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의 역사] T-34 전차의 모든 것 [전차] 괴수 대 괴물

예전부터 숙원이던 T-34에 대한 자료를 번역해 올립니다. 대부분 영어 자료에 일부 일본어 자료를 더했습니다. 오류 지적을 환영합니다.

자료
http://en.wikipedia.org/wiki/T-34
http://ja.wikipedia.org/wiki/T-34



소련군 중전차 T-34


T-34 전차 1940년형

T-34는 1940년에서 1958년에 걸쳐 생산된 소련의 중형전차이다. 소련이 2차대전에 참전한 이래 세계 최우수 전차로 여겨졌다. 비록 장갑과 무장이 뒤에 나온 전차들에 밀렸으나 종종 2차대전 당시 기준으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며 영향력 있는 디자인으로 인정받는다. 하르코프의 KhPZ 공장에서 첫 생산한 이래 종전 시까지 소련 기갑부대의 주력이었다. T-54/55 전차에 이어 사상 두번째 대량생산 전차였다. 1996년에도 최소 27개국에서 사용 중이었다.

BT 고속전차로부터 개발되어 당시의 BT-5, BT-7 전차와 T-26 보병전차를 대체할 것이었다. 등장 당시, 화력, 기동성, 방호, 내구성에서 최고의 균형을 갖추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인체공학상 열악한 승무원 공간, 무전기의 결여, 잘못된 전술 등으로 고전했다. 2인용 포탑에서 지휘관이 포수를 겸하는 것이 당시 소련전차에선 일반적이었지만 3인용 포탑보다 비효율적인 게 판명됐다.

대전 전기간 내내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디자인과 생산성이 다듬어져 더욱 많은 수가 참전했다. 1944년 초 개량된 T-34-85가 배치돼, 더 강력한 85mm포와 3인용 포탑이 도입됐다. 1945년 종전 시까지 다용도의 경제적인 T-34는 많은 경전차와 중(헤비)전차를 대체해 소련전차 생산의 다수를 점했다. 종전 후 발전된 T-54/55의 개발로 이어져 1981년까지 생산된 T-54/55 시리즈는 현재도 많은 국가에서 사용 중이다.


개발 역사

혁명적 디자인

   "우리에게 비교할 만한 게 없다" - Friedrich von Mellenthin (1956)


스페인내전과 노몬한사건의 전훈으로 BT 시리즈 전차의 기동력은 충분하지만 방어력이 문제라는 게 부각돼 그 쾌속성을 유지한 중형전차의 개발이 요구됐다.

소련군 전차 개발에 큰 영향이 끼친 크리스티 전차. 궤도 없이도 주행할 수 있었다.

1939년 당시 가장 많은 수의 소련전차는 T-26 경전차와 BT 시리즈 고속전차였다. T-26은 저속의 보병전차로 지상에서 병사들과 보조를 맞추게 설계됐다. BT 전차는 기병전차로, 매우 빠른 경전차였으며 일반병사가 아닌 적전차를 상대할 것이었다. 두 전차 모두 얇은 장갑이어서 소화기는 막을 수 있으나 대전차라이플이나 37mm 대전차포는 막을 수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전차가 장비한 가솔린엔진은 피탄 시 불 붙기 쉬웠다. 두 전차 모두 외국 디자인에 바탕한 것으로 T-26은 영국 비커스 6-톤 전차에, BT 시리즈는 미국 기술자 월터 크리스티의 설계에 바탕했다.

T-26 보병 전차

1937년 붉은군대 Red Army는 기술자 미하일 코쉬킨 Mikhail Koshkin이 하르코프의 KhPZ( Kharkiv Komintern Locomotive Plant) 공장에서 BT 시리즈를 대체할 전차를 설계할 팀을 이끌게 했다. A-20으로 제식명칭이 부여된 원형전차는 20mm의 장갑, 45mm 포, 불이 잘 안 붙는 디젤유를 쓰는 신형 V-2엔진을 장비했다. BT 전차와 유사한 8x6 바퀴전환식 구동장치 wheel convertible drive 을 장비했는데 1930년대의 신뢰성이 낮은 전차트랙을 감안, 무한궤도 없이도 달릴 수 있었다. 이 결과 도로상에서 85 km/h의 경이적 속도를 냈으나 전투상의 이점은 없었다. 설계자들은 공간과 중량만 낭비한다고 봤다. 앞선 연구를 반영해 경사장갑을 채용했는데 사방이 기울어진 장갑은 대전차무기를 더욱 쉽게 빗겨 나가게 할 목적이었다.

코쉬킨은 소련지도자 스탈린에게 화력이 강화되고 T-26과 BT 시리즈 모두를 대체할 다용도의 두번째 원형전차의 개발 필요성을 납득시켰다. A-32로 명명된 두번째 원형은 전면장갑 32mm를 자랑했다. 화력도 76.2mm포로 강화됐고 엔진은 전과 같았다. 1939년 쿠빙카에서 두 모델 다 테스트한 결과, 더 무거운 A-32가 A-20만큼 기동성이 있었다. 전면장갑을 45mm로 강화하고 더 넓은 트랙으로 개량한  A-32의 개량형이 T-34로 양산승인을 받았다. 코쉬킨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한1934년을 따서 T-34로 명명했다. 

왼쪽부터 A-8 (BT-7M), A-20, T-34 1940년형, 1941년형


코쉬킨 팀은 두 대의 원형 T-34를 1940년 완성했다. 4월과 5월에 크렘린궁의 지도자들에게 과시할 목적으로 하르코프부터 모스크바까지 2,000km에 달하는 강도 높은 테스트 주행을 마쳤다. 그 뒤 핀란드의 만네르하임선까지 갔다가 민스크와 키예프를 거쳐 다시 하르코프로 복귀했디. 그 결과 일부 구동장치의 문제가 드러나 수정됐다. 군 내부의 저항과 높은 생산비용에 대한 우려는 핀란드 전선에서 드러난 소련전차의 낮은 성능과 프랑스전선의 독일군 전격전의 영향으로 사라졌다. 첫 양산전차는 1940년 9월에 생산돼T-26, BT 그리고 T-28 다포탑(여러 개의 포탑을 가진 육상 전함 같은 전차) 전차의 생산을 완전히 대체했다. 코쉬킨은 그달말 하르코프-모스크바 간 무리한 주행으로 심해진 폐렴으로 사망했다. T-34의 구동장치 개발자 알렉산드르 모로조프가 수석설계자로 임명됐다.

T-34 1940년형의 부위별 장갑 두께

T-34는 BT의 코일-스프링식 크리스티 현가장치를 썼지만, 무겁고 비효율적인 전환식 구동장치가 효과를 반감시켰다. 잘 경사진 장갑을 갖추고 상대적으로 강력한 엔진과 넓은 트랙을 가졌다. 초기형은 76.2mm포를 장착해 종종 T-34/76으로 불렸는데 원래 독일군이 명명한 것이다. 1944년부터 생산된 두번째 주요 개량형인 T-34-85는 더 큰 포탑에 85mm포를 장비했다.

