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별공의 취미 우리집 뽀송이

어디로 출사를 갈까 고민 중

사실 몸집을 불린 것도 무거운 카메라를 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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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FD 35/2.0 S.S.C. Mk. II)


[원문삼국지 118회] 촉나라 멸망하다 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第百一八回 哭祖廟一王死孝 入西川二士爭功

제118회 조상의 묘당에서 통곡하며 어느 왕이 순국하고 서천에 침입한 두 장수가 다투다 

  卻說後主在成都,聞鄧艾取了綿竹,諸葛瞻父子已亡,大驚,急召文武商議。近臣奏曰:「城外百姓扶老攜幼,哭聲大震,各逃生命。」後主驚惶無措。忽哨馬報到說,魏兵將近城下。多官議曰:「兵微將寡,難以迎敵;不如早棄成都,奔南中七郡:其地險峻,可以自守,就借蠻兵,再來克復未遲。」光祿大夫譙周曰
:「不可。南蠻久反之人,平昔無惠﹔今若投之,必遭大禍。」多官又奏曰:「蜀、吳既同盟,今事急矣,可以投之。」周又諫曰:「自古以來,無寄他國為天子者。臣料魏能吞吳,吳不能吞魏。若稱臣於吳,是一辱也。若吳被魏所吞,陛下再稱臣於魏,是兩番之辱矣。不如不投吳而降魏。魏必裂土以封陛下,則上能自守
宗廟,下可以保安黎民。願陛下思之。」

*平昔 /평착/ 예로부터, 언제나 

한편, 성도에서 후주는 등애가 면죽을 빼앗고 제갈첨 부자가 이미 전사한 것을 듣고 크게 놀라 급히 문무 관료를 불러모아 상의한다. 측근 신하가 아뢴다. 

"성 밖에서 백성들이 노인을 부축하고 아이를 안은 채 크게 소리내어 울며 각자 목숨을 구해 달아나고 있습니다."

후주가 놀라고 두려워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 모른다. 홀연히 초마(정찰병)가 달려와 위나라 군사가 벌써 성벽 아래에 이른 것을 알린다. 많은 신하가 의논한다. 

"병사도 적고 장수도 모자라니 맞서 싸우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일찌감치 성도를 포기하고 남중 7군으로 달아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곳의 지세가 험준하니 스스로 지킬 수 있을 뿐더러 곧 오랑캐 병사를 빌려서 되돌아와 수복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광록대부 초주가 말한다. 

"불가하옵니다. 남만 오랑캐는 오랫동안 반란을 일으킨 이들이고 평소에 아무 은혜도 베푼 적이 없습니다. 이제 그것으로 간다면 큰 화를 입을 것입니다. "

많은 관료도 아뢴다. 

"촉나라와 오나라가 이미 동맹을 맺었고 이제 사세가 위급하니 오나라로 가는 것이 옳습니다."

초주가 다시 간한다. 

"예로부터 타국에 몸을 맡긴 천자는 없었습니다. 신이 헤아려보건대 위나라는 오나라를 병탄할 수 있으나 오나라는 위나라를 병탄할 수 없습니다. 오나라에 신하를 칭한다면 일대 치욕입니다. 오나라가 위나라에 병탄된다면 폐하는 다시 위나라에 신하를 칭해야 하니 두 번이나 치욕을 껶게 되십니다. 차라리 오나라로 가지 마시고 위나라에 투항하시는 것만 못합니다. 위나라가 틀림없이 땅을 쪼개주며 폐하를 봉할 것이니 위로는 능히 스스로 종묘를 지킬 수 있고, 아래로는 여민黎民(백성)들을 보안保安할 수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살펴주소서.”

  後主未決,退入宮中。次日眾議紛紛。譙周見事急,復上疏諍之。後主從譙周之言。正欲出降,忽屏風後轉出一人,厲聲而罵周曰:「偷生腐儒,豈可妄議社稷大事!自古安有降天子哉!」後主視之,乃第五子北地王劉諶也。後主生七子:長子劉璿,次子劉瑤,三子劉琮,四子劉瓚,五子即北地王劉諶,六子劉恂,七子劉璩。七子中惟諶自幼聰明,英敏過人,餘皆懦善。

후주가 결정하지 못하고 궁중으로 물러나 들어간다. 다음날, 의견들이 분분한데 초주가 사세가 위급함을 보고, 다시 상소上疏하여,  간쟁한다. 후주가 초주의 말을 따라, 나가서 투항하려는데, 갑자기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돌아나오며, 소리높여 초주를 꾸짖는다.

“ 구차히 목숨을 구하는 썩은 유생아! 어찌 망녕되게 종묘사직의 대사를 논하냐! 예로부터 어느 천자가 투항한 적이 있더냐!”

후주가 바라보니, 그는 바로 다섯째 아들 북지왕北地王 유심劉諶이다. 후주에게 아들이 일곱 있는데 맏아들 유선劉璿, 둘째아들 유요劉瑤, 셋째 유종劉琮, 넷째 유찬劉瓚 그리고 다섯째 아들이 바로 북지왕 유심, 여섯째 유순劉恂, 일곱째 유거劉璩다. 일곱 아들 가운데 오직 유심만이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민함이 남달랐고, 나머지 모두는 여리고 착하기만 했다.

