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115회] 황호의 전횡 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第百十五回 詔班師後主信讒 託屯田姜維避禍

제115회 조서를 내려 군사를 되돌린 후주가 참소를 믿고, 둔전을 핑계로 강유가 화를 피하다.

  卻說蜀漢景耀五年,冬十月,大將軍姜維,差人連夜修了棧道,整頓軍糧兵器;又於漢中水路調撥船隻。俱己完備,上表奏後主曰:「臣累出戰,雖未成大功,己挫動魏人心膽;今養兵日久,不戰則懶,懶則致病。況今軍思效死,將思用命。臣如不勝,當受死罪。」後主覽表,猶豫未決。譙周出班奏曰:「臣夜觀天文,見西蜀分野,將星暗而不明。今大將軍又欲出師,此行甚是不利。陛下可降詔止之。」後主曰:「且看此行若何。果然有失,卻當阻之。」譙周再三諫勸不從,乃歸家歎息不已,遂推病不出。

*分野 /분야/ 별자리에 대응하는 영역, 지역, 국가.

한편, 촉한 경요 5년 겨울 10월, 대장군 강유가 사람들을 보내어, 밤을 새워가며 잔도를 수리하고, 군량과 병기를 정돈한다. 또한 한중에서 물길을 따라, 선박을 동원한다. 모두 갖춰지자, 후주에게 표를 올려 아뢴다.

“신이 여러차례 출병, 아직 대공을 이루지 못했으나, 위인들의 심담을 좌동(꺾고 동요시킴)했습니다. 이제 군사를 기른지 오래, 싸우지 않으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병이 생깁니다. 하물며 이제 병사들은 목숨을 버릴 생각이고, 장수들은 황명을 받들 생각입니다. 신이 이기지 못하면, 죽을죄를 받겠습니다.”

후주가 표를 읽고, 머뭇거리며 결단치 못하자, 초주가 자리에서 나와 아뢴다.

“신이 밤에 천문을 살피니, 서촉 ‘분야’에 장성이 어두워 밝지 못합니다. 이제 대장군이 다시 출병하려 하나, 이번 일은 몹시 이롭지 못합니다. 폐하께서 조서를 내려 막으소서.”

후주가 말한다.

“일단 이번 일이 어떻게 되는지 봐야겠소. 과연 잘못된다면 그때 막겠소.”

초주가 두세번 간하지만, 후주가 따르지 않는다. 이에 초주가 귀가해, 탄식해 마지않으며, 병을 핑계로 외출하지 않는다.

  卻說姜維臨興兵,乃問廖化曰:「吾今出師,誓欲拻復中原,當先取何處?」化曰:「連年征伐,軍民不寧;兼魏有鄧艾,足智多謀,非等閒之輩:將軍強欲行難為之事,此化所以不敢專也。」維勃然大怒曰:「昔丞相六出祁山,亦為國也。吾今八次伐魏,豈為一己之私哉?今當先取洮陽。如有逆吾者必斬!」遂留廖化守漢中,自同諸將提兵三十萬,逕取洮陽而來。

*難為 /난위/ 사람들을 어렵게 만듦.
*不敢專也 /불감전야/ 감히 독점할 수 없음. 함부로 마음대로 할 수 없음.

한편, 강유가 출병에 즈음해, 요화에게 묻는다.

“내 이제 군사를 내어, 맹세코 중원을 회복하려는데, 먼저 어디를 취해야겠소?”

“해마다 군사를 내어 정벌하니, 군민이 안녕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위나라 등애는 지모가 뛰어나, 결코 얕잡아볼 이가 아닙니다. 장군께서 기어코 곤란한 일을 강행하시더라도, 이 요화는 감히 함부로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강유가 버럭 크게 노해, 말한다.

“지난날 승상께서 여섯 차례 기산으로 나감도 나라를 위해서였소. 내 이제 여덟 차례 위나라를 정벌함이 어찌 나 한 사람의 사사로움 때문이겠소? 이제 마땅히 ‘조양’을 쳐야겠으니, 나를 거스르는 자, 참하겠소!”

이에 요화를 남겨 한중을 지키라 하고, 강유 스스로 장수들과 군사 3십만을 거느리고, 조양으로 진격한다.

  早有川口人報入祁山寨中。時鄧艾正與司馬望談兵,聞知此信,遂令人哨探,回報蜀兵盡從洮陽而出。司馬望曰:「姜維多計。莫非虛取洮陽而實來取祁山乎?」鄧艾曰:「今姜維實出洮陽也。」望曰:「公何以知之?」艾曰:「向者姜維累出吾有糧之地,今洮陽無糧,維必料吾只守祁山,不守洮陽,故逕取洮陽:如得此城,屯糧積草,結連羌人,以圖久計耳。」

재빨리 ‘천구’에서 기산 영채로 보고가 들어간다. 이때 등애가 마침 사마망과 담병談兵(군사를 의논함)하고 있다가, 이를 듣고 사람들을 시켜 정탐케 하니, 돌아와서 ‘촉나라 군이 모두 조양으로 나온다’고 알린다. 사마망이 말한다.

“강유가 계책을 잘 쓰니, 이는 필시 조양을 취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기산을 취하러 옴이 아니겠소?”

등애가 말한다.

“이번은 강유가 조양으로 나오려 함이 맞소.”

“공께서 어떻게 아시오?”

“지난번 강유가 거듭 군량 저장소를 공격했으나, 이제 조양에 군량이 없소. 강유는 우리가 기산만 지키고, 조양을 지키지 않는다고 여겨, 조양을 취하러 오는 것이오. 조양성을 점령한 뒤, 군량과 말먹이풀을 쌓고, 강인들과 연결, 장기전을 꾀할 따름이오.”

  望曰:「若此,如之奈何?」艾曰:「可盡撤此處之兵,分為兩路去救洮陽。離洮陽二十五里,有侯河小城,乃洮陽咽喉之地。公引一軍伏於洮陽,偃旗息鼓,大開四門,如此如此而行。我卻引一軍伏侯河,必獲大勝也。」籌畫已定,各各依計而行。只留偏將師纂守祁山寨。

사마망이 말한다.

“그럼 어떡해야겠소?”

“이곳 군사를 모두 거둬, 양쪽으로 나눠, 조양을 구원하러 가야겠소. 조양에서 25 리 떨어진 곳에 ‘후하소성’이라고 있는데, 조양의 목구멍처럼 중요하오. 공께서 1군을 이끌고, 조양에 매복해, 군기를 누이고 북을 쉰 채, 사방 성문을 열어 놓고, ‘이렇게저렇게’ 하시오. 나는 1군을 이끌고, 후하에 매복해, 반드시 큰 승리를 거둘 것이오.”

계책을 정하고 , 각각 계책대로 길을 떠난다. 다만 편장 사찬을 남겨, 기산 영채를 지킨다.

  卻說姜維令夏侯霸為前部,先引一軍逕取洮陽。霸提兵前進,將近洮陽,望見城上並無一桿旌旗,四門大開。霸心下疑惑,未敢入城,回顧諸將曰:「莫非詐乎?」諸將曰:「眼見得是空城,只有些小百姓,聽知大將軍兵到,盡棄城而去了。」

한편, 강유는 하후패를 선봉 삼아, 1군을 이끌고, 조양을 치게 한다. 하후패가 군사를 이끌고 전진, 조양에 다가가자, 멀리 성 위에 깃발 하나 보이지 않고, 성문 네 개가 활짝 열렸다. 하후패가 의심해, 성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장수들을 돌아본다.

“속임수가 틀림없지 않소?”

장수들이 말한다.

“빈 성이 분명합니다. 얼마 안 되는 백성이 있다가, 대장군께서 군사를 이끌고 오자, 성을 버리고 모두 떠난 것뿐입니다.”

  霸未信,自縱馬於城南視之,只見後老小無數,皆望西北而逃。霸大喜曰:「果空城也。」遂當先殺入,餘眾隨後而進。方到瓮城邊,忽然一聲砲響,城上鼓角齊鳴,旄旗遍豎,拽起弔橋。霸大驚曰:「誤中計矣!」慌欲退時,城上矢石如雨。可憐夏侯霸同五百軍,皆死於城下。後人有詩歎曰:

하후패가 아직 믿지 못해, 스스로 말을 몰고, 성 남쪽을 살피러 가니, 남녀노소 백성이 무수히 모두 서북으로 달아나고 있다. 하후패가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과연 빈 성이로구나.”

이에 선두에서 돌입하고, 나머지 군사도 뒤따른다. 그런데 옹성瓮城(큰 성 밖 방어용 작은 성) 가까이 이르자, 갑자기 한바탕 포성이 터진다. 성벽 위 북과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며, 온갖 깃발 사방에 일어서고, 조교(해자 위로 올리고 내리는 다리)가 끌어 올려진다. 하후패, 크게 놀란다.

“아뿔싸! 계책에 걸려들었구나!”

황망히 퇴각하려는데, 성 위에서 화살과 돌, 비처럼 쏟아진다. 가련하게도 하후패가 군사 5백과 함께 모두 성벽 아래에서 전사한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한다.

大膽姜維妙算長,誰知鄧艾暗提防。
可憐投漢夏侯霸,頃刻城邊箭下亡。

대담한 강유, 묘책을 잘 내지만
등애가 몰래 방비할줄 누가 알랴
가련타! 한나라로 귀순한 하후패!
불시에 성 아래에서 화살 맞아 죽네

  司馬望從城內殺出,蜀兵大敗而逃。隨後姜維引接應兵到,殺退司馬望,就傍城下寨。維聞夏侯霸射死,嗟傷不已。是夜二更,鄧艾自侯河城內,暗引一軍潛地殺入蜀寨。蜀兵大亂,姜維禁止不住。城上鼓角喧天,司馬望引兵殺出。兩下夾攻,蜀兵大敗。維左衡右突,死戰得脫,退二十餘里下寨。

사마망 군사가 성 안에서 몰려나오자, 촉군이 대패해 달아난다. 뒤따라 강유가 구원병을 이끌고 와서, 사마망을 격퇴, 성 가까이 영채를 세운다. 하후패가 사살됐음을 강유가 듣고, 슬퍼해 마지않는다. 이날밤 2경 등애가 하후소성을 나와, 몰래 1군을 이끌고, 촉군 영채로 잠입한다. 촉군이 대란에 빠져, 강유도 막지 못한다. 성 위에서 북과 피리 소리 하늘을 울리며, 사마망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든다. 양쪽에서 협공하자, 촉군이 대패한다. 강유가 좌충우돌 죽기살기로 싸워, 겨우 탈출, 2십여 리 달아나 영채를 세운다.

  蜀兵兩番敗走之後,心中搖動。維與諸將曰:「勝敗乃兵家之常。今雖損兵折將,不足為憂。成敗之事,在此一舉。汝等始終勿改,如有言退者立斬。」張翼進言曰:「魏兵皆在此處,祁山必然空虛。將軍整兵與鄧艾交鋒,攻打洮陽、侯河;某引一軍取祁山。取了祁山九寨,便驅兵向長安:此為上計。」

촉군이 두 차례나 패주, 동요하자, 강유가 여러 장수에게 말한다.

