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의 역사] 오리 사냥꾼, 판터 [전차] 괴수 대 괴물


T-34의 별명 중 하나가 오리. 옆 모습이 오리 비슷하지요. 동부전선에서 그 오리를 많이 사냥한 독일군 판터 전차에 대한 글을 번역했습니다. 예전에 같은 동맹군이어서 그런지 영어 자료 외에 일본 자료가 제법 많네요.

자료
http://en.wikipedia.org/wiki/Panther_tank



판터 Panther 전차

판터는 1943 년 중반부터 종전 시점까지 독일 군이 실전 배치한 전차이다. T-34의 대항마로서 3호 4호 전차를 대체할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들 전차 및 중전차와 함께 전쟁 종료까지 병용됐다. 판터의 화력, 기동성, 방호력의 월등한 조합은 다른국가들의 대전 후기 및 종전 직후의 전차 설계에 벤치 마크가 되었으며 종종 2차 대전 최고의 전차 설계로 여겨진다. 1944년까지 5호 전차 판터로 제식 명칭이 부여됐으나 1944년 2월 27일 히틀러가 명령하여 숫자 5가 제식명칭에서 빠졌다. 번호 상으로는 6호 티거보다 앞선 번호지만 실제로는 티거보다 뒤에 개발된 전차이다.

독일 5호 전차 판터


개발과 생산


판터는 소련 T-34 전차에 대한 직접적 응답이었다. 1941년 7월 23일 처음으로 조우한 T-34는 기존의 3호 4호 전차를 압도했다.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이 주장하여 1개 팀이 동부 전선으로 급파돼 T-34를 분석했다. 이 소련전차의 특징 중 가장 심각하게 인식 된 것은 경사 장갑으로 피탄 성능이 우수하고 관통에 필요한 장갑 두께를 증대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넓은 트랙은 부드러운 토양 위에서 기동성을 높였다. 76.2mm포는 장갑 관통력이 우수하고 효과적인 고폭탄도 발사했다.

다임러-벤츠 사와 MAN(Maschinenfabrik Augsburg-Nürnberg AG) 사에 30톤에서 35톤 사이의 신형 전차 설계가 맡겨져 1942년 4월 ( 히틀러 생일에 즈음한 날짜) VK3002로 명명됐다. 두 개의 제안이 1942년 4월에전달됐다. 다임러-벤츠 안은 T-34를 그대로 카피한 듯했다. T-34의 차체와 포탑 형태를 닮았다. T-34의 코일 스프링 식현가 장치와 달리 다임러-벤츠는 판 스프링 식과 토션 바 식의 두 가지 방식을 제안했다. 다임러-벤츠의 포탑은 MAN 사 안보다 작았다. T-34와 다르게 두 안 모두 3인용 포탑으로 지휘관, 사수, 장전수가 탑승했다. 장착예정인 포는 T-34보다 훨씬 길고 무거운 것으로 다임러-벤츠의 포탑에는 탑재하기 어려웠다. 다임러-벤츠는 포탑 승무원을 2인으로 줄여 공간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결국 기각됐다.

만 사의 디자인은 보다 통상적인 독일식 전차 디자인을 구현했다. 높고 넓은 육중한 포탑이 차체 가운데 위치했으며,가솔린 엔진과 토션 바 현가장치를 갖췄다. 히틀러는 다임러-벤츠 안을 선호했지만 만 사의 설계가 1942년 5월 승인됐다. 주요원인 중 하나는 만 사의 설계가 기존의 라인멘탈-보르시히 사의 포탑을 쓴데 반해, 다임러-벤츠의 설계는 새 브랜드의 포탑을 설계 생산해야 해서 생산이 크게 늦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 사의 설계는 또한 도하 능력이 우수하고 포의 정비가 용이했다.그리고 우수한 현가 장치, 넓은 트랙, 큰 연료 탱크를 가져 높은 기동성을 보였다.

1942년 9월 연철(mild steel)을 쓴 시험 제작 차량이 만들어져, Kummersdorf에서 테스트한 뒤 공식 승인돼 즉각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차체 생산에 특화된 기계 공구가 부족해 생산이 지연됐다. 제조 완료된 전차는 12월에 출고됐으나 급히 출고되는 바람에 신뢰성 문제에시달렸다. 신형 전차에 대한 수요가 높아서 생산에 만 사뿐 아니라 다임러-벤츠, MNH( MaschinenfabrikNiedersachsen-Hannover) 사와 Kassel의 Henschel & Sohn 사도 참여했다.