  後主謂諶曰:「今大臣皆議當降,汝獨仗血氣之勇,欲令滿城流血耶?」諶曰:「昔先帝在日,譙周未嘗干預國政;今妄議大事,輒起亂言,甚非理也。臣切料成都之兵,尚有數萬;姜維全師,皆在劍閣;若知魏兵犯闕,必來救應,內外攻擊,可獲大功。豈可聽朽儒之言,輕廢先帝之基業乎?」後主叱之曰:「汝小兒豈識天時!」諶叩頭哭曰:「若勢窮力極,禍敗將及,便當父子君臣背城一戰,同死社稷,以見先帝可也﹔奈何降乎!」後主不聽。諶放聲大哭曰:「先帝非容易創立基業;今一旦棄之,吾寧死不辱也!」後主令近臣推出宮門,遂令譙周作降書,遣私署侍中張紹、駙馬都尉鄧良,同譙周齎玉璽來雒城請降。

*寧死不辱 /영사불욕/ 차라리 죽을지언정 치욕을 받을 수는 없다.

후주가 유심에게 이른다.

“이제 대신들 모두가 항복이 마땅하다고 하거늘, 네 홀로 혈기血氣의 용맹만 믿고 성 안 가득히 피를 흘리게 할 셈이냐?”

유심이 말한다. 

"지난날 선제께서 살아 계실 적에는 초주는 일찍이 국정에 간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가 망녕되게 대사를 의논하며 함부로 난언을 지껄이니 이치에 어긋남이 몹시 심합니다. 신이 급히 헤아려봐도, 성도에는 아직 수만 명이 있습니다. 또한 강유가 군사를 온전히 거느리고 있는데 모두 검각에 있습니다. 위나라 군사가 궁궐을 침법하는 것을 그가 알면, 반드시 구원하러 올 것입니다. 안팎으로 공격하면 대공大功을 거둘 수 있사옵니다. 어찌 썩은 유생의 말만 들으시고 함부로 선제의 기업基業을 폐하십니까?"

후주가 그를 질타한다. 

"네깟 어린 것이 어찌 천시를 알겠냐!"

유심이 머리를 바닥에 찧고 곡하며 말한다. 

"세력이 궁하고 힘이 다해 화패禍敗(재앙과 실패)가 곧 닥치더라도 저희 부자와 군신이 성을 등지고 일전을 치뤄 사직과 함께 죽어야 선제 폐하을 뵐 수 있사옵니다. 어찌 항복하십니까!”

후주가 듣지 않는다. 유심이 목 놓아 크게 울며 말한다.

“선제께서 쉽게 기업基業을 창립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 하루 아침에 포기하는 것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그 치욕을 겪을 수는 없습니다.”

후주가 근신에게 명하여 유심을 궁문 밖으로 끌어내고 초주에게 항서(항복 문서)를 쓰게 한다. 사서시중 장소와 부마도위 등량을 보내어 초주와 함께 옥쇄를 가지고 낙성雒城으로 가서 항복을 청하게 한다. 

  時鄧艾每日令數百鐵騎來成都哨探。當日見立了降旗,艾大喜。不一時,張紹等至,艾令人迎入。三人拜伏於階下,呈上降款玉璽。艾拆降書視之,大喜,受下玉璽,重待張紹、譙周、鄧良等。艾作回書,付三人齎回成都,以安人心。三人拜辭鄧艾,逕還成都,入見後主,呈上回書,細言鄧艾相待之善。後主拆封視之,大喜,即遣太僕蔣顯齎敕令姜維早降;遣尚書郎李虎,送文簿與艾。共戶二十八萬,男女九十四萬,帶甲將士十萬二千,官吏四萬,倉糧四十餘萬,金銀三千斤,錦綺絲絹各二十萬疋。餘物在庫,不及具載。擇十二月初一日,君臣出降。

이때 등애는 매일 철기鐵騎(철갑을 두른 말을 탄 정예한 기병) 수백을 시켜 성도로 가서 정탐하게 한다. 그날 항복을 뜻하는 깃발을 보고 등애가 크게 기뻐한다. 얼마 안 돼 장소와 사람들이 찾아오니 등애가 사람들을 시켜 맞아들인다. 세 사람이 섬돌 아래에서 절한 뒤 항관降款(항복 문서)과 옥쇄를 바친다. 등애가 뜯어서 항서를 읽고 크게 기뻐하며 옥쇄를 받아들이고, 장소, 초주, 등량을 후대한다. 등애가 회신을 써서 세 사람에게 주고 성도로 돌아가, 인심을 안정시키게 한다. 세 사람이 등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곧바로 성도로 돌아와, 후주를 만나러 들어가, 회신을 바치며, 등애가 잘 대우해준 것을 자세히 말한다. 후주가 봉지를 뜯어서 읽더니 크게 기뻐하며 즉시 태복太僕  장현에게 칙서를 지니고 강유를 찾아가 조속한 항복을 명하게 한다. 또한 상서랑尚書郎 이호를 보내어  각종 문부文簿(문서와 장부)를  등애에게 준다. 모두 28만 호에, 남녀 94만, 대갑장사(갑옷을 갖춘 장병)가 1십만 2천, 관리가 4만, 창고의 식량이 4십만 남짓, 금은이 3천 근,  여러가지 비단이 각각 2십만 필이다. 창고에 있는 다른 물품들은 일일이 기재하지 못할 지경이다. 12월 초하루를 골라 임금과 신하들이 항복하러 나가기로 한다. 