“승패는 병가의 상사. 이제 병사와 장수를 잃었으나, 우려할 건 못 되오. 성공과 실패, 이번 일거一舉에 달렸으니, 그대들은 시종 변함 없도록 하시오. 퇴각을 입에 올리는 자, 당장 참하겠소.”

장익이 진언한다.

“위군이 모두 여기 있으니, 기산은 필시 공허할 터, 장군께서 군사를 정돈해, 등애와 싸우며, 조양과 후하를 치십시오. 그 사이 제가 1군을 이끌고, 기산을 치겠습니다. 기산을 점령하면, 위군을 장안까지 내몰 수 있으니, 이것이 상책입니다.”

  維從之,即令張翼引後軍逕取祁山。維自引兵到侯河搦鄧艾交戰,艾引軍出迎。兩軍對圓,二人交鋒數十餘合,不分勝負,各收兵回寨。次日,姜維又引兵挑戰,鄧艾按兵不出。姜維令軍辱罵,鄧艾尋思曰:「蜀人被吾大殺一陣,全然不退,連日反來搦戰:必分兵去襲祁山寨也。守寨將師纂,兵少智寡,必然敗矣。吾當親往救之。」乃喚子鄧忠分付曰:「汝用心守把此處,任他搦戰。卻勿輕出。吾今夜引兵去祁山救應。」

강유가 이를 따라, 장익더러 후군을 이끌고, 기산을 치라 한다. 강유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후하로 가, 등애에게 도전하니, 등애가 군사를 끌고 출전한다. 양군이 대치하자, 둘이 수십 합을 싸우나, 승부를 가르지 못해, 각각 군사를 거둬, 영채로 돌아간다. 다음날도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도전하나, 등애가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 출전치 않는다. 강유가 군사를 시켜 욕설을 퍼붓는데, 등애가 깊이 생각한다.

‘촉인들이 우리에게 한바탕 대패하고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되려 날마다 싸움을 거니, 필시 군사를 나눠 기산 영채를 치러 갔구나. 그곳 영채를 지키는 장수 사찬은 군사도 적고, 지모도 모자라, 반드시 패주할 것이니, 내가 구원하러 가야겠다.’

아들 등충을 불러, 분부한다.

“신중히 이곳을 수비하며, 강유가 싸움을 걸도록 놔두고, 함부로 출전치 말라. 내 오늘밤 군사를 이끌고, 기산을 구하러 갈 것이다.”

  是夜二更,姜維正在寨中設計,忽聽得寨外喊聲震地,鼓角喧天:人報鄧艾引三千精兵夜戰,諸將欲出。維止之曰:「勿得妄動。」原來鄧艾引兵至蜀寨前哨探了一遍,乘勢去救祁山。鄧忠自入城去了。姜維喚諸將曰:「鄧艾虛作夜戰之勢,必然去救祁山寨矣。」乃喚傅僉分付曰:「汝守此寨,勿輕與敵。」囑畢,維自引三千兵來助張翼。

이날밤 2경, 강유가 영채 안에서 계책을 짜는데, 영채 밖에서 함성이 땅을 울리고, 북과 피리 소리가 하늘을 뒤흔든다. 사람들이 ‘등애가 정병 3천을 이끌고 야습했다’고 알린다. 장수들이 싸우러 나가려는데, 강유가 막으며 말한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오.”

원래, 등애가 군사를 이끌고, 촉군 영채 앞으로 와, 둘레를 정찰한 뒤 빈틈을 노려, 기산을 구원하러 가려던 것이다. 등충은 이미 성 안으로 들어가 있다. 강유가 장수들을 불러 말한다.

“등애가 야습하는 척하면서, 필시 기산 영채를 구하러 갈 것이오.”

이에 부첨을 불러 분부한다.

“이곳을 수비하되, 함부로 대적하지 마시오.”

부탁을 마친 뒤, 강유가 스스로 군사 3천을 이끌고, 장익을 도우러 간다.

  卻說張翼正到祁山攻打,守寨將師纂,兵少支持不住。看看待破,忽然鄧艾兵至,衝殺了一陣,蜀兵大敗,把張翼隔在山後,絕了歸路。

한편, 이때 장익이 기산을 공격하자, 영채를 지키는 장수 사찬이 병력이 적어 버티지 못하고, 곧 무너지려는데, 홀연히 등애가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 한바탕 쳐부수니, 촉군이 대패한다. 장익이 기산 뒤에서 가로막혀, 귀로가 끊긴다.

  正慌急之間,忽然聽的喊聲大震,鼓角喧天,只見魏兵紛紛倒退。左右報曰:「大將軍姜伯約殺到。」翼乘勢驅兵相應。兩下夾攻,鄧艾折了一陣,急退上祁山寨不出。姜維令兵四面攻圍。

황급한 순간, 홀연히 함성이 크게 울리고 북과 피리 소리 하늘을 뒤흔드는데, 위군이 거꾸로 분분히 달아난다. 좌우에서 보고한다.

“강백약 대장군께서 달려오셨습니다.”

장익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군사를 몰아 접응한다. 양쪽에서 협공하자, 등애가 한바탕 꺾여, 급히 기산 영채로 퇴각해, 싸우러 나오지 않는다. 강유가 군사를 지휘해, 사방을 포위해 공격한다.

  話分兩頭:卻說後主在成都,聽信宦官黃皓之言,又溺於酒色,不理朝政。時有大臣劉琰妻胡氏,極有顏色;因入宮朝見皇后,后留在宮中,一月方出。琰疑其妻與後主私通,乃喚帳下軍士五百人,列於前,將妻綁縛,令每軍以履撻其面數十,幾死復甦。後主聞之大怒,令有司議劉琰罪。有司議得:卒非撻妻之人,面非受刑之地:合當棄市。遂斬劉琰。自此命婦不許入朝。然一時官僚以後主荒淫,多有疑怨者。於是賢人漸退,小人日進。

*綁縛 /방박/ 밧줄로 꽁꽁 묶음.
*棄市 /기시/ 죄인의 형을 저자에서 집행해 군중에게 보이는 것.

한편, 후주는 성도에서 환관 황호의 말을 믿고, 주색에 빠져, 조정을 돌보지 않는다. 이때 대신 유염의 처 ‘호 씨’가 미모가 아주 뛰어났다. 그 때문에 궁궐로 들어가, 황후를 알현하면, 황후가 붙잡아두고, 한달은 지나서야 내보내곤 했다. 유엽이 그 처와 후주가 사통한다고 의심해, 휘하 군졸 5백 인을 불러, 앞에 세운 뒤, 그 처를 꽁꽁 묶어놓고, 군사 하나하나를 시켜, 처의 얼굴을 수십 차례 밟고 때리니, 그 처가 거의 죽었다가 깨어난다. 후주가 이를 듣고 크게 노해, 유사(형을 집행하는 관리)를 시켜, 유염의 죄를 논의한다. 유사가 논의하길, ‘군졸들은 유염의 처를 때린 사람이 아니고, 얼굴은 형을 받을 데가 아니니, 유염을 저자에서 처형함이 합당하다’라고 한다. 이에 유염을 처형하고, 이로부터 그 처를 조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관료들이 후주를 황음무도하다고 여기고, 후주를 의심하고 원망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이에 현인들이 점점 물러나고, 소인배들이 나날이 세력을 키운다.

  時右將軍閻宇,身無寸功;只因阿附黃皓,遂得重爵;聞姜維統兵在祁山,乃說皓奏後主曰:「姜維屢戰無功,可命閻宇代之。」後主從其言,遣使齊詔,召回姜維。維正在祁山攻打寨柵,忽一日三道詔至,宣維班師。維只得遵命,先令洮陽兵退,次後與張翼徐徐而退。鄧艾在寨中,只聽得一夜鼓角喧天,不知何意。至平明,人報蜀兵盡退,止留空寨。艾疑有計,不敢追襲。

이때, 우장군 염우는 촌공(아주 작은 공)도 세우지 못한 몸이지만, 단지 황호에게 아부해, 큰 벼슬을 얻었다. 강유가 기산에서 군사를 거느림을 염우가 듣고, 황호를 설득해, 후주에게 아뢰게 한다.

“강유가 누차 싸우고도, 아무 전공도 없으니, 염우로 대신하게 하소서.”

후주가 그 말을 따라, 사자에게 조서를 줘서 보내, 강유를 불러들인다. 강유가 마침 기산에서 위나라 영채를 공격하고 있는데, 하루에 세 번이나 천자의 조서가 날아와서, 강유더러 군사를 거두라고 선유한다. 강유가 어쩔 수 없이 황명을 따라, 먼저 조양의 병력을 퇴각시키고, 장익과 더불어 서서히 퇴각한다. 등애가 영채 안에 있다가, 한밤에 북과 피리 소리가 하늘을 뒤흔듦을 듣지만, 무슨 의도인지 알지 못한다. 새벽에 이르러, 사람들이 보고하길, ‘촉군이 모조리 퇴각해 촉군 영채가 텅 비었다’고 하지만, 등애는 적의 계책이 있을까 의심, 감히 추격치 않는다.

  姜維逕到漢中,歇住人馬,自與使命入成都見後主。後主一連十日不朝。維心中疑惑。是日至東華門,遇見秘書郎卻正。維問曰:「天子召維班師,公知其故否?」正笑曰:「大將軍何尚不知:黃皓欲使閻宇立攻,奏聞朝廷,發詔取回將軍;今聞鄧艾善能用兵,因此寢其事矣。」維大怒曰:「我必殺此宦豎!」郤正止之曰:「大將軍繼武侯之事,任大職重,豈可造次?倘若天子不容,反為不美矣。」維謝曰:「先生之言是也。」

강유가 한중에 이르러, 인마를 쉬게 하고, 스스로 천자의 사명(사자)과 더불어 성도로 들어가, 후주를 만나려 하지만, 잇달아 열흘 동안 후주를 알현하지 못하니, 의심이 생긴다. 어느날 동화문에 이르러, 비서랑 각정과 마주쳐, 강유가 묻는다.

“천자께서 저를 부르며, 군사를 거두라 하셨는데, 공께서 까닭을 아시오?”

각정이 웃으며 말한다.

“대장군께서 아직도 모르시오? 황호가 염우로 하여금 공을 세우게 하려고, 조정에 주청해, 조서를 내려 장군을 불러들였소. 이제 듣자니, 등애가 용병에 뛰어나 감당할 수 없자, 그 일을 중지하게 됐소.”

강유가 크게 노해 말한다.

“내 이 환관 놈을 죽여버리겠다!”

각정이 제지한다.

