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보는 다른 시각 역사 잡설

페르시아의 9.11

페르시아 전사들 - 불사신 부대로 추정

많은 이란 인들에게, 영화 '300'은 충격적인 새로운 사실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미국 학교 시스템을 거친 사람들에게 영화 <300>의 소재가 된 <테르모필라이 전투>는 <조지 워싱턴>의 벚나무 이야기만큼 친근하다.

테르모필라이 전투는 페르시아 도시 <할리카르낫소스>에 살던 그리스 고전의 저자 <헤로도토스>가 기록했다. 그의 책 <역사>는 근래까지 서양의 민속 설화의 하나로 여겨졌다. 1850년 경에 이르러서야 페르시아 역사에 대한 선도적 권위를 헤로도토스에게 부여했다.

Zack Snyder 감독의 영화 300 중 한 장면

그러나 1850년 이전에 서구는 <페르시아 제국>에 대해 매우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페르시아 역사에 대한 그 당시 서구의 주 원전이 성경과  다른 그리스 인 <크세노폰>이 쓴 <퀴로스 의 교육>(Kyroy paideia : 라틴어 Cyropaedia)이었기 때문이다.

퀴로스 대왕

그러나 <고레스 유년기>가 <퀴로스 대왕>의 군주정치를 찬양했지만 군주제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한 미국과 프랑스 의 피비린내 나는 혁명이 일어난 뒤 19세기 중반 경부터 유럽의 남은 지역에 민주정치를 확산하기 위한 캠페인이 시작되자 헤로도토스는 완벽한 프로파간다 수단이 되었다.

헤로도토스는 민주정 옹호자였기 때문에 재빨리 <역사의 아버지>로 떠받을어졌다. 1850년 경부터 그의 테르모필라이 전투는 페르시아 군주정의 막강한 힘에 맞선 서구의 민주주의 수호 투쟁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팔아먹기 좋게 돼 있다. 300 명의 용감한 스파르타 인들이 2백7십만 명의 사악한 페르시아 인들로부터 서구 민주주의를 구원했다. (역주: 이건 역사가 아니라 판타지 나 신화 정도로 취급해야겠군요) 소수점 수정이 필요한 공상적인 숫자는 별개로 하더라도 이 이상한 이야기는 단지 편견에 찬 역사 이상의 훨씬 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

유명한 판타지 '역사'를 지은 헤로도투스


테르모필라이 전투는 2천년 간 동서를 가르는 단일한 가장 강력한 쐐기가 되었다. 동서가 그 차이를 조화시켜야 할 때 영화 300은 그 쐐기를 더욱 깊게 박은 셈이다.

이 영화에서 제일 거슬리는 것은 역사적 정확성의 결여다 ( 역주: 정확한 역사가 있기는 한 것인지 ). 영화에 묘사된 것은 퀴로스 대왕의 손자이며 영화에서 괴상하게 묘사된 <에스더>의 사랑스런 남편 <크세르크세스>가 아니다.  실제로 그 배역들이 실상과 반대로 돼버리자 페르시아 인을 아프리카 인으로 캐스팅하고 스파르타 인은 푸른 눈의 백인 치펜데일 댄서 로  묘사한 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인종주의의 상투적 표현조차 못된다.

같은 아리안 계통의 백인인 페르시아 국왕이 웬 아프리카 추장처럼 나오냐는...

이 영화에서 정말 괴로운 것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할리우드 의 막강한 파워를 인식하는 것이다. 카우보이 영화 장르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받았던 것과 같은 악몽이다.

'300'을 20 살 전후의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남성들을 겨냥한 가벼운 판타지 정도로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먼저 <알렉산더>, 이제 <300> 다음엔 헤로도토스의 또 다른 뜨거운 고대 페르시아 이야기 <마라톤 전투>.

