 뽀도르 2009/03/23 00:27 #

    뽀대는 티거를 따라올 전차가 없지요. 거기에 이름마저 호랑이...

  • rumic71 2009/03/23 00:15 # 답글

    90식 전차는 레오파르트2 랑 닮았지요. 그런데 "티거는 일본 정부가 독일 육군에 대여해줬다." 는 무슨 의미입니까?
  • 뽀도르 2009/03/23 00:26 #

    레오파르트와 더 닮은 건 사실이죠. 그래도 각이 진 수직 장갑 때문에 티거도 닮아서 이제 일본 자위대가 독일군이 됐다는 허풍도 있었지요.

    당시 전황으로 수송 수단은 잠수함인데, 아무래도 너무 무거워서 수송도 곤란할테고, 당장 독일도 1대의 티거도 아쉬운 판이니 일본이 선심 쓰듯이 독일에게 빌려줬다는...

  • 엘레시엘 2009/03/23 00:41 # 답글

    티거를 일본측에서 구입하기는 했는데, 그걸 수송할 방도가 없으니 독일 육군이 일본에게서 대여하는 형식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 뽀도르 2009/03/23 09:33 #

    그렇지요.
  • 코코볼 2009/03/23 00:51 # 답글

    이... 이것이 최고지요...미하일 비트만 이야기를 좀더 실어주셨으면 재밌었을텐데..얼마전에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본기억이 나네요.
  • 뽀도르 2009/03/23 09:40 #

    넵, 다음에 보충하겠습니다.
  • ghistory 2009/03/23 00:52 # 답글

    슈툼티거→슈투름티거?

    슈노켈→스노켈(영어가 국내에서 통용)?

    라이에이터→래디에이터?

    판넬→패널.

    소무아→소뮈르.

  • 뽀도르 2009/03/23 10:42 #

    찾아보니 일반적인 외래어 표기가 스노클이네요. 잠수용 환기 장치 정도로 부가 설명을 괄호에 넣어줘야겠군요.
    판넬, 소무아, 슈노켈은 일본식 표기군요 -_-;

  • 우마왕 2009/04/20 14:08 #

    슈툼 티거가 맞습니다. r이 반드시 ㄹ로 발음되는 건 아니죠.
  • ghistory 2009/03/23 00:55 # 답글

    포르쎄→포르셰?

    데뷰→데뷔.

    돌추부→돌출부.

    프란트 스타우데거→프란츠 슈타우데거.

    Franz Staudegger 참조.
  • 뽀도르 2009/03/23 10:56 #

    감사합니다.
  • ghistory 2009/03/23 01:02 # 답글

    빌리 페이→빌리 파이?

    Djebel Djaffa: 제벨 자파.

    Saumur: 소뮈르.

    Musée des Blindés: '기갑박물관' 정도 됩니다.

    Vimoutiers: 비무티에.

    헨셀→헨셸.

    Lenino-Snegiri: 레니노-스네기리?
  • 뽀도르 2009/03/23 11:06 #

    늘 감사합니다 ^_^)
  • 우마왕 2009/04/18 18:16 #

    Willi Fey가 아니라 Will Fey(빌 페이)가 맞습니다
  • ghistory 2009/04/18 18:30 #

    우마왕/ 도이치어 사용자라면 파이일 텐데요. 아닙니까?
  • 뽀도르 2009/04/20 10:52 #

    [구글 검색]
    will fey panzer 11-20결과 / 21,800개 / 0.23초
    willi fey panzer 11-20결과 / 5,660개 / 0.10초

    [독일어 발음]
    복모음 ei, ai, ey, ay = 아이 / ie = 이(이에) / eu, äu = 오이

    검색하니 '빌 파이'가 확률이 더 높군요.
  • 우마왕 2009/04/20 14:12 #

    ghistory// ey와 ei가 발음까지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지요.
  • 우마왕 2009/04/20 15:53 #

    뽀도르 // 사실 이 경우 구글검색이 별 의미가 없어요. 물론 Will Fey를 Willi Fey라고 표기할 수는 있습니다. 가령 그의 애칭이 Willi라는 경우는 있습니다만 세월의 흐름에 따른 기억의 오류나 넷상에 글을 쳐올린 사람의 실수등으로 만들어진 오타일 경우도 있습니다. 인터넷은 분명 정보의 바다일지언정 그 정확도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요. 집단지성의 힘이란 것도 결국 어디엔가 있는 텍스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지요.