“대장군께서 무후(제갈공명)의 일을 계승해, 책임이 크고 직무가 막중한데, 어찌 경솔히 움직이려 하시오? 그러다 천자께서 용납하지 않으시면, 되려 불미스러울 것이오.”

강유가 고마워한다.

“선생 말씀이 옳소.”

  次日,後主與黃皓在後園宴飲,維引數人徑入。早有人報知黃皓,皓急避於湖山之側。維至亭下,拜了後主,泣奏曰:「臣困鄧艾於祁山,陛下連降三詔,召臣回朝,未審聖意為何?」後主默然不語。維又奏曰:「黃皓奸巧專權,乃靈帝時十常侍也。陛下近則鑒於張讓,遠則鑒於趙高。早殺此人,朝廷自然清平,中原方可恢復。」後主笑曰:「黃皓乃趨走小臣,縱然專權,亦無能為。昔者董允每切齒恨皓,朕甚怪之。卿何必介意?」維叩頭奏曰:「陛下今日不殺黃皓,禍不遠也。」

다음날, 후주가 황호와 더불어 후원에서 주연을 여는데, 강유가 몇 사람을 데리고 돌입한다. 재빨리 누군가 황호에게 알리니, 황호가 급히 호산湖山(연못에 인공으로 조성한 가짜 산) 옆으로 피신한다. 강유가 정자 아래에 이르러, 후주에게 절하고, 눈물 흘리며 말한다.

“신이 기산에서 등애를 포위하고 있을 때, 폐하께서 잇달아 세 차례 조서를 내려, 신을 조정으로 불러 들이셨으나, 아직 성의(천자의 의중)가 무엇인지 짐작치 못하겠습니다.”

후주가 묵묵히 말이 없자, 강유 다시 아뢴다.

“황호가 간교히 권력을 휘두르니, 마치 영제 시대의 십상시와 같습니다. 폐하께서는 가까이 장양, 멀리 조고의 일을 거울 삼으소서. 어서 이 자를 죽여야, 조정이 저절로 청평清平(태평)해지고, 중원을 비로소 되찾을 수 있습니다.”

후주가 웃으며 말한다.

“황호는 추주趨走(윗 사람 앞에서 고개 숙이고 종종 걸음을 함)하는 소인배일 뿐, 비록 권력을 휘두른다지만, 역시 아무 것도 못할 것이오. 지난날 동윤이 매번 이를 갈며 황호를 미워하기에, 짐이 몹시 괴이하게 여겼소. 경은 대체 무엇을 개의介意하오?”

강유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폐하께서 오늘 황호를 죽이지 않으시면, 머지않아 재앙이 될 것입니다.”

後主曰:「『愛之欲其生,惡之欲其死。』卿何不容一宦官耶?」令近侍於湖山之側,喚出黃皓至亭下,命拜姜維伏罪。皓哭拜維曰:「某早晚趨侍聖上而已,並不干與國政。將軍休聽外人之言,欲殺某也。某命係於將軍,惟將軍憐之。」言羅,叩頭流涕。

후주가 말한다.

“옛말에,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바라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가 죽기를 바란다고 하였소. 경이 어찌 일개 환관을 용서치 못하오?”

근시를 시켜서, 호산 옆에서 황호를 정자 아래로 불러, 강유를 향해 절하고 복죄伏罪케 한다. 황호가 소리내어 울며, 강유에게 절하고 말한다.

“제가 조만간 성상(천자)을 모시기만 할 뿐, 결코 국정에 간섭치 않겠습니다. 장군께서 다른 사람 말만 듣고, 저를 죽이려 하십니다. 제 목숨은 장군께 달렸으니, 부디 장군께서 불쌍히 여기소서.”

말을 늘어놓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린다.

  維忿忿而出,即往卻正,備將此事告之。正曰:「將軍禍不遠矣。將軍若危,國家隨滅。」維曰:「先生幸教我以保國安身之策。」正曰:「隴西有一去處,名日沓中:此地極其肥壯。將軍何不效武侯屯田之事,奏知天子,前去沓中屯田?一者:得麥熟以助軍實;二者,可以盡圖隴右諸郡;三者,魏人不敢正視漢中;四者,將軍在外掌握兵權,人不能圖,可以避禍:此乃保國安身之策也,宜早行之。」維大喜,謝曰:「先生金玉之言也。」

강유가 분노한 모습으로 나가, 각정을 찾아가, 자세히 이 일을 고하니, 각정이 말한다.

“장군께 머지않아 재앙이 닥치겠소. 장군이 위태로우면 국가도 뒤따라 멸망하오.”

“선생께서 제게, 국가를 보전하고 일신을 안전케 할 계책을 알려주시오.”

“농서에 갈 만한 곳이 한 군데 있는데, 이름하여 답중입니다. 그곳이라면, 첫째, 익은 보리를 수확해, 군실軍實(군대의 무기와 식량)에 보태고, 둘째, 농우의 여러 고을을 모두 도모하고, 셋째, 위나라 사람들이 감히 한중을 노리지 못하고, 넷째, 장군이 밖에서 병권을 장악할 수 있으니, 남들이 장군을 도모할 수 없어, 가히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야말로 나라를 보전하고, 일신을 안전케 할 계책이니, 서둘러 실행하십시오.”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사례한다.

“선생 말씀이 금옥과 같습니다.”

  次日,姜維表奏後主,求沓中屯田,效武侯之事。後主從之。維遂還漢中,聚諸將曰:「某累出師,因糧不足,未能成功。今吾提兵八萬,往沓中種麥屯田,徐圖進取。吾等久戰勞苦,今日斂兵聚穀,退守漢中;魏兵千里運糧,經涉山嶺,自然疲乏;疲乏必退:那時乘虛追襲,無不勝矣。」遂令胡濟守漢壽城.王含守樂城,蔣斌守漢城,蔣舒、傅僉同守關隘。分撥已畢,維自引兵八萬,來沓中種麥,以為久計。

다음날, 강유가 후주에게 표를 올려 아뢰며, 답중에 둔전을 마련해, 무후의 사업을 본받겠다고 하니, 후주가 이를 따른다. 강유가 한중으로 돌아가, 장수들을 불러 말한다.

“내가 누차 출병했으나 군량이 부족, 아직 성공치 못했소. 내 이제 군사 8만을 거느리고, 답중으로 가, 보리를 심어 둔전을 행하며, 천천히 진취를 도모하겠소. 우리가 오랜 기간 싸우느라 지쳤으니, 오늘 군사를 거두고 곡식을 모아, 한중으로 물러나 수비하겠소. 위나라 군이 천리에 걸쳐 군량을 운반하고, 산과 고개를 넘어야 하니, 자연히 피곤하고, 피곤하면 결국 퇴각할 테니, 그 때 빈틈을 노려 추격하면, 이기지 못할 게 없소.”

이에 호제에게 한수성을, 왕함에게 낙성을, 장빈에게 한성을, 장서와 부첨에게 함께 관애(험준하고 중요한 길목)를 지키라 명한다. 이렇게 배치를 마치고, 강유 스스로 군사 8만을 이끌고, 답중으로 보리를 심으러 가서, 장기 계책으로 삼는다.

  卻說鄧艾聞姜維在沓中屯田,於路下四十餘營,連絡不絕,如長蛇之勢。艾遂令細作相了地形,畫成圖本,具表申奏。晉公司馬昭見之,大怒曰:「姜維屢犯中原,不能剿除,是吾心腹之患也。」賈充曰:「姜維深得孔明傳授,急難退之。須得一智勇之將,往刺殺之,可免動兵之勞。」從事中郎荀勗曰:「不然:今蜀主劉禪溺於酒色,信用黃皓,大臣皆有避禍之心。姜維在沓中屯田,正避禍之計也。若令大將伐之,無有不勝,何必用刺客乎?」

한편, 등애는 ‘강유가 담중에서 둔전을 행하며, 길을 따라 4십여 개 영채를 세워, 끊임없이 이어진 것이 마치 긴 뱀과 같은 형세를 이룸'을 듣는다. 등애가 세작을 시켜, 지형을 파악한 뒤, 도본을 그려, 표를 써서 아뢰니, 진공 사마소가 이를 보고, 크게 노해 말한다.

“강유가 누차 중원을 범하는데, 이를 소탕치 못하니, 내 가슴 속 큰 우환이오.”

가충이 말한다.

“강유가 공명에게 깊이 전수 받아, 쉽게 격퇴하기 어렵습니다. 지혜와 용맹을 두루 갖춘 장수를 보내, 그를 암살하면, 출병하는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종사중랑 순욱荀勗이 말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촉나라 군주 유선이 주색에 빠져, 황호를 믿고 쓰니, 대신들 모두 그 화를 피할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강유가 답중에서 둔전을 행함도 바로 그 화를 피하려는 속셈입니다. 대장을 시켜 정벌하면, 이기지 못할 게 없는데, 하필 자객을 보내야겠습니까?”

  昭大笑曰:「此言最善。吾欲伐蜀,誰可為將?」荀勗曰:「鄧艾乃世之良材,更得鍾會為副將,大事成矣。」昭大喜曰:「此言正合吾意。」乃召鍾會入而問曰:「吾欲令汝為大將,去伐東吳,可乎?」會曰:「主公之意,本不欲伐吳,實欲伐蜀也。」昭大笑曰:「子誠識吾心也。但卿往伐蜀,當用何策?」

사마소가 크게 웃으며 말한다.

“이 말씀이 최선이오. 내가 촉나라를 정벌하려면, 누구를 장수로 삼아야겠소?”

순욱이 말한다.

“등애는 천하의 양재입니다. 거기다 종회를 부장으로 삼는다면, 대사를 이룰 것입니다.”

사마소가 크게 기뻐하면 말한다.

“이 말씀이 바로 내 뜻과 맞소.”

이에 종회를 불러들여 묻는다.

“내, 그대를 대장 삼아, 오나라를 치러 보내려는데, 어떻소?”

“주공의 뜻은, 본래 오나나를 치려는 게 아니라, 실은 촉나라를 치려는 것입니다.”

사마소가 크게 웃으며 말한다.

“그대가 참으로 내 마음을 아는구려. 경이 촉나라를 치러 간다면, 무슨 계책을 쓰겠소?”

會曰:「某料主公欲伐蜀,已畫圖本在此。」昭展開視之,圖中細載一路安營下寨屯糧積草之處,從何而進,從何而退,一一皆有法度。昭看了,大喜曰:「真良將也!卿與鄧艾合兵取蜀,何如?」會曰:「蜀川道廣,非一路可進;當使鄧艾分兵各進,可也。」昭遂拜鍾會為鎮西將軍,假節鉞,都督關中人馬,調遣青、徐、兗、豫、荊、揚等處;一面差人持節令鄧艾為征西將軍,都督關外隴上,使約期伐蜀。

*假節鉞 /가절월/ 황제의 신임의 증표로서 절월을 소지함. 여기서 “가假”는 가짜가 아니라 “빌린다”의 뜻.