  北地王劉諶聞知,怒氣沖天,帶劍入宮。其妻崔夫人問曰:「大王今日顏色異常,何也?」諶曰:「魏兵將近,父皇已納降款,明日君臣出降,社稷從此殄滅。吾欲先死以見先帝於地下,不屈膝於他人也!」崔夫人曰:「賢哉!賢哉!得其死矣!妾請先死,王死未遲。」諶曰:「汝何死耶?」崔夫人曰:「王死父,妾死夫,其義同也。夫亡妻死,何必問焉?」言訖,觸柱而死。諶乃自殺其三子,並割妻頭,提至昭烈廟中,伏地哭曰:「臣羞見基業棄於他人,故先殺妻子,以絕罣念,後將一命報祖!祖如有靈,知孫之心!」大哭一場,眼中流血,自刎而死。蜀人聞之,無不哀痛。後人有詩讚曰:

*觸柱而死 /촉주이사/ 기둥에 머리를 부딪혀 자살함.
*罣念 /괘념/ 상념.

북지왕 유심이 이를 듣고 노기가 하늘을 찔러 칼을 차고 궁궐로 들어간다. 그 아내 최 씨 부인이 묻는다.  

"오늘 대왕의 안색이 평소와 다른데 무슨 일입니까?"

"위나라 군사가 다가오자 부친께서 벌써 항관(항복 문서)을 바치고 내일 군신이 항복하러 나간다니 이로써 종묘사직이 진멸殄滅하게 됐소. 내가 먼저 죽어 지하에서 선제 폐하를 뵐지언정 타인에게 무릎 꿇을 수는 없소!”

최 씨 부인이 말한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때를 만났습니다! 소첩이 먼저 죽겠으니 그뒤 대왕께서 목숨을 끊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왜 죽겠다는 것이오?”

“대왕께서 부친을 위해 죽는 것이나, 소첩이 남편을 위해 죽는 것이나 그 의로움은 같습니다. 남편이 죽어 그 아내가 죽는데 그 까닭을 물어야 합니까?”

말을 마치더니 기둥에 머리를 부딪혀 죽는다. 이에 유심이 아들 셋을 죽이고, 아울러 아내의 머리를 잘라, 소열묘( 소열황제 유현덕을 모시는 묘당 ) 안으로 가져가서,  땅에 엎드려 곡하며 말한다.

“물려받은 기업基業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을 부끄럽게 지켜보는지라, 먼저 처자식을 죽여서 상념을 없앤 뒤, 제 목숨을 바쳐 조상의 은덕을 갚겠습니다!  조상의 영령이 있다면, 후손의 마음을 알아주소서!”

한바탕 크게 곡하고,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목을 베어 죽는다.   촉나라 사람들이 듣고, 애통해 하지 않는 이가 없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린다.  

君臣甘屈膝,一子獨悲傷。
去矣西川事,雄哉北地王!
殞身酬烈祖,搔首泣穹蒼。
凜凜人如在,誰云漢已亡。

임금과 신하들이 달게 무릎을 꿇는데
아들 하나가 홀로  비상悲傷(비통)하구나
서천도 이제 끝이 났지만
훌륭하다! 북지왕!
몸을 바쳐 열조烈祖의 은덕을 갚고
머리를 쥐어 뜯으며 하늘을 우러러 눈물 흘리네
늠름한 사람이 아직도 살있는 듯하거늘
누가 한나라가 망했다고 말하랴! 

  後主聽北地王自刎,乃令人葬之。次日,魏兵大至。後主率太子諸王,及群臣六十餘人,面縛輿櫬,出北門十里而降。鄧艾扶起後主,親解其縛,焚其輿櫬,並車入城。後人有詩歎曰:

*面縛輿櫬 /면박여츤/ 양손을 스스로 묶고, 수레에는 빈 관을 실음. 투항하며, 스스로 처벌을 받을 각오가 됐음을 표시.

후주는 북지왕이 자결한 것을 듣고 사람들을 시켜 장례를 치르게 한다. 다음날 위나라 군사가 크게 몰려오자, 후주가 태자와 여러 왕 그리고 6십여 명의 신하들을 이끌고,  양손을 묶고 수레에는 관을 실은 채, 북문 밖 십리까지 나가서 항복한다. 등애가 후주를 부축해 일으켜, 친히 결박을 풀어주고,  수레에 실린 관을 불사른 뒤, 함께 수레를 타고 성으로 들어간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한다. 

魏兵數萬入川來,後主偷生失自裁。
黃皓終存欺國意,姜維空負濟時才。
全忠義士心何烈,守節王孫志可哀。
昭烈經營良不易,一朝功業頓成灰。

*自裁 /자재/ 자살.
*濟時 /제시/ 세상을 구제함. 시대를 구원함. 구세.
*空負 /공부/ ~을 감당 못함. 
*良不易 /양불이/ 참으로 쉽지 않음.

