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역사] 키프리아누스 역병 역사 잡설

키프리아누스 역병 Plague of Cyprian

키프리아누스 역병은 251년부터 로마를 괴롭힌, 천연두로 추정되는 전염병에 붙여진 이름이다. 270년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쳐, 당시 황제였던 클라디우스 2세 고티쿠스(재위 268-270년)의 생명을 앗았다. 전염병의 결과, 농업과 군대에서 많은 인원 부족이 초래됐다. 초기 기독교 저술가, 성 키프리아누스가 목격하고 기록했기에, 역병의 이름이 되었다.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클라우디우스 ( 재위 268-270년)

당시의 기록

251-266년 사이, 유행의 최고조에 로마 시에서만 하루 5천명이 죽었다고 한다. 키프리아누스의 전기 작가, 집사 폰티우스는 카르타고에서 그 역병에 대해 기록했다.

"그 뒤 그 무서운 역병이 일어나, 증오스런 질병의 엄청난 파괴는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집집마다 미쳤으니, 매일 무수한 사람들을 그들의 집에서 덮쳤다. 모두 벌벌 떨며, 도망가고, 접촉을 피했으며, 마치 이미 역병에 걸려 죽을 게 틀림없는 이를 배척하면 자신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듯이, 사악하게도 병에 걸린 친구들을 신고했다. 그동안 전 도시를 통해,이제 시체도 아닌, 많은 이의 뼈다귀가 나뒹굴었으며, 자기가 죽을 차례도 오리라는 예감에 몸서리치는 행인들의 동정을 샀다. "


14세기 흑사병 유행기에 유태인들을 희생양 삼아 죽였듯이, 카르타고에서도 역병이 유행하자 로마 황제 데키우스의 기독교 박해로 기독교 신자들을 색출했다. 50년 뒤,  기독교로 개종한 북 아프리카 사람인 아르노비우스가 그의 새 종교를 이교도의 (역주: 역병이 기독교 때문이라는) 주장으로부터 변호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 : 사자 먹이로 던져진 기독교 신자들

"기독교 신앙이 세상에 온 뒤 그 역병이 이 땅에 왔다는데, 그리고 그 뒤 숨은 진실이라도 드러났느냐? 그러나 그 역병은, 내 상대에게 말하노니,  그리고 가뭄, 전쟁, 굶주림, 메뚜기, 쥐떼, 우박, 그 밖의, 인간이 가진 것을 해치는 끔찍한 일들은, 신께서 우리에게 내린 것이며, 너희들의 잘못된 행동과 죄에 격노하신 때문이니라"


성 키프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행한 그의 설교에서 비유를 통해 교화했으며, 그의 에세이 '역병에 대해서'에서 질병의 증상을 묘사했다:

"이 시련은, 이제 창자로 와서, 끊임없는 설사로 약해지고, 몸의 힘을 빼앗는다; 골수에서 솟은 불은 목구멍의 상처로 타들어간다; 구토가 계속돼 창자가 진동한다; 눈이 충혈돼 불에 타는 듯하다; 어떤 환자는 발이나, 다른 팔 다리 부위가 썩어들어간다; 노약자부터 불구가 되어버리니, 절룩거리고, 귀가 멀고, 눈이 먼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신념의 증거로 유용하다. 이렇게 많은 파괴와 죽음에 맞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싸우는 정신의 위대함을 보라! 신에게 희망을 갖지 않은 자들과 같이 쓰러지지 않고, 인류가 황폐한 가운데 우뚝 선 숭고함이여! 오히려 이러한 시기에 은혜를 즐기고 맞이하라; 용감히 우리의 신념을 드러내며, 고통을 참으며, 주님께서 걸어가신 좁은 길을 따라 주님께 나아가, 주님의 심판에 따라 주님의 생명과 신념의 보답을 맞이하리라."

역학 Epidemiology

역사가 윌리엄 맥닐은 안토니누스 역병과 그 뒤의 251-270년 간의 키프리아누스 역병은 두 종의 다른 질환이며, 각각 천연두와 홍역이라고 주장한다.  두 역병이 유럽 인구에 끼친 심각한 참화는, 유럽인들이 그 질병을 처음 접했으며, 생존자들에게 면역이 생겼음을 시사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의 연구는 두 유행병 모두 천연두일 것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번역 자료 : http://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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