종회가 말한다.

“제가 주공께서 촉나라를 치시려는 것을 헤아려, 이미 도본을 만들어 여기 가져왔습니다.”

사마소가 ‘전개’해 살펴보니 도본에는 상세히, 길을 따라 영채를 세우고 군량과 마초를 저장한 곳과 어디로 전진하고 어디로 퇴각할지 그렸는데, 하나하나 모두 ‘법도’가 잡혀 있다. 사마소가 보고나서,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참으로 훌륭한 장수요! 경이 등애와 더불어, 군사를 합쳐 촉나라를 취함이 어떻겠소?”

“촉천蜀川(촉나라 땅)은 길이 넓어, 진격로가 하나뿐이 아닙니다. 등애와 함께 군사를 나눠 각각 진군함이 옳습니다.”

사마소가 이에 종회를 “진서장군”으로 제수해, 황제의 절월을 지니고, 관중의 ‘인마’를 도독都督(통솔)하고, 청주, 서주, 연주, 예주, 형주, 양주 등을 관할하게 한다. 한편으로, 등애에게 황제의 절월을 보내, “정서장군”으로 제수하고 ‘관외 농상’의 인마를 지휘하게 하고, 날짜를 약정해 촉을 정벌하라고 한다.

  次日,司馬昭於朝中計議此事,前將軍鄧敦曰:「姜維屢犯中原,我兵折傷甚多;只今守禦,尚自未保,奈何深入山川危險之地,自取禍亂耶?」昭怒曰:「吾欲興仁義之師,伐無道之主,汝安敢逆吾意?」叱武士推出斬之。須臾,呈鄧敦首級於階下。眾皆失色。昭曰:「吾自征東以來,息歇六年,治兵繕甲,皆已完備,欲伐吳、蜀久矣。今先定西蜀,乘順流之勢,水陸並進,併吞東吳:此滅虢取虞之道也。吾料西蜀將士,守成都者八九萬,守邊境者不過四五萬,姜維屯田者不過六七萬。今吾已令鄧艾引關外隴右之兵十餘萬,絆住姜維於沓中,使不得東顧;遣鍾會引關中精兵二三十萬,直抵駱谷:三路以襲漢中。蜀主劉禪昏暗,邊城外破,士女內震,其亡可必矣。」眾皆拜服。

*繕甲 /선갑/ 갑옷을 수선함. 무기를 수리함.
*滅虢取虞 /멸괵취우/ 진나라가 괵나라를 치겠다며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린 뒤, 괵나라를 멸한 뒤 그 여세를 몰아 우나라까지 멸한 옛이야기.

다음날, 사마소가 조정에서 이 일을 토의하니, 전장군 등돈이 말한다.

“강유가 누차 중원을 침범해, 아군 사상자가 극히 많습니다. 이제 오로지 수비할 뿐 아직 스스로 보전하지도 못하는데, 어찌 산천의 위험한 곳으로 깊이 들어가, ‘화란’을 자초한단 말입니까?”

사마소가 노해, 말한다.

“내, 인의의 군사를 일으켜, 무도한 군주를 벌하고자 하거늘, 너 따위가 어찌 감히 내 뜻을 거스르냐?”

무사들에게 호통쳐, 등돈을 끌어내 베게 하니, 잠시 뒤, 등돈의 머리를 섬돌 아래에 바친다. 사람들이 모두 대경실색하자, 사마소가 말한다.

“내가 직접 동쪽을 정벌한 이래, 6년을 쉬며, 군사를 훈련시키고 칼날을 갈았소. 이미 모두 완비돼, 오와 촉을 정벌하려 한 지 오래요. 이제 먼저 서촉을 평정한 뒤, 순류의 기세를 타고, 수륙 양면으로 진격해, 동오를 병탄할 것이니, 이야말로 ‘멸괵취우滅虢取虞’의 방도요. 내가 헤아려보니, 서촉 장졸 중에 성도를 지키는 자 8, 9만이고, 변경을 지키는 자 불과 4, 5만이며, 강유가 이끌고 둔전을 행하는 자도 불과 6, 7만이오. 이제 내가 등애를 시켜 ‘관외 농우’의 군사 십여 만을 이끌고 가서, 답중에서 강유를 묶어놓아, 동쪽을 돌보지 못하게 만들려 하오. 또한 종회를 보내, 관중의 정병 2, 3십만을 이끌고, 곧바로 낙곡을 쳐서, 3로에 걸쳐 한중을 습격하겠소. ‘촉주’ 유선은 혼암昏暗(어리석고 못남)하니, 밖으로 변경의 성을 격파하면, 안으로 사녀士女(인민/ 백성)가 동요해, 반드시 멸망할 것이오.”

모두 탄복한다.

  卻說鍾會受了鎮西將軍之印,起兵伐蜀。會恐機謀或洩,卻以伐吳為名,令青、兗、豫、荊、揚等五處各造大船;又遣唐咨於登、萊等州傍海之處,拘集海船。司馬昭不知其意,遂召鍾會問之曰;「子從旱路收川,何用造船耶?」會曰:「蜀若聞我兵大進,必求救於東吳也:故先布聲勢,作伐吳之狀,吳必不敢妄動。一年之內,蜀已破,船已成,而伐吳,豈不順乎?」昭大喜,選日出師。時魏景元四年,秋七月初三日,鍾會出師。司馬昭送之於城外十里方回。西曹掾邵悌密謂司馬昭曰:「今主公遣鍾會領十萬兵伐蜀,愚料會志大心高,不可使獨掌大權。」昭笑曰:「吾豈不知之?」悌曰:「主公既知,何不使人同領其職?」昭言無數語,使邵悌疑心頓釋。正是:

*西曹 /서조/ 1) 태위의 부하 관리 2) 병부兵部 3) 형부刑部

한편, 종회가 진서장군에 임명돼, 촉을 정벌하러 출병한다. 종회가 기밀이 혹시 누설될까 두려워, 동오를 정벌한다는 핑계로, 청주, 연주, 예주, 형주, 양주 등 다섯 곳에서 각각 대선(큰 배)을 건조한다. 또한 당자를 등주와 내주 등 해안 지역으로 보내, 해선海船(바다를 항해하는 큰 배)을 끌어모은다. 사마소가 그 뜻을 알지 못해, 종회를 불러 묻는다.

“그대가 육로로 서천을 정벌할 것인데, 배를 만들어 무엇에 쓰려 하오?”

“아군이 크게 진격하면, 촉은 반드시 동오에 구원을 청합니다. 그러므로 허장성세를 펼쳐, 동오를 정벌하는 척하면, 동오는 감히 망동하지 못합니다. 1년 안에, 촉을 무너뜨린 뒤, 배가 이미 완성돼 있을 터이니, 동오 정벌이 어찌 순탄치 않겠습니까?”

사마소가 크게 기뻐하며 날짜를 정해 출병케 한다. 위나라 경원 4년, 가을 7월 초3일, 종회가 출병한다. 사마소가 성 밖 십 리까지 나와 배웅하고 돌아간다. ‘서조西曹의 관리’ 소제가 은밀히 사마소에게 말한다.

“이제 주공께서 종회에게 십만 대군을 줘서 촉을 정벌케 하시지만, 제 생각에, 종회가 야심을 가진 듯합니다. 그가 홀로 대권을 장악케 하심은 불가합니다.”

사마소가 웃으며 말한다.

“내 어찌 그것을 모르겠소?”

“주공께서 이미 아시면서, 어찌 그 직위를 다른 사람에게 함께 맡기시지 않습니까?”

이에 사마소가 한두 마디 말하니, 소제의 의문이 순식간에 풀린다.

方當士馬驅馳日,早識將軍跋扈心。

*驅馳 /구치/ 말을 빨리 몰아 달리게 함.

군사를 일으키려는 날에, 사마소가 벌써 장군이 발호할 것을 알았구나

  未知其言若何,且看下文分解。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무엇을 보는지... 우리집 뽀송이

바깥은 내다보는 은별이. 뽀송이도 바깥을 내다보는 걸 즐깁니다.

뭔가 상념에 잠긴 듯...

사지가 짧아 보이지만 뱃살에 묻힌 탓입니다;;;

은별이의 전형적 자세.

뽀송이의 흔한 자세.

단풍이.
 

[원문삼국지 114회] 남궐에서 조모를 찌르다 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第百十四回 曹髦驅車死南闕 姜維棄糧勝魏兵

제114회 조모가 어가를 타고 가다가 남궐에서 죽고 강유가 군량을 미끼로 위나라 군을 이기다

  卻說姜維傳令退兵。廖化曰:「『將在外,君命有所不受。』今雖有詔,未可動也。」張翼曰:「蜀人為大將軍連年動兵,皆有怨望;不如乘此得勝之時,收回人馬,以安民心,再作良圖。」維曰:「善。」令各軍依法而退。命廖化,張翼斷後,以防魏兵追襲。

한편, 강유가 철군을 전령하니 요화가 말한다.

“장수가 바깥에 있을 때, 비록 군명(임금의 명)이라도 받지 않는 수 있다 했습니다. 이제 비록 조서가 왔다 하나, 아직 움직여선 안 됩니다.”

장익이 말한다.

“촉인들은 장군이 해마다 군사를 움직인다고, 모두 원망합니다. 차라리 장군께서 이번 승전한 때, 인마를 거둬 민심을 안정시킨 뒤, 다시 양책을 세움만 못합니다.”

강유가 말한다.

“좋소.”

명령을 내려, 각군은 정해진 대로 퇴각한다. 요화와 장익에게, 후미를 엄호해 위군 추격을 막으라 한다.

  卻說鄧艾引兵追趕,只見前面蜀兵旗幟整齊,人馬徐徐而退。艾歎曰:「姜維深得武侯之法也!」因此不敢追趕,勒軍回祁山寨去了。

한편, 등애가 군사를 이끌고 추격하니, 앞쪽으로 촉군 기치가 정연한 채, 인마가 서서히 퇴각함이 보인다. 등애가 탄식한다.

“강유가 무후(제갈공명)의 병법을 깊이 알구나!”

이에 감히 추격치 못하고, 군사를 멈춰 기산 영채로 돌아간다.

  且說姜維至成都,入見後主,問召回之故。後主曰:「朕為卿在邊庭,久不還師,恐勞軍士,故詔卿回朝,別無他意。」維曰:「臣已得祁山之寨,正欲收功,不期半途而廢。此必中鄧艾反間之計矣。」後主默然不語。姜維又奏曰:「臣誓討賊,以報國恩。陛下休聽小人之言,致生疑慮。」後主良久乃曰:「朕不疑卿;卿且回漢中,俟魏國有變,再伐之可也。」姜維歎息出朝,自投漢中去訖。

한편, 강유가 성도로 후주를 만나러 들어가, 자신을 부른 까닭을 물으니, 후주가 말한다.