헤로도토스는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서구인들에 의해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뉴욕 타임즈>라고 예외는 아니다. 여기, 마라톤 전투와 관련해 2004년 4월 20일에 페르시아 인들을 묘사한 걸 봐라.

"당시 발칸 반도부터 히말라야 산맥까지, 알려진 세계의 많은 지역을 노예화한 무자비한 국가의 패배" - William J. Broad,    (NY Times)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시아 침략자들을 무찔러,  유럽을 구하여, 학자들이 폭정에 맞선 자유의 위대한 승리 중 하나라고 부른다. - William J. Broad, (NY Times)    

왜곡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페르시아 인들이 노예를 소유했다는 단 하나의 고고학적 증거도 없다. 노예제는 그리스 사회의 필수 기반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서도 노예제를 인정한다. 한때 이집트와 그리스, 뒤의 로마에서 탈출한 노예들의 천국이었던 페르시아가 노예제로 만들어진 문화에 의해 노예에 굶주린 제국으로 딱지가 붙었다!

헤로도토스의 프로파간다 를 논박하기 어렵게 하는 점은 그가 군데군데 사실을 섞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필사적인 비방이다. 그가 한 가장 터무니 없는 짓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같은 뜻으로 쓴 것이다. 이 두 단어는 그의 책 전반에 걸쳐 실질적으로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서구인들은 그것을 송두리째 받아들인다.

그러나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더 잘 알았다. 그들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진창에 빠뜨린 함정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많은 보호 수단을 구현했다. 심지어 <윈스턴 처칠>도 말하길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시도해본 정치체제를 제외하고는 가장 나쁜 형태이다<<

민주주의는 가장 좋은 정부 형태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건 그 대단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리 장전이다. 페르시아 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여자와 노예, 외국인들은 투표할 권리를 갖지 못한 아테네의 예로 알 수 있듯이 종종 다수에 의한 폭정이 된다.

군주가 다스리는 페르시아 에서 여자들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비교할 수 없는 성의 평등을 향유했으며 노예제는 없었다. 사실은 이렇다. 페르시아 의 권리 장전 덕분에 페르시아 의 군주정이 아테네 의 민주정보다 더 자유로웠다.

그리스 여자 노예

헤로도토스 자신이 페르시아 의 자유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보기이다. 그가 아테네 를 자유의 보루로 묘사했지만 그가 살기를 택한 곳은 페르시아 였다. 또 한편, 실제 아테네 에서 산 크세노폰은 퀴로스 대왕의 군주정치를 부러운 듯이 추억한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가 알려진 세계 대부분을 노예화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헤로도토스는 노예가 아니었다. 그는 제국 전역을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왜 헤로도토스는 그리스 에서 살지 않았을까? 그가 악마로 묘사한 제국 페르시아 가 그에게 제국에 대한 통렬한 보고서를 출판할 참된 자유를 줬기 때문이다. 민주정이건 군주정이건 상관없이 사람들은 신이 부여한 권리가 보호되는 곳에 살고 싶어한다.

이러한 천부적 권리는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퀴로스 대왕이 처음으로 입법했다. 사실, 고대 페르시아 는 미국의 권리 장전의 청사진 역할을 잘 해왔다. 미 헌법을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 과 제임스 매디슨 두 사람 모두, 크세노폰의 퀴로스 대왕을 다룬 저작  <퀴로스의 교육>(Kyroy paideia : 라틴어 Cyropaedia)의 몇몇 사본을 갖고 있었다. ( 역주: 퀴로스 대왕을 다룬 신간이 국내에도 최근 출판되었지요. 그 책은 키루스 대왕으로 표기)