특징

  • 당시로선 강력한 전차포
  • 피탄효과가 높은 경사장갑
  • 피탄 시 화재위험이 낮고 연비향상도 유리한 알루미늄 합금제 디젤엔진
  • 고속주행에 알맞은 크리스티식 현가장치를 사용한 대형전륜 轉輪
  • 소련 국내 전투에 적합한 넓은 폭의 접지압이 낮은 트랙
  • 철저히 간략화한 설계에 따른 높은 생산성

생산 개시와 관리


    "양은 그 자체가 질적 측면을 갖는다" - 스탈린

T-34는 소련공업에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 당시 어느 중형전차보다 무거운 장갑을 갖춘데다, 여러 공장에서 조립파트를 분담해 생산했다: 하르코프 제75디젤공장은 V-2엔진을, 레닌그라드 키로프스키 공장은 L-11포를, 모스크바 디나모 공장은 전기장비를 각각 맡았다. KhPZ No. 183에서 초기생산을 하고 1941년에는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그리고 독일의 침공 직후 7월부터 고리키의 크라스노예 소르모포 Krasnoye Sormovo 제 112 공장에서 생산을 개시했다. 그러나 장갑판에 문제가 발생하고 신형 V-2 엔진의 부족으로 고리키에서 초기에 생산된 형은 BT-전차에 장비하던 MT-17 가솔린엔진과 뒤떨어진 변속기와 클러치를 장착했다. 무전기가 비싸고 부족해서 중대급 사령관의 전차에만 장비됐다. L-11포가 기대에 못 미치자 고리키 제92공장의 가르빈 설계국이 더 우수한 76.2mm포를 설계했다. 어느 관료도 생산승인을 안 하려 했지만 고리키와 PhPZ공장은 강행했다. 야전군이 새 전차포의 위력을 실증한 뒤에 스탈린의 국가방위위원회에서 공식허가가 떨어졌다.

군 내부 보수파의 정치적 압력이 터져 나와 구형 T-26과 BT 전차의 생산에 자원을 되돌리고 개량형 T-34M의 완성에 매달린 T-34의 생산을 취소시키려 했다. 이런 정치적 압력은 경쟁 관계인 KV-1과 IS-2 전차 개발자들이 가했다. 다른 전차를 생산하는 설계자와 공장 간의 정치적 압력은 종전 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돼 T-55, T-64, T-72 T-80 등이 여러 공장에서 병행생산 됐는데 소련 고위층에 각각 다른 후원자들이 있었다. 1941년 6월 22일의 독일의 기습공격  바르바로사작전으로 더 이상의 개발을 멈추고 대량생산에 매진했다.

취소된 T-34M

독일의 빠른 진격에 전차공장을 전례없는 규모로 급히 우랄산맥으로 이전해야 했다. KhPZ는 니즈닐 타길의 제르진스키 우랄 기차 공장 주위에 재건돼 스탈린 우랄 전차 제183 공장으로 개칭됐다. 키로프스키 공장은 레닌그라드 포위 수주 전에 하르코프 디젤공장과 함께 첼랴빈스크의 스탈린 트랙터공장으로 이동했다. 첼랴빈스크는 곧 탕코그라드( 탱크 도시 Tank City )로 불렸다. 레닌그라드의 보로실로프 제 174 전차공장은 우랄공장과 새로운 옴스크 제 174 공장에 합쳐졌다.

스베르들로프스크의 오르트초니키체 우랄 중장비작업소는 몇개의 작은 공장을 흡수했다. 이렇게 공장들이 기록적 속도로 이전되는 동안, 스탈린그라드 트랙터공장 주위의 공업단지는 T-34 전차 생산량의 40%를 점했다. 그 곳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는데 자재부족에 따라 제조공정을 혁신해야 했다. 도장 painting도 안 한 전차들이 그 주위의 전장으로 출고됐다 . 스탈린그라드에서 생산은 1942년 9월까지 계속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산라인에는 오로지 단순하고 싸게 생산할 수 있는 개선안만 요구되었다.  철판의 자동용접과 담금질을 위한 신 기술이 예프게니 파톤 등에 의해 개발되었다. 1942년 형 F-34 76.2mm 포는 이전의 861개의 부품 대신 614 개의 부품만 필요했다. 2년만에 전차 생산비용은 269,500 루블에서 193,000 루블로 떨어졌다. 1942년 말에 생산 소요시간은 절반으로 떨어졌는데 대부분의 숙련노동자가 전선에 보내지고 절반이 여성, 15%가 소년, 나머지 15%가 노약자였는데도 달성한 것이다. 동시에 T-34는 기계적 신뢰성의 희생 없이 훌륭하게 세공한 전차로서 우수한 외장마감은 당시의 구미의 전차와 비교할 만하거나 더 우수했다.

개발

    "2차 대전 전차 디자인의 기술적 선도자" - Steven Zaloga et al. (1997:3)


1942년 앞서 취소된 T-34M에서 따온 새 육각형 포탑 디자인이 양산돼 협소한 내부공간이 개선되고 전방위 관측이 가능한 지휘관용 큐폴라가 장비됐다. 고무 공급부족으로 철로 테를 두른 주행륜이 더해지고 개선된 5단 변속기와 엔진에 새 클러치가 추가됐다.

1942년 독일전차가 우수한 75mm 장長포신 포를 장비하자 모로조프설계국은 진보된 T-43 전차의 설계프로젝트를 개시, 장갑을 강화하고, 토숀바 현가장치, 3인용 포탑 등 현대적 특징을 더하려 했다. 기존의 85mm 대공포는 독일의 신형전차에 효과적인 게 입증되고 전차에 장비 가능했다. 불행하게도 T-43의 중장갑도 타이거전차의 88mm 포를 막을 수 없었으며 기동성은 85mm포를 장착 안한 상태에서도 T-34에 뒤쳐졌다. T-34와 70% 이상의 부품을 공유했지만 생산위원회는 생산을 대폭 지연시킬 것을 요구했다.

T-43(오른쪽)과 T-34 1943년형

결국  T-43이 취소되고, 소련 지휘부는 포탑 링을 기존의 1,425mm에서 1,600mm로 늘린 새 모델의 T-34를 생산하도록 공장 설비를 바꾸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T-43의 포탑은 급히 크라스노예 소르모포 공장에서 케리초프에 의해 T-34에 맞게 개조됐다. 그 결과물인 T-34-85 전차는 우수한 전차포와 무전기가 장비된 3인용 포탑( 그전 형은 동체에 무전기를 장비 )을 갖췄다. 이제 지휘관은 지휘에만 전념, 포의 운용은 사수와 장전수에게 맡겨졌다. 또 하나, 매우 중대한 전술장비는 Mk.4 관측전망경인데 대전 전의 영국과 폴란드 장비를 카피한 것으로 포탑상판에 장비돼 지휘관이 전방위관측을 할 수 있었다.