초기 생산 목표는 만 사에서 월 250 량이었다. 1943년 1월에 월 600 량으로 증가했다. 연합군 폭격, 제조 상의 병목현상, 기타 어려움으로 온갖 노력을 다해도 이 수치는 결코 달성되지 못했다. 1943년엔 평균 월 148 량이었다. 1944년평균 월 315 량으로 증가( 이 해 3,777량 생산)으로 6월에 380 량의 정점에 달했으며 1945년 3월 경의 종료까지 최소 총 6,000 량이 제조됐다. 판터의 기갑 전력은 1944년 9월 1일 최고조로 2,304량이었지만 같은 달 692 량이 손실 보고됐다.

철도 수송을 준비 중인 초기형 판터 D형 - 크고 작은 기계적 고장을 일으켰다.

디자인 특징


튀어나온 긴 포와 경사장갑을 무시하면 판터는 독일의 통상적 디자인이다. 양산 모델의 중량은 계획된 35톤을 넘어서 43톤에 달했다. 2차 대전 초기 전차들보다 현대적 특징이 두드러진 첫 추축군 전차였다. 엔진과 변속기의 취약성이 해결되자 매우 효과적인 전투 차량으로 입증됐다. 승무원은 5명으로 운전병, 무전병( 차체의 기총 사격도 담당 ), 사수, 장전수, 지휘관으로 구성됐다.


엔진


판터는 690마력의 3,000rpm 23.1 리터 Maybach HL 230 P30 V-12 가솔린으로 구동됐다. 차체 전면에기어 박스와 조향 장치, 구동륜이 있었다. 엔진은 일반적으로 신뢰할 만했으며, 2,000km의 내구 수명을 가졌다. 마이바흐엔진은 1943년말 조속기 (governor)를 장착, 2,500rpm과 592마력으로 제한했다. 조속기의 도입으로 최고 속도도55km/h에서 46km/h로 떨어졌다.
판터의 심장 Maybach HL 230 P30 엔진

현가장치

현가 장치는 두개의 전방 구동륜, 후방의 아이들러와, 양 옆의 각 8개의 이중 삽입식 고무-림 철제내륜(double-interleaved rubber-rimmed steel bogie wheels), 이중 토션 바  현가장치로 구성됐다. 판터의 현가 장치는 고비용에 생산 시간이 길었고 이중 삽입식 내륜은 안 쪽의 바퀴를 교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그러나 뛰어난 침하 저항력(flotation)과 기동성을 제공해  전반적으로 월등한 전술적 기동성이 확보됐다. 고무 부족으로매우 제한적이나마 완전 철제 바퀴도 사용되었다.
판터의 복잡한 이중 구조식 주행륜

조종

전차의 조종은 ZF에서 설계한 7단 AK 7-200 변속기와 만사의 단일 반경 조향 장치를 조종 레버로 제어했다. 이 조향시스템을 써서 단일한, 고정 반경의 회전이 각 기어에서 가능했다. 각 기어의 변속 단계가 높아지면 회전 반경도 커졌다. 회전반경이 생각보다 커지면, 조향 제동 장치로 회전 반경을 줄였다. 운용 기간 내내 판터의 가장 취약한 부위는 최종 구동 단위였다.전쟁 기간 중에 독일에 적당한 기어 절삭 기계가 부족해서 공동 空洞 스푸르 기어를 쓰지 않고 제조한 것이 주 원인이다( 역주:안습의 독일이구나. 뭐 일본이나 다를게 없네 -_-;) 최종 주행 장치가 그렇게 취약해서 때때로 내구 수명이 150km이하였다. 이에 반해, 미 M4 셔먼 전차는 최종 주행 장치에 이중 헬리컬 기어 장치를 써서 최대 속도에서 아무 제한이 없었다.

장갑

장갑은 두꺼운 균질 강판으로 55도 경사졌으며, 철판은 용접에 더해 요철처럼 맞물려 강도를 높였다.( 역주: 홈을 암수로 파서맞물리고 용접했다는 뜻) 높은 경사의 80mm의 장갑은 극소수의 연합군 병기만 관통이 가능했다. 포탑 전면은 100mm 두께의주조 포 방패로 방호했는데, 반으로 쪼갠 원통을 붙인 듯했다. 이러한 포 방패는 피탄 성능이 우수했으나 포 방패 하부는 오히려피탄에 취약해졌다. 만약 관통이 안된 포탄이 포 방패와 차체 사이에 끼여 폭발한다면 차체 상부의 얇은 장갑이 뚫려 전방에 탑승한승무원들을 덮칠 수 있었다. 차체 전방에는 무전 설비 하부의 커다란 기어 박스와 조향 장치 양 옆에 운전병과 무전병이 앉아있어서, 관통시 치명적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1944년 9월 이후 '턱' 부위가 두꺼워진 신형 포 방패가 판터 G형에장착되었다.