오늘날 미국이 고대 페르시아 와 가장 흡사하다. 만약 페르시아 가 그리스 에서 곤경에 처한 걸 축하하는 게 아니라 공감해야 할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미 합중국이다. 역사상 몇몇 사건을 보면 페르시아 가 그리스 에 맞서듯이 미국이 테러 와 맞선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리스는 수년에 걸쳐 테러리스트 공격을 페르시아 에 가했다. 그들은 페르시아 도시들을 공격하고 페르시아 사원을 방화하고 핵심 무역 루트 를 파괴하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을 약탈했다. 페르시아 내의 반란을 부추겼다. 그러나 가장 용서 받지 못할 것은 그리스 인들이 태연히 조약을 파기하고 페르시아 의 신뢰를 배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페르시아 는 무력에 호소하기보다 친 페르시아 성향의 그리스 정치가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여 그리스 인들을 억제하려 했는데 미국이 대리전을 수행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페르시아 의 분노를 촉발한 사건은 서구에서 거의 언급이 되지 않지만 헤로도토스 도 기록한 것이다.

1971년 페르시아 제국 건국 2500주년에 맞춰 재현돼 행진 중인 고대 페르시아의 불사신 부대


페르시아의 9.11

기원전 498년 아테네 는 페르시아의 주요 도시 <사르디스>에 대해 테러리스트 공격을 가했다. 9.11 사태는 애들 장난처럼 보일 정도다. 아테네 의 <아리스타고라스>는 도시 외곽에 불을 질러 사르디스 주민들을 태워 죽이는 불의 띠를 만들었다. (Herodotus 5:101) > (9625님 주 : 헤로도토스 5권 101에서 확실히 불지른 얘기가 나오기는 하는데...화염때문에 다 타 죽었는지는 애매하군요. 장터로 대피했다는 것은 나옵니다만...) ( 역주 : "기원전 498년 경, 사르디스 는 불타지만 점령되지는 않는다. 도시의 가구들은 짚으로 만들어졌는데 한 채만 불에 타도 아크로폴리스 를 제외하고 전 도시가 불에 타 무너져내렸다. "라는 내용도 나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타 죽었다는 구체적 사실은 언급이 없군요. 불의 띠에 가두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타 죽긴 했으리란 짐작은 가능하겠지만)


사르디스의 폐허

오사마 빈 라덴 이 죽이려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아리스타고라스 의 손에 죽었다. 세계의 대부분이 <알카에다> 에 대한 미국의 복수를 지지했듯이 아테나 에 대한 페르시아 의 응징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 역주: 결국 아테네 도 기원전 480년엔가 페르시아 에 의해 불살라집니다 )

스파르타 인들은 페르시아 의 공격 목표도 아니었다. 그들이 페르시아 의 사신을 죽여서 보편적 가치를 훼손할 때까지는 말이다. 헤로도토스 는 그 사신이 스파르타 의 항복을 요구했다고 기록했으나  실제로는 아마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가 미국이 9.11 후 전 세계에 보낸 메시지와 같은 것을 보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 편이 되든가, 맞서든가"

스파르타 보병

스파르타 는 결사적인 그리스의 지하드 전사들이었다. 어느 면으로 봐도 가차없이 잔인했으며 헬롯 이라 불리는 그리스 노예를 스포츠 삼아 죽이고 도둑질과 강간의 문화를 키우고 영화 '300'의 오프닝 씬에 제대로 나오듯이 유아 살해를 저질렀다.  그들은 민주적이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과두정치다.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서구인들은 여전히 스파르타 를 민주주의의 구세주로 떠받든다.

맞다. 스파르타 인들은 외국의 침략자들에 맞서 싸우다 죽었다. 그러나 무수한 테러리스트 들 또한 그렇게 한다. 그들을 좋은 사람들이라 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들을 좋게 보는 자들은 스파르타 인들에게 열광하는 서구인들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페르시아 는 미국이 그랬듯이 테러 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단지 스파르타 인들이 약자라고 열광하는 것은 오늘날 오사마 빈 라덴 에게 열광하는 것과 같다.

(이 다음 내용은 이란을 홍보할 영화를 만드는 자금을 모우자는 내용 같아서 생략합니다.)

History is no longer written by the victors, it is written by filmmakers.