T-34-85는 간단히 말해 익숙하고 성공적인 토대가 된 T-34의 화력강화형이다. 더욱 강력한 85mm포는 독일 75mm포 및 88mm포에 대적할 무기였다. 또한 완전히 새로운 5단변속기와 신형포탑 디자인을 도입했다. 초기설계안은 충분한 기동성에 중장갑 관통력을 가진 전차포를 장비하는 것이었다. 속도는 화력과 승무원 방호에 비해서는 덜 중요했다. 붉은군대는 독일 판터와 티거 전차에 직접 맞설 수 있는 무기체계를 찾았던 것이다. 85mm 대공포는 이미 KV-85 등에서 실증되어 주포 선택은 쉬웠다. 자위용으로 2정의 기관총을 포탑에 주포와 동축으로 1정, 차체 전면에 1정을 장비했다.

신형전차가 양산을 개시하는 동안 전체생산량은 약간 떨어졌다. T-34-85도 판터전차의 상대는 못 됐지만 개선된 화력은 전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새 것을 만들기보다 기존설계를 개선하는 결정은 소련이 대량의 탱크를 생산케 했는데 질적인 차이는 무의미하다고 봤다. 1944년 3월 독일육군은 고작 304량의 판터를 동부전선에서 운용한 반면, 소련은 T-34-85의 월생산만 1,200 량에 달했다.

폴란드군 마킹을 한 T-34-85


경제성


T-34-85의 생산비용은 1943년 형보다 원래 30% 높은 164,000루블이었다. 그러나 1945년까지 142,000 루블로 낮아졌다. 전쟁 기간을 통해 1941년의 270,000 루블에서 생산 비용은 거의 절반으로 감소했지만 최고속도는 거의 같고 주포의 장갑관통력과 포탑의 전면장갑의 두께는 거의 두배가 되었다.

생산량

1945년 말까지, 57,000 량 이상의 T-34가 생산됐다: 34,780량의 원조 T-34/76형이 1940-44년에 생산되고 22,599량의 85mm포 장비형 T-34-85가 1944-45년에 생산됐다. 단일 최대생산 공장은 제 183 공장의 28,952량의 T-34/76형과 T-34-85형이 1941-45년에 생산됐다. 2번째는 고리키의 제 112 공장으로 동 시기에 12,604량을 생산했다. 1946년 종전후 2,701 량의 T-34가 생산되면서 대량생산은 종료됐다. 폴란드(1951-55)와 체코슬로바키아(1951-58)에서 라이센스 생산으로 1956년까지 각각 1,380량과 3,185량의 T-34-85를 생산했다. 뒤에 T-54/55와 T-72도 소련위성국에서 생산됐다. 1960년대말 소련의 T-34-85는 수출과 예비용으로 현대화 프로그램을 받아(T-34-85M), T-54/55의 구동장치로 교체, 강화됐다.

총 84,070량의 T-34가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T-34 차체를 이용한 13,170의 자주포도 생산됐다. 이들 중 일부는 전세계에 걸친 냉전시기의 여러 분쟁 중에 파괴되었다.

제식 명칭

독일 정보기관은 2차 대전 중 두 개의 주요 모델을 T-34/76과 T-34-85(또는 T-34/85)로 구분했는데 마이너 모델은 T-34/76A와 같이 알파벳을 덧 붙여 표기했다. 이러한 명명법은 서구에서 특히 문학작품에서 널리 쓰였다.

붉은군대는 생산형을 명명하는 일관된 정책이 없었다. 그러나 최소한 1980년대부터 많은 학술 자료에서 소련식 명명법을 사용했다. T-34 그리고 T-34-85. 마이너 모델은 생산년도에 따라 T-34 1940년형( T-34 Model 1940)과 같이 명명했다. 이런 명명 시스템이 이 글에도 쓰였다.

일부 러시아 역사가는 다른 이름을 쓰는데 첫 T-34를 T-34 1940년형 대신 T-34 1939년형이라 부르고 초기형 포탑과 F-34포를 장비한 모든 T-34를,1941년형과 1942년형 대신 1941년형이라 부른다. 육각형 포탑 형은 1943년형 대신 1942년형이라 부른다.

핀란드 사람들은 T-34를 바다오리를 닮았다 해서 T-34 '소트카'(역주: 핀란드어로 바다오리를 뜻하는 듯)라고 부른다. 옆 실루엣이 오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T-34-85형은 '장포신 소트카 long-barreled Sotka'로 부른다

T-34(독일 명칭 T-34/76)는 76.2mm포를 장비한 원조 형이다.

  •     1940년형 (T-34/76A) - 2인 포탑에 임시적인 L-11 포를 장비.
  •     1941년형 (T-34/76B) - 강화된 장갑과 우월한 F-34포를 장비한 주요 생산 형.
  •     1942년형 (T-34/76C) - 여러가지 작은 제조 공정 상의 개량을 가한 형.
  •     1943년형 (T-34/76D, E, and F) - 새로운 육각형 주조 포탑, 독일군이 붙이 별명이 '미키 마우스' - 포탑의 동그란 해치 두개를 열면 미키 마우스처럼 보인다. 주요 생산 형은 새로운 지휘관 큐폴라를 장비했다.
  •     T-34/57 -  324량 이하 소량 생산. 1941년, 1943-44년에 ZiS-4 혹은 ZIS-4M 고속 57mm포를 장비 전차 사냥용으로 생산. 일부가 모스크바 전투에 선보였다.

육각형 포탑이 특징이 일명 '미키 마우스' T-34 1943년형

T-34-85는 3인용 포탑에 장 포신 85mm포를 장비한 주요한 개량형이다.

  •     1943년형 - D-5T 85mm포를 장비하고 1944 2월-3월의 단기간만 생산.
  •     1944년형 - 주요 생산형. 단순화된 ZiS-S-53 85 mm포, 동체에서 포탑으로 옮겨진 무전기. 향상된 레이아웃. 사수 gunner용 신형 관측구.

다양한 기술적 개선이 T-34-85에 가해져, 1960년과 1969년에 주요 재생작업이 있었다. 모든 T-34-85는 외관상 매우 비슷하다.