“짐은, 경이 변경에서 오랫동안 군사를 거둬 돌아오지 않으니, 군사들이 피로할까 두려워, 조정으로 불러들였지, 다른 뜻은 없소.”

“신이 기산의 영채를 점령해, 공을 이룰 참이었는데, 뜻밖에 도중에 중지했습니다. 이는 필시 등애의 반간계에 빠진 것입니다.”

후주가 침묵하며 아무 말도 못한다. 강유가 다시 아뢴다.

“신이 맹세코 역적을 토벌해, 국은을 갚으려 합니다. 폐하께서 소인배의 말을 듣고 의심커나 염려치 마소서.”

후주가 한참 뒤에야 말한다.

“짐은 경을 의심하지 않소. 일단 한중으로 돌아가, 위나라에 변고가 생기기를 기다려, 다시 정벌하시오.”

강유가 탄식하며 조정을 나와 한중으로 떠난다.

  卻說黨均回到祁山寨中,報知此事。鄧艾與司馬望曰:「君臣不和,必有內變。」就令黨均入洛陽,報知司馬昭。昭大喜,便有圖蜀之心,乃問中護軍賈充曰:「吾今伐蜀,如何?」充曰:「未可伐也:天子方疑主公,若一但輕出,內難必作矣。舊年黃龍兩見於寧陵井中,群臣表賀,以為祥瑞;天子曰:「非祥瑞也:龍者君象,乃上不在天,下不在田,而在井中,是幽囚之兆也。」遂作潛龍師一首。師中之意,明明道著主公。其詩曰:

한편, 당균이 기산 영채로 가, 이를 알린다. 등애와 사마망이 말한다.

“군신이 불화하니 반드시 변고가 생기겠소.”

이에 당균을 시켜, 낙양으로 들어가 사마소에게 알린다. 사마소가 크게 기뻐하며, 촉나라를 도모할 뜻을 품고, 중호군 가충에게 묻는다.

“내 이제 촉나라를 정벌함이 어떻겠소?”

“아직은 정벌할 수 없습니다. 천자께서 주공을 의심하는데, 함부로 밖으로 나가면, 필시 안으로서 곤란한 일이 생깁입니다. 작년에 황룡이 영릉 우물 안에 두번 나타나, 신하들이 경하하며, 상서祥瑞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천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상서가 아니오. 위로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 풀밭에 있지 않으면서 우물 속에 있으니 유수幽囚( 감옥 따위에 갇힘 )의 징조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천자께서 잠룡사潛龍師라는 시를 한 수 지으셨는데, 그 뜻을 살펴보면 명백히 주공을 언급했습니다. 시는 이렇습니다.”

傷哉龍受困,不能躍深淵。
上不飛天漢,下不見於田。
蟠居於井底,鰍鱔舞其前。
藏牙伏爪甲,嗟我亦同然!

슬프구나! 용이 갇혀, 깊은 못에서 날지 못하네
위로 은하수로 날지 못하고, 아래로 풀밭에 쉬지 못하네
우물 바닥에 또아리 트니, 미꾸라지 따위가 앞에서 날뛰네
어금니를 감추고 발톱을 숨기니, 아아! 내 처지와 같구나!

  司馬昭聞知大怒,謂賈充曰:「此人欲效曹芳也!若不早圖,彼必害我。」充曰:「某願為主公早晚圖之。」時魏甘露五年夏四月,司馬昭帶劍上殿,髦起迎之。群臣皆奏曰:「大將軍功德巍巍,合為晉公,加九錫。」髦低頭不答。昭厲聲曰:「吾父子兄弟三人有大功於魏,今為晉公,得毋不宜耶?」

*得毋 /득무/ 아무래도 ~, 내가 생각하기에 ~, 아마도 ~

사마소가 이를 듣고 크게 노해, 가충에게 말한다.

“이 사람이 조방을 본받으려 하구나! 어서 도모하지 않으면 나를 해치겠구나.”

“제가 바라옵건대 주공을 위해 조만간 도모하겠습니다.”

이때 위나라 감로 5년 여름 4월, 사마소가 검을 차고 전각을 올라가니, 조모가 일어나 맞이한다. 신하들 모두 주청한다.

“대장군 공덕이 외외巍巍(태산처럼 우뚝 솟음)하니, 진공晉公으로 봉하시고, 구석九錫(황제가 신하에게 내리는 최고의 예우)을 더하소서.”

조모가 고개를 떨어뜨린 채 답하지 않으니, 사마소가 성난 소리로 말한다.

“우리 부자와 형제 세 사람, 위나라에 대공을 세워, 이제 진공이 되는 것이 못마땅하시오?”

髦乃應曰:「敢不從命?』昭曰:「潛龍之詩,視吾等如鰍鱔,是何禮也?」髦不能答。昭冷笑下殿。眾官凜然。髦歸後宮,召伺中王沉,尚書王經、散騎常侍王業,三人入內計議。髦泣曰:「司馬昭將懷篡逆,人所共知!朕不坐受廢辱,卿等可助朕討之!」

조모가 응답한다.

“감히 어명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오?”

“잠룡의 시는 우리를 미꾸라지 따위로 본 것인데, 이런 법이 어딨소?”

조모가 대답하지 못한다. 사마소가 비웃으며 전각을 내려간다. 뭇 관리가 두려움에 떤다. 조모가 후궁으로 돌아가, 사중 왕심, 상서 왕경, 산기상시 왕업 세 사람을 불러들여 의논한다. 조모가 눈물 흘리며 말한다.

“사마소가 장차 찬역할 마음을 품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소! 짐이 가만히 앉은 채로 폐위되는 치욕을 받을 수 없으니, 경들은 짐을 도와 그를 토벌하시오!”

王經奏曰:「不可:昔魯昭公不忍季氏,敗走失國;今重權已歸司馬氏久矣,內外公卿,不顧順逆之理,阿附奸賊,非一人也。且陛下宿衛寡弱,無用命之人。陛下若不隱忍,禍莫大焉。且宜緩圖,不可造次。」髦曰:「是可忍也,孰不可忍也!朕意已決,便死何懼!」言訖,即入告太后。王沉、王業謂王經曰:「事已急矣,我等不可自取滅族之禍。當往司馬公府下出首,以免一死。」經大怒曰:「主憂臣辱,主辱臣死,敢懷二心乎?」王沉,王業見經不從,逕自往報司馬昭去了。

*宿衛/숙위/ 황제를 보위하는 군사. 금군.

왕경이 아뢴다.

“불가합니다. 지난날 노나라 소공이 계씨의 횡포를 참지 못했지만, 결국 패주하고 나라를 잃었습니다. 이제 막중한 권력이 사마씨에게 넘어간 지 오래라, 내외 공경대신들이 순역順逆(순행과 역행)의 도리를 따르지 않고, 간적에게 아부하는 이들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우선 폐하께는 숙위宿衛( 황제의 호위 병력 )가 너무 적어, 명령을 받들 사람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은인자중하지 못하시면, 그 재앙이 비할 데 없이 클 것입니다. 우선 천천히 도모하셔지, 결코 서두르면 안 되옵니다.”

조모가 말한다.

“이 일을 참으라니, 대체 어떤 일이라야, 못 참는 것이오! 짐의 뜻은 이미 정해졌으니, 곧 죽은들 무엇이 두렵겠소!”

말을 마치고, 태후에게 고하러 들어간다. 왕심과 왕업이 왕경에게 말한다.

“사태가 위급하니, 우리가 멸족의 화를 자초해서는 안 되오. 당장 사마 공 부중으로 가서 자수하여 죽음을 면합시다.”

왕경이 크게 노한다.

“군주의 우환, 곧 신하의 치욕이요, 군주가 치욕을 겪으면 신하는 죽어 마땅하거늘, 어찌 감히 두 마음을 품겠소?”

왕경이 따르지 않자, 왕심과 왕업이 사마소에게 알리러 가버린다.

  少頃,魏主曹髦出內,令護衛焦伯,聚集殿中宿衛蒼頭官童三百餘人,鼓譟而出。髦仗劍升輦,叱左右逕出南闕。王經伏於車前,大哭而諫曰:「今陛下領數百人伐昭,是驅羊而入虎口耳,空死無益。臣非惜命,實見事不可行也。」髦曰:「吾軍已行,卿無阻當。」遂望龍門而來。

*蒼頭 /창두/ 1) 푸른 두건을 한 군대. 2) 노비.

얼마 뒤, 위나라 황제 조모가 궁궐을 나와, 호위 초백을 시켜, 궁전 안의 숙위(호위) 창두蒼頭(푸른 두건을 한 군대/ 노비)와 관동官童(일꾼) 3백여 인을 불러모아, 북을 울리며 나간다. 조모가 검을 지니고 연가輦車(임금이 타는 수레)에 올라, 좌우에게 호통쳐, 남궐(남쪽 궁궐)로 나간다. 왕경이 연가 앞에 엎드려, 크게 곡하며 간한다.

“이제 폐하께서 겨우 수백 인을 이끌고, 사마소를 토벌하시겠다니, 이는 양떼를 몰아 호랑이 입으로 들어갈 따름이라, 헛되이 죽을 뿐, 아무 이익이 없사옵니다. 신이 목숨을 아껴서가 아니오라, 참으로 이 일을 결행하지 마소서.”

조모가 말한다.

“나의 군사가 결행했으니, 경은 말리지 마시오.”

마침내 용문을 향해 간다.

  只見賈充戎服乘馬,左有成倅,右有成濟,引數千鐵甲禁兵,吶喊殺來。髦仗劍大喝曰:「吾乃天子也!汝等突入宮庭,欲弒君耶?」禁兵見了曹髦,皆不敢動。賈充呼成濟曰:「司馬公養你何用?-正為今日之事也。』濟乃綽戟在手,回顧充曰:「當殺耶?當搏耶?」充曰:「司馬公有令,只要死的。』成濟挺戟直奔車前。髦大喝曰:「匹夫敢無禮乎!」言未訖,被成濟一戟刺中髦前胸,撞出輦來;再一戟,刃從背上透出,死於輦旁。

*綽 /작/ 손에 쥐다. 움켜쥐다.

그런데 가충이 융복을 입고 말을 타고,  왼쪽으로 성졸, 오른쪽으로 성제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이 철갑을 입은 금병 수천을 이끌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조모가 검을 잡고 크게 외친다.

“내가 천자이니라! 너희가 궁정으로 쳐들어와, 임금을 시해할 셈이냐?”

금병들이 조모를 보고, 모두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가충이 성제를 불러 말한다.

“사마 공께서 너를 무엇에 쓰려 기르셨냐?  오늘과 같은 일 때문이다.”

성제가 극戟(창의 일종)을 손에 움켜쥐고, 가충을 돌아보며 말한다.

“죽일까요? 사로잡아 묶을까요?”

“사마 공께서 반드시 죽이라 하셨다.”

성제가 극을 꼬나쥐고, 연가 앞으로 달려드니, 조모가 크게 꾸짖는다.