위나라 군사 수만이 서천을 침입하자
후주가 구차히 살고자 자결할 때를 놓치네
황호는 끝내 국가를 기만할 뜻을 버리지 못하고
강유는  세상을 구원할 재주를 펼치지 못하네
충성를 다한 의사의 마음이 얼마나 뜨거운지
절개를 지킨 왕손의 뜻이 가련하구나   
소열황제가 경영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았거늘
하루 아침에 공업功業이 갑자기 잿더미 되었네 

  於是成都之人,皆具香花迎接。艾拜後主為驃騎將軍,其餘文武各隨高下拜官,請後主還宮,出榜安民,交割倉庫,又令太常張峻、益州別駕張紹,招安各郡軍民。又令人說姜維歸降。一面遣人赴洛陽報捷。艾聞黃皓奸險,欲斬之。皓用金寶賂其左右,因此得免。自是漢亡。後人因漢之亡,有追思武侯詩曰:

이에 성도의 사람들이 모두 향과 꽃을 갖고 영접한다. 등애가 후주를 표기장군에 임명하고, 기타 문무 관료도 지위 고하에 따라서 관직을 내린 뒤, 후주에게 궁궐로 돌아가, 방榜을 내서 백성을 안심시키게 하고, 창고를 넘겨 받는다. 또한 태상 장준과 익주의 별가 장소를 시켜,  각각의 군郡의 군사와 백성을 초안招安(반란군을 용서하고 편입함)하게 한다. 또한 사람을 보내, 강유에게 투항을 설득한다. 한편으로 사람을 낙양으로 보내 승첩을 알린다.  황호가 간사하고 음험함을 등애가 듣고, 처형하려 하지만, 황호가 금은보화로 등애의 측근을 매수해, 목숨을 구한다. 이로써 한나라가 망한다. 훗날 누군가 한나라가 망한 것을 두고, 무후(제갈공명)를 추념해, 시를 짓는다. 

猿鳥猶知畏簡書,風雲應為護儲胥。
徒令上將揮神筆,終見降王走傳車。
管樂有才真不忝,關張無命欲何如?
他年錦里經祠廟,梁父吟成恨有餘!

*簡書 /간서/ 경고, 관리의 임명, 맹서 등을 적은 문서
*儲胥 /저서/ 1)울타리 2) 비용 3) 몸종 4) 제왕의 궁전 5) (임금과 신하가 있는) 조정
*傳車 /전차/ 고대 역첨의 전용 수레. 역마차.
*梁父吟 /양부음/ 원래 초나라의 노래인데, 제갈 공명이 즐겨 불렀다고 한다.

원숭이와 까마귀도 간서簡書*를 두려워하고
바람과 구름도 마땅히 궁전을 지키려 했네
헛되이 상장군이 신필神筆을 휘두르지만
마침내 항복한 임금이 수레를 타고 가는구나 
참으로 관중과 악의 못지 않은 재주를 가졌으나
관우와 장비가 제 명에 살지 못하니 어찌하랴?
예전에 금리에서 사묘祠廟(사당)를 지날 때
양부음梁父吟은 한이 되고도 남았더라 

  且說太僕蔣顯到劍閣入見姜維,傳後主敕命,言歸降之事。維大驚失語。帳下眾將聽知,一齊怨恨,咬牙怒目,鬚髮倒豎,拔刀砍石大呼曰:「吾等死戰,何故先降耶!」號哭之聲,聞數十里。

한편, 태복 장현蔣顯이 검각으로 들어가 강유를 만나 후주의 칙명을 전하며, 이미 황제가 투항한 것을 이야기한다. 강유가 크게 놀라, 할 말을 잃는다. 군막 아래 뭇 장수가 이를 듣더니 일제히 노여워하며, 이를 갈고, 분노로 눈을 부릅뜬다.  다들 칼을 뽑아 돌을 자르며 크게 외친다.

"우리가 죽기로 싸울 것인데, 무슨 까닭으로 먼저 항복한단 말이냐!"

울부짖는 소리가 수십 리 밖까지 들린다.

  維見人心思漢,乃以善言撫之曰:「眾將勿憂。吾有一計,可復漢室。」眾將求問。姜維與諸將附耳低言,說了計策。即於劍閣關遍豎降旗,先令人報入鍾會寨中,說姜維引張翼、廖化、董厥前來降。會大喜,令人迎接維入帳,會曰:「伯約來何遲也?」維正色流涕曰:「國家全師在吾,今日至此,猶為速也。」

강유가 사람들이 진심으로 한나라를 생각하는 것을 보고, 좋은 말로써 위무한다.

"장수들은 걱정하지 마시오. 내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한실(한나라의 황실)을 되찾을 수 있소."

장수들이 묻자, 강유가 여러 장수에게 귓속말로 말소리를 낮춰 계책을 설명한다. 즉시 검각에 항복의 깃발을  두루 세우고, 먼저 사람을 종회의 영채로 보내, 강유가 장익, 요화, 동궐을 이끌고 항복하러 올 것이라고 전한다. 종회가 크게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 강유를 영접해 군막으로 들이고, 종회가 말한다.

"백약(강유의 자字)께서 어찌해서 늦으셨소?"

강유가 정색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국가의 모든 군사가 제게 있는데, 오늘 여기 왔으니, 오히려 빠른 것이오."

  會甚奇之,下座相拜,待為上賓。維說會曰:「聞將軍自淮南以來,算無遺策;司馬氏之盛,皆將軍之力;維故甘心俯首。如鄧士載,當與決一死戰。安肯降之乎?」會遂折箭為誓,與維結為兄弟,情愛甚密,仍令照舊領兵。維暗喜,遂令蔣顯回成都去了。

*遺策 /유책/ 실수, 실책
*算無遺策 /산무유책/ 계획을 세움에 있어서 실수가 없음 

종회가 이를 심히 뛰어나다고 여기고, 자리에서 내려와 절하고, 상빈으로 대우한다. 강유가 종회에게 이야기한다.