T-34-85의 제원
전체 길이      8.15 m
차체 길이      6.10 m ( 포 제외)
너비     3.00 m
높이     2.72 m
중량     32 t
현가방식 크리스티 식
속도     55 km/h(도로)
    30 km/h(야지)
행동거리     360 km
주포     85mm ZiS-S-53(56발)
부무장     7.62mmDT기관총×2(1890발)
장갑     
포탑
    전면90 mm(곡면)
    측명75mm 경사20°
    후면 52mm 경사10°
차체
    전면45mm 경사60°
    측면45mm 경사50°
    후면45mm 경사47°
    상면20mm
엔진      4행정V형 12기통 수냉식 디젤 엔진 500 마력
승무원     5명

보다 진보된 T-34을 개발하려던 대전 전의 프로젝트가 1944년에 재개돼 T-44로 이어졌다. 새 전차는 T-34-85에 기반한 포탑을 가졌지만 동체는 토션바현가장치와 가로로 장착된 엔진을 장비했다. T-34-85보다 적에게 탐지되는 윤곽이 작고 생산하기에 더 단순했다. 150량에서 200량 가량이 종전 전에 생산됐다. 동력장치를 일부 개선하고 새 포탑과 전차포를 장비한 것이 T-54로 명명돼 1947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널리 수출된 체코슬로바키아 제 T-34-85는 엔진 장비 부위의 왼쪽 뒤의 경사진 사이드 판넬 위의 반半원추형 장갑 페어링으로 쉽게 식별된다.

변형

T-34 변형의 식별은 까다롭기도 한데 포탑 주조, 표면 디테일, 장비 등이 제조공장에 따라 다르다. 생산 중에 추가된 새로운 특징은 구형전차에 덧붙여지기도 했다. 파괴된 전차는 재생돼 때때로 신형장비를 더하고 심지어 새 포탑을 달기도 했다. 일부는 다양한 두께의 증가장갑을 장비, 동체나 포탑에 용접했다. 이렇게 개조된 전차는 '에크라나미'라 불리었다. 칸막이를 붙였다(with screens)는 뜻이다.

초기 1940년 생산형은 10-RT 26E 무전기세트를 장비했으나, 9-RS로 곧 교체되고 SU-100S에도 장비됐다. 1953년부터 T-34-85는 R-113 Granat 무전기세트가 장비됐다.

T-34 차체는 적응력이 높아서 다른 파생차종 즉 구축전차, 지뢰제거장비 등의 토대로 알맞았다. 

기타 T-34 기반 장갑차량

    * 화염 방사 전차 - OT-34와 OT-34-85가 동체의 기관총을 제거하고 화염방사기를 장비했다.
    * PT-34 - 지뢰 제거 전차. T-34 1943년형이나 T-34-85 차체를 주로 사용.
    * 자주포 - 다음 자주포의 차체로 사용됐다.
           SU-122
           SU-85
           SU-100

T-34 차체에 강력한 100mm포를 장비한 SU-100

2차 대전 후 일부 T-34는 122mm 곡사포를 장비해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자주포로 운용됐다.


T-34 기반 지원 차량

대전 중과 최소 1990년대까지 T-34 차체를 이용한 많은 지원차량과 심지어 트랙터, 크레인까지 만들어졌다 대부분 파괴된 전차나 자주포를 이용했다.

  •     가교전차 - 구형 전차를 야전이나 수리시설에서 가교전차로 만들었다. 특수한 도하 작전 시 이들 가교전차는 두 대씩 나란히 물 속에 몰아 넣고 나중에 회수했다.
  •     장갑회수차량 - 2차 대전 중 일부 구형 전차는 포탑링을 덮거나 상부 구조를 더해 장갑회수차량으로 개조됐다. 종전 후 이런 가교전차는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전투 기록

T-34는 독일에 맞선 소련의 반격을 상징한다. 1941년 여름 T-34의 등장은 열등한 소련군을 예상하고 준비해온 독일병사들에게 심리적 충격이었다. 알프레트 요들Alfred Jodl의 일기에 잘 나왔는데, 리가에서 T-34의 기습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T-34는 1941년 당시 모든 독일전차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었다. 그러나 신형전차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예를 들어 엔진은 먼지와 모래 때문에 마모가 심했다. 원래 장착된 포몬 필터는 전적으로 쓸모 없었다. 변속기와 클러치의 기계적 문제도 심각했다. 최소 그해 여름에 손실된 전차 중 절반은 비록 파손된 구형전차를 포함한 것이지만 독일의 화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체결함으로 주저 앉은 것이다. 수리장비도 부족하고 엔진데크에 여분의 트랜스미션 없이 전선으로 간 것도 초기형에선 드물지 않았다. 기계적 문제는 결국 바로잡혔다.

1941-42년 겨울 T-34는 다시 한번 독일전차를 압도했는데 진흙탕이나 눈 속에서도 깊이 빠지지 않고 기동할 수는 있는 능력 덕분이었다. T-34가 통과할 수 있는 지형을 독일전차는 움직일 수 없었다. 독일 4호전차는 열등한 현가장치와 좁은 트랙 때문에 깊은 진창이나 눈에 빠지기 쉬웠다.

독일보병은 그 당시 대부분 Pak 37mm 대전차포로 무장했는데 T-34를 저지하는데 아무 효과가 없었다. 이미 프랑스전선에서도 Pak 36은 "도어 나커 door knocker"로 불릴 정도로 경전차 외에는 쓸모가 없었지만 포병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은 톡톡히 했다. 말할 것도 없이 동부전선에서 이 포를 장비한 병사들은 소련 전차와 싸우는데 심각하게 화력이 떨어지는 걸 발견했으며 종종 보다 중화력의 견인포에 의지해야 했다. Pak 38 대전차포는 보유량이 적었지만 효과적이었고,신형이며 중화력의 Pak 40과 특히 88mm 대공포는 쉽게 운반하기 어려웠다. 소련 승무원들의 낮은 자질과 사령관들의 어리석음 그리고 초기의 분 운용만이 T-34의 더욱 큰 성공을 어렵게 했다.

1942년과 1943년 붉은군대는 1941년의 손실의 재건과 전술능력을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T-34의 생산은 급증했으나 설계는 동결되었다. 생산속도를 높일 수 있는 개선안만 채택됐다. 소련설계자들은 기존설계의 특정한 결점을 수정할 필요를 잘 알고 있었지만 생산비용을 치솟게 하고 시간을 지연할 수 있는 개선안은 구현될 수 없었다. 1943년 T-34의 생산량은 치솟아 매월 평균 1,300량에 달해 독일에 비해 훨씬 높았다. 그러나 열등한 전술이 지속되어 소련군의 손실이 독일의 손실보다 훨씬 많았다.

프로호로프카 전투에서 파괴된 T-34 초기형

전장에 투입되는 T-34의 압도적 물량과 중화기에 대한 지속적 수요로 독일군은 고속의 PaK 40 75mm포를 견인포 및 자주포 형태로 대량으로 야전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1943년까지 대전차부대는 이런 구성이 대부분이었다. 1942년 말부터 1943년 중반까지 독일군은 강력한 티거 중전차와 판터 중형전차를 실전배치해 T-34의 개량형의 필요성을 높였다. 이러한 개량형은 두 가지 유명한 형태로 출현했다:  1943년 출현한 장갑강화형은 연료량의 증대, 신뢰성 제고, 개량된 포탑을 가졌다. 1944년형은 신형포탑에 85 mm ZiS AA/AT 대공포의 일종을 장비했다. 이 최종형은 기존의 76.2mm F-34포에 비해 화력이 현저히 강화됐으며 결국 T-34가 간절히 원하던 공격능력을 부여했다.

