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판 IMF와 이성계의 등장 역사 잡설

서영교 충남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이 국제신문에 기고한 기사인데...


출처: 패권화폐 그 허망한 영광을 경계하라

 

원나라 지폐인 중통원보교초일관문


 

"중국을 지배하던 몽골의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는 제국 전역의 교역 속도를 높이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지폐의 사용을 급격하게 확대시켰다.1260년 중통보초라 불리는 지폐 7만3352정(錠)을 발행했다. 직후 금은의 사매매를 금지했고, 쿠빌라이는 태환준비금을 은으로 확보했다."


--> 미국도 한동안 금괴의 개인적 소유를 금했다지요.

"지폐는 태환준비금 없이는 발행되지 않았고,신용도가 높았다. 물론 세금도 그것으로 받았다. 원나라 정부의 징세가 지속되는 한 지폐는 누구나 필요했고,금은을 주고 지폐를 사야했다."

"1276년에 지폐의 발행량이 100만 정(錠)을 돌파했다. 고려의 마산에서 출정한 2차에 걸친 일본침공(1274, 1281년)과 그해 남송을 병합하면서 치러야 했던 전비가 막대했기 때문이다.원나라는 1281년 일본으로 파병될 고려병사들에게 급료로 모두 3000정, 은으로 환산하면 7만 5000 양(兩)을 주었고, 고려가 동원한 말 값으로 800정(은 2만양) 전함 건조비용으로 3000정(은 7만5000양)을 지불했다(고려사 고려사절요). 고려에 엄청난 원나라 지폐가 흘러들어왔다. "

"공민왕대에 국고에서 원나라 지폐의 보유량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국왕의 연회비와 사찰 조영에도 지폐가 사용될 정도였다. 귀족과 관리 그리고 사찰의 지폐 보유량도 엄청났다. 심지어 민간에서도 지폐는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었다. 하지만 원이 쇠퇴하고 있었다(1356년). 중국의 남쪽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고, 원이 몽골고원으로 쫓겨나자 지폐는 휴지조각이 되었다(1368년). 고려의 왕실과 귀족, 대상인들은 도산했다.남쪽에서 왜구가 몰려와도 파산한 고려는 이를 막지 못했고, 북방의 이성계 군벌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388년 위화도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섰다. 조선이 상업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게된 것도 부도난 지폐에 대한 기억 때문은 아닐까."

지금도 북쪽에 군벌이 있지요... 김 모 장군이라고... -_-;;


덧글

  • 티티 2008/10/28 19:10 # 답글

    재미있는 내용의 글이네요 :)
    반갑습니다~
  • 아야소피아 2009/02/26 21:31 # 답글

    우와~ 색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글이네요~
  • 뽀도르 2009/02/27 10:48 #

    요새 같은 금융 위기에 타산지석 삼을 만한 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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