"듣자니, 장군께서 회남에서 오신 이래, 계획을 세우며 아무 실책이 없었다고 하오. 사마 씨가 번성하는 것도 모두 장군의 힘이오. 제가 그러므로 달가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소. 만약 등사재(등애)였다면, 마땅히 더불어 죽기를 각오한 일전을 벌이지, 어찌 기꺼이 그에게 항복하겠소?"

종회가 이에 화살을 꺾어 맹서하며, 강유와 형제의 의를 맺는다. 그 정애情愛가 몹시 친밀해, 이전처럼 군사를 거느리게 한다. 강유가 마음 속으로 기뻐하며, 장현을 성도로 돌아가게 한다.  

  卻說鄧艾封師纂為益州刺史,牽弘、王頎等各領州郡;又於綿竹築臺以彰戰功,大會蜀中諸官飲宴。艾酒至半酣,乃指眾官曰:「汝等幸遇我,故有今日耳。若遇他將,必皆殄滅矣。」多官起身拜謝。忽蔣顯至,說姜維自降鍾鎮西了。艾因此痛恨鍾會,遂修書令人齎赴洛陽致晉公司馬昭。昭得書視之。書曰:

한편, 등애가 사찬을 익주자사로 봉하고, 견홍과 왕기 들로 하여금 각각 주군州郡을 다스리게 한다. 또한 면죽에 '대臺'를 쌓아 전공을  자랑하고, 촉나라의 여러 관리를 크게 불러 연회를 베푼다.  등애가 술이 거나해지자, 뭇 관리를 가리키며 말한다.

"그대들이 다행히 나를 만나서, 오늘이 있는 것이지, 다른 장수를 만났으면, 틀림없이 모두 진멸殄滅(소멸/멸절)했을 것이오."

많은 관리가 일어나 절을 올리며 감사를 표한다. 그런데 장현이 오더니, 강유가 스스로 종진서鍾鎮西(진서장군 종회)에게 투항한 것을 이야기한다. 등애가 이 때문에 종회를 몹시 미워해, 글을 다듬어 써서, 사람을 시켜 낙양으로 가서 진공晉公 사마소에게 전하게 한다. 사마소가 글을 읽어보니 이렇다.

臣艾竊謂兵有先聲而後實者。今因平蜀之勢以乘吳,此席捲之時也。然大舉之後,將士疲勞,不可便用;宜留隴右兵二萬,蜀兵二萬,煮鹽興冶,並造舟船,預備順流之計﹔然後發使,告以利害,吳可不征而定也。更以厚待劉禪,以攻孫休,若便送禪來京,吳人必疑,則於向化之心不勸;且權留之於蜀,須來年冬月抵京。今即可封禪為扶風王,錫以貲財,供其左右,爵其子為公卿,以顯歸命之寵;則吳人畏威懷德,望風而從矣。

*先聲後實 /선성후실/ 먼저 명성을 이용해, 적군의 사기를 꺾은 뒤, 실력으로 제압함.
*煮鹽 /자염/ 바닷물 따위를 졸여서 소금을 만듦.
*望風 /망풍/ 나무나 풀이 바람에 쓰러지듯이, 명성을 우러러 복종함.

‘신, 등애가 가만히 생각하건대, 용병에 있어서, 먼저 명성으로 적군의 사기를 꺾은 뒤, 실력으로 제압해야 합니다. 이제 촉나라를 평정한 기세로써 오나라를 친다면, 이것이야말로 석권席捲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군사를 크게 일으킨  뒤라서, 장사들이 피로하므로, 곧바로 쓸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농우의 병력 2만, 촉의 병력 2만을 남겨, 소금을 생산하고 대장간을 설치하고, 아울러 주선舟船(선박)을 건조해, 순류順流의 계책(강물이 촉나라에서 오나라로 흐르는 것을 이용해, 배를 타고 공격하는 계책)을 예비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관리를 보내, 이해득실로써 고하면, 오나라는 굳이 정벌하지 않아도 평정될 것입니다. 더욱이 유선을 후대하는 것은 손휴를 약화시키는 것인데, 만약 유선을 서울로 압송한다면, 오나라 사람들이 반드시 의심을 품을 것입니다. 이렇다면 향화向化(귀화)할 마음을 그들에게 권할 수 없습니다.  우선 유선을 잠시 촉나라에 머물게 하고, 내년 동월冬月(동짓달)에 서울로 보내야 합니다. 이제 즉시 유선을 부풍왕으로 책봉하고, 그에게 재물을 하사하고, 그를 돌볼 사람들을 주며, 그 아들들에게 공경의 작위를 주어서,  귀명歸命의 은혜를 드러내십시오. 그렇다면 오나라 사람들이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덕을 우러러, 마치 나무나 풀이 바람에 쓰러지듯이 복종할 것입니다.’

  司馬昭覽畢,深疑鄧艾有自專之心,乃先發手書與衛瓘,隨後降封艾詔曰:
征西將軍鄧艾,耀威奮武,深入敵境,使僭號之主,係頸歸降;兵不踰時,戰不終日,雲撤席捲,蕩定巴蜀;雖白起破強楚,韓信克勁趙,不足比勳也。其以艾為太尉,增邑二萬戶,封二子為亭侯,各食邑千戶。

*降封 /강봉/ 1) 계급 따위를 강등함 2) 외지에 따로 책봉함. 본문에서 2)의 뜻.
*係頸 /계경/ 올가미 따위로 목을 묶어 항복을 표시함.