종전 마지막까지 개선된 소련군 전술도 독일에 비해 여전히 열등했지만, 붉은군대의 작전 및 전략 능력의 성장과 대량의 전차는 손실비율을 낮추는데 도움이 됐다. 1944년 초기의 T-34-85는 독일 4호전차나 3호전차에 비해 장갑과 기동성이 뛰어났지만 판터전차에겐 화력이나 장갑방호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소련군에게 다행이지만 판터전차는 T-34보다 훨씬 수가 적었으며 T-34 전차도 노련한 승무원과 전술적 상황에 따라서는 균형을 뒤집을 만큼 뛰어났다.

독일 전차판터의 기동성은 서류 상으로 뛰어나지만 전투는 서류 위에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판터가 T-34보다 빠른 속도를 내려면 7단 기어를 써야 했는데 그런 상황은 전투 중 드물고 더 전형적인 상황에서 각 전차는 3단 기어를 쓰곤 했는데 이 경우 T-34가 2배 더 빨랐다. 또한 고장이 잦은 구동장치는 판터에 장애를 안겼다. 반면 소련 기갑 부대의 경우에, 니켈 함도가 낮은 재질이 관통이 안 되고 튕겨나가는 포탄의 주 원인이었다. 판터는 T-34 뿐 아니라 SU 시리즈, 전술공군, 전차저격 보병들, 지뢰, 대전차포 등에 시달렸다. 반면 T-34는 수적인 우위에 더해 재빨리 이동하고 자체 엔진의 힘만으로 결정적 지점으로 대량으로 집중해 작전상의 전투를 이길 수 있었다. 1943-1945년 동부전선에서 독일은 전술의 우위를 과시하며 개별 전술적 전투에서 종종 승리를, 심지어 1945년에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T-34는 소련의 작전/전술적 요구에 부합하여 최소의 자원으로 빠르게 생산하여 급속히 전개하고 기동성과 신뢰성이 탁월했다.

판터는 효과적이고 위협적이며 과시적인 매우 인상적인 통계적 이론적 능력을 갖춘 전형적 독일전차였지만 작전무기로는 실패작이었으니 약화된 경제에 생산부담이 과중하고 작전상 전개에 심각한 제한이 설계상에 있었다. 판터는 전차 대 전차 전투에서 최고였지만 독일이 전술과 전략에서 수세에 몰린 시점에서 공세임무는 드물었으며 방어시에는 4호돌격포 같은 구축전차가 더욱 효과나 경비 면에서 유리했다. 전차의 임무는 소련군의 침투공격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이런 임무에는 좋은 전차포(판터 - Yes), 뛰어난 전술적 기동성(판터 - Yes), 뛰어난 전략적 기동성(판터 - No), 뛰어난 연비(판터 - No No No; 연비가 엉망이니 장거리 전략적 기동도 힘들겠군요. 고장 나기 쉬운 동력 전달 장치도 한몫)가 필요했고 손상되고 주저앉은 전차는 포기했기에 충분한 숫자 또한 필요했지만 판터는 아니었다.

소련이나 미국은 대전차 전투가 아닌 전차 대 보병 전투에 치중한 독트린을 갖고 있었다. 독트린에 부합한 적당한 전차포를 장착했다. 소련이 개발한 T-34-57, SU-85, SU-100 같은 특정 차량은 구축전차 tank killer였으며 미군 또한 M10 같은 구축전차를 썼다. 영국의 독트린은 전차 대 전차 전투 용과 보병 지원용 전차를 병행하는 것으로 코메트전차와 처칠전차가 이러한 요구사항에 각각 적합했다.

동부전선의 아이러니는, 약한 전차의 전략적 승리이다. 1941년 독일 38톤 전차와 2호 3호 전차가 KV1 소련 전차와 맞붙었다. 소련은 전술과 승무원 숙련도의 부족으로 패한 반면, 독일은 대전차포로 전차를 사냥하고 전차로 적보병을 살상하는 전술로 대성공을 거뒀다. 개전 초기 독일의 제공권도 한몫했다. 1943년 독일은 판터, 티거, 4호 전차 H형 등으로 T-34/76에 맞섰으나 패배했고1944년에는 쾨니히스 티거 등등의 괴수로 T-34-85와 IS-2 전차에 대항했으나 역시 패배했다.

개전 초기, T-34는 소련 전차 장비 수에서 겨우 4%를 차지했으나 종전 시엔 55%에 달했다. 당시 T-34는 구형을 교체하고 대량으로 운용됐지만 5호 판터를 비롯한 신형의 독일 전차들은 성능면에서 앞섰다. 소련의 대전 후기 전차인 이오시프 스탈린 전차도 장갑이나 화력 면에서 T-34를 앞섰다.

T-34와 미군 M-4 셔먼을 자연히 비교하게 되는데 각 전차는 연합군 육군의 기갑부대에서 주력이었다. T-34는 데뷰 당시 대성공을 거둔 반면 셔먼은 1942년 등장 당시 강력한 맞수였다. 두 모델 모두 운용 기간 내내 대대적으로 개선돼 신형포탑과 더 강력한 포를 장비했다. 둘다 생산과 유지가 쉽게 설계돼 일부 성능을 희생했다. 두 전차 모두 독일의 판터나 티거에게 장갑과 화력 면에서 상대가 안됐지만 소련의 IS-2 중전차나 미군의 M-26 퍼싱 중전차는 비교할 만했다.

전차는 전장에서 많은 역할이 기대됐는데 최초에는 보병지원과 돌파였다. 전차 대 전차 역할도 또한 중요하다. 독일전차 생산은 우월하고 복잡한 전차를 상대적으로 소량 생산하는데 그쳐 숫적인 열세를 안겼디. 점진적 개선과 설계의 단순화를 통해 대량의 T-34를 장비하는 소련의 정책은 승전을 이끈 우월한 전략으로 드러났다.