미국에 사는 이란 이민자가 쓴 글 같은데,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이미 알던 것과 좀 다른 시각으로 페르시아 전쟁을 볼 수 있겠습니다.

http://www.spentaproductions.com/300themovie_the_truth_behind_300.htm을 번역했습니다.

라틴어식 표기는 9625님(http://ninesix.egloos.com/category)의 지적에 따라 바꾸었습니다.


덧글

  • 아노말로칼리스 2009/02/26 17:44 # 답글

    좋은 글이네요.

    멋도 모르고 300을 보러갔다가
    그 후안무치함에 2시간 동안 치를 떨다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 뽀도르 2009/02/27 09:58 #

    요새는 드라마나 영화나 사극이 누구 말대로 사기극 수준이 많지요 -_-;
  • 소독제 2009/02/26 18:18 # 삭제 답글

    그당시 테러리스트였던 그리스가 이정도로 떴으니 후세엔 아랍이 대세가 되고 미국은 페르시아 취급을 받을듯.....
  • 뽀도르 2009/02/27 10:00 #

    미래의 역사는 아무도 모르니, 그런 날이 올지도...
  • 나디르Khan★ 2009/02/27 00:18 # 답글

    흥미로운 포스팅이네요. 히스토리에라는 만화책에서 페르시아 여성이 매우 자주적으로 묘사되는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300은....음 이름만 역사에서 따왔다는 기분으로 봤었죠.....
  • 뽀도르 2009/02/27 10:01 #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보면 되겠군요.
  • 9625 2009/02/27 01:52 # 답글

    제가 보기에 번역과 본문 자체에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보여서 적습니다.


    1. 번역 표기의 문제

    헤로도토스Herodotos(O)
    헤로도투스Herodotus(X) : 라틴어식 표기에서 유래한 영어 이름

    테르모퓔라이(O)
    테르모필라에(X) : 퓔은 필로 적어도 되겠지만 '에'는 맞지 않음.

    할리카르낫소스(O) : 헤로도토스는 '할리카르넷소스'로 적긴 했지만......
    할리카르나수스(X) : 라틴어식 표기.

    퀴로스의 교육(Kyroy paideia) (O) :Kyroy는 Kurou로 표기하기도 함.
    고레스 유년기(Cyropaedia) (X) : '고레스'의 경우는 페르시아어 자신 없어서 언급을 피하겠습니다만...Cyropaedia는 라틴어식 표기.

    기타 그리스어를(사실 그리스라는 말 자체가 라틴어식 표기긴 하지만 광범위하게 받아들이니...) 영어식으로 표기한 대부분의 고유명사 부분.


    2. 퀴로스의 교육에 대한 원문의 오류
    '퀴로스의 교육'은 일종의 '소설'입니다. '역사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크세노폰 또한 밝히고 있는 사실.
    '아나바시스'가 가깝겠지요. '아나바시스'는 크세노폰이 헬라스 용병단의 고문관으로
    따라가서 겪은 일들을 써놓은 것이니...다만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현대에 와서 각광 받은 것은 맞습니다.


    3. 페르시아가 꼭 악마로 그려지는데에 대해서는 조금...?
    "300명의 용감한 스파르타 인들이 2백7십만 명의 사악한 페르시아 인들로부터 서구 민주주의를 구원했다."라고 헤도로토스의 역사를 봐야하는지는...의문의 여지가.


    4. 크세노폰이 꼭 군주제 옹호론자인지는 역시 조금...
    '아나바시스'를 읽어보면 '민주주의적인 헬라스용병대'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가 자주 나오는 것이 사실.


    5.
    "기원전 498년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주요 도시인 사르디스에 대해 테러리스트 공격을 가했다. 9.11 사태는 애들 장난처럼 보일 정도다. 아테네의 아리스타고라스는 도시 외곽에 불을 질러 사르디스 주민들을 태워 죽이는 불의 띠를 만들었다. (Herodotus 5:101)"

    헤로도토스 5권 101에서 확실히 불지른 얘기가 나오기는 하는데...화염때문에 다 타 죽었는지는 애매하군요. 장터로 대피했다는 것은 나옵니다만...