사마소가 읽고나서 등애가 제멋대로 처리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았는가 깊이 의심하고, 먼저 수서手書(친필 서신)를 써서 위관에게 준다. 뒤따라 등애를 책봉하는 천자의 조서를 내리게 하는데 그 내용이 이렇다.

‘정서장군征西將軍 등애는 위용을 빛내고 무력을 떨치며 적경(적의 영토) 깊숙히 들어가, 그 동안 참호僭號(함부로 분수에 맞지 않는 호칭을 자신에게 붙임 / 여기서는 함부로 천자라고 일컬은 것을 가리킴)하던 군주(촉나라 황제 유선)로 하여금  스스로 목줄을 매고 투항하게 하였소. 용병에 있어서 시기를 놓치지 않아,  싸움이 하루를 넘기지 않았고, 구름 속을 헤치고 휩쓸어, 파촉을 평정했소. 비록 백기白起가 저 강대한 초나라를 격파하고, 한신韓信이  저 강력한 조나라를 이겼다고 한들, 등애의 공훈에 비하기에 부족하오. 등애를 태위로 임명하고, 식읍을 2만 호戶로 늘리며, 두 아들을 정후로 봉하고, 식읍을 각각 1천 호로 하겠소.’

  鄧艾受詔畢,監軍衛瓘,取出司馬昭手書與艾。書中說鄧艾所言之事,須候奏報,不可輒行。艾曰:「『將在外,君命有所不受』。吾既奉詔專征,如何阻當。」遂又作書,令來使齎赴洛陽。時朝中皆言鄧艾必有反意,司馬昭愈加疑忌。忽使命回,呈上鄧艾之書。昭拆封視之,書曰:

등애가 조서를 받자, 감군 위관이 사마소의 수서(친필 서신)를 꺼내서 등애에게 준다. 글 속에서 사마소는, 등애가 말했던 일들은 반드시 주복奏報(신하가 서면으로 임금에게 보고하는 것)을 기다려야지, 제멋대로 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등애가 말한다. 

“장수가 외지에 있을 때는, 임금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소. 내 이미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 전정專征(어명을 받고 마음대로 정벌을 행함)을 하거늘, 어찌 막을 수 있다 말씀이오.”

이에 다시 서신을 써서, 찾아온 사자에게 줘서 낙양으로 보낸다. 이때 위나라 조정에서 모두 등애에게 반역의 뜻이 있다고 말하고, 사마소가 더욱 의심하고 있는데, 사자가 돌아와서, 등애의 서신을 바친다.  사마소가 봉투를 뜯어서 읽어보니 이렇다.

艾銜命西征,元惡既服,當權宜行事,以安初附。若待國命,則往復道途,延引日月。春秋之義,大夫出疆,有可以安社稷,利國家,專之可也。今吳未賓,勢與蜀連,不可拘常以失事機。兵法進不求名,退不避罪。艾雖無古人之節,終不自嫌,以損於國也。先此申狀,見可施行。

*銜命 /함명/ 명령을 받들어 지킴.
*權宜 /권의/ 임시 조치. 임시로 적당하게 조치함.
*自嫌 /자혐/ 스스로 의심함. 양심의 가책. 자신이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함.

‘제가 명령을 받들어 서쪽을 정벌하여,  이미 원악元惡(원흉/수괴)이 굴복했으니, 마땅히 임시로 일을 처리해,  초기에 복속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만약 일일이 국가의 명을 기다린다면, 도로를 왕복하느라 시일을 지체할 것입니다. 춘추春秋(공자가 편찬했다는 역사서)의 대의大義에 따르면, 대부大夫(고위 관료)가 출강出疆(국가의 강역 밖으로 나감)했을 때, 사직을 안정시키고 국가에 이로울 일이 있다면, 마음대로 행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오나라가 아직 굴복하지 않았고 그 세력이 촉나라와 연결돼 있으니,  관례에 구애되어 실기失機해서는 안 됩니다.  병법에 따르면, 진군할 때는 명성을 구하지 않고, 후퇴할 때는 죄를 피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비록 고인古人들의  절개는 가지지 못했으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 부끄러운 일로써 나라에 손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司馬昭看畢大驚,慌與賈充計議曰:「鄧艾恃功而驕,任意行事,反形露矣﹔如之奈何?」賈充曰:「主公何不封鍾會以制之?」昭從其議,遣使齎詔封會為司徒,就令衛瓘監督兩路軍馬,以手書付瓘,使與會伺察鄧艾,以防其變。會接讀詔書,詔曰:

사마소가 읽고나서 크게 놀라, 황망히 가충과 더불어 토의하며 말한다.

“등애가 공훈을 믿고 교만해,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며, 반형反形(반역의 형적/기미)을 드러냈소. 어찌해야겠소?”

가충이 말한다.

“주공께서는 어째서 종회를 봉封해서 등애를 누르지 않으십니까?”