판터의 주 취약점은 양 측면 장갑이 상대적으로 40-50mm로 얇다는 것이다. 전차의 총 중량에 한계가있어서, 양 측면 장갑의 두께는 얇을 수 밖에 없었지만, 대부분의 연합군 전차와 대전차포 공격에 측면은 취약했다. 그 결과독일의 판터 운용 전술 교리는 측병 방호를 강조했다. 5mm의 스커트 장갑, 즉 쉬르젠이 차체 하부를 소련의 대전차 라이플로부터지키기 위해 장착됐다. 자기 지뢰 방어용 짐머릿 세라믹 코팅은 A형부터 표준이 되고 구형에도 개장되었지만, 1944년 9월부터는다시 생략됐다.

무장

주포는 반 자동식 75mm 라인멘탈-보르시히 KwK 42(L/70) 포로 79발( G는 82발)의 포탄을 휴행했다. 주포는 3종의탄약으로, 피모被帽철갑유탄 (APCBC-HE (Pzgr. 39/42)), 유탄(고폭탄 HE (Sprgr. 42))와 강성핵剛性核철갑탄(APCR (Pzgr. 40/42))을 사용했다. 강성핵철갑탄은 보통 공급 부족이었다. 당시로서 평균적구경(caliber)이었지만, 대량의 추진 장약과 장포신에 따른 초고속의 포구 속도(포에서 발사돼 나온 순간의 순간 속도)와 우수한 장갑 관통 능력을 갖춰, 2차 대전 시기 가장 강력한 전차포의 하나였다. 거리에 덜 구애 받는 직선 탄도로  표적 명중이 쉬웠다. 판터의 75mm포가 더 대구경의 티거의 88mm포보다 장갑 관통력이 우수했다.

보통 2정의 MG 34기총을 탑재했다. 이 기총은 장갑 전투 차량용의 특수 형으로 장갑판이 부착됐다. 1정은 주포와 동축으로 장착하고, 차체 전면 경사 장갑에 부착된 나머지 1정은 차체 전방에 탑승한 무전병이 사격했다. F 원형과 A 초기형은 차체 기관총 장착 부위의 덮개를 오픈해 사격했다. A 후기형과 Auf.G 형 전부는 보다 일반적인 볼 마운트 식으로 차체 기관총을 탑재했다.  A형에새 주조(cast)제 지휘관 큐폴라가 도입되었다. 이 큐폴라에는 철제 고리가 둘러져 대공 기관총을 올릴 수 있었지만 실전에서 쓸일은 드물었다.

실전 사용


판터는 4호전차를 보충하고 3호 전차를 대체할 전차였다. 각 독일 기갑 사단은 2개의 전차 대대로 이뤄졌는데 1개 대대는 판터로, 다른1개 대대는 보다 가볍고 오래됐지만 여전히 유용한 4호 전차로 구성됐다. 1943년 중반부터 기갑 대대는 점차 판터로 바뀌었다.

판터는 1943년 7월 5일 쿠르스크에서 처음으로 참전했다. 초기 형은 여러가지 기계적 문제에 시달렸다: 트랙과 현가장치는 자주망가졌고, 엔진은 위험할 정도로 과열되고 터져 화재를 일으키곤 했다. 쿠르스크에서 적군에게 파괴된 판터보다 차체 결함으로 못쓰게된 판터가 더 많았다. 예를 들어 어느 기갑 부대는 7월 5일 200 량으로 시작했지만 불과 5일 뒤에 38 량만 작전 가능하고131 량이 수리 대기 중이었다. 히틀러의 조기 작전 개시 명령을 원치 않았던, 하인츠 구데리안은 뒷날 판터 초기형의 전투능력을 언급하며 "너무 쉽게 불타고, 연료와 유압 계통은 충분히 방호되지 않았으며, 승무원들은 훈련 부족으로 손실됐다"고하였다. 그러나 구데리안도 화력과 전면 장갑은 우수했다고 했다.  쿠르스크에서 다수의 판터가 기계적 어려움에 시달린 반면,소수의 판터는 성공을 거두어 263량의 소련 전차를 격파했다. 전면 장갑이 티거보다 얇았지만, 훨씬 경사져서 소련군 포탄이 관통하기 더 어려웠다.