    또한 이 아리스타고라스의 파견은...헤로도토스에게는 별로 긍정적으로 비치지 않았다는
    증거가 5권 97,98절에 나옵니다.


    6. 항복건도...
    7권 133절을 보면, 크세르크세스는 '아테나이와 스파르타'에는 전령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레이오스가 예전에 보낸 적은 있었습니다... 또한 스파르타에서는 페르시아 전령을 그때 학대했다는 이유때문에 길조가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을 뽑아서 '페르시아'에 가서 사형되도록(!) 보냅니다. 그런데 관대한 크세르크세스는 '자기가 비난하는 방법으로 상대를 죽이고 싶지 않다'면서 그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7권 135절)


    7. 노예화?
    노예화라는 것은, '헬라스인들은 자유민'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했습니다. 헬라스인들은 싸울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만 페르시아 인들은 '징집되어서' 싸우는 까닭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크세노폰의 저작에도 나오는데, 헬라스 용병단은 아무튼 용병단이니까 공을 세우기 위해 열심히 싸우지만 페르시아 인들은 그렇지 않은 (징집되었기 때문에 그냥 싸움나면 도망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군주의 권한 측면에서 살펴보면 '절대군주제'와 '다수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과장이 있긴 하지만...


    8. 기타 등등. 아무튼 300은 원작부터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저 글도 제가 보기에는 그다지..
  • 뽀도르 2009/02/27 10:07 #

    자세한 글 감사합니다. 수정에 반영했습니다.

    스파르타나 아테네가 노예제 사회는 맞지만, 전사들은 자유민이 맞겠지요. 스파르타 같은 경우 노예를 보조 병력으로도 쓴 모양인데, 어쨌든 자유민이고 지킬 재산과 권리가 있는 자유민들과, 징집돼 마지 못해 끌려온 병사들과의 전투력의 차이는 크겠지요. 예전에 읽은 '살육과 문명'에도 그 차이에 대해 자세히 썼더군요.
  • 들꽃향기 2009/02/27 02:24 # 답글

    헤로도투스의 '역사'를 단순히 서구중심적 사고로 파악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는 그리스인들과 인도의 장례풍습 일화를 다루면서 최초의 문화상대적 시각을 드러낸 몇 안되는 그리스인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동시대의 그리스인들이 '이오니아 도시들의 노예화'에서 찾았던 것에 비해, 헤로도투스는 '사르디스 습격'을 본격적인 전쟁의 계기로 보고 또한 그 공격을 주도한 밀레투스의 참주 아리스타고라스는 어떤 민주적 가치나 이상에 입각해서가 아닌, 개인적인 권력욕과 의도로 그러한 일을 시작한 것으로 묘사함으로서 엄정성을 나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 뽀도르 2009/02/27 10:08 #

    들어보니 더욱 흥미롭군요. 헤로도토스의 책을 사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만큼 재미 있으려나...
  • 번동아제 2009/02/27 03:53 # 답글

    재미 있는 글이군요. 기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사가 그리스 편향적으로 서술되는 측면이 있다는 비판은 몇번 접해 봤고,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성취에 대해 높게 평가한 글도 많이 봤지만 미국=페르시아를 거론하며 9.11까지 연결한 것은 진짜 독특한 것 같습니다.
  • 뽀도르 2009/02/27 10:12 #

    처음 읽고 참 기발한 발상이라 생각했습니다.
  • 지나가던이 2009/03/02 13:36 # 답글

    들어보니 그리스 사람들도 영화 '300'은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긴다더군요. 사실, 원작 자체가 그냥 땀냄새 물씨나는 마초들의 얘기를 그리고자 한 거라서 고증같은 건 저멀리 날려버린 거라 스파르타도 그리 정확하게 묘사되어있지 않고요.

