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역사] 아테네의 역병 역사 잡설

아메리카 원주민의 쇠퇴에 유럽에서 건너온 전염병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포스트에 이어 역사상 큰 영향을 끼친 전염병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오늘은 아테네의 역병에 관한 자료를 번역해봤습니다.


아테네의 역병

아테네역병은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 발발 2년 후 아테네의 승리가 여전히 손에 잡힐 듯한 시점에 도시국가 아테네를 강타한 궤멸적 전염병이다. 아테네의 항구이자 식량과 물자의 원천인 피레우스를 경유해 아테네로 들어온 것으로 믿어진다. 도시국가 스파르타와 기타 동부지중해 연안의 많은 지역도 강타했다. 이 역병은 두번 더 발생했는데 기원전 429년과 기원전 427/6년 겨울이다.

전염병이 창궐한 아테네

스파르타와 동맹국들은 코린트 지역을 제외하고는 육지에 기반한 강국이었는데 거의 무적의 육군을 대규모로 징집할 수 있었다. 페리클레스의 지도 하에 아테네인들은 아테네 성벽 뒤로 후퇴했다. 그들은 우세한 아테네해군이 스파르타수송선을 괴롭히고 보급을 차단하는 동안 스파르타군을 해변에 묶어두려 했다. 불행히도 그러한 전략은 안 그래도 인구가 많은 도시에 아테네 주위의 많은 주민들이 몰려들게 만들었다. 게다가 도시성벽 바깥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더 방호가 잘된 중심지역으로 밀려들었다. 그 결과 아테네는 질병의 온상이 돼버렸다.

투키디데스의 저술

그의 저작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통해 당시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그 전염병이 에티오피아 에서 시작해 이집트와 리비아를 경유, 그리스세계로 들어왔다고 기록했다. 전염병은 인구가 과밀한 도시에서 발생했다. 아테네에서는 아마도 성벽 내 주민 중 1/3을 잃었다. 시체를 태우는 장작더미의 불길이 치솟자 전염을 두려워한 스파르타군이 후퇴했다. 아테네의 유아가 많이 죽고 경험많은 선원들 그리고 지도자 페리클레스도 두번째 유행인 기원전 429년에 사망했다.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네의 지도자는 능력이 모자라고 연약한 인물들이었다.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기원전 415년이 되어서야 비참했던 시칠리아원정을 치룰 만큼 아테네의 인구가 충분히 회복되었다.

페리클레스

현대 역사가들은 역병이 패전의 중대한 요인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지만 패전은 마케도니아의 진격로를 닦은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로마의 차지가 되었다는데에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사회적 영향

아테네역병에 대한 기록들엔 역병의 사회적 영향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투키디데스의 상세한 기록에 따르면 역병의 유행 중에 사회의 도덕관념이 완전히 붕괴됐다. 사회적 종교적 행위에 대해 역병이 가하는 충격은 중세유럽 흑사병의 유행 중에 남겨진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준법정신

투키디데스의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은 역병이 창궐하자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느껴 법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돈을 마구 쓰기 시작했다. 현명한 투자의 결실을 맛 볼 때까지 살지 못하리라 여겼으며 일부 가난한 사람은 친척의 자산을 상속 받아 뜻하지 않게 부자가 되었다. 좋은 평판을 즐길 만큼 오래 살지 못하리라 생각되자 사람들은 명예롭게 살기를 포기했다고도 기록돼 있다.

여성의 역할

역병은 아테네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도 바꾸었다. 여성들은 일시적이나마 아테네관습의 엄격한 속박에서 자유로워졌다. 역병 때문에 아테네인들은 여성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지나이코노모스 gynaikonomos라 불리우는 관리를 임명해야 했다.

환자 치료와 장례

명예로운 행동을 포기한 한 가지 다른 이유는 그 질병이 쉽게 접촉성으로 전염된다는 것이다. 병자를 간호하면 쉽게 전염이 되었다. 이 결과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간호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죽어갔다. 특히 처참한 기록은 아픈 자와 죽은 자가 폭증해서 사람들이 치료 받지 못한 것을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건물 안이나 길 위에 죽어가도록 버려졌으며 시체는 그저 산더미처럼 쌓여 썩어갔으며 집단으로 매장되었다. 시체를 나른 사람은 불타는 화장용 장작 사이를 지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새 시체를 그 위에 올려놓고 물러섰다. 어떤 사람들은 화장용 장작더미를 나중에 자신의 화장에 쓰려고 훔치기도 했다. 역병에서 운 좋게 살아 남은 사람은 면역성이 생겨 나중에 병이 든 사람들을 돌보는 주된 인원이 되었다.