동부 전선의 판터

쿠르스크 이후 판터는 기계적 고장과 손상을 수리 받고 초기 D형의 고질적 설계 문제도 수정되어, 진정 두려운 전차로 거듭났다. 1943년 후기와 특히 1944년에 판터는 동부 전선에 점점 많은 수가 투입됐다. 1944년 7월까지 판터는 동 서 양 전선에서 독일 전차 전력의 거의 절반을 점유했다. 종전 시에 판터는 3번째로 많이 생산된 독일 장갑 전투 차량이었다.

1943-1944년 무장 친위대의 특수 작전 부대가 적 방어선 돌파목적으로 Otto Skorzeny에 의해 창설됐다. 소수의 판터와 3호 돌격포를 미 육군 표지로 다시 칠했다. 판터는 얇은철판을 덧대어 미 육군 M10 구축 전차로 위장했다.

아마 가장 유명한 독일 판터 지휘관은 무장 친위대 제2 기갑 사단 '다스 라이히', 2 연대의  Ernst Barkmann일 것이다.

전투 중 손상되거나 퇴역한 차량에서 떼어낸 포탑은 일종의 고정 포대로서 대서양 장벽, 서부 장벽, 고딕 라인, 히틀러 라인( 몬테카시노의 피에디몬테에 위치한 방어선의 하나)과 동부전선 등에 설치되었다. 베를린에는 12 개 가량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포탑은 콘크리트나 용접된 철판 구조물 위에 설치되었다.  1945년 3월 26일 당시 268-280개의 고정 포탑이 설치돼 있었다.

비록 머리통뿐이지만 조국을 지키겠노라 -_-;

판터 대대의 구성


1943년 판터 전차를 장비한 기갑 중대의 구성이다. 2개 기갑 대대는 기갑 사단의 기갑 연대를 구성한다.

* 대대 사령부  (통신 및 정찰 소대로 구성)
    * 통신 소대 - 3 x 통신 장비가 강화된 Befehlswagen Panther SdKfz.267/268
    * 정찰 소대 - 5 × Panther
    * 1 중대 - 22 × Panther
          o 중대 사령부  - 2 × Panther
                + 1 소대  - 5 × Panther
                + 2 소대  - 5 × Panther
                + 3 소대  - 5 × Panther
                + 4 소대  - 5 × Panther
    * 2 중대  - 22 × Panther (1중대와 동일)
    * 3 중대  - 22 × Panther (1중대와 동일 )
    * 4 중대  - 22 × Panther (1중대와 동일 )
    * 서비스 중대 - 2 × Bergepanther ( 회수 구난 전차로 개조된 판터 )

1943년부터 1945년 사이에 전황에 따라 대대 구성에 많은 변화가 이뤄져 중대와 소대의 수를 줄였다.

연합군의 대응

동부 전선에 나타난 대량의 판터에 대한 소련의 대응은 신속했다. 1943년 붉은 군대는 1941년과 마찬가지로 76.2mm포를 탑재한 T-34 전차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 포는 판터의 전면 장갑에 효과가 없어서 측면 공격을 해야 하는 반면, 판터의 주포는 어느 각도라도 T-34를 격파할 수 있었다. T-34에 85mm포와 3인용의 여유 있는 신형 포탑을 장착한 T-34-85 생산이 계획되었다. 이 신형 전차도 판터와 완전히 동등한 전투 능력은 없었지만, 76.2mm포 장비 차량보다는 탁월했으며 대량 생산으로 질적인 차이를 극복하려 했다. T-34 차체에 기반한 신형 대전차 자주포인 SU-85, SU-100도 개발됐다. 1944년중반까지 붉은 군대는 판터보다 압도적 수량의 T-34-85를 배치하고 있었다. 


소련의 신형 T-34-85와 IS-2 중전차를 판터와 비교한 1944년 3월 23일자 독일 기록은, "판터는 전방 화력에서T-34/85보다 월등하고( 판터 G는 T-34-85의 전면 장갑을 2,000미터에서 관통하는데, T-34-85는500미터에서야 판터 G의 전면 장갑을 파괴할 수 있다) 측방 및 후방 화력은 거의 동등하다. IS-2와 비교 시 전방 화력은 우세, 측방 및 후방 화력은 열세"라고 했다. 1943년과 1944년에 판터는 어떤 연합군 전차도 2,000미터 거리에서 파괴할수 있었다. 일반적인 숙련된 판터 승무원은 1,000미터까지는 90 퍼센트의 명중을 기록했다.