2차 대전 후

T-34는 종전 후 많은 소련위성국에서 사용됐다. 북한군은 1950년 남한침공 당시 120량의 T-34-85를 장비한 완전편제된 여단을 동원했다. 잇달아 투입된 T-34는 남한전선을 깊숙히 돌파했다. M24 채피, M4 셔먼, M26 퍼싱이  UN군 전차로 맞섰다. 북한군 105기갑여단은 남한군 보병과 미군 스미스 부대, M24 경전차에 대해 초기에 성공을 거두었다. 미군이 여전히 사용한 2차대전의 유물 2.36 인치 바주카포는 T-34에 쓸모가 없었는데 사각 지대에 대한 사격도 마찬가지였다. 북한군 T-34는 미 M26 중전차, 지상 공격기, 미보병이 긴급히 미본토에서 공수한 3.5 인치 수퍼바주카포 등이 등장하자 우위를 잃었다. UN군이 신 장비를 동원한 일련의 전투에서 북한군이 그들의 전차를 대량 상실한 1950년 8월에는 유엔군이 우세해졌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은 북한군 보급선을 차단, 북한군 기갑부대와 보병부대는 연료, 탄약, 기타 보급물자가 바닥났다. 그 결과 북한군은 후퇴해야 했으며 많은 T-34와 중화기가 버려졌다. 당시 북한군은 239량의  T-34와 74량의 SU-76 자주포를 잃고 달아났다. 그뒤 북한군 기갑부대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수원의 한 다리 위에서 UN공군에 파괴된 북한군 T-34-85 전차

핀란드육군은 T-34를 2차대전 중 소련군에게서 탈취하고 독일으로부터 사 들이고 종전 후에도 1960년대까지 사들였다. 그들은 핀란드나 서구 장비로 T-34의 광학 장비 등을 개선했다.

동유럽 여러 나라(뒤에 바르사바조약국)에 장비된 T-34는 1953년 7월 17의 동독봉기, 1956년의 헝가리봉기를 진압하는데 동원됐다. 중동전, 베트남전, 최근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전에도 참전했다. 1995년 5월 세르비아의 T-34 1량이 유엔평화유지군 전초기지를 공격해 영국군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 크로아티아는 25 내지 30 량의 T-34를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물려받았으나 퇴역시켰다. 코소보전쟁 중 유고슬라비아군은 T-34를 NATO공군을 유인하는 미끼로 썼다.  T-34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산발적으로 쓰였다 (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당시 결성된 연합군에 대해서도 T-34가 쓰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도 1990년대 초기까지 T-34를 보유했다. 앙골라, 소말리아 등의 몇몇 아프리카국가들도 최근까지 사용했다. 쿠바의 T-34도 아프리카에서 쓰였다.

1974년 7월 15일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인 대주교 마카리오스를 축출하기 위해 그리스정부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에 키프로스 국가방위군은 35량 가량의 T-34-85를 동원했다. 이들 T-34는 1974년 7월 8월에 일어난 터키의 침공에 맞서 격전을 치뤘는데 주요전투는 1974년 7월 20일의 키오넬리와 카이레니아 전투이다.

중국은 T-34를 58 식 전차로 제식 명칭을 부여하고 생산했지만 곧 59 식 전차가 나오자 중단했다. 소량의 T-34가 중국에서 목격됐는데 화재진압 차량으로 개조됐다.

기타 국가

2차 대전 후 다음 40 개국이 T-34를 장비했다. 1996년 기준으로 그 중 27개국에서 여전히 사용됐다(*표로 표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 알바니아*
  • 오스트리아
  • 불가리아*
  • 키프로스
  • 체코슬로바키아
  • 쿠바
  • 핀란드
  • 동독
  • 헝가리
  • 폴란드
  • 루마니아*
  • 소련
  • 유고슬라비아*

중동과 아시아

  • 아프가니스탄*
  • 이집트*
  • 인도네시아
  • 이라크
  • 라오스
  • 레바논*
  • 리비아*
  • 몽골*
  • 북한*
  • 중국*
  • 시리아*
  • 남예멘*
  • 북예멘*

아프리카

  • 알제리*
  • 앙골라*
  • 콩고 공화국*
  • 적도 기니*
  • 에티오피아*
  • 기니*
  • 기니비사우*
  • 말리*
  • 모잠비크*
  • 소말리아*
  • 수단&
  • 토고*
  • 짐바브웨*

전투 효과

    "세계 최고의 전차" - 독일 육군원수 파울 루드비히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리델 하트 1951)

전쟁 초기 T-34의 전투효과는 장갑, 화력, 기동성의 '하드' 팩터와 승무원 거주성, 관측도구, 승무원업무 레이아웃 같은 '소프트' 팩터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T-34는 하드팩터가 걸출하고 소프트팩터가 형편없다.

1941년 두껍고 경사진 장갑의 T-34는 견인되는 88mm 대공포를 제외한 모든 독일 대전차병기를, 일반전투  거리 안에서 파괴할 수 있었다. 1942년 중반부터 개선된 독일병기에 취약해져 대전 내내 그런 상태였지만 미군 M4 셔먼이나 독일 4호전차 등의 동급 전차보다 장갑방호는 동등하거나 우세했다.

화력 면에서 T-34의 76mm포는 대전차포탄을 쏠 경우 1941년 시점의 모든 독일전차를 쉽게 관통했다. 이 포는 또한 적당한 고폭탄high explosive round을 쏠 수 있었다. 1943년이 되자 76mm포는 판터의 전면장갑을 관통할 수 없었으며 판터의 장포신 75mm포와 티거의 88mm포의 유효 사거리보다 떨어졌다. 1944년의 85mm포의 도입에도 T-34-85의 화력이 열세였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판터나 티거를 관통할 수 있었다.

기동성 면에서 T-34의 넓은 트랙과 훌륭한 현가장치와 큰 엔진은 비교할 수 없는 야지 기동성을 부여했다. 1세대의 독일전차는 따라 잡을 수 없었다.

T-34-85의 포탑. 전 방위 관측이 가능한 지휘관 용 큐폴라가 장비됐다.

인간공학 측면에서 T-34는 전쟁기간 중의 몇가지 개선에도 불구하고 형편없었다. 76mm포 장비형은 전부 다 비좁은 2인용 포탑 배치 때문에 크게 시달렸다. 지휘관의 전장시야도 엉망이었다; 앞으로 열리는 햇치 때문에 지휘관은 좁은 관측구와 전망경으로 관측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주포사격도 해야 해서 업무가 과다했다.  대조적으로 당시의 대부분의 독일, 영국, 미국의 중형전차는 훨씬 뛰어난 3인용 포탑을 가져 지휘관, 사수, 장전수가 배치됐다. 3인용 포탑은 지휘관이 포의 장전 같은 개별임무를 할 필요 없이 승무원들을 이끌고 협동시키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점이 승무원의 효율을 엄청나게 높였다. 종전 전에 이런 문제가 인식돼 T-34-85에서 교정됐다.  많은 독일 지휘관들은 좌석을 올려 전방위 시야를 확보하여 헤드업head-up으로 싸우길 선호했다. 76mm포 장비 T-34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T-34-85의 포탑은 지휘관의 큐폴라( T-34 1943년형을 통해 일부 먼저 도입됐다)로 전방위 관측이 가능했다.