“필부놈아! 감히 무례하구나!”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 성제가 극으로 한번에 조모 앞가슴을 찌르니, 조모가 연가 밖으로 나뒹군다. 다시 한번 극으로 찌르니, 극이 조모 등을 꿰뚫고 나가, 조모가 연가 옆에서 죽는다.

焦伯挺槍來迎,被成濟一戟刺死。眾皆逃走。王經隨後敢來,大罵賈充曰:「逆賊安敢弒君耶!」充大怒,叱左右縛定,報知司馬昭。昭入內,見髦已死,乃佯作大驚之狀,以頭撞輦車而哭,令人報知各大臣。時太傅司馬孚入內,見髦屍首,枕其股而哭曰:「弒陛下者,臣之罪也!」遂將髦屍用棺槨盛貯,停於偏殿之西。昭入殿中,召群臣會議。群臣皆至,獨有尚書僕射陳泰不至。

*首枕其股 /수침기고/ 죽은 이의 머리를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놓음. 임금의 죽음에 신하가 지극한 애통을 표하는 모습.

초백이 창을 꼬나쥐고 덤비지만, 성제가 극으로 한번에 찔러 죽인다. 나머지 모두 도주하는데, 왕경은 물러서지 않고 와서, 가충을 크게 꾸짖는다.

“역적놈아! 어찌 감히 임금을 시해하냐!”

가충이 크게 노해, 좌우에게 호통쳐, 왕경을 포박해, 사마소에게 알린다. 사마소가 입궐해, 조모의 주검을을 보고, 크게 놀란 척, 머리를 연가에 부딪히며 곡한다. 사람들을 시켜 각부 대신에게 알리게 한다. 이때 태부 사마부가 궁궐로 들어와 조모의 주검을 보고, 조모 머리를 자신 다리에 올려놓고 곡한다.

“폐하가 시해된 것은 신의 죄입니다!”

조모의 시신을 관과 널을 갖춰 입관한 뒤, 편전 서쪽에 놓는다. 사마소가 궁전으로 들어와, 신하들을 불러 의논한다. 신하들 모두 오는데, 상서복야尚書僕射 진태만 오지 않는다.

昭令泰之舅尚書荀顗召之。泰大哭曰:「論者以泰比舅,今舅實不如泰也。」乃披麻帶孝而入,哭拜於靈前。昭亦佯哭而問曰:「今日之事,何法處之?」泰曰:「獨斬賈充,少可以謝天下耳。」昭沉吟良久,又問曰:「再思其次。」泰曰:「惟有進於此者,不知其次。」

*舅 /구/ 처남. 외삼촌. 시아버지. 역사서에 “顗甥陳泰 손의의 조카 진태”라는 구절로 봐서 본문에서는 ‘외삼촌’의 뜻.
*披麻带孝 /피마대효/ 상복을 입고 애도를 표함.

사마소가 진태 외숙인 상서 손의를 시켜 진태를 부른다. 진태가 크게 곡하며 말한다.

“공론을 일삼는 이들은, 저를 외숙과 나란히 여기지만, 이제 외숙은 참으로 저와 다릅니다.”

이에 상복을 입고 들어와, 조모 영전에 곡하며 절한다. 사마소도 곡하는 척하며 묻는다.

“오늘 일은 어떤 방법으로 처리해야겠소?”

“가충만 참해서는 천하에 사죄하기에 모자랍니다.”

사마소가 한참을 생각하다가가 다시 묻는다.

“차선을 생각해 보시오.”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昭曰:「成濟大逆不道,可剮之,滅其三族。」濟大罵昭曰:「非我之罪,是賈充傳汝之命!」昭令先割其舌。濟至死叫屈不絕。弟成倅亦斬於市,盡滅三族。後人有詩歎曰:

*叫屈 /규귤/ 억울하다고 외침.

사마소가 말한다.

“성제가 대역무도하니, 그를 능지처참하고 삼족을 멸해야겠소.”

성제가 사마소를 크게 욕한다.

“내 죄가 아니다. 이는 가충이 네놈 명령을 전한 것이다!”

사마소가 먼저 혀를 자르게 한다. 성제가 죽을 때까지 억울하다 외친다. 성제 아우 성졸도 저자에서 참하고, 삼족을 모조리 멸한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한다.

司馬當年命賈充,弒君南闕赭袍紅。
卻將成濟誅三族,只道軍民盡耳聾。

사마소가 그해 가충을 시켜, 임금을 남궐에서 죽이니, 홍포 붉게 물드네
그리고 도리어 성제 삼족을 멸하니, 군사와 백성을 귀머거리로 아는구나 

  昭又使人收王經全家下獄。王經正在廷尉廳下,忽見縛其母至。經叩頭大哭曰:「不孝子累及慈母矣!」母大笑曰:「人誰不死?正恐不得死所耳。以此棄命,何恨之有?」次曰,王經全家皆押赴東市。王經母子含笑受刑。滿城士庶,無不垂淚。後人有詩曰:

*死所 /사소/ 죽는 곳. 죽을 곳.

사마소가 또한 사람들을 시켜 왕경 일가를 하옥한다. 왕경이 정위廷尉(형벌과 투옥을 맡은 관리)의 관청에 있다가, 모친이 결박돼 온 것을 본다. 왕경이 고개를 떨구고, 크게 곡하며 말한다.

“불효자가 잘못해서 어머니께서 이렇게 되셨습니다.”

모친이 크게 웃으며 말한다.

“죽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 죽을 자리를 못 찾을까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목숨을 버린들 무슨 한이 있겠냐?”

다음날, 왕경 일가가 동시(처형장)로 압송된다. 왕경 모자가 웃음을 머금고 형을 받는다. 성 안의 사서士庶(사대부와 서민) 모두가 눈물 흘리지 않는 이 없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짓는다.

漢初誇伏劍,漢末見王經:
真烈心無異,堅剛志更清。
節如泰華重,命似羽毛輕。
母子聲名在,應同天地傾。

*伏劍 /복검/ 검으로 자살함. 본문에서는 한나라와 초나라가 싸울 때, 왕릉의 모친이 초나라 항우의 진중에 있었으나 왕릉에게 한나라 유방을 섬기도록 권하고 자살한 고사를 일컬음.
*烈心 /열심/ 야망. 대단한 마음.

한나라 초기에 왕릉 어머니가 기꺼이 목숨을 끊더니
한나라 말기에 왕경 어머니가 목숨을 끊는구나
참으로 열심烈心이 다르지 않으니 그 마음 굳세고 맑네
절개가 태산과 화산처럼 무겁고 목숨은 깃털처럼 가볍우니
모자의 명성이 길이 남아서 마땅히 천지와 함께 영원하리라

  太傅司馬孚請以王禮葬曹髦,昭許之。賈充等勸司馬昭受魏禪,即天子位。昭曰:「昔文王三分天下有其二,以服事殷,故聖人稱為至德。魏武帝不肯禪於漢,猶吾之不肯禪於魏也。」賈充等言,已知司馬昭留意於子司馬炎矣,遂不復勸進。是年六月,司馬昭立常道鄉公曹璜為帝,改元景元元年。璜改名曹奐,字景召—乃武帝曹操之孫,燕王曹宇之子也。奐封昭為丞相晉公,賜錢十萬、絹萬疋。其文武多官,各有封賞。

태부 사마부가 왕의 예로써 조모의 장례를 치를 것을 청하니, 사마소가 허락한다. 가충 들이 사마소에게 위나라로부터 제위를 선양 받아 오를 것을 권한다. 사마소가 말한다.

“지난날 주나라 문왕이 천하의 3분의 2를 가졌으나, 여전히 은나라를 따르며 섬겨, 성인께서 ‘지극한 덕’이라 칭하셨소. 위나라 무제(조조/조맹덕)도 한나라로부터 선위를 받지 않으려 했으니, 내가 위나라로부터 선위를 받지 않으려는 것과 같소.”

가충 들은 사마소가 아들 사마염에게 넘겨줄 뜻을 품었음을 알고, 더는 권하지 않는다. 이해 6월, 사마소가 ‘상도향공’ 조향을 황제로 세우고 연호를 ‘경원 원년’으로 고친다. 조황이 조환으로 개명한다. 조환은 ‘자’가 ‘경소’인데 위나라 무제 조조의 손자이자 ‘연왕’ 조우의 아들이다. 조환이 사마소를 승상 겸 ‘진공’으로 봉하고 10만 전錢의 돈과 1만 필의 비단을 하사한다. 그밖의 많은 문무관료가 각각 작위와 포상을 받는다.

  早有細卒報入蜀中。姜維聞司馬昭弒了曹髦,立了曹奐,喜曰:「吾今日伐魏,又有名矣。」遂發書入吳,令起兵問司馬昭弒君之罪;一面奏准後主,起兵十五萬,車乘數千輛,皆置板箱於上;令廖化、張翼為先鋒。化取子午谷,翼取駱谷,維自取斜谷,皆要出祁山之前取齊。三路兵並起,殺奔祁山而來。

재빨리 세작이 촉나라로 보고하러 들어간다. 사마소가 조모를 시해하고 조환을 세운 것을 강유가 듣고 기뻐하며 말한다.

“내 오늘 위나라를 정벌해 공명을 세우겠소.”

이에 오나라로 서신을 보내, 군사를 일으켜 사마의에게 임금을 시해한 죄를 묻자고 한다. 동시에 후주에게 주청해, 군사 15만을 일으키고, 수레 수천 량을 동원하며, 수레마다 판상(나무상자/ 나무로 만든 객실)을 설치한다. 요화와 장익을 선봉으로 삼아 요화는 자오곡으로, 장익은 낙곡으로, 강유는 사곡으로 진군한다. 모두 기산의 앞으로 나가, 함께 진군하는 계획이다. 3로 군사를 일제히 일으켜 기산으로 돌진한다.

*
取齊 /취제/ 한곳으로 모임

  時鄧艾在山寨中,訓練人馬,聞報蜀兵三路殺到,乃聚諸將計議。參軍王瓘曰:「吾有一計,不可明言。見寫在此,謹呈將軍台覽。」艾接來展看畢,笑曰:「此計雖妙,只怕瞞不過姜維。」瓘曰:「某願捨命前去。」艾曰:「公志若堅,必能成功。」

이때 등애가 산채에 머물며 인마를 훈련하다가, 촉군이 3로에 걸쳐서 쇄도함을 듣고, 장수들을 불러 토의한다. 참군 왕관이 말한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는데, 드러내놓고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써서 장군께 바치오니,  태람台覽(살펴봄)하십시오.”

등애가 다가와서 왕관이 쓴 것을 펼쳐 읽고나서 웃으며 말한다.

“이 계책이 비록 절묘하지만, 강유를 속여넘기지 못할까 걱정이오.”

왕관이 말한다.

“제가 목숨을 걸고 가보겠습니다.”