기원전 430년과 426년으로 추정되는 집단매장지와 1000 기의 무덤이 고대아테네의 케라메이코스공동묘지 외곽에서 발견되었다.  집단매장지는 습지대로부터 분리해주는 것으로 보이는 낮은 담으로 둘러쌓였다. 1994-95년의 발굴로 막대기 모양의 그 묘지는 240 구의 유해가 매장돼 있었다. 그 중 최소 10 명은 어린이였다. 묘지 내 시체는 흙으로 구획되지 않고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발굴을 맡은 에피 바지오토풀루-발라바니 Efi Baziotopoulou-Valavani 씨는 " 이 집단묘지는 기념비적 특징은 없다. 우리가 발굴한 것은 보통의 싸구려 매장용 그릇들이었는데 검은 그릇, 작은 빨간 그릇 그리고 기원전 5세기 중반 경의 하얀 오일 플라스크 따위였다. 시체들은 하루이틀 사이에 급히 묻힌 거로 보인다. 이 모든 사실은 이 집단매장이 공황상태에서 아마도 분명히 역병 때문에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라고 보고했다.

종교적 분쟁

역병은 또한 종교분쟁을 불렀다. 역병이 선인이나 악인이나 비슷하게 덮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에게 버림 받았다고 느꼈으며 신을 숭배하기를 거부했다. 종교사원 자체도 크게 비참한 신세가 되었는데 피난민들이 아테네 교외에서 몰려와서 사원에 숙박했기 때문이다. 신전은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로 가득찼다. 아테네인들은 신이 그들을 버리고 스파르타인들을 좋아하는 증거라고 역병을 생각했으며 질병과 의약의 신인 아폴로가 스파르타인들이 전력을 기울여 싸울 때 그들을 위해 싸우리라는 신탁이 나오자 그런 믿음이 더욱 굳어졌다. 앞선 신탁은 이랬다. "도리아인들( 스파르타인들)과 싸우게 되리니 동시에 죽음도 오리라"

투키디데스는 이 같은 생각들에 회의적이었으며 사람들이 미신에 사로잡혔다고 믿었다. 그는 당시의 일반적인 의학 지식인 히포크라테스이론에 의지했으며 직접적 관찰을 통해 증거를 모우려 노력했다. 전염된 시체를 먹은 새나 짐승이 그 결과 죽는 것을 보고 그는 이 질병이 초자연적인 것이라기보다 자연적인 것이라 결론지었다.

역병에 대한 묘사

그 자신 역병을 앓은 투키디데스

투키디데스 자신이 그 질병을 앓았으나 살아남았다. 그래서 그의 전쟁사를 쓰면서 그 질병의 증상을 자세히 적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표면적 원인은 없었다. 그러나 건강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머리부터 심한 고열에 시달렸으며 눈과 목구멍이나 혀 같은 안쪽 장기로 충혈과 염증이 생겨 피가 나고 숨을 쉬면 이상한 악취가 났다"

"뒤따라 재채기가 나고 목이 쉬었으며 통증이 가슴에 미쳤으며 심한 기침이 나게 된다. 복부에 병이 미치면 속이 뒤집어지고 온갖 담즙 같은 것을 토하게 되며 매우 굉장한 통증이 뒤따른다."

"대부분의 경우 헛구역질이 뒤따르는데 격렬한 경련이 있다. 그 경련을 어떤 사람은 금방 멈추고 어떤 사람은 훨씬 뒤에 멈춘다"

"겉보기에 만져서 별로 뜨겁지 않고 그렇게 창백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불그스레하고 검푸르기도 하며 작은 발진과 궤양이 돌발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타들어가서 옷을 입을 수 없고 아무리 가벼운 린넨 옷감조차 걸칠 수 없을 지경이 되고 홀랑 발가벗으려고만 한다.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찬 물에 몸을 던져 넣는 것이다. 방치된 환자 중에는 실제로 그렇게 했는데 참을 수 없는 갈증의 고통 끝에 빗물 탱크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많이 마시건 적게 마시건 (결과는) 아무 차이가 없지만 말이다."