판터는 소련의 신형 IS-2 중전차와 거의 동등하다고 평가되었는데, 이 중전차는 훨씬 가벼운 T-34와 달리 판터와 붙어볼 만했다. 1944년 이후의 전쟁 후기에 소련은 독일 장갑 차량의 질이 떨어지고, 합금의 부족으로 장갑판이 쉽게 깨지는 걸 발견했다. 1943년 11월 쿠빙카에서 IS-2에 장착할 예정이던 A-19 포에서 발사한 122mm 포탄이 노획한 판터의 전면 장갑과 후방 장갑 모두를 깨끗이 관통했다.


서부 전선의 연합군의 대응은 일관되지 않았다. 1944년 안지오 전투 전까지 판터는 서부 전선에 출현하지 않았다. 당시 판터는 소수가 참전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D-Day 직전까지 연합군은 판터를 대량 생산이 안 될 또 다른중(헤비)전차의 일종으로 여겼다.

그러나 상륙 직전, 2량의 노획 전차의 내륜(bogie wheel)에 대한 통계 분석 결과, 1944년 2월의 판터 생산이 270대에달했다고 추정됐다. 이것은 판터가 생각보다 대량으로 나타날 것임을 보여줬다. 당초 미 육군은 노르망디에서 대량의 4호 전차와 한줌의 중(헤비)전차의 출현을 예상했지만, 실제 대적한 전차의 거의 절반이 판터였으며 그 전면 장갑은 셔먼의 75mm 포로관통 되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미군 교리가 보병 지원과 전과 확장을 전차의 주 역할로 하고, 대전차 전투는 전문적인 구축 전차가 주로 담당했기 때문이다.


미국도 결국 76mm포 탑재 셔먼과 90mm포 장착 구축 전차를 대량 생산하고, 마지막엔 퍼싱 중전차를 개발했다. 이런 개선된 무기도 판터의 전면 장갑 관통이 여전히 어려웠다.


영국군은 독일 중전차에 맞서 17 파운도포를 장착한 셔먼 즉 셔먼 파이어플라이와 견인 용 17파운드 대전차포를 선보였다. 노르망디 작전의 전훈을 따라 영국군은 대략 1:4의 비율로 파이어 플라이와 일반 셔먼으로 전차 부대를 구성했다. 1945년 코멧 전차도 실전배치했다.


판터는 종전 시기까지 독일 주요 전차 부대의 주력이었다. 장포신 75mm KwK 40 L/40포 탑재형 4호 전차 후기형은 더 저렴하고 더 신뢰성이 있어 판터와 병행 생산되었다. 그러나, 4호 전차 생산을 중단하고 판터만 제조하는 것이 전차 총 생산량에 (비록 일시적이라 하더라도)견디기 어려운 감소를 초래할 것임을 독일 전차 공업계가 인식한 것이 4호 전차 생산 연장의 주 원인이다.(역주: 생산 라인 전환에 따른 전체 생산의 일시 감소도 감당하기 어려운 전황이었다는 뜻)


발지 전투 당시 오토 스코르제니의 그라이프 특공 작전에서 상당수의 판터 전차가 미군 M10 구축 전차로 위장했다. 이것은, 관련된독일 병사들이 미군 복장으로 위장하는 것과 같은 다른 작전을 포함한 큰 작전의 일부였다. 이렇게 위장한 판터는 들통이 나서 파괴됐다.


후속 개발

판터 2

판터 2 (Panther II) 설계가 1943년 2월 개시됐다. 주 목표는 제조를 쉽게 하기 위해 티거 2(Tiger II) 전차와 부품 호환성을 극대화하는것이었다. 판터 2는 티거 2와 비슷한 차체를 사용하고, 거의 동일한 철제 타이어 로드 휠( 티거 2의 9개와 달리 7개),신형 트랙, 현가 장치, 브레이크 등을 가졌다. 포 방패도 보다 작게 바뀌었다. 판터 2 프로젝트는 패튼 박물관에 전시된 단 한개의 섀시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판터와 판터 2 사이의 중대한 차이 중 하나가 주행 기어와 증가된 장가 방호력이다. 포 방패를 제외한 포탑은 똑같았다. 판터 2는오직 75mm KwK L/70의 장착만 염두에 뒀으며, 판터 2 프로젝트가 취소된 뒤 88mm KwK L/71의 장착은 고려되지않았다.


