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홍랑과 최경창 역사 잡설

옛 기생들의 그리움의 詩

선조 10권, 9년(1576 병자 / 명 만력(萬曆) 4년) 5월 2일(갑오) 2번째기사
사헌부가 전적 최경창이 관비를 데리고 산다고 파직을 청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전적 최경창(崔慶昌)은 식견이 있는 문관으로서 몸가짐을 삼가지 않아 북방(北方)의 관비(官婢)를 몹시 사랑한 나머지 불시(不時)에 데리고 와서 버젓이 데리고 사니 이는 너무도 기탄없는 것입니다. 파직을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여기서 북방의 관비가 홍랑이죠. 홍랑이 그리워 하며 지은 시조가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손대

자시는 창 밖에 심거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닙 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현대어 역은 이렇네요

묏버들 가려 꺽어 보내노라, 임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줄 여기소서

최경창은 이를 한역하여 서로 나눠 가졌답니다
(한글 번역은 제 맘대로 -_-;)
 
  折楊柳寄與千里人 절류양기여천리인 / 버드나무 가지 꺾어 천리 머나먼 사람에게 주나니
  爲我試向庭前種     위아시향정전종    / 저를 생각해 집 앞에 심어 두소서
  須知一夜新生葉     수지일야신생엽    / 한밤중에 새 잎이 난 걸 아시거든
  憔悴愁眉是妾身     초췌수미시첩신    / 수심에 찬 소첩인 줄 아소서

 
최경창이 객사한 이야기도 실록에 보입니다.

선조 17권, 16년(1583 계미 / 명 만력(萬曆) 11년) 3월 16일(무술) 1번째기사
경연관 이이가 종사관 최경창이 서울에 오던 중 죽었으니 호송하도록 청하다
 
경연관(經筵官) 이이(李珥)가 아뢰기를,
 
“최경창(崔慶昌)이 방어사(防禦使)의 종사관(從事官)으로서 서울에 올라오던 도중에 죽었으니 일로에서 호송(護送)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홍랑은 죽은 최경창의 묘 옆에서 시묘살이를 하며 절개를 지킵니다.

그 뒤 임진왜란을 맞아 피난을 다니다 '낭군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지요.

지금도 경기도 파주에 이 두 분의 묘가 나란히 있다 합니다.


덧글

  • 별나라전갈 2009/03/17 18:20 # 답글

    아하..애절하네요..
    주무시는 창가에 심어두고 보다가 밤새 내린 비에 새 잎이 나거든 나인줄 아세요..
    대충 뭐 이런건가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 뽀도르 2009/03/18 13:24 #

    티비 다큐로도 나온 적 있는데 좀 감동적이죠..
  • 오오 2009/03/18 14:07 # 답글

    '불시에' 데리고 와서 '버젓이' 데리고 사니.. 어감이 참 정겨운데요.. ㅎㅎ

    흠.. 버들이 삽목이 가능한가 봅니다. 가지를 꺾어 심으라고 하니.. 식물에도 조예가 깊으셨나 봅니...다 ^^;;;;;
    과거의 세상은 지금보다는(?) 맑아서 지고지순한 사랑도 가능했을라나요?
  • 뽀도르 2009/03/18 14:43 #

    버드나무가 가지를 꺾어 심으면 되는군요. 뽀송이 뜯어 먹고 놀게 한번 그래볼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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