    이란 사람들이야 그냥 정신나간 영화라고 넘어갈 수밖에. 태국사람들이 '왕과 나'에 짜증나하는 경우랄까요?
  • 뽀도르 2009/03/02 15:50 #

    그리스 사람들까지 그리 생각할 줄이야...
  • 그러나 2009/04/18 23:35 # 삭제 답글

    또한 그러한 다른 관점 조차도 우리는 온전히 맏아 들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한다.
    역사란 시각의 초점을 잠시만 바꿔도 다른 내용이 되어버리기 쉽상이다.
    만약 역사가들이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 한다면, 사람들은 곧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 뽀도르 2009/04/19 10:24 #

    맹자도 말했듯이 성인의 말이라도 다 믿을 수 없다 했지요.

  • 오오 2009/04/20 15:23 # 삭제 답글

    제가 정말 궁금하던 부분에 대한 설명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
  • 뽀도르 2009/04/20 17:22 #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 흐음... 2009/05/13 05:38 # 삭제 답글

    그 뒤 아테네시가 BC 444년(또는 BC 443년)에 건설한 남이탈리아의 식민지 무리오이로 가서 그곳 시민이 되었으며, 거기에서 여생을 마친 것 같다. 라는 인물사전의 말입니디만.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에서 살았나요? 인물사전에서는 페르시라 이야긴 없습니다만. 남이탈리아가 페르시아 영토였을리는 없겠고.
  • 뽀도르 2009/05/13 10:14 #

    지금의 터키 연안 지역의 그리스 식민 도시에서 태어나 그쪽에서 살기도 한 것으로는 나오는데, 그곳이 나중에 페르시아 영토가 된 것인지 모르겠군요.
  • 야기꾼 2009/10/13 04:17 # 답글

    Gate of Fire 라는 테르모퓔레 전투를 소재로 한 소설을 보니, 실제로 300명이 페르시아군과 싸운건 아니더군요. 실제 수치는 4000 대 페르시아군 수준으로 묘사됩니다. 그중 스파르타 정규병이 300, 스파르타 보조병이 700, 인근 지역 그리스 시민군이 3000 정도로 나오더군요.
    내용의 수준을 봐서는 어느정도 고증이 이루어진 작품 같았습니다. ^^;
  • 뽀도르 2009/10/13 09:48 #

    그렇지요. 300명 외의 인력이 더 있었다는 게 정설 같습니다.
  • 시무언 2009/10/13 09:02 # 삭제 답글

    헤로도토스가 나름 공정성을 보이려 한 다른 부분이 바로 페르시아의 국왕들에 대한 묘사인데 사실상의 악역인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인들도 좋게 안본다고 하면서 페르시아 건국의 아버지인 키루스 2세는 매우 좋게 표현하고 있었지요. 즉 페르시아가 그리스에서 박살난게 왕이 영...아니어서라고 얘기하는거죠. 또 초반 1장보면 아테네 인들도 간단한 사기에 속아넘어가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 뽀도르 2009/10/13 09:50 #

    그렇군요. 크세르크세스는 당대에도 평가가 별로였군요.
  • 시무언 2009/10/13 10:34 # 삭제 답글

    아 실수. 대충 말이 페르시아인들은 키루스는 아버지처럼 보고 "캄비세스"는 장인, 다리우스는 상인이라고 했죠. 크세르크세스는 그럭저럭이었던걸로 표현됩니다. 다리우스와 키루스만 생각나서 헷갈렸습니다. 제 실수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크세르크세스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선 이미지가 안좋지만 성경등에선 좋게 나오죠.

    물론 결국 끝은 암살이었지만(...)
  • 2012/03/19 07:4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뽀도르 2012/03/19 12:13 #

    참으로 신선한 시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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