    더욱이 Will Fey는 바펜SS 당시의 전투경험을 바탕으로 Panzer im Brennpunkt der Fronten‎, Panzerkampf im Bild: Panzerkommandanten berichten‎, Stählerne Kolosse 1944/45 Der Kampfweg einer "Tiger"-Einheit 등의 회고록과 저작을 남긴 나름 유명한 양반이고 출판물에 Will Fey라는 이름을 썼다는 점에서 Willi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공신력을 가졌다 봐야 할 겁니다

  • ghistory 2009/04/20 17:08 #

    이 경우에 역시 가장 정확한 방법은 본인이 어떻게 자칭하느냐일 것입니다.
  • 뽀도르 2009/04/20 17:16 #

    Will Fey로 고치겠습니다.
  • 윤민혁 2009/03/23 12:33 # 답글

    일본이 독일에 임대한 티거는 독일 국방군이 아니라 SS에 임대, SS101 중전차대대 3중대에서 사용됐습니다. 101대대 편성기간이 좀 길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시점에 지급됐죠.
  • 뽀도르 2009/03/23 14:15 #

    그렇군요. 독일 정규 육군이 아닌 무장친위대에 빌려주었군요. SS는 왠지 이란의 혁명수비대 같은 느낌이군요. 정정하겠습니다.
  • JOSH 2009/03/23 13:07 # 답글

    아... 카이요도 WTM 과 드래곤의 티이거가 주행부 휠 박힌 구조가 달라서 왜그런가 했더니
    이 포스팅의 사진을 보니 이렇게 차이가 있었군요.

    http://homepage2.nifty.com/bontaro/AFV00591.JPG
    http://www.dragonmodelsusa.com/dmlusa/propics/DIR_CAN/l/l_CAN20163.jpg
  • 뽀도르 2009/03/23 14:21 #

    스프로킷 휠 바로 뒤의 로드 휠이 초기형은 튀어나와 있고 후기형은 안으로 들어가 있지요.
    바퀴 하나하나를 보면 초기형은 매끈한데다 테두기가 고무로 돼 있고, 후기형은 주름진 철제 바퀴.
  • 우마왕 2009/04/18 18:25 # 답글

    1. 티거는 느려도 화력과 장갑에 힘썼다. <-- 원문과 달리 티거는 느린 전차가 아닙니다. 비교대상이 판터니 T34라면 몰라도 3호 5cm 또는 4호, (HVSS를 장착한 것을 제외하면) 셔먼과는 도로상 속도에서 큰 차이가 없고 야지에선 오히려 나은 면도 있었습니다.

    2. 철도 수송용 좁은 트랙을 끼운 후기형 티거. 로드 휠이 티거2와 비슷하다. <-- 비슷한 것이 아니라 휠 자체는 동형입니다. 허브캡과 장착방식이 틀릴 뿐이지요.

    3. Zeiss Turmzielfernrohr TZF 9b <-- 자이스사의 포탑조준경 TZF 9b 정도쯤 되겠군요.

    4. 수직 장갑은, T-34의 경사 장갑과 견주면, 같은 방호력을 얻으려면, 훨씬 더 두껍고 무거워야 했다. <-- 이건 영문 위키를 쓴 사람이 개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썼군요. 같은 방어력을 얻기 위해선 작은 피탄경사를 갖는 쪽이 더 두꺼운 철판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경사장갑이라도 무게와 피탄면적의 문제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 뽀도르 2009/04/20 10:45 #

    하긴 티거가 썩 느린 건 아니군요.
    경사 장갑이 무조건 좋지는 않겠네요. 내부 공간 문제도 있고... 레오파르트 2 초기형이나 일본의 신형 전차가 수직 장갑인 게 생각나네요.
  • 우마왕 2009/04/20 13:26 # 답글

    수직장갑... 물론 물리학적 시각으로 볼 때 이론적으로는 수직경사에 비해 방어력 면에서 불리하긴 한데 실제 착탄시 일어나는 관통 메커니즘을 볼 때 피탄각도보다 두께가 관통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팩터가 됩니다. 덤으로 착탄시 경사는 반드시 수직경사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수평 경사도 훌륭한 경사랄까..

    결국 경사장갑의 요건은 경사가 가져오는 데드웨이트와 데드스페이스를 감안하더라도 거기서 얻는 착시방어효과를 노리느냐 데드웨이트와 데드스페이스를 줄이느냐...의 요소들 사이에서 태어나는게지요.
  • 뽀도르 2009/04/20 14:11 #

    집에 전차 설계에 대한 오래된 책이 있는데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 우마왕 2009/04/20 15:55 # 답글

    철도 수송용 좁은 트랙을 끼운 후기형 티거. 로드 휠이 티거2와 비슷하다 <-- 비슷한 게 아니라 동형 휠입니다. 단지 티거 I의 로드휠 접합부가 티거 II와 다를 뿐입니다.
  • 뽀도르 2009/04/20 17:15 #

    음... 동일하다고 수정해야겠군요.
  • 흠? 2010/06/18 13:48 # 삭제 답글

    경사 장갑을 단순히 생각하면 수직장갑보다 두께가 늘어나는거 아닌가?
    경사로 인해 피탄각도가 낮으면 뚫고 들어가는 두께가 늘어나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 뽀도르 2010/06/18 14:52 #

    그렇지요. 거기다 약간의 미끄럼 효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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