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토 후아레스와 베니토 무솔리니 역사 잡설

베니토 파블로 후아레스 가르시아  Benito Pablo Juárez García ( 1806 - 1872)
어록: Entre los individuos, como entre las naciones, el respeto al derecho ajeno es la paz, 
개인이나 국가나 타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이 평화입니다.

멕시코 최초이자 서반구 최초의 원주민 순 혈통의( 혼혈인 메스티조가 아닌 ) 대통령. 지금도 그 생일이 국경일로 지정된, 멕시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칭송 받고 있는 인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이 분의 이름이 엉뚱한 곳에서 독재자의 이름으로 쓰이게 되었으니...

베니토 무솔리니  Benito Amilcare Andrea Mussolini  (1883- 1945)
어록 : Democracy is beautiful in theory; in practice it is a fallacy.
민주주의 이론 상 훌륭하지만, 실상은 엉망이다.

무솔리니의 부모님이 사회주의자였는데,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베니토'로 작명했다는군요. 일반적인 이탈리아 형식은 Benedetto인데 Benito로. 그러나 그 아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한 희대의 독재자가 되었다는...

자료 원전: http://en.wikipedia.org/



덧글

  • ghistory 2009/03/04 13:55 # 답글

    무솔리니 가문은 무신론자이자 반교권주의자였거든요. 그래서 강경한 반가톨릭 정책을 구사했던 후아레스를 존경했던 겁니다.
  • 뽀도르 2009/03/04 14:34 #

    그랬군요. 후아레스의 정책이 유럽에도 상당한 반향을 부른 모양이군요.
  • ghistory 2009/03/04 18:16 #

    살리나스 집권 때에야(1988년~1994년) 메히코(멕시코)하고 로마교황청이 완전히 화해하고 로마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이 온전한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지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로마가톨릭교회는 탄압을 많이 받았고, 저 직후엔가는 로마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이 심지어 선거때 투표도 못했답니다.
  • ghistory 2009/03/04 18:17 #

    무솔리니도 자신의 독재체제를 확립할 필요를 느껴서 로마교황청과 라테란 종교협약을 체결하는 1929년까지는 무신론자로 자처했고, 사실혼 관계인 부인하고는 혼인신고도 안 했다고 합니다. 1929년 이후에 비로소 정식 결혼식을 교회에서 올리고 아이들에게도 영세를 받게 했지요.
  • ghistory 2009/03/04 18:18 #

    지금도 그렇지만 유럽 가톨릭교회 세력이 꽤 세지 않습니까.
  • 뽀도르 2009/03/04 18:38 #

    후아레스 대통령의 반 가톨릭 정책이 보통 강경한 것이 아니었군요.
  • ghistory 2009/03/04 22:52 #

    전무후무했지요. 공휴일들이던 가톨릭교회 축일들 가운데 과달루페 성모 축일 하나만 빼놓고 다 공휴일 지위를 박탈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프랑스나 에스파냐의 반교권주의자들도 이렇게까지는 못했지요. 한때 멕시코가 프랑스를 능가하는 세속주의 국가였다니까요.
  • ghistory 2009/03/04 13:56 # 답글

    메스티조→메스티소.
  • 뽀도르 2009/03/04 14:41 #

    Mestizo 니까 스페인어 발음으로 메스티소가 맞네요. Juarez는 후아레스라고 올려놓고서는 아래의 Mestizo는 메스티조라고 해놨네요.

    스페인어 시범 고등학교를 다니는 바람에 3년 동안 접한 에스파냐어인데, 실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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