“공의 뜻이 굳세니 반드시 성하겠구려.”

  遂撥五千兵與瓘。瓘連夜從斜谷迎來,正撞蜀兵前隊哨馬。瓘叫曰:「我魏國降兵,可報於主帥。」
  哨軍報知姜維,維令攔住餘兵,只叫為首的將來見。瓘拜伏於地曰:「某乃不王經之姪王瓘也。近見司馬昭弒君,將叔父一門皆戮,某痛恨入骨。今幸將軍興師問罪,故特引本部兵五千來降。願從調遣,剿除奸黨,以報叔父之恨。」

이에 군사 5천을 뽑아 왕관에게 준다. 왕관이 그날 밤 사곡으로 오다가, 촉군 선두부대의 초마哨馬(정찰병)와 마주쳐, 왕관이 외친다.

“우리는 위나라의 항복하는 병사들이니 주수主帥(최고 지휘관)께 보고하라.”

초마가 이를 강유에게 알리니, 강유가 군사들은 가로막게 하고, 수장만 접견한다. 왕관이 바닥에서 절하고 엎드린 채 말한다.

“저는 왕경 조카 왕관입니다. 근자에 사마소가 임금을 시해하고, 저희 숙부 일가를 몰살하니, 제가 통한이 뼛속까지 사무칩니다. 이제 다행히 장군께서 출병해,  그 죄를 물으신다기에 제 휘하 병력 5천을 이끌고 투항하러 왔습니다.  장군의 지휘를 따라 저 간사한 무리를 소탕해 숙부의 한을 갚고자 합니다.”

  維大喜,謂瓘曰:「汝既誠心來降,吾不誠心相待;吾軍中所患者,不過糧耳。今有糧草,現在川口。汝可運赴祁山。吾只今去取祁山寨也。」瓘心中大喜,以為中計,忻然領諾。姜維曰:「汝去運糧,不必用五千人,但引三千人去,留下二千人引路,以打祁山。」瓘恐維疑惑,乃引三千兵去了。維令傅僉引二千魏兵隨征聽用。忽報夏侯霸到。霸曰:「都督何故准信王瓘之言也?吾在魏,雖不知備細,未聞王瓘是王經之姪:其中多詐,請將軍察之。」維大笑曰:「我已知王瓘之詐,故分其兵勢,將計就計而行。」霸曰:「公試言之。」維曰:「司馬昭奸雄比於曹操,既殺王經,滅其三族,安肯存親姪於關外領兵?知其詐也。仲權之見與我暗合。」

*准信 /준신/ 확신.
*備細 /비세/ 상세한 정황.
*暗合 /암합/ 우연히 맞아떨어짐. 말도 나누지 않았는데 의견이 맞음.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왕관에게 말한다.

“그대가 진심으로 투항하러 왔는데, 나는 진심으로 대하지 못했소.  아군의 걱정은 군량뿐인데, 이제 군량이 천구에 있으니, 그대가 기산으로 운반해주시오. 나는 기산의 위나라 영채를 치러 가야겠소.”

왕관이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계략이 적중했다 여겨, 기꺼이 응낙한다. 강유가 말한다.

“그대가 군량을 운반하는데, 5천이 다 필요하지는 않을 테니, 3천만 거느리고 가시오. 나머지 2천은 남겨, 길을 인도하게 해서, 기산을 치러 가야겠소.”

왕관은 강유가 의심할까 두려워, 군사 3천만 거느리고 떠난다. 강유가 부첨에게, 항복한 위나라 군사 2천을 거느리고, 출정하는 군사를 따라오며 지휘를 받게 한다. 그런데 하후패가 찾아와서 말한다.

“도독께서 무슨 까닭으로 왕관의 말을 믿으십니까? 제가 위나라에 있을 때, 비록 상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왕관이 왕경의 조카란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 말 속에 속임수가 많을 것이니, 청컨대 장군께서 살피십시오.”

강유가 크게 웃으며 말한다.

“내 이미 왕관의 속임수를 간파해, 그 병력을 분산하고, 장계취계將計就計(적의 계책을 역이용함)한 것이오.”

하후패가 말한다.

“어찌된 까닭인지 말씀해보십시오.”

“사마소는 조조와 비교되는 간웅이오. 이미 왕경을 죽이고 삼족을 멸했는데, 어찌 친조카를 살려, 관외에서 군사를 거느리게 하겠소? 그래서 속임수를 알아차렸소. 중권(하후패의 자)의 견해가 나와 꼭 같구려.”

  於是姜維不出斜谷,卻令人於路暗伏,以防王瓘奸細。不旬日,果然伏兵捉得王瓘回報鄧艾下書人來見。維問了情節,搜出私書,書中約於八月二十日,從小路運糧送歸大寨,卻教鄧艾遣兵於壇山谷中接應。維將下書人殺了,卻將書中之意,改作八月十五日,約鄧艾自率大兵於壇山谷中接應。一面令人扮作魏軍往魏營下書;一面令人將現有糧草數百輛卸了糧米,裝載乾柴茅草引火之物,用青布罩了,令傅傅僉引二千原降魏兵,執打著運糧旗號。維卻與夏侯霸各引一軍,去山谷中埋伏。令蔣舒出斜谷,廖化,張翼俱各進兵,來取祁山。

*奸細 /간세/ 1) 적군을 위해 정보를 켜는 사람, 간첩 2) 간사한 사람
*罩 /조/ ~을 덮다.

이에 강유가 사곡으로 나가지 않고, 도리어 길에 병력을 매복하고, 왕관의 간세奸細(간첩 행위)를 방비한다. 열흘이 안 돼서 과연 왕관이 사람을 시켜, 등애에게 문서를 전달하는데, 복병이 그를 잡아온다. 강유가 정황을 캐물은 뒤 ,사서私書(비밀 문서)를 압수한다. 왕관이 사서에서, 8월20일 지름길로 군량을 대채(큰 영채)로 운반하니, 등애가 군사를 단산 골짜기 안으로 보내서 접응하라 해놓았다. 

서신을 전하는 사람을 강유가 죽이고,  내용을 고쳐서 8월 15일, 등애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단산 골짜기로 와서 접응하라 한다. 위나라 군사로 변장시킨 사람을, 위나라 영채로 보내 서신을 전한다. 동시에 사람들을 시켜, 군량을 운반하는 수레 수백 량에서 군량미를 내리고, 대신에 섶과 띠 같은 인화물을 적재하고, 푸른 베로 덮는다. 부첨을 시켜, 앞서 항복한 위나라 군사 2천을 이끌고, 군량 운반을 표시하는 깃발을 들고 가게 한다. 강유가 하후패와 더불어, 각각 1군을 이끌고 산골짜기로 매복하러 가고, 장서는 사곡으로 나가고, 요화와 장익은 각각 진군하여, 기산을 치게 한다.

  卻說鄧艾得了王瓘書信,大喜,急寫回書,令來人回報。至八月十五日,鄧艾引五萬精兵逕往壇山谷中來,遠遠使人憑高眺望,只見無數糧車,接連不斸,從山凹中而行。艾勒馬望之,果然皆是魏兵。左右曰:「天已昏暮,可速接應王瓘出谷口。」艾曰:「前面山勢掩映,倘有伏兵,急難退步;只可在此等候。」正言間,忽兩騎馬驟至,報曰:「王將軍因將糧草過界,背後人馬趕來,望早救應。」艾大驚,急催兵前進。時值初更,月明如晝。只聽得山後吶喊,只道王瓘在山後廝殺。逕奔過山後時,忽樹林一彪軍撞出,為首蜀將傅僉,縱馬大叫曰:「鄧艾匹夫!已中吾主將之計!何不早早下馬死!」

한편, 등애는 왕관의 서신을 받고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답신을 쓴다. 서신을 가져온 이에게 답신을 줘서, 돌아가 보고하라 한다. 8월15일, 등애가 정병 5만을 이끌고, 단산 골짜기로 온다. 멀리멀리 사람들을 시켜 높은곳을 올라, 널리 살펴보니, 무수한 군량 수레가 끊임없이 이어져, 산요山凹(산 사이의 낮은 고개)를 따라 가고 있다. 등애가 말을 멈춰 바라보니, 과연 모두가 위나라 군사다. 좌우에서 말한다.

“이미 해가 저무니, 어서 왕관과 접응하도록 골짜기 어귀로 나가야 합니다.”

등애가 말한다.

“앞쪽 산세가 그늘져서, 복병이 있다면 쉽게 퇴각하기 어렵겠소. 일단 여기서 기다려야겠소.”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기병 두 사람이 달려와 보고한다.

“왕 장군이 군량을 가지고 경계를 넘는데, 촉나라 인마가 추격하니, 어서 구해주시기 바랍니다.”

등애가 크게 놀라, 서둘러 군사를 다그쳐 전진한다. 시각이 초경(오후 7-9시)에 이르자, 달빛이 대낮처럼 밝다. 그런데 산 뒤에서 함성이 울려, 왕관이 산 뒤에서 치르는 격전을 알려주는 듯하다. 등애가 산 뒤로 달려가자, 수풀 속에서 한 무리 군사가 튀어나오는데, 앞장선 장수는 부첨이다. 그가 크게 외친다.

“등애 필부놈아! 우리 주장의 계책에 빠졌구나! 어찌 어서 말에서 내려 목숨을 내놓지 않냐!”

  艾大驚,勒回馬便走。車上火盡著—那火便是號火。兩山下蜀兵盡出,殺得魏兵七斸八續,但聞山下山上只叫:「拏住鄧艾的,賞千金,封萬戶侯!」嚇得鄧艾棄甲丟盔,撇了坐下馬雜在步之中,爬山越嶺而逃。姜維、夏侯霸只望馬上為首逕來捉擒,不想鄧艾步行走脫,維領得勝兵去接王瓘糧車。

*斸 /촉/ 찍다. 베다.

등애가 크게 놀라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군량 수레 위가 불 붙는 것을 화호號火(봉화)로 삼아, 양쪽 산에서 촉군이 몰려나와 위나라 군사를,  열에 일고여덟을 베어넘긴다. 산 위와 아래에서 모두 외친다.

“등애를 사로잡으면 1천 금을 포상하고 ,1만 호의 ‘후’로 봉한다!”

놀란 등애가 갑옷과 투구를 내던지고, 타고 있던 말을 때려서 달아나게 한 뒤, 보졸들 틈에 섞여, 산을 기어오르고 고개를 넘어 달아난다. 강유와 하후패는 말 위에 적장이 탄 줄만 알고, 사로잡으려 달려오지만, 등애가 걸어서 달아난 줄을 모른다. 강유가 승리를 거둔 군사를 이끌고, 왕관의 군량 수레들을 맞이하러 간다.