사마소가 그 의견을 따라, 사자에게 조서를 줘서 등애를 사도司徒로 임명한다. 또한 위관에게 등애와 종회 두 개 방면의 군마들을 감독하라 명하고, 그에게 수서(친필 서신)를 줘서, 종회와 협력해 등애를 사찰伺察해 변고를 방비하라고 한다. 종회가 조서를 받아 읽으니 이렇다.

鎮西將軍鍾會,所向無敵,前無強梁,節制眾城,網羅迸逸;蜀之豪帥,面縛歸命;謀無遺策,舉無廢功;其以會為司徒,進封縣侯,增邑萬戶,封子二人亭侯,邑各千戶。

*強梁 /강량/ 난폭하거나 잔인한 사람.
*節制 /절제/ 지휘와 관할.
*迸逸 /진일/ 도망자.
*網羅 /망라/ 본문에서는 그물을 치듯이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잡아들였다는 뜻.
*面縛 /면박/ 두 손을 뒤로 묶음 
*遺策 1) 실책 2) 앞 사람에게서 물려받은 계획/계책 
*縣侯 /현후/ 한나라 열후의 작위 중에서  큰 것. 작은 것은 향후, 정후. 말단이 관해후.

‘진서장군 종회는 가는 곳마다 무적無敵이고, 그 앞에서 누구도 그보다 강하지 못했으며,  여러 곳의 성을 장악하고, 아무도 달아나지 못하게 만들었소. 촉나라의 용맹한 장수들도 두 손을 뒤로 묶은 채 귀명歸命(귀순)했소. 계책을 내어서 실책이 없었고,  거사에 있어서 폐기할 공로가 없었소. 이제 종회를 사도司徒로 임명하고, 현후縣侯(열후의 작위 중에서  큰 것)로 작위를 높여,  식읍을 1만 호戶로 늘리고,  아들 두 사람을 정후로 봉해, 각각 식읍을 1천 호로 하겠소.

  鍾會既受封,即請姜維計議曰:「鄧艾功在吾之上,又封太尉之職;今司馬公疑艾有反志,故令衛瓘為監軍,詔吾制之,伯約有何高見?」維曰:「愚聞鄧艾出身微賤,幼為農家養犢,今僥倖自陰平斜徑,攀木懸崖,成此大功,非出良謀,實賴國家洪福耳。若非將軍與維相拒於劍閣,又安能成此功耶?今欲封蜀主為扶風王,乃大結蜀人之心,其反情不言可見矣。晉公疑之是也。」

*斜徑 /사경/ 비탈길

종회가 벼슬을  받은 뒤, 즉시 강유를 불러 토의하며 말한다.

“등애의 공로가 나보다 위에 있고, 또한 태위의 직위를 받았소. 이제 사마 공께서 등애에게 반역의 뜻이 있다고 의심해, 위관을 감군監軍으로 삼고,  내게 조서를 내려 그를 누르게 하는데, 백약(강유)의 고견을 듣고 싶소.”

“내가 듣자니, 등애는 출신이 미천하고, 어려서는 농가에서 송아지를 키웠소. 이제  요행히 음평의  비탈길을 통해서,  나무를 붙잡고 벼랑에 매달려, 이러한 큰 공을 이뤘으나, 이것은 어떤 뛰어난 계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참으로 국가의 홍복에 힘입었을 뿐이오. 만약 장군께서 나와 검각에서 대치하지 않았다면, 또한 어찌 이러한 공을 이룰 수 있었겠소? 이제 촉나라 임금을 부풍왕으로 봉하려 하다니, 이것은 촉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결속하는 것이니, 그 반역의 뜻을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이오. 진공晉公이 의심하는 것이 이것이오.”

  會深嘉其言。維又曰:「請退左右,維有一事密告。」會令左右盡退。維袖中取出一圖與會,曰:「昔日武侯出草廬時,以此圖獻先帝,且曰:『益州之地,沃野千里,民殷國富,可為霸業。』先帝因此遂創成都。今鄧艾至此,安得不狂?」 會大喜,指問山川形勢。維一一言之。會又問曰「當以何策除艾?」維曰:「乘晉公疑忌之際,當急上表,言艾反狀;晉公必令將軍討之,一舉而可擒矣。」 會依言,即遣人齎表進赴洛陽,言鄧艾專權恣肆,結好蜀人,早晚必反矣。於是朝中文武皆驚。會又令人於中途截了鄧艾表文,按艾筆法,改寫傲慢之辭,以實己之語。

종회가 그 말을 몹시 훌륭하다고 여긴다. 강유가 또 말한다. 

“청컨대 좌우를 내보내 주시오. 내게 한가지 은밀히 아뢸 일이 있소.”

종회가 좌우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다. 강유가 소매 속에서 지도를 하나 꺼내어 종회에게 주며 말한다.

“지난날 무후께서 초려에서 나올 적에 이 지도를 선제께 바치며 말씀하시기를, ‘익주의 지리는 옥야천리沃野千里(기름진 들판이 천 리에 걸쳐 펼쳐짐)이고, 백성과 국가가 부유하니, 가히 패업霸業을 이룰 만한 곳입니다.’ 라고 하셨소.  선제께서 이 때문에 성도에서 창업하신 것이오. 이제 등애가 이곳에 왔으니, 어찌 광분하지 않겠소?”

종회가 크게 기뻐하며, 산천의 형세를  가리키며 묻자, 강유가 일일이 이야기해준다. 종회가 다시 묻는다. 