전쟁 후기인 1944년 3월 전방 노출 면적을 줄인 판터 포탑을 만들 작업이 재개됐다. 이것은 Schmalturm ('좁은 포탑' narrow turret)의 개발로 이어졌다. 8월에 Versuchsturm(시험 제작 포탑) 포탑이 완성돼 일반적인 G형 판터에 탑재됐다. Schmalturm 포탑은 더 두꺼운 장갑, 내장된 입체식거리 측정기, 88mm KwK L/71포 탑재 공간, 포 방패 하부의 취약점의 제거 등이 원조 포탑보다 개선된 점이다. 부분적은파손된 Schmalturm포탑이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패튼 박물관에 전시된 판터 2

판터 F

같은 시기에, 판터 F형의 개발이 진행돼 1945년 4월 생산이 계획되었다. 이 판터의 키 포인트는 장갑이 강화된 신형 Schmalturm 포탑을 장비하고 전방 차체 상부 장갑판도 조금 두꺼워졌다. 상당수의 F가 다임러-벤츠 사와 Ruhrstahl-Hattingen제강소에서 생산됐다. 그러나 종전 시기까지 실전 참가한 증거가 없다. 실제로, 신형 포탑의 핵심 부품이 전혀 완성되지 않아서 생산된 판터 F를 이용한 작전이 매우 곤란했다. 판터 F는 더욱 무거운 섀시의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인 판터 2와 혼동해선안 된다.


티거 2와 유사한 인상을 주는 판터 F형


파생 차량

  • 야크트판터  - 88mm L/7포 탑재형 중重 구축 전차 ( heavy tank destroyer )
  • 베펠스판처 판터 - 추가 무전 장비 탑재형 지휘 전차
  • 베오바흐퉁판처 판터 - 포병 관측용 전차; 모조 전차포; 2정의 기총만 탑재
  • 베르게판터 - 장갑 회수 차량 ( 파손된 전차 회용 )

종전 후 / 외국 채용


당시 기준으로 기술적으로 정교한 차량이었지만 판터의 디자인은 전후 전차 개발에 매우 제한적 영향만을 줬다. 프랑스의 전후 AMX50 전차의 원형은 판터에 영향 받았지만 양산에 들어가지 못했다. 프랑스는 판터의 75mm KwK L/70 포의 개량형으로 75mm DEFA와 Cn75-50 포를 개발했다. 이 포는 AMX 13 경전차, EBR 장갑차, 이스라엘 군의 M50 수퍼셔먼에 탑재되었다.


판터 자체도 대전 기간과 종전 후를 포함해 독일 외 다른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됐다.


대전 기간에 붉은 군대는 상당수의 노획한 판터를 운용했다. 독일군의 판터 사용 매뉴얼을 러시아 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아군의 오인사격을 피하게 소련군 식별 표지로 재 도장했다. 붉은 군대는 1945년 봄에도 소수의 판터를 운용했다. 그러나 역시 아군의 오인사격이 빈발해 탑승을 기피하기도 했다.


최소 1량의 노획된 판터가 영국 콜드스트림 근위대에서 사용된 적이 있다.


일본은 역 엔지니어링 목적으로 1량의 판터 D형을 1943년 구매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에 결코 운반되지 못했다. 그래도 판터의 경사 장갑과 포탑 디자인은 일본 최후의 전차 원형의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 4시 치토 중中전차와 5식 치리 중重전차가그것이다.


판터의 영향을 받았다는 일본 중전차 치토


전후 프랑스는 50량의 판터를 수리해 사용했다. 이들 판터는 1950년까지 운용되다가 프랑스 제 ARL 44 중重전차로 교체됐다.


1946년 잔존한 독일군 차량을 시험해보기 위해 스웨덴 대표단이 프랑스를 방문했다. 방문 기간 중 소수의 살아남은 판터를 발견, 1량을 스웨덴으로 보내 추가 시험과 평가를 진행했다. 평가 작업은 1961년까지 계속됐다. 그 전차는 현재 뮌스터의 독일 기갑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생존 차량


28량의 판터가 고철 수준에서 완전 가동 수준까지 남아 있다. 러시아 쿠빙카 전차 박물관을 비롯 프랑스, 독일 등 몇몇 박물관의 4량의 판터는 주행 가능하다.


현재 2량 이상의 판터를 영국과 미국 수집가가 주행 상태로 복원 중이다.