"게다가 쉬거나 잠들 수 없다는 가련한 감정은 그들을 쉬지 않고 괴롭혔다. 심신의 이상이 절정에 달하는 동안 몸은 야위지 않지만몸이 황폐화함에 따라 인내심은 극한까지 요구되었다. 대개 그렇듯이 7일이나 8일째 되는 날 체내의 염증에 굴복하게 되는데 그래도 조금 힘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단계를 지나고 질병이 창자까지 내려오면 심한 궤양이 생기며 심한 설사가 동반하는데 쇠약해진 몸에 치명적이다."

"이상 증상이 머리부터 가라앉게 되고 거기서부터 온 몸으로 경과를 밟는데  치명적이지 않더라도 팔다리에 여전히 그 표지를 남긴다. 은밀한 부위나 손가락 , 발가락이 치유되어도 많은 경우 이들 부위를 상실하게 되며 일부는 눈을 잃는다. 첫번째 회복기에 기억을 모두 상실하기도 하여 그들 자신이나 친구를 못 알아본다."

역병의 원인

역사가들은 이 질병의 정체를 알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 전통적으로 이 역병은 흑사병의 초기유행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알려진 증상과 역학을 재검토한 결과, 다른 설명을 낳았다. 티푸스, 천연두, 홍역, 독성쇼크증후군 등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탄저균을 제안했는데 밀려든 난민이나 가축들에게 묻혀 들어온 흙에서 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최근에 발생한 에볼라 같은 바이스러스성 출혈성발열 질환도 고려 대상이다.

흑사병에 희생된 중세유럽인들

질병의 원인균이 시간이 지나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질병 자체가 지금은 사라진 것일 수 있어 아테네역병의 정확한 성격은 결코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피난민에 의한 인구과밀은 식량 식수의 부족을 부르고 곤충, 이, 쥐, 쓰레기 등의 증가를 부른다. 이런 상황은 하나 이상의 전염병을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하는 과학기술은 새로운 수수께끼를 드러내고 있다.

유행성 발진 티푸스

1999년 1월 메릴랜드대학은 제 5회 연례 의학컨퍼런스를 개최, 아테네역병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그들은 그리스인들과 그들의 정치 군사적 지도자 페리클레스 를 죽인 그 역병이 발진티푸스라고 결론 지었다.  데이빗 듀랙 박사는 "유행성 발진티푸스열이 최고의 설명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 질병은 전쟁이나 궁핍한 시기에 가장 심하게 유행합니다. 사망율이 20%에 달하며 7일 정도 지나 사망을 초래하며 심한 합병증을 때때로 동반하기도 합니다. 손가락과 발가락 끝의 결절 같은 거 말입니다. 아테네역병은 이런 특징이 다 있습니다." 발진티푸스환자는 탈수가 진행되고 쇠약해지며 심혈관계가 붕괴돼 죽게 된다.

이러한 의학적 견해는 투키디데스 연구자이자 번역자인 곰 A. W. Gomme의 견해가 뒷받침한다. 그는 티푸스가 아테네역병의 원인이라고 믿었다. 그의 견해는 그의 기념비적 저작 "투키디데스에 관한 역사적 논평들"에 나오는데 이 저작은 그의 사후에 완결되었다. 아테네학술원 멤버이자 외교관인 안겔로스 블라코스 Angelos Vlachos는 그의 책 투키디데스비평에서 곰의 견해를 지지했다. "오늘날 곰에 따르면 아테네역병의 원인은 티푸스 라는 게 일반적 견해이다"

다른 연구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데 몇가지 불일치 중에서도 투키디데스가 기술한 극적인 위장관계 증상이 티푸스에는 부재하는 것을 지적한다.

장티푸스

다른 대답이 고대그리스 무덤의 사체의 치아에 대한 최근의 DNA 연구결과 나왔다. 아테네대학의 마놀리스 파파그리고라키스 Manolis Papagrigorakis가 수행한 연구에서 장티푸스 원인균과 비슷한 DNA 배열을 발견한 것이다. 장티푸스 증상이 투키디데스의 기록과 비슷한 것이다. 다음을 보자.
 