“무슨 계책으로 등애를 없애야겠소?”

“진공이 그를 의심하는 틈을 타서, 급히 표를 올려, 등애에게 반장反狀(모반의 정황)이 있다고 하시오. 진공이 틀림없이 장군을 시켜 그를 토벌하라 할 것이니, 일거에 잡을 수 있을 것이오.”

종회가 그 말을 따라, 즉시 사람을 낙양으로 보내 표를 바쳐, 등애가  권력을 제멋대로 방자하게 휘두르고 촉나라 사람들과 결호結好(좋은 의를 맺음)하니 조만간 틀림없이 반역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조정의 문무 관료가 모두 경악한다. 종회가 또한 사람을 시켜 중도에서 등애의 표문을 가로챈 뒤, 등애의 필법을 베껴, 오만한 언사로 고쳐 적어서, 자신을 높이는 내용으로 만든다.  

  司馬昭見了鄧艾表章,大怒,即遣人到鍾會軍前,令會收艾,又遣賈充引三萬兵入斜谷,昭乃同魏主曹奐御駕親征。西曹掾邵悌諫曰:「鍾會之兵,多鄧艾六倍,當今會收艾足矣,何必明公自行耶?」昭笑曰:「汝忘了舊日之言耶?汝曾道會後必反,吾今此行非為艾,實為會耳。」悌笑曰:「某恐明公忘之,故以相問。今既有此意,切宜秘之,不可泄漏。」昭然其言,遂提大兵起程。時賈充亦疑鍾會有變,密告司馬昭。昭曰:「如遺汝,吾亦疑汝耶?且到長安,自有明白。」

사마소가 등애의 표장을 읽더니, 크게 노해, 즉시 사람을 종회의 군전軍前(전초기지/싸움터)으로 보내, 종회로 하여금 등애를 잡게 하고, 또한 가충을 보내 군사 3만을 이글고 사곡으로 들어가게 한다. 사마소가 위나라 군주 조환과 함께  어가御駕(황제의 수레)를 끌고 친정親征에 나선다. 서조연西曹掾(태위, 승상 밑의 관직) 소제가 간언을 올린다.

“종회의 병력이, 등애보다 여섯 배 많으니, 마땅히 이참에 종회로 하여금 등애를  잡게 하기에 족하거늘, 어째서 꼭 명공께서 친히 가시려 하십니까?”

사마소가 웃으며 말한다.

“그대는 지난날의 말을 잊었단 말이오? 그대가 일찍이 종회가 훗날 반드시 반역할 것이라 말하지 않았소. 내가 이렇게 가는 것은 등애 때문이 아니라, 실은 종회 때문이오.”

소제가 웃으며 말한다.

“제가 명공께서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셨을까 걱정돼, 일부러 물은 것입니다. 이제 이런 뜻을 품으셨으니, 절대로 비밀로 하시고, 누설되지 않게 하십시오.”

사마소가 그 말을 옳게 여겨, 이에 대군을 이끌고 길을 떠난다. 이때 가충도 종회가 변란을 일으킬까 의심해 은밀히 사마소에게 고하니 사마소가 말한다. 

"내가 그대를 보냈더라면 내가 그대도 의심하지 않았겠소? 우선 장안에 도착하면 저절로 명백히 드러날 것이오."
  
     早有細作報知鍾會,說昭已至長安,會慌請姜維商議收艾之策。正是:

재빨리 세작(첩자)이 종회에게, 사마소가 장안에 이미 왔다고 알리니, 종회가 황망히 강유를 불러, 등애를 잡을 계책을 상의한다. 

纔見西蜀收降將,又見長安動大兵。

서촉에서 항복한 장수를 거두자마자
다시 장안에서 대군을 움직이네

未知姜維用何策收艾?且看下文分解。

강유가 무슨 계책으로 등애를 잡을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서 풀리리다. 




베개냐? 고양이냐? 우리집 뽀송이

어젯밤 마치 베개처럼 누운 은별공

다이어트 하는 중인데도;;;;

뽀송이와

단풍이도 잘 지냅니다 

(Canon FL 55/1.2)


온천천의 물새들 사진

흰뺨검둥오리

개체수가 많습니다

물새 흉내를 내던 비둘기

쇠백로


백할미새

지난 일요일 산책하며 찍었는데, 왜가리는 못 만났네요

(Tamron Adaptall-2 SP 60-300)


코타키나발루 반딧불 투어 여행

다른 렌즈를 가져가지 않아 전부, 풀프 환산 35미리 렌즈로 촬영해야 했습니다;;;


선착장


맹글로브가 우거진 강을


이런 배로 돌아다니는데


제법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가끔 이런 거함도 돌아다닙니다


도마뱀도 만나고


원숭이도 만나고

두 사진은 35미리 렌즈라 무리하게 크랍했습니다


드디어 컴컴한 밤이 되어

드디어 나무에 무수히 명멸하는 반딧불들을 촬영했습니다-_-;;;;;;;;;;;;;;;

실제로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사진으로 담은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a3000의 iso를 최대로 높여서 찍었더니 이런 망작이;;;;;

A7S로 찍는다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혹시 여기 가시는 분 계시면 꼭 밝은 망원레즈를 가져 가세요 저녁 무렵에 나오는 원숭이들 찍으려면 꼭 필요합니다

Canon FD 35mm F/2.0 S.S.C. Mk. II
LT2
A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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