  卻說王瓘密約鄧艾,先期將糧草車仗,整備停當,專候舉事。忽有心腹人報:「事己洩漏,鄧將軍大敗,不知性命如何。」瓘大驚,令人哨探,回報三路兵圍殺將來,背後又有塵土大起,四下無路。瓘叱左右令放火,盡燒糧草車輛。一霎時,火光突起,烈火燒空。瓘大叫曰:「事已急矣!汝宜死戰!」乃提兵望西殺出。背後姜維三路追趕。維只道王瓘捨命撞回魏國,不想反殺入漢中而去。瓘因兵少,只恐追兵趕上,遂將棧道並各關隘盡皆燒燬。姜維恐漢中有失,遂不追鄧艾,提兵連夜抄小路來追殺王瓘。瓘被四面蜀兵攻擊,投黑龍江而死。餘兵盡被姜維坑之。

한편, 왕관은 등애와 밀약을 마치고, 먼저 군량 수레를 정비한 채, 거사를 기다린다. 그런데 심복이 알린다.

“일이 누설돼, 등 장군께서 대패했는데,  목숨이 어찌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왕관이 크게 놀라 사람을 시켜 초탐하니, 돌아와서 아뢰기를, '3로에 걸쳐 군사들이 몰려오고, 그 뒤로 먼지 구름이 크게 이는데, 사방으로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한다. 왕관이 좌우에게 소리쳐, 군량 수레를 모두 불사르라 한다. 삽시간에 불빛이 치솟고, 맹렬한 불길이 하늘을 물들인다. 왕관이 크게 외친다.

“사세가 위급하구나! 모두 죽을 각오로 싸워라!”

이에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탈출한다. 배후에서 강유 군사가 3로에 걸쳐 뒤쫓는다. 강유는 왕관이 목숨을 걸고 위나라로 후퇴하는 줄 알았으나, 뜻밖에도 왕관은 도리어 한중으로 쳐들어간다. 군사가 적어 추격병이 따라붙을까 두려운 왕관은 잔도(절벽을 따라 나무로 만든 길)와 관애(험준하고 중요한 길목)를 모조리 불태운다. 한중을 잃을까 우려한 강유가, 등애를 추격하지 않고, 군사를 거느리고, 그날밤 지름길을 따라 왕관을 추격한다. 사방에서 촉나라 군이 공격하자, 왕관이 흑룡강에 몸을 던져 죽는다. 나머지 군사 모두를 강유가 산 채로 묻어버린다.

  維雖然勝了鄧艾,卻折了許多糧草,又毀了棧道,乃引兵還漢中。鄧艾引部下敗兵,逃回祁山寨內,上表請罪,自貶其職。司馬昭見艾數有大功,不忍貶之,復加厚賜。艾將原賜財物,盡分給被害將士之家。昭恐蜀兵又出,遂添兵五萬,與艾守禦。姜維連夜修了棧道,又議出師。正是:

강유가 등애를 이겼지만, 도리어 허다한 군량과 마초를 잃은데다, 잔도가 훼손돼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돌아간다. 등애가 부하 패잔병을 이끌고, 기산 영채로 달아나 조정에 표를 올려, 죄를 청하고, 스스로 그 직위를 강등한다. 사마소는 등애가 수차례 큰 공을 세운 것을 감안해, 강등을 허락치 않고, 다시 두터운 상을 내린다. 등애가 받은 재물을 모조리 피해장병들 가족에게 나눠준다. 사마소는 촉나라 군이 다시 나올까 두려워, 군사 5만을 등애에게 더 주어 방어하게 한다. 강유가 밤낮없이 잔도를 수리하고, 다시 출병을 의논한다.

連修棧道兵連出,不伐中原死不休。

잇달아 잔도를 수리해 잇달아 군사를 내니
중원을 정벌하지 못하면 죽어도 쉬지 못하리

  未知負如何,且看下文分解。

아직 승부가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인류의 진보는 테스트스테론 저하에서부터? 의약정보

흥미로운 기사(http://www.medicalnewstoday.com/articles/280560.php)가 있어서 번역해봤습니다.

Softening of human features 'coincided with technological breakthrough'

인류 외모의 순화가 기술의 대전환과 동시발생했다.


A new study of ancient skulls by researchers at Duke University in Durham, NC, suggests that early humans'

breakthrough in tool-making and interest in art - which occurred 50,000 years ago - coincided with a lowering of

testosterone levels in our species.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듀크대학교 연구진에 의한 고대인류골격에 대한 새로운 연구에서 5만년전 발생한 도구제작과 예술

적 흥미에 관한 초기인류의 대전환이 우리 종의 테스토스테론농도의 저하와 동시에 이뤄졌다고 시사한다.

Though the fossil record shows that humans have existed for about 200,000 years, it was not until around 150,000 of

those years had elapsed that human society began to take shape. Suddenly, humans leapt forward in terms of our

ability to make tools.

화석기록이 인류가 20만년간 존재했음을 보이지만 15만년이 지나서야 인류사회는 형성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인류는 도구제작

능력으로 도약했다.

Evidence shows that, around this time, humans began to construct tools out of bone and antler and heat-treated and

flaked flint. We also began to make projectile weapons, grindstones and equipment for catching fish and birds. Plus,

during that period, we also pioneered the use of fire.

증거에 의하면 이 무렵 인류는 뼈와 가지뿔로 도구를 만들고 열처리하고 부싯돌을 다뤘다. 또한 투사무기, 숫돌, 물고기와 새를

잡는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시기에 불의 사용을 개척했다.

However, experts have been unsure about what drove this first technological revolution. Did a brain mutation make

humans smarter? Did cooked food have something to do it? Or was it because this was when language evolved?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엇이 이 첫번째 기술혁신을 일으켰는지 확신치 못했다. 대뇌변이가 인류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나? 요리된

음식이 관련 있을까? 아니면 언어가 진화한 때문일까?

The Duke researchers have another theory, which they unveil in the journal Current Anthropology.

듀크연구진의 다른 이론이 <최신인류학>저널지에 발표됐다.

For their study, the researchers measured more than 1,400 ancient and modern human skulls. The majority of these

were 20th century skulls from 30 different ethnic populations, but the researchers also had access to 13 skulls that

were more than 80,000 years old, and 41 skulls from 10,000-38,000 years ago.

연구를 위해 연구진은 1400개 이상의 고대 및 현대 인류골격을 측정했다. 대다수는 30개의 다른 민족집단에서 온 것이지만 8만

년 이상된 13개의 골격과 1만년에서 3만8천년 사이의 41개 골격도 조사했다.

The analysis showed that changes in the skulls' measurements correlated with the technological advance of humans.

During this period, the heavy brows and long faces of the early humans were replaced by the softer, more rounded

and more "feminine" features of the modern human.

분석에 따르면 골격측정치의 변화가 인류의 기술진보와 연관됐다. 이 기간에 초기인류의 육중한 이마와 긴 얼굴이 현대인류의

더 부드럽고 더 둥글며 더 “여성스런” 외모로 바뀌었다.

The researchers say this is evidence that the more feminine-faced humans had lower levels of testosterone than their

predecessors - possibly from having fewer receptors for this hormone.

연구진은 이것이 여성스런 얼굴의 인류가 선조보다 낮은 농도의 테스토스테론을 가졌다는--아마도 이 호르몬의 수용체가 적

은--증거라고 말한다.

From this, the team suggests that lowered testosterone levels may have led to humans becoming more sociable and

co-operative, and less aggressive and competitive. These traits would have promoted teamwork and made

technological and societal advances possible for the first time.

이에 따라, 연구진은 감소한 테스토스테론농도가 인류를 더 사회적 협동적으로, 덜 공격적 경쟁적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 이런 특성이 처음으로 팀워크를 증진하고 기술적 사회적 진보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Testosterone levels influence skull shape in animals, too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동물의 골격 형상에도 영향을 준다

To illustrate how this works in evolutionary terms, the team points to a famous study of Siberian foxes, which showed

that the animals evolved a more juvenile appearance and docile behavior after several generations of selectively

breeding foxes that were receptive to humans.

이것이 진화적 측면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 묘사하기 위해 연구진은 시베리아여우에 대한 유명한 연구를 지적한다. 이 연구에

서 여우들은 인간을 잘 따라는 여우들을 몇 세대대에 걸쳐서 선택적으로 번식 시킨 결과 더 어린 모습과 유순한 행동으로 진화했

다.

"If we're seeing a process that leads to these changes in other animals, it might help explain who we are and how we

got to be this way," says Duke animal cognition researcher Brian Hare.

"다른 동물에서 이런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관찰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듀크의 동물인지연구원 브라이언 헤어가 말했다.

Hare explains how this hormone-driven divergence has also occurred in apes, specifically chimpanzees and bonobos.

While male chimpanzees experience a strong rise in testosterone during puberty, male bonobos do not, which leads to

very different behaviors in the two species - aggression in chimpanzees and social tolerance in bonobos.

헤어는 이 호르몬관련 분기가 어떻게 유인원 특히 침팬지와 보노보에서도 일어났는지 설명한다. 사춘기에 수컷 침팬지가 테스트

스테론의 강한 상승을 경험하는 반면에 수컷 보노노는 그렇지 않고 이것이 두 종의 매우 다른 행동--침팬진의 공격성과 보노보

의 사회적 관용--으로 이어진다.

The hormone disparities also influence the facial features of the apes - with chimpanzees exhibiting a strong brow.

"It's very hard to find a brow-ridge in a bonobo," Hare says.

이 호르몬 차이가 또한 유인원의 얼굴 모습에도 영향을 줘서 침팬지는 이마가 육중하다. "보노보에서는 안와상융선(눈뼈 위의 튀어나온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라고 헤어는 말한다.

Lead author Robert Cieri, a biology graduate student at the University of Utah who began this work as a senior at

Duke University, concludes:

유타대학교의 생물학 대학원생으로서 듀크대학교에서 이 연구를 이끈 수석저자 로버트 시어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The modern human behaviors of technological innovation, making art and rapid cultural exchange probably came at

the same time that we developed a more co-operative temperament. If prehistoric people began living closer together

and passing down new technologies, they'd have to be tolerant of each other. The key to our success is the ability to

co-operate and get along and learn from one another."

"기술혁신, 예술창조, 급격한 문화교류와 같은 현대인류의 행동은 아마도 우리가 더욱 협조적 기질을 만든 것과 동시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선사인류가 더욱 서로 가깝게 살고 새 기술을 전해주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서로를 관용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성공의 핵심은 협조하고 어울리며 서로 배우는 능력입니다."

Recently, Medical News Today reported on the analysis of a 100,000-year-old human skullthat surprised experts by

exhibiting traits thought to occur only in the skulls of Neanderthals.

최근에 메디컬뉴스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십만년전 인류의 골격에서 그동안 네안데르탈인에게만 있다고 생각된 특징이 드러나서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Written by David McNamee


풀 뜯는 젖소냥 우리집 뽀송이


'나는 혹시 젖소가 아닐까?'

선천적 젖소 무늬로 정체성 혼란에 빠진 뽀송이.

'일단 먹어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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