네덜란드 브레다에 전시된 판터 D형은 이 곳을 해방한 폴란드 제1 기갑사단이 기증한 것이다.


스위스 Thun 기갑 박물관에 전시된 판터는 D/G형의 하이브리드 형으로 D형 차체에 G형 포탑을 가진 것으로 광고 중이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다.


2008년 1월 부분적으로 복원된 A형이 캐나다 전쟁 박물관에 전시됐다. 1945년 5월 종전 뒤 판터를 노획한 캐나다 군이 기증한 것인데 2년 간의 복원 작업을 거친 끝에 공공에 전시된 것이다.


벨기에의 아르덴느 지역의 한 마을에서 판터 G형이 발견됐다. 발지 전투 당시 강물에 빠진 것을 기념물로 되살린 것이다.

벨기에 아르덴느에서 발견된 판터

성능 제원

판터 A형
판터 A형
전체 길이8.66 m
차체 길이
6.87 m
전체 너비
3.27 m
전체 높이
2.85 m
무게
44.8 t
현가장치
더블 토션바 방식
속도

노상 55 km/h
험지 33 km/h
행동거리

250 km
주포75mm KwK 42 L/70( 79발 )
보조 무장
7.92 mm MG34 기관총×2(4,200발)
장갑

포탑 전면110 mm 경사11°
   측/후면45mm 경사25°

차체 전면 80mm 경사 55°
   측면 40mm 경사 40°
  후면 40mm 경사 30°
엔진
Maybach HL230P30
수냉식 4행정 V형 12기통
700 hp (520 kW)

승무원

5 명

각 형식

판터 D형

1943년 중반 다임러벤츠, 헨셀, 만 등의 각 회사에서 842량이 생산된 최초 형이다. 그중에 헨셀 사에서 차체가 제조되고 포탑은 비크만 사가담당했다. 원형 2호 차는 포탑 측면이 차장 큐폴라 용으로 길게 나왔으나 양산형에서 삭제됐다. 60mm의 장갑에 6개의 관측구를가진 드럼 형 큐폴라는 방탄 유리를 통해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주포의 조준 장치는 쌍안 식 TZF12를 장비했다. 차체전방의 기관총 클럽( 차내 탑재된 기관총을 발포하기 위한 덮개가 달린 부분)가 설치됐다.

예정된 마이바흐 HL230엔진이 준비되지 않아 250호 전차까지는 HL210이 장착됐다. 당초 주포 좌측에 연락용 햇치가 설치되었으나 방어력 향상을 위해1943년 8월 이후 폐지했다. 좌우의 연막탄 발사기가 장비됐으나 피탄 시 손상되고 불필요하게 발연할 경우 시야를 가린다 하여 역시 철거했다.

잇단 초기 고장에 대응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제 10 전차 여단의 192량의 D형 판터가 쿠르스크 남부 전선에 투입됐다. 그러나 엔진 냉각 장치의 능력 불충분, 연료 누설에 따른 화재 발생 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 실전 데뷰는 대 실패였다.

판터 A형
1943-44년 851호 차 이후 만, 다임러-벤츠, MNH, 데마크 등의 각 회사에서 약 2,200량이 생산됐다.
차체는 D형과 크게 다른 건 없으나 문제가 많은 변속기를 변경하는 등 기계 신뢰성을 높였다. 생산 도중에 차체 전면의 기관총 클럽을 신형의 볼 마운트 식 기관총좌로 바꾸었다.

포탑은 새로 설계돼,  D형의 직접 육안 관측형에서 장갑이 강화된 페리스코프가 달린 간접 관찰 방식의 주조 제 신형 큐폴라가 장비되었다. 주포 조준기는 도중에 단안 식 TZF12a로 변경되었다. 또한 포탑 선회 속도의 변경이 가능해져 표적 포착이용이해졌다.
판터 G형
판터 G형 - 자기 지뢰를 막는 지머릿 코팅이 돼 있다.

1944-45년 만, 다임러-벤츠, MHN 각 사에서 3,100량 가량이 1945년 4월 공장이 점령될 때가지 생산을 이어나갔다.

개발이 중지된 판터 2형의 개량 안을 추가한 사실상 판터의 최종형이다. 약점이던 차체 측면 장갑을 약간 강화한 반면, 피탄이 적은 차체 하부 전면 등은 반대로 얇아졌다. 또한, 생산 도중에 D/A형의 문제였던 포방패의 약점( 피탄 시 적탄이 장갑이 약한 차체 전방 상부 장갑판을 직격 )을 포방패 하부의 턱 부위를 돌출시켜 보완했다.