소련군 T-34-85

운전병의 시야도 불량했다. 전술적으로 운전병이 지형을 유리하게 이용할 능력을 저하시켰는데 지형의 굴곡을 잘 볼 수 없고 다른 일부 전차들이 제공하는 넓은 시야가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전수도 포탑 바스킷( 포탑이 돌 때 따라 도는 회전 판의 일종)이 없어서 고역을 치뤘다. 이런 문제는 다른 많은 전차에도 있었는데 미군 M3 스튜어트 경전차도 마찬가지다. T-34의 포탑 밑의 바닥은 작은 금속 상자에 넣은 탄약이 쌓여 고무 매트로 덮였다. 전투 구획 측면의 선반에 9발의 미리 준비된 포탄이 채워졌다.  전투 중에 이 9발이 다 소진되면 마루상자에서 추가탄약을 끄집어내야 했는데 그 결과 쓰레기와 깔개가 마루바닥을 어지럽혔다. 이런 환경이 승무원을 괴롭히고 전투수행능력을 깎아먹었다.

운전수 햇치로 들여다 본 T-34-85 전차의 내부. 탄약 상자가 바닥에 쌓여 있고 포탑 바스킷이 없어 장전수가 서서 작업해야  했다. 앞은 운전석이다.

전장에서 T-34의 초기 충격효과를 떨어뜨린 다른 중요요소는 스탈린의 1930년대 장교 대숙청의 결과인 리더십, 전차 전술, 승무원 훈련도의 불량이었으며 1941년의 붉은군대의 참패 와중에 손실된 최고 숙련인원의 손실에 의해 더욱 악화됐다. 많은 승무원들이 기초군사훈련과 72시간의 강의만 받고 전투에 투입됐다. 이러한 문제점은 T-34의 열악한 인체공학 측면과 개전초기 무전장비의 결여에 의해 더욱 악화되어 특히 전장에서 전차 협동전술이 불가능했다. 독일전차 승무원들은 소련전차 부대가 경직된 대형으로 공격하고 지형의 잇점을 거의 살리지 못하는 걸 알아챘다. 1943-44년 사이에 이런 문제점은 크게 개선됐지만 독일의 숙련도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었다.

상징이 된 전차

수백량의 T-34가 소련 권 국가의 전쟁 기념물로 쓰였다.

동독의 도시 칼-마르크스-슈타트의 T-34-85 전차 기념물은 1980년 폭탄공격의 표적이 되었지만 차체에는 작은 손실만 입히고 주변 유리창만 깨뜨렸다. 폭탄을 터뜨린 요제프 크나이펠은 바우쩬에 종신 수감되었지만 1987년 서독정부와의 협상으로 석방되었다. 공산통치의 상징에 대한 이 공격은 정권에 대한 몇 안되는 잘 알려진 폭탄 공격으로 남았다.  1990년 독일통일 후 이 탱크는 잉골슈타트의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프라하에 전시된 소련전차 승무원 조형물 위에 놓여진 또 다른 전차는 심각한 논쟁의 촛점이었다. 1945년 5월 프라하에 들어온 최초의 소련전차인 소련장교 곤차렌코의 T-34-85를 기념할 의도였으나 실제로는 IS-2m 중전차가 놓였다. 많은 프라하 시민에게 이 전차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끝장낸 소련의 침공을 상징하기도 했다. 1991년 이 전차는 예술가 다비트 체르니 David Černý에 의해 분홍색으로 채색되어 공공에 전시되었다가 결국 군사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의 전쟁 기념물의 T-34-85 전차

예전에 분홍색으로 채색된 또 다른 T-34는 런던의 만델라 거리 전차이다.

"네 명의 전차 승무원과 개 한 마리"는 1960년대 매우 성공했던 폴란드의 텔리비전 전쟁 연속극이었다. 그 자신 붉은군대 지원병이었던 저명한 폴란드 작가 야누시 프시마노프스키  Janusz Przymanowski (1922–98)의 소설이 원작인데 102 번 T-34를 폴란드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다른 소련권 국가에도 잘 받아들여졌는데 놀랍게도 동독도 포함됐다. 21세기 초 이 흑백 드라마의 재방송도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T-34 전차의 이례적 사용에 대한 뉴스가 2006년 10월 23일 부다페스트로부터 들어왔다.  주르차니 페렌츠 Ferenc Gyurcsány 내각을 둘러싼 한달여에 걸친 위기가 1956년 헝가리혁명 50주년 공식기념식 중에 절정에 달했다. 시위자들이 기념물로 서 있던 비무장 상태의 T-34 1량을 움직이는데 성공하여 폭동진압 경찰을 향해 사용했다. 수백미터를 달린 전차는 연료부족으로 섰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중요성

    "이 전차가 남긴 인상은 전 세계에 걸친 전차 설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 존 밀섬(1971)

T-34는 2차 대전 중 가장 중요한 병기체계에 속했다. 1940년 첫 등장부터 세계최고의 전차설계로 드러났다. 전쟁 중반에 T-34는 더 이상 기술적으로 우수하지 못했지만 전투에서 여전히 효과적이었다.

개선된 T-34-85는 전쟁종료까지 거침없는 생산을 통해 소련군 표준 중형전차로 남았다. T-34에 맞서 독일이 완전히 새롭고 매우 비싸고 복잡한 2세대 전차를 도입한 결과 전차 생산속도가 대폭 저하되어 소련군에게 전차수량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내줬다. 판터의 총생산이 6,557량, 티거의 경우 2,027량에 불과했지만 T-34-85형 한가지만 22,559량에 달했다. T-34는 소련군이 사용하던 대부분의 경전차, 중형전차, 중전차를 대체했다. 그 발달형은 T-44, T-54/55로 이어져 1981년까지 생산되고 아직도 사용 중이다.

생존 차량

아직도 수백량의 T-34가 살아남아 있다. 대부분의 중요 군사박물관에 남아 있으며 수백 량이 전쟁기념물로 쓰인다. 많은 차량이 개인소유이며 무장을 제거한 주행가능 차량은 미화 2만 달러에서 4만 달러에 매매된다.

T-34의 내구성은 최근의 복원작업을 통해서 두드러진다. 2000년 1량의 T-34 1943년형이 56년간 에스토니아의 습지에 빠져 있다가 발굴됐다 이 전차는 후퇴하던 독일군이 포획해 쓰다가 연료가 떨어지자 늪에 빠뜨린 것이다. 기름 하나 샌 흔적이나 녹이나 기타 심각한 손상이 기계 장치에 없었다. 엔진은 풀가동이 되게 복원됐다.