  • 완만하게 높아지는 39~40도에 달하는 고열
  • 으슬으슬함
  • 심장 박동이 느려짐
  • 쇠약
  • 설사
  • 두통
  • 근육통
  • 식욕상실
  • 변비
  • 복통
  • 일부 환자는 장미진 rose spots이라 불리우는 편평하고 장미빛의 발진
  • 장천공( 창자에 구멍 남 )이나 출혈, 망상, 혼란 같은 극심한 증상도 가능
다른 과학자들은 잇몸에서 뽑아낸 DNA를 사용한 방법상의 오류를 들어 문제를 삼는다. 게다가 이 질환은 개인이나 공중위생불량 상태에서 가장 잘 전염이 되는데 투키디데스가 기술한 것처럼 아프리카를 거쳐 아테네까지 들어오는 아테네역병 같은 광범위한 전염을 일으킬 거 같지 않다는 것이다. (역주: 수인성 질환이 사막을 건너 바다를 건너 아테네까지 그렇게 오기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

DNA 배열에 기반한 확인 방법도 2천년이 넘는 세월을 넘어 병원균이 고고학적 유물에 흔적을 남기겠냐는 의문에 시달린다. RNA 바이러스는 내구성 있는 흔적을 못 남기기 때문에 바이러스성 출혈열바이러스는 현재의 과학 기술로도 테스트해 볼 수 없는 문제도 있다.

번역 자료 출처: http://en.wikipedia.org




덧글

  • 들꽃향기 2009/03/05 19:21 # 답글

    그러고보니 이 '괴질'의 기원을 바라보는 유럽사회의 시각에 오리엔탈리즘이 개입되어 있다는 연구도 있더군요. 예를 들어 모르는 질병은 흑해(혹은 중동)와 같은 외부세계에서 전래되었다고 파악하는 등의 말이죠 ㄷㄷ

    또한 질병이 외부 세계에서 유입되었으리라고만 추정할 수 없는 것이, 실제로 아테네 측이 농성을 기조로 삼으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성안으로 몰려들었고, 갑작스런 인구의 밀집 때문에 병균의 유입 및 위생여건의 열악 등등 내부에서도 질병이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은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 뽀도르 2009/03/05 23:20 #

    나쁜 건 외부 특히 동양에서 유입됐다고 뒤집어 씌운 건지도 모르겠군요 ㅋㅋ

    인구 과밀은 언제나 질병의 온상이죠. 거기다 공중 위생의 불량이 더해진다면...
    '총균쇠'란 책을 읽어보면, 저런 질병의 온상에서 자연적으로 개발된 천연 생물학적 무기들이 유럽인들의 신대륙 정복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정복에 결정적 기여를 했더군요.
  • ghistory 2009/03/06 00:03 # 답글

    펠로폰네수스→펠로폰네소스.
  • 뽀도르 2009/03/06 09:57 #

    이것도 라틴어 그리스 어 표기 차이인가 보군요. 어쩐지 펠로폰네소스가 귀에 익은 거 같군요.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 ghistory 2009/03/06 00:03 # 답글

    사체→시체.

    Manolis Papagrigorakis: 마놀리스 파파그리고라키스.
  • 뽀도르 2009/03/06 10:03 #

    사체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을 아우르기도 하니 시체가 좀 더 명료하겠군요. 통일하지요.
  • ghistory 2009/03/06 00:04 # 답글

    Angelos Vlachos: 안겔로스 블라코스.
  • 뽀도르 2009/03/06 10:41 #

    ch를 k로 읽는군요.
  • ghistory 2009/03/06 00:06 # 답글

    Efi Baziotopoulou-Valavani: 에피 바지오토풀루-발라바니.
  • ghistory 2009/03/06 00:07 # 답글

    이디오피아→이티오피아(에티오피아).
  • 뽀도르 2009/03/06 10:40 #

    제 초등 시절엔 이디오피아로 들은 거 같은데 ㅋㅋ 표준 국어 표기는 현재 에티오피아군요.
  • 행인1 2009/03/06 09:35 # 답글

    당시 의학이랑 위생시설 수준에 갑작스레 인구가 폭증했으니 그걸 생각해본다면 이런 참사는 예견되었던 건지도 모르겠군요.
  • 뽀도르 2009/03/06 10:44 #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이 서구인들에게 정복 당한 원인의 하나가, 저런 독한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의 부재라는데, 아메리카 대륙은 아테네 같은 인구 밀집지가 적어서 독한 놈들을 배양할 기회가 적었다지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