운전병과 무전병 용의 햇치도 이전의 가로 선회식 개폐 방식에서 힌지가 부착된 통상적 형태로 변경됐다. 당시 많은 전차의 약점인 운전병의 관측창은 폐지하고, 페리스코프를 회전식으로 개조했다. 그러나 행군 중에 밖을 직접 볼 수 없어 불편한 점이 지적되어,좌석을 높여 햇치를 열어 머리를 내밀고 운전할 수 있도록 조종 레버의 높이도 조절할 수 있게 개량됐다. 일부 차량은 적외선 야간관측 장치를 탑재해 실전에 사용됐다. 또한, 배기관도 생산 도중에 소염 消炎 형으로 개선됐다.

판터 F형

라인멘탈 사가 기본 설계, 다임러-벤츠 사가 제작한 소형 포탑 탑재형으로 중량이 경감되고 방어력이 높아졌다. 이 소형 포탑은 큐폴라 햇치 개폐가 힌지 부착식으로 변경되고 SZF1 잠망경 식 조준기가 장비됐다. 차체 상하부 장갑이 두꺼워지고 운전병, 장전수 용 햇치를 슬라이드 식으로 변경, 차체 전면 기관총을 MG34에서 MG42로 변경, MP44 돌격총 장비 등을 추가하는 등의 개량이 더해졌다.

주포는 체코의 슈코다 사가 개발한 KwK42로 변경됐다. 신형의 스테로오 식 거리 측정기는 정확히 피아의 거리를 잴 수 있는데 특히 원거리의 포격에 위력을 발휘했다고 하지만, 전후 같은 종류의 장비가 탑재된 미국 전차 M47 등에서 문제가 발생한 걸 볼때, 전쟁 중에 문제가 없었을지 의문이다. 원형 1호 포탑이 G형 차체에 탑재된 1량이 만들어져 G형을 대체해 생산예정이었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한 채 종전을 맞았다. 원형 2호 포탑은 전후 영국군에 압수돼 사격 표적으로 사용돼 현재 보빙턴전차 박물관에 관통된채 전시돼 있다.

판터 지휘 전차

중대 지휘관/부지휘관 이상이 탑승하도록 350량의 판터를 개수 키트로 개조했다. 표준적인 Fu5 무전기가 추가되고, 상급 사령부 연락용의 Fug8 장거리 무전기와 성형 星形 안테나가 장비됐다.무전기와 발전기가 증설돼 79발의 탄약은 64발로 감소하고 주포 동축 기관총은 철거됐다.

판터 지휘전차 - 성형 안테나가 포탑 상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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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09/03/17 17:26 # 답글

    돌격포 팬인 저로서는 야크트판터 설명이 너무 적은 게 한스러울 뿐...
  • 뽀도르 2009/03/17 18:13 #

    음... 원래 스탈린 전차가 다음 예정이었는데, 야크트판터부터 올려보도록 하지요.
  • JOSH 2009/03/17 19:04 # 답글

    > 2량의 노획 전차의 내륜(bogie wheel)에 대한 통계 분석 결과

    우와.....
  • 뽀도르 2009/03/18 11:16 #

    대단하지요. 바퀴에 새겨진 시리얼 넘버를 분석한 모양입니다.
  • 행인1 2009/03/18 09:42 # 답글

    전쟁이 더 길어졌다면 일본도 "판터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르겠군요. 결과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 뽀도르 2009/03/18 11:20 #

    일본이 판터 비스무리한 거 만들어 배치하기 전에 미군 퍼싱이 상륙했겠지요 -_-;
  • Cicero 2009/03/18 11:04 # 답글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같은 추축국국가들도 종전이후에 몇년간 독일이 공여해준 판터를 몇년간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질리게 써먹다 그 이후에는 고정포탑으로 재활용후 폐기...

    아마 유고도 몇대 써먹었을겁니다. 삼돌이나 아하트도 1960년대까지 굴려먹던 친구들이니
  • 뽀도르 2009/03/18 11:32 #

    주군을 잃고 방랑하는 무사들 같네요.
  • rumic71 2009/03/18 13:52 #

    시리아군은 중동전에 4호전차를 끌고 나선 적도 있다죠.
  • 계원필경&Zalmi 2009/03/18 13:50 # 답글

    판터라면 역시 M10으로 위장한 오토 스코르체니 휘하의 판터가 가장 인상에 남죠(다만 훼이크에는 실패했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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