또 다른 중요한 생존 T-34 중 하나가 매릴랜드 애버딘의 미육군병기박물관에 있는 1941년형이다. 가장 오래된 생존차량 중 하나이다. 다른 오래된 76MM포 장비 T-34 몇량이 옛 전장에서 복원됐지만 L-11포를 장비한 T-34 1940년형은 생존차량이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서울시의 용산전쟁기념관에도 T-34가 1량 전시돼 있다.(예전에 초등 때 여의도 안보전시관에 전시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전장에 버려진 T-3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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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ghistory 2009/03/14 18:41 # 답글

    만너하임→만네르헤임(스웨덴계 핀란드인의 인명입니다).

    키에프→키예프.
  • ghistory 2009/03/14 18:51 # 답글

    알렉산데르→알렉산드르.

    고르키→고리키?

    바바로사→바르바로사.

    제르친스키→제르진스키(KGB 전신인 체카의 창설자).

    우라→우랄?

    에프게니→예프게니?

    타이거→티거.

    케리체프→케리초프.

    판터→판처?

    Alfred Jodl: 알프레트 요들.

    저체 결함→자체 결함?

    요시프→이오시프.

    업그레이되고 개선돼: 의미중복?
  • 뽀도르 2009/03/14 23:22 #

    영어 철자로 Gorky인데 본토 발음은 고리키인 모양이군요.
    Tiger 전차는 독어 발음을 따서 티거로도 쓰고 타이거로도 씁니다만 저는 호랑이 전차로 하고 싶습니다 ㅋㅋ 현지 발음을 존중해서 티거로 써야겠군요
    Panther 전차는 국내에선 팬더 판터 판테르 등으로 쓰더군요. 독일 현지 발음은 '판터'가 맞는 거 같습니다.

    Kerichev 라서 케리체프로 적었습니다

    Both models were upgraded and improved => 업그레이되고 개선돼
    업그레이드의 오타군요. 둘 다 거의 같은 뜻인데 원문에 저리 나오는군요.



  • ghistory 2009/03/14 23:25 #

    Kerichev의 chev는 chyov일 겁니다. 가령 Khrushchev는 한국어로 '흐루쇼프' 이고, Gorbachev는 고르바초프지요. 이건 러시아어의 로마자식 표기가 단일규칙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혼선입니다.
  • 뽀도르 2009/03/14 23:44 #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ghistory 2009/03/14 18:53 # 답글

    보스니아 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

    키프러스→키프로스.

    몽고→몽골.
  • 뽀도르 2009/03/14 23:31 #

    요새는 몽골로 적는군요. 저희 초등 때는 역시 몽고 ㅋㅋ

  • ghistory 2009/03/14 18:57 # 답글

    칼마르크스타트→칼-마르크스-슈타트(Karl-Marx-Stadt). 1990년 통일 직전에 켐니츠라는 본디 이름으로 돌아감.

    David Černý: 다비트 체르니.

    요세프→요제프.

    일골스타트→잉골슈타트.
  • ghistory 2009/03/14 19:00 # 답글

    Ferenc Gyurcsány→주르차니 페렌츠(헝가리어는 성을 먼저 씀).

    Janusz Przymanowski→야누시 프시마노프스키.
  • 뽀도르 2009/03/14 23:37 #

    헝가리는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 계통이라 그런가요. 우랄 알타이어 학설도 완전히 검증된 건 아니라지만...


  • JOSH 2009/03/14 19:37 # 답글

    후아... 긴 글 잘 보았습니다.
    로스께들의 최종병기... =,=


    > 이게 다 일본어 번역이 국내에 들어온 탓이겠지만
    그거보다는 서양의 원 단어가 Heavy , middle 인 문제가 크긴 하겠죠...
  • 뽀도르 2009/03/14 23:41 #

    손바닥 장 장편 소설과 길 장 장편 소설만큼 성가시지요.

    장편 소설 (長篇小說)
    a novel;a full-length novel
    장편 소설 (掌篇小說)
    a conte 《프》 ;a short story

  • JOSH 2009/03/15 04:25 #

    그래서 제 나름대로는 중전차와 중형전차라고 쓰긴 합니다. ^^;
  • 행인1 2009/03/14 20:51 # 답글

    그나저나 t-34를 화재진압용으로 쓴다니 왠지 모르게 아이러니가...
  • 뽀도르 2009/03/14 23:47 #

    불 지르는 화염 방사 전차로 쓰이는 T-34도 있고 그 불을 끄는 소방 전차로도 쓰인다니 ㅋㅋ


  • 解鳥語 2009/03/14 23:01 # 답글

    북한 전차중에 가장 많은 숫자를(절반이상?) 차지하는게 저 T-34 의 개량형인 T-54 라던데 맞나효? ㅡㅡ;; 북한군은 무슨 살아있는 박물관 부대인감...
  • 뽀도르 2009/03/14 23:50 #

    심지어 구식화된 T-34의 85mm 전차포를 떼어내어 북한 해군 함정에 장비해서 서해 교전에서 우리 해군 함정을 공격하기도 했죠.
  • JOSH 2009/03/15 04:32 #

    외화 아쉬우면 서양 밀리 팬들에게 팔아도 되겠군요.....
  • 계원필경&Zalmi 2009/03/15 01:36 # 답글

    T-34/85는 여러번 전차계의 Top 10의 1위를 차지하기도 한 진정한 전차의 정석을 보여주는 차량이였죠...(1992년 유고전쟁에서도 쓰일 정도니...)
  • 뽀도르 2009/03/15 21:09 #

    이라크 전쟁에서 망신 당한 T-72 같은 전차도 T-34처럼 수적 우위 하에 대량으로 운용된다면 평가가달라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요.
  • 질럿 2009/05/29 11:40 # 답글

    안녕하세요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영어와 일본어 위키에서 번역하신 것이라면 한국어 위키백과로 옮겨보심이 어떨까요?

    http://ko.wikipedia.org/wiki/T-34

    여기를 클릭해서 기여해주시면 좋을것 같아서 추천드려봅니다.
  • 뽀도르 2009/05/30 09:28 #

    넵, 감사합니다.
  • 혁신적인 설계 2014/06/27 20:33 # 삭제 답글

    [NGC]의 TOP 10 TANK에서 1위한 게 T-34 입니다.

    1위의 이유는
    첫째: 역사를 바꾼 땅크
    둘째:혁신적인 설계
    셋째:허걱스런 생산량

    현대 탱크가 갖춰야할 기본개념은 모두 T-34에서 비롯된 것이죠.

    후대에 영향을 크게 끼쳤다면, 그건 성공한 물건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실패한 물건이죠.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항공모함입니다.
    2차대전의 미국 항공모함의 설계가 매우 혁신적이고 탁월했고,
    생산량도 허걱스러웠죠.

    때문에 현대 항공모함은 그때 표준항모(까먹었음)의 후손들입니다.

  • 뽀도르 2014/06/27 23:10 #

    2차대전 당시 미국의 요크타운급 항모를 말씀하시는지도 모르겠네요 일본이 가장 빨리 항모를 도입한 국가 중 하나지만 후대의 항모 설계에 기여한 거는 별로 없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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