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엄찬 은별공 우리집 뽀송이

옥자(?)에 자리잡은 은별공

국정이 지루한가 봅니다 

캣타워의 정상을 차지한 단풍이

물을 마시려는 뽀송군



귀염무한 우리집 뽀송이

은별공 귀여움은 어디까지인가


오늘 아침 출근을 방해하는 귀여움. 특별한 포즈도 아니지만 무한히 귀여웠네요.

뽀송이가 더 어려 보입니다 

다리미판 위의 단풍양

뭔가 까칠해 보이는;;;;


고대 중국의 위생관념 역사 잡설


"고대 중국인들은 매우 위생적인 습관을 가졌다. 하나라와 상나라 시절, 신사의 예법에 따르면 하루 다섯번 손을 씻고, 닷새마다 목욕하고, 사흘마다 머리를 감아야 했다. 

당나라 시절, 중국은 목욕탕을 쓰기 시작했는데, 주로 왕실에서 썼지만 평민들도 이용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오염된 물을 통해서 전염이 되는 것을 알아서, 오염을 차단하는 가리개를 만들고, 오늘날과 유사한 모래 필터를 발명했다.

조리되지 않은 음식이 질병을 옮길 수 있음을 잘 알아서, 익히지 않은 음식을 꺼려, 제대로 조리되지 않은 육류를 통해 전파되는 살모넬라나 대장균 등의 박테리아가 일으키는 질병의 위협을 최소화하고자 음식을 날로 먹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QUORA의 글을 번역했는데 글을 올린 이의 이름이 없군요 

https://www.quora.com/What-was-hygiene-like-in-ancient-China

"월건/담벼락총" 군사

Wall gun

"월건/담벼락총"

1930년대 중국 공산군 

월건/담벼락총은 대구경의 활강 머스킷으로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적군의 진격을 분쇄하는 방어용 무기로 쓰였다. 견착으로 쏘기에는 너무 무거워 창가나 그 이름처럼 낮은 담장 위에 거치해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수의 월건은 충격을 흡수하도록 총신에 갈고리 같은 것을 장치했다.   


이들 무기의 일부는 총신을 여러 개 가져서 보통의 단발 월건보다 훨씬 빠르게 연사할 수 있었다. 월건은 17세기초에 인도에서 쓰이고 15세기 미얀마의 기록에는 프롬의 포위된 도시에서 방어군이 이러한 캐논과 머스킷을 쓴 것을 언급하고 있다. 양각대에 거치된 후기의 월건이 몇개 남아 있다. 월건의  
총신은 140센티미터에 달하고 구경은 최소 1인치/2.5센티미터에 이르렀다. 이로써 일반 화승식이나 수발식의 머스킷보다 명중률이 높았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독립전쟁 당시에 월건을 몇 정 노획하여 시험했는데 550미터 밖의 일반 기록용 종이 시트를 명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월건은 당시 일부 포병대의 표준 장비의 하나였다.   

나폴레옹전쟁 기간에 다수의 이들 무기는 총신을 짧게 잘라 나팔총(일종의 산탄총)으로 개조됐다. 납탄을 쏘았는데, 노상강도에 대비하는 역마차의 기수들이나 전함에 승선한 병력이 이용했다. 

후장식 월건을 1819년의 도시방어전에서 프랑스군이 사용했다. 전장식 월건의 경우에도, 뇌관식으로 개량된 것이 1831년과 1842년 도입됐다. 금속 탄환을 쏘는 볼트액션식 월건이 19세기 후반 인도와 중국에서 쓰였다. (역주: 사진에서 보다시피 20세기에도 사용된 사례가 있고, 대장간 같은 데에서 제조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 위키백과를 번역했어요 

제자일에 대하여 군사

제자일(Jezail)은 단순하고 비용에 비해 효과적인 무기로서 흔히 수공예로 만든 전장식 장총신 무기였다. 주로 영국령 인도, 중앙아시아, 그리고 일부 중동 지역에서 과거에 쓰였다.

이들 무기는 수공예로 만든 무기로 구조는 제각각이었다. 극도로 장식이 없고 실용적이던 당시의 전형적 무기와 다르게 제자일은 섬세하게 장식된 개인화기였다.    


제자일은 매우 긴 총신을 가졌다. 그러한 길이의 무기는 유럽에서, 15세 무렵 스페인의 "에스핀가르다(espingarda)"를 예외로, 결코 흔하지 않았지만 켄터키라이플 같은 미국의 소총에서는 보다 일반적이었다. (역주: 조선의 화승총도 총신이 몹시 긴 것들이 있어서, 저격용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병자호란 당시에 청나라 지휘관을 저격해 죽인 조총도 이런 종류였을 거라고 하더군요. 천보총과 같이 명중률과 사거리를 높인 화승총들이 조선 후기에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소총은 사냥에 쓰였고 구경이 .35나 .45처럼 작은 편이었다. 제자일은 군용으로 설계돼 미국의 소총보다 구경이 .50이나 .75처럼 큰 편이었다. 기다란 제자일이 당시의 전형적 머스킷보다 무거워서 더 큰 구경이 가능했다. 9에서 10파운드의 일반 머스킷에 비해서 제자일은 12에서 14파운드에 달했다. 제자일의 무게가 발사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더욱 흡수해, 사수가 받는 반동을 줄였다.   

다수의 제자일은 활강총이지만 일부는 강선총이었다. 강선총과 장총신의 조합으로 당시로서는 이들 무기는 매우 잘 맞았다.  

발사 기구는 보통 매치락이나 플린트락이었다. 플린트락 기구는 복잡하고 만들기 어려워, 다수의 제자일은 노획하거나 파손된 영국군의 브라운베스 머스킷에서 플린트락 기구를 전용했다. 

개머리판은 수제품이고 화려하게 장식하고 다른 머스킷의 개머리판과 달리 눈에 띄게 곡선의 형상이다. 이러한 곡선의 기능은 논란이 있다. 아마도 순전히 장식적이거나, 혹은, 어깨에 밀착하는 일반 머스킷이나 라이플과 달리, 팔 아래에 제자일을 집어넣어 몸에 단단히 밀착하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발사방법에 대한 반론은 화약접시가 위험할만큼 얼굴에 가깝고 조준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말이나 낙타를 탈 때만 이들 라이플을 팔 아래에 넣고 다녔을 것 같다. 곡선 형태가 무게를 줄였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곡선 형태를 취함으로써 무거운 부분을 도려내어 더욱 가볍게 만들면서도 발사 충격을 견뎌내도록 어깨에 밀착하는 것이 가능하게끔 개머리판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 무기는 방아쇠 근처의 개머리판 부분을 잡고서 발사해서, 마치 권총을 쏘듯이 거치 상태에서는 한손으로도 쏠 수 있었다. 제자일은 흔히 '두갈래 거치대'나 가축의 뿔, 금속제 양각대 등에 올려놓고 쏘았다.            

** 영문 위키백